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 ‘2028 대입제도’] 수능과 학생부의 대입제도, 그리고 학교 교육
[기획칼럼 – ‘2028 대입제도’]
이 기획칼럼은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다루며, 격주로 연재합니다. 구태에 갇힌 ‘개편’ 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공론의 길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교육을 ‘술책의 게임’으로 전락시켜 온 대입제도를 되짚으며, 학교와 교육의 의미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 [요약]
이전 글들에서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이 우리 교육 문제를 악화시킬지언정 덜지는 못할 것이라 사실상 장담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렇게 장담하는 이유를 부연했다. 수능과 학생부를 근간으로 두는 대입제도 틀을 유지하는 한 개편은 의미 없다고 비판했다. 수능이나 학생부는 학생들의 공부와 학교 활동을 편협하고 작위에 불과하도록 만들며, 학교 교육을 전면적으로 부패시키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제는 진부하게 취급되는 ‘입시 위주 교육’에 대한 경각의 담론을 되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입시 위주의 나락에서 벗어나 학교 교육이 본연을 찾아가야 한다면, 그 본연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 나가려는 채비이다. |
계속 이어질 학교 교육의 타락
2028학년도 대입을 위한 제도 개편은 아직 윤곽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대할 게 없으리라고 앞선 글들에서 거의 단언했었다. 어쩌면 설되고 무모하게 여겨질 수 있는 예견이었지만, 상황은 벌써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취임한 교육부장관은 취임하던 날 회견 자리에서 대입제도를 크게 바꾸지 않겠다고 얘기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고교학점제를 예정대로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 봐야 하겠다고 얘기했다 한다. 대입제도를 크게 바꾸어야 할 이유가 됐던 제도의 조임도 느슨하게 풀어 논란될 만한 변화를 피하려는 심산인 듯하다. ‘미래형 대입제도’를 지향한다고 거창한 기치를 내걸고 출발했지만, 결국 이번 대입제도 개편도 예전처럼 시중의 논란을 무마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에 대해 서두르듯 비관적인 예견을 냈던 것은 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미리 점칠 수 있다고 뽐내려 했던 게 물론 아니다. 계산이 있었다면, 오히려 예견이 틀리길 바라는 것이었다. 사전에 부정적인 예견들이 나돈다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혹 그런 풍설에 대응하거나 반증하려는 움직임이 일지는 않을까 하는, 그래서 개편이 조금이나마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이제까지와는 다른(기존 틀을 다시 생각해 보는) 논의의 싹이라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가느다랗게 기대했었다. 지금 일이 돌아가는 꼴을 보아서는 이런 기대가 역시 순진했던 것 같다.
대입제도 개편에 기대할 게 없으리라고 거의 장담할 수 있는 근거는 단순히 정권의 속성이나 장관의 생각과 같은 변두리 변수를 헤아려서 얻은 게 아니다. 이미 얘기했었듯이, 그 이유는 더 근원적인 데서 볼 수 있었다. 정권이나 장관 같은 요인은 사실 대입제도의 모습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못한다. 특히, 기존의 틀을 그대로 두고 조정만 한다는 한에서는 더욱 그렇다.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은 수능과 학생부라는 주축을 그대로 둔 채 출발했다는 점에서, 다른 고려 없이도, 이미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얘기할 수 있다.
정권의 색깔이나 장관의 식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책 변화 정도가 사소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경험해 왔듯이, 정권이나 장관이 바뀌면 대입제도 방향도 덩달아 바뀌어 왔고, 그때마다 학교와 사회가 아우성쳐 왔다. 이번에도 집권당이 바뀌어서 제도에 큰 ‘턴’이 일어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게(또는 기대를 품고) 주목하는 분위기이다. 이를테면, 수능과 학생부(정시-수시) 가운데 비중은 어디로 더 쏠릴지, 고등학교 간 차이(‘자사고·특목고’ 또는 ‘서열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지, 대학에는 어느 정도 재량을 줄지 등 이른바 쟁점은 수두룩하다. 이런 것들이 쟁점인 이유는 정권의 색깔에 따라 그것에 대한 정책 대응이 사뭇 달라질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그렇게 불거진 차이는 학생(학부모)이나 학교(교사)의 행위(전략)를 크게 바꾸기 마련이다. 이런 변화가 대수롭지 않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대입제도 변화는 설령 그것이 절대적으로 작더라도, 일단 변화가 일어나면, 수많은 학생(학부모)과 학교(대학)에 성가신 적응을 강요할 것이고, 사교육 시장이나 가계의 수지에도 무시할 수 없는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파급은 정책상 당연히 우려해야 할 일이고, 그만큼 막대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에 따른 사회의 출렁임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학교 교육의 성질을 크게 호전시키지 못한다면 교육 정책으로서의 가치는 미미한 것이다. 이번 개편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그런 뜻에서 하는 것이다. 개편에 따른 파장이야 작지 않겠지만, 학교 교육이 나아지는 바는 거의 없으리라는 것이다.
심화해 갈 ‘입시 위주’ 행태
2028학년도를 위한 대입제도 개편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 교육의 성질에 변화가 없으리라는 예견은 사실 예견이랄 것도 없을 진부한 판단이다. 우리 학교 교육은 이제까지와 다름없이 계속 ‘입시 위주’1로 돌아갈 것이라는 흔한 짐작일 뿐이다. 진부한데도 굳이 그 점을 끄집어 거듭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이제는 입시 위주 경향을 문제 삼는 얘기마저 사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입시 위주 교육을 해선 안 된다고 얘기해 왔다. 전인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고집했었다. 적어도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대입제도 개혁의 대안을 꾸준히 이런 맥락에서 모색했었다.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책을 찾는 게 중요한 과제로 여겨졌었다. 물론 과제 해결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입시 위주 교육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교육 철학은 꾸준히 견지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철학 자체가 시들어 죽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은 학교 교육 또한 암암리에 사위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 움직임에도 입시 위주 교육을 문제 삼을 기미는 없다. 교육부장관이 했다는 말처럼, 대입제도를 ‘미세조정’하는 선에서 그치겠다는 것은, 이미 있는 틀과 그 틀에 연루된 학교 교육의 관성을 묵인하겠다는 것이다. 교육 현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여기지 않는 타성을 보여준다. 앞선 글들에서 이미 얘기해 왔듯이, 이런 입장은 사실 이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당초 수능과 학생부를 근간으로 삼는 기존의 전형 틀을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대입제도 개편을 구상했었다. 바로 이 점이 개편에 대해 기대를 접게 만드는 것이다.
기존 틀은 학교 교육을(그리고 학생들의 공부를) 대입 전략으로 변질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 자체가 정상으로 여겨지도록 ‘정상화’까지 하고 있다. 대입전형이 지켜야 할 원칙으로 정부가 매년 말로는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으뜸으로 천명해 왔지만,2 실지로는 수능과 학생부가 근간인 대입전형 제도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방조해 온 것이다. 그전에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던 입시 위주 교육 현상이 이제는 학교 안에서마저 으레 그러해야 하는 일처럼 돼버렸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어쩌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을 초래한 원흉의 틀을 이번 개편에서도 전혀 문제 삼고 있지 않다. 이제 우리나라 학교에서 입시 위주 교육은 더 이상 부작용 현상이 아니다. 핵심 과정(課程)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너무도 익숙해서 새로울 게 전혀 없는 학교 모습 몇 가지를 떠올려 보자. 무슨 말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교육을 어그러뜨리는 ‘공정한’ 수능
수능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자. 학생들은 시험(자신이 선택할) 과목만, 그것도 정해진 범위에 국한해서, 그리고 출제 경향에 맞춰서만 공부한다. 모든 과목을 골고루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하는(‘전인교육’의) 원리에서 물론 벗어나는 것이다. 거론하는 게 새삼스러울 만큼 실상은 잘 알려져 있다. 시험 과목에 들지 않은 음악, 미술, 체육 등의 과목을(미래 전공으로 삼지 않는 한) 아예 제쳐버리는 것은 말할 나위 없고,3 시험 과목이더라도 선택하지 않을 영역이나 전략적으로 ‘포기’하는 게 나을 부분에 대해서는 수업 시간에 차라리 자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
학생들만 개인적으로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학교가 공공연하게 그런 행태를 용인하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교사들도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에 대해 수능과 관련해서만 가치를 매긴다. 자신의 수업에 참여하는 게 학생의 인격을 갖추어 가는 데 어떤 관련이 있을지 생각해 볼 엄두도 내지 않는다. 수능 전략상 그 교과를 선택하지 않는 학생은 수업 시간에 잠자도 괜찮다고 여긴다.
수업에 참여하고 학생 스스로 열심히 공부까지 한데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기출문제와 예상 문제를 토대로 수험 기술을 연마하는 게 사실상 공부의 전부이다. 이제까지 대입 정책은 ‘예측 가능성’을 높여 대입 준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미명으로 ‘정보 제공’에 사력을 다해 왔다. 수능의 양식이나 출제 경향을 공지하는 것은 물론, 몇 번에 ‘킬러’ 문항이 배치되는지까지 소상하게 알려준다. 이뿐이 아니다. 이른바 ‘수능-EBS 연계’ 정책까지 도입해서, 교육방송 수능 강의 교재에 들어 있는 지문과 문제 형식을 유지해서 수능 문항을 출제하도록 했다. 지문이나 문항의 전형까지 예시해 준 것이다. 주어진 문형의 풀이 전술을 기계적으로 익히면 수능 실전에 그대로 통하도록, 입시 위주 공부 환경을 특별하게 조성해 준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공부가 창의와 사고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갈 리 만무하다. 반복적인 풀이 연습이 고득점을 향한 왕도가 된다. 수능 만점자들의 ‘비결’을 검색해 보라. 잠자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시간을 문제 푸는 데 투입했다고들 말하고 있다.
이 역시 학생 개개인의 얘기만이 아니다. 수능 기출문제 또는 예상 문제를 푸는 게 학교 수업의 중요한 부분이 된 지는 오래다. 특히, EBS 수능 강의 교재를 가지고 수능 대비 훈련을 하는 것은 교육부가 10년도 넘게 권장해 온 수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 ‘연계율’을 낮추고 ‘간접 연계’라는 모호한 조어까지 해가면서, 수능-EBS 연계 정책을 완화한다고 표방하기는 했다. 그러나 완화는 철학을 바꾼 게 아니다. 완화했다고 문제 풀이 공부 관성이 잦아들지도 않는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EBS 수능 강의 교재는 여전히 교과서나 다른 참고서보다 더 중요하다.
얼마 전에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에 대해, 출제위원장은 “EBS 교재에 담긴 소재, 내용이 유사한 문제를 출제하려 했다”고 브리핑했다 한다. “EBS 교재와 수능 문제와의 연계율 하락이 지난해 수능 난도(어려움)를 높인 원인이라면서” 그런 설명을 했다는 보도였다.4 작년 수능이 ‘불수능’이었다는 비판적인 세평에 그렇게 대응했다는 뜻이다. 굳이 풀자면, EBS 교재를 가지고 연습하면 수능 점수를 높일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뜻이 된다. 학교는 수능 대비(‘입시 위주’) EBS 강의와 다름없는 ‘수업’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5 이런 언급이 이제는 매우 자연스럽게 들리고, 교육이나 정책상 매우 공식적인 발언이어도 그것에 대해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할 리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입시 위주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외치던 시절에서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는데, 이렇게 변해버린 사태가 이제는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은 ‘정상’(正常)으로 자리 잡았다.
‘교육 정상화’의 대안이라는 학생부의 배반
학생부에 관련해서 보아도 상황은 매한가지이다. 학생부는 사실 입시 위주 교육(‘비정상적인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교육 정상화 방안’)으로 들여왔다. 입시(시험, 수능)로는 일회적이며 부분적이고 객관적(계량적)인 평가밖에 안 되지만, 고등학교 3년의 모든 학습과 활동 기록을 전형자료로 활용한다면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 도입했다. 학생부는 모든 교과의 학습과 학교생활에 대해서 긴 시간의 자료를 제공할 터라, 우연한 요인들이 평가에 미칠 여지가 거의 없도록 해주고, 결과만 아니라 과정까지 감안해서 전인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해 주리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런 계산에서는 전형자료가 되는 순간부터 학생부에 일어날 부패를 감안하지 못했고, 결국, 학생부가 학습과 활동 전반을 포괄할수록 학교 교육 자체가 포괄적으로 입시 위주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게 되리라는 점을 짐작하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듯, 학교 교육은 통째로 학생부 기록을 위한 행위가 되었다. 그런 행위는 교육의 얼이 빠진, 교육 시늉인 ‘꾸미기’일 뿐이다.
학생부 전형의 비중이 커지면서 학생부 기록은 대입 전략의 요충이 되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면 학생부에 나타나는 ‘스펙’을 입학사정관 마음에 쏙 들도록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학생부 기록을 위해 공부하고 활동한다고 이야기한다. 학교 학습과 활동이 말 그대로 입시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교사와 학생(학부모)들 사이에 빈번하게 오고 가는 말 가운데 하나도 학생부 기록에 관한 것이라 한다. 기록과 수정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일이 허다한 것은 말할 것 없고, 어떤 학습이나 활동을 권유받을 때 학생들이 학생부에 기록되느냐고 질문하는 일도 흔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할 때 교사들이 학생부에 기록해준다고 부추기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학생부 기록에 관련된 부패는 흔히 ‘권력층의 대물림’ 시도로만 얘기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학 입학이 간절한 과제이고 학생부가 전형자료인 한, 학생부 기록은 가능한 한 미화해야 하는 대상이 되고, 그래서 부패하기 마련이다. 누가 있는 그대로 기록되도록 두려고 하겠는가. 없는 것을 있다고 둔갑시킬 만큼 파렴치하게 대응하지는 않는다 해도, 있는 것을 더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대입과 관련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달관한 경우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학생부에 기록된 리더십이나 봉사 또는 독서 활동 등에 쏟아 넣었다는 시간과 정신이 얼마나 진정한 것인지 짐작해 볼 때, 모든 학생에 대해서 그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고 넘길 수 있을까? 적어도 그 기록을 토대로 직접 전형하는 대학들은 의심하고 있는 듯하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시행하는 경우 대학들은 으레 면접 절차를 붙이며, 그 단계에서는 ‘자료의 신뢰성’을 확인한다고 공표하고 있다. 정부나 정책결정자들도 물론 이런 정황을 모르지 않는다. 지난 대입제도 개편에서 학생부 기록의 많은 항목을 소거하거나 기록 양을 줄였다. 학생부가 거짓으로 기록될 여지가 있다는 걸 시인한 대응이었다.
학생부가 대입전형의 결정적인 자료인 상태에서 학교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공공연히 학생부를 전략적으로 취급한다. 본디 학생부는 학생의 성장을 기록하고 잘 이끌기 위해 생겨났다. 학급이나 학년을 바꾸어 가고 전학을 가더라도, 학생을 새롭게 만나는 교육 주체들이 학생을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만든 기록부이다. 학생의 상황과 변화를 엄밀하고 정확하게 기록하는 게 그 존재 이유에 마땅하다. 아마도 독자들은 이 부분을 읽으며 헛웃음을 지을 듯하다. 오늘의 현실에서 그런 얘기가 설 자리가 있느냐고 냉소할 것이다. ‘학교생활기록부’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 그 자체가 우스꽝스러울 만큼 학생부는 부패해 있다. 학교가 나서서 그 작위(作爲)에 가담하고 있다.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을 ‘위하여’ 학생부를 기록하고 운영한다고 한다. 대입전형에 유리한 ‘스펙’이 될 만한 활동을 위해 동아리나 클럽을 만들어 주고, 적절한 이름의 대회나 행사를 마련해서 상을 주고 증서를 수여한다.6 학생이 사실대로 기록하려 할 때 말리기까지 한다고도 들었다. 1학년 때 희망 진로가 미용사였던 학생이, 2학년이 된 후 항공사 승무원으로 희망이 바뀌어서 그대로 적어 제출하자, 담임 선생님이 걱정하며 바꾸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진로 희망사항’의 기록이 3년간 일관되지 않으면 학생부전형에서 불리하다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물론 몇 해 전 이야기이다. 학생부를 둘러싼 잡음이 커지자 교육부는 2019년에 ‘간소화’ 지침을 내렸고, ‘진로 희망사항’이란 항목은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비슷한 일화가 때와 상황에 따라 달리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학생을 아끼는 학교와 선생님들의 자연스러운 ‘교육’ 행위는 계속될 터이다.
우리가 지지하고 있는 학교 교육
학부모들도 물론 그런 학교와 교사를 원하고 있다. 어떤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는지 의논하는 ‘맘카페’ 대화를 엿본 적이 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내신’이 불리하기는 한데, 그런 학교가 학생부를 ‘정성들여’ 기록해 주기 때문에 반드시 불리한 것도 아니라는 조언이 있었고, 거기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었다. 정성 들인 기록이 어떤 것인가? 정직하고 교육적인 기록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교육상 학생부를 둘러싼 오늘의 행태는 부패한 게 틀림없고, 우리 사회는 그런 행태를 묵인하며 공모하고 있다. 학교 교육이 사실상 전면적으로 부도덕해졌지만, 이런 현실에 대한 경각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학교 교육을 이전과 판이하게 달리 정의하고 있으며, 그런 통념의 교육 속에서 학생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인생관을 물정에 맞춰 조율하고 있다. 들키지만 않게, 적당히 정직성을 버리는 것이 삶에서 성공하는 공식이라고 체득하고 있다.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에서 기존의 틀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런 세태를 지속시키겠다는 것이고, 그런 세태를 빚는 학교 교육의 비정상성을 비호하며 ‘정상’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더욱이 희한한 일은, 이 모든 정책 행태가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대입제도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능이 공정하다고 떠받들리고 있고, 학생부는 교육 정상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옹호된다. 정부가 외치고 있고 사회도 수긍하고 있는 ‘정상적인 교육’과 ‘공정한 대입제도’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학교 교육을 걱정한다면 마땅히 들여다보아야 할 과제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입시 위주 교육’이라는 말은 이제 적확하지는 않다. 이 말은 ‘대입학력고사’나 ‘본고사’ 같은 일회적인 시험 결과로 대입 당락이 결정되던 제도 환경에서 나왔다. 이제는 입시만이 아닌 다른 전형 도구들도 활용되고 있고, 특히, 학생부는 시험을 능가하는 용도를 지니고 있다. 입시 위주라는 말은 이런 변화를 담고 있지 못하다. 변화를 포괄하자면 ‘대입 전략으로 변질한 교육’ 정도로 써야 맞겠지만, 뜻을 전달하는 데 무리가 없을 듯하여 여기에서는 쓰던 대로 쓴다.
- 대입과 관련해서 사실상 정부를 대변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매년 ‘대학입학전형기본사항’을 대학에 내려보내는데, 여기에는 으레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 수립 원칙’이 들어 있고, 그 첫 번째 항목이 ‘학교 교육 정상화’이다.
-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모두, “학교 교육 전 과정을 통해 중점적으로 기르고자 하는 핵심역량” 가운데 하나로 ‘심미적 감성 역량’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 정의는 이렇게 내린다. “인간의 삶과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고 향유하는 심미적 감성 역량.” 수능 탓만은 물론 아니지만, 수능이 빚는 학교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교육과정이 내건 기치는 더욱 공허하다.
- 수능일에 이루어진 출제 방향 브리핑에 대한 보도이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21117_0002089694&cID=10201&pID=10200 - 이런 수업에 몰두하려면 학교는 기초가 약한(수능 풀이에 들어갈 준비가 안 된) 학생들을 포기해야 한다. ‘버려지는’ 학생은 적지 않을 터이고, ‘배경’에 따른 격차는 문제 풀이 수업이 이어질수록 벌어져 갈 것이다. 수능이 공정하다지만, 실지로 그것은 학교를 매우 불공정하게 이끌고 있다.
- 이런 일이 학생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위함’을 받는 학생은 사실 일부이다. 학생부 기록을 두루 감안하는 이른바 학생부종합전형은 대체로 ‘주요 대학’들이 채택하고 있으며, 그런 전형에 지원할 엄두를 내려면 학생들은 최소한 상위 50%에는 들어야 할 것이다. 학생부를 의식해서 학교가 배려한다는 학생들은 많아야 이 일부 학생이다. 학교가 그렇게 윗부분 학생들에게 신경 쓰는 동안, 사실은 더 신경 써주어야 할 다른 ‘적지 않은’ 학생들은 학교 교육 전반에서 소외된다. 학생부전형이 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주장이 만에 하나 일리가 있더라도, 그것은 ‘반 푼어치’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역시나 뼈아픈 점을 제대로 진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과만을 위한 ‘능력주의’의 도구로서 시험(학력고사,수능)이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점수로 학생들을 줄세우는 구태에 대한 반성으로 출발했지만, 지적하신대로 현행 학생부 기반의 교육시스템은 가장 근본적인 교육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어서 더 반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 교사, 그리고 학생, 학부모 모두 결과만 좋으면 되고, 점수 경쟁위주의 구태만 아니면 공교육 정상화라는 미명하에 ‘선’으로 치부하는 ‘거짓’을 가르치는 교육을 자행하고 있는 점은 정말이지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일례로 일선학교마다의 차이는 감안하더라도 그 흔한 ‘보고서’ 를 받아서 생기부에 기재해 줄 때, 과연 그 보고서를 제대로 쓸 수 있는 교육과 결과물의 실제 퀄러티를 평가하여 적어주는 학교가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많은 학교들이 보고서는 형식일 뿐 그 보고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어떤 휘황찬란한 문구를 양산하는데 골몰해 있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우는것은 일종의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기만행동일 뿐입니다. 근본적으로 학생부와 수능이라는 두 틀을 넘어서는 논의 없이는 교수님의 진단대로 교육은 더 해괴하고 복잡한 게임이 되어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