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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씩 쌓아가는 희망

#847 김경범, 전 서울대학교 교수 2023.01.02
“지난해를 기억하며 미소 지을 일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올해는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의 도움으로 누군가 성장할 수 있으면 그게 희망 아닐까요. 그렇다면 희망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본문 발췌)                                        

 

 

시간은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듯 고정된 듯, 예정된 듯 그렇지 않은 듯 지나갑니다. 사실 시간이 지나가는 것인지 아닌지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한 해를 살았고 한 해를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대지에 발 딛고 해와 달이 움직이는 하늘의 주기에 맞춰 살고 있으니, 한 해 단위로 기억과 경험을 구분하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어떤 시간은 기억에 있고, 우리가 경험한 거의 모든 시간은 기억에 없습니다. 중요하다고 여겨서 다투었지만 별 게 아니었던 일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난해 치렀던 대선과 지선이 그런지도 모릅니다. 반면 폭풍을 가져올 나비의 날갯짓인 줄 모르고 지나친 일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지난해를 기억하며 미소 지을 일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올해는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연초부터 정치 일정에 따라 거친 선거가 사회를 휘몰아쳤고, 여름이 오면서는 교육부 장관을 둘러싼 이슈가 있었습니다. 장관 후보자의 자질이 주요 논란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장관 사퇴를 촉발한 만 5세 입학과 최근 현 장관의 언론 인터뷰가 기억납니다. 교육청 정책은 정형화된 수사(修辭) 외에 딱히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에 장관 개인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와 별개로, 만 5세 입학 정책은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 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당연히 만 5세 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기존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형태는 아닙니다.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당시 교육부는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대통령이 나서서 “연말까지 검토하여 적극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은 결코 아닙니다. 만 7세 입학을 2년 앞당기기 위해 단순히 입학 대상자를 13개월씩 늘려서 24년에 걸쳐 추진하거나 14개월씩 12년에 걸쳐 추진하는 산수(算數)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교실에 몇 개의 의자와 책상을 놓을지 같은 시설 문제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 유치원 교육과정이 초등교육과정에 편입되어 유·초등 통합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일까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만, 이는 유·초등교육이 통합되는 학제 개편을 의미합니다.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현 정부는 유보통합을 추진하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가 유보통합을 추진하기로 하고 교육부 조직도 만들었는데, 여기서 다시 유·초등교육 통합을 추진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타당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왜 현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초등학교 5세 입학을 추진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문제였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용어를 잘못 골랐습니다. “만 5세 초등입학”이 아니라 “만 5세 국가 책임교육” 혹은 “출생부터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학제 개편 논의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학제 개편은 학교 연한, 교육과정, 시설, 교사(양성, 임용, 재교육 과정), 교대·사대 구조조정, 고교체제, 교육행정, 대학입시, 대학 체제 등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야말로 국가교육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이를 ‘교육개혁’으로 부르던 ‘교육대전환’으로 부르던, 그 명칭이 무엇이든 우리가 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정부가 내년에 이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국가가 보육과 교육을 완전하게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강조하는 문구처럼, 모든 아이가 같은 출발선에서 양질의 보육과 교육을 받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저출생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필수 과제입니다. 보육, 유아교육, 초등교육에서 국가의 책임이 더욱 강화되려면 투입된 예산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쓰여야 하고, 그러려면 교사를 비롯한 사람에게 투자되어야 합니다. 중등교육에서는 학교 수업 혁신과 온라인 교육의 결합을 통해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미래를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등교육 영역에서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자율이 아니라 ‘돈’입니다. 대통령은 모 신문사와 가진 신년 인터뷰(1월 2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산업과 과학기술 수준을 올리기 위해 실력 있는 인재를 공급할 수 있는 고등교육 체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지역이 균형 발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핵심이다. 또 초등·중학교 아이들의 돌봄과 교육을 국가가 확실하게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또 다방면에서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사립학교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허용해 줘야 한다.”

 

제 눈에는 새로운 정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국가의 책임 강화와 교육개혁은 시스템 개혁이 아니라 예산 지원사업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정부는 교육개혁을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가 말하는 교육개혁은 교육개혁이 아닙니다. 목적과 예산 사이에 ‘누가 그리고 어떻게’가 빠져 있습니다. ‘교사 연수’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진작 그렇게 되었겠지요.

 

새해 정부의 주요 교육 이슈는 ‘2028학년도 대입제도와 에듀테크’가 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2028 대입제도 이슈는 지난 정부의 대입 논란처럼 시끄럽지 않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교육부 장관이 “미세 조정”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새 교육과정과 충돌하는 수능 체제가 만들어져서는 과거처럼 학교 수업이 수능 대비 문제풀이 위주로 돌아가게 되는 논란의 방아쇠가 당겨집니다. 물론 교육부는 교육과정과 수능이 따로 노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냐며 언론을 눙치고, 교사와 학부모는 이에 순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신뢰와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로써 현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근근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정부가 된다는 뜻입니다. 2028 대입 논의에는 여러 가지 사안과 관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입시라는 복잡계는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여 전체에 접근할지가 중요합니다. 저는 그 출발점이 수능 응시영역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는 수능 응시영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에듀테크 도입 이슈는 이 상품이 과연 교사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사들이 이 상품을 얼마나 활용하는지가 관건입니다. 저는 어떤 상품이 교사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더욱이 어떤 상품은 교사의 역할을 대신한다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교사가 쓰지 못하거나 쓰지 않는 상품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므로 상품을 잘 고르는 일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에듀테크 상품을 구매하여 학교에 제공한다고 해서, 새로운 학교 교육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에듀테크보다 교사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보통합 영역에서는 관료들의 ‘시간끌기 신공(神功)’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세부 정책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 통합하기 쉽지 않은 사안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정부의 의지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지난 12월 22일 발표된 새 교육과정은 올해부터 적용되기 시작하여 2025학년도에 모든 학교의 모든 학년에서 운영됩니다. 올해 공통과정을 운영하는 학교 현장은 지금처럼 어정쩡한 상태로 대입제도 발표를 기다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후년 학교 현장은 매우 소란스러울 겁니다. 장관 부재, 국가교육위원회 구성 등 정부의 준비 부족 때문에 교육과정 확정 발표가 너무 늦었습니다. 더구나 내신 평가 방식은 2월에 발표한다고 합니다. 작년 여름에 일괄 발표해서 일선 학교로 하여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했습니다. 고등교육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정부는 자율권을 주면서 자율적으로 인수·합병 등의 구조조정을 해서 파산을 피하라고 합니다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파산은 시간문제이고, 빚잔치조차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대학이 파산하기까지 지급되지 못한 인건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교육부가 말하는 자율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국가가 대학에 지원하는 운영 예산은 생존하기에는 너무 적고, 사업비로는 발전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학문 영역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고등평생교육특별회계 신설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과 연동되어 있어서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개입하는 일회성 사업비입니다. 전국의 96개 대학이 2025년까지 입학 정원을 16,197명 감축하는 대가로 1,400억을 받는 대학혁신지원사업도 단지 진통제일 뿐입니다. 최소 10년 동안 유지되는 대학구조조정 및 재생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경기도와 부산을 비롯한 일부 교육청에서는 IB 도입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기존에 IB 교육과정을 도입했던 제주와 대구 학생들이 올해 대학에 진학하는데 이 학생들의 대입 결과가 다른 교육청이 추진하는 IB 도입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듯합니다. IB 교육과정 도입은 교육감의 정치적 업적을 세우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아이들을 위함일까요. 도대체 IB 도입에 투입된 혹은 투입될 예산은 몇 명의 아이들을 위함인가요. 비록 별 추진 계획도 없고 개념도 없으며 이름도 구태의연하지만, 차라리 한국형 IB가 모든 아이를 위한 선택이 되지 않을까요. 정치인과 관료는 자신의 이익과 철학을 관철하려고 합니다. 아이의 미래는 여기저기 가져다 쓰는 듣기 좋은 수사이지요.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제와 오늘이 같으면 현재와 미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최선은 그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詩)」처럼, 갑순이는 갑순이의 마당을 쓸고, 을돌이는 을돌이의 마당을 쓸고, 여러분도 저도 각자 자신의 마당을 쓸면, 우리 세상이 새해에 조금 더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리라 생각합니다. 마당을 쓸지 않았다면 마당을 쓸어 보시고, 한 평의 마당을 쓸었다면 올해는 한 평 반을 쓸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당을 쓸어서 그 마당의 꽃들이 하루하루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우리의 도움으로 누군가 성장할 수 있으면 그게 희망 아닐까요. 그렇다면 희망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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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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