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 한 칸의 학습과 성장
| 본 글은 2021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게재되었습니다. |
들여쓰기. 이 왼쪽의 큼직한 빈칸. 문단의 첫 문장을 쓸 때 문자열을 오른쪽으로 당겨쓰는 일. 들여쓰기는 우리가 무언가 읽을 때 이전의 문단에서 하던 이야기와 조금 다른 내용을 다루기 시작할 거라 알리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글을 쓸 때에도 ‘틈’을 준다. 그 틈을 띄워 두고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그 전까지의 글을 다시 읽으며 다소 아쉽거나 어색한 부분을 찾아보는 것. 이후의 글을 어떻게 쓰는 게 나을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 보는 것. 더 멋진, 깔끔한 글을 이어쓰기 위해 잠시 여유를 가지고 머리와 맘을 조금 식혀보는 것. 아무것도 아닌 듯 여길 수 있지만, 가끔은 몰입을 방해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들여쓰기의 틈은 작문할 때 빠뜨려선 안 되는 고마운 여백이다.
작년 초까지, 나는 여태 인생이라는 굉장한 분량의 장편 글을 쓰면서 그 약 15년짜리 글에 들여쓰기 한번을 하지 않았었다. 학습에 대해서도,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진로에 대해서도 손이 가는 대로 쏙쏙 흘려 쓰고 있었다. 어떠한 생각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당장 무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던 나. 공부를 할 때는 큰 계획과 목표도 없이 닥치는 대로 유명한 문제집만 대충 풀었다. 그닥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이 보내는 학원을 다니며 숙제는 꼬박꼬박 했으니 언뜻 성실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혼자서도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지, 나에게 맞는 공부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아예 무지한 상태였다.
그러니 그럭저럭 하는 공부로 그럭저럭한 성적밖에 맞지 못했다. 친구를 사귈 때에는 미성숙함이 잔뜩 묻어 나오는 언행을 보였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눈치 없던 언행들. 이로 인해 ‘해맑지만 멍청하고 이상한 애’라는 틀린 데 없는 이미지와 함께 늘 겉돌았었다. 친구들이 나를 왜 피하는지, 왜 나는 어울릴 수 없는지 고민해 보지도 않고 인간관계가 불만족스럽게 느껴질 때면 남 탓만 해댔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방송PD 가 되길 바라며 희망 직업, 진로만큼은 확고했으나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그쪽 분야에 대해 간단히 조사해 본 적마저 없었다. 마냥 살아지는 대로 살고, 하루하루의 쾌락을 즐기기에 급급하며 크게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던 15년 간의 나를 보여주는 그 첫 문단은 참 허접한, 막 쓴 글이었다.
이렇게 엉성한 글을 이어쓰기를 멈추고 처음으로 내가 써온 것, 살아온 모습을 돌아본 때는 2020년 3월,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온라인 클래스를 들어야 했던 달이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대면하며 친구들과 함께 들을 수업을 집에서 비대면으로 혼자 듣다 보니 스스로 열심히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더 중요해졌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시간을 스스로 조정하면서 필기와 과제를 해야 한다는 부분이 나를 갑작스러운 자기주도 학습의 장으로 밀어 넣었다. 나는 나름 열심히 해보려고 했지만 영상을 틀어 놓기만 하고 멍하니 딴생각을 하는 일이 허다했다. 대면 수업에서도 집중을 안 하던 내가 온라인 영상은 얼마나 열심히 들을 수 있었겠는가? 완전히 새로운 학습 환경을 맞닥뜨리면서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고, 나는 한번 여태까지의 내 공부법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제껏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공부를 했는지, 그렇게 해서 한 공부는 효율적이었는지, 나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 학교를 가지 않아 확 늘어나 버린 자유시간 덕에 이런 고민을 할 시간이 충분했다.
그렇게 고민해 본 결과 난 별 생각 없이 부모님이 시켜서 의무적으로, 닥치는 대로 수동적인 공부를 해왔다는, 내가 우리 학교에서 그닥 상위권도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문제 파악이 된 후에는 직접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알아보려는 노력도 해보았다. 좋은 성적을 가진 사람들이 추천하는 공부법을 찾아보며 효율적인 학습을 위한 걸음을 내딛음과 함께 좋은 대학교에 입학한 사람들,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대학교에서 내가 희망하는 분야에 대한 좋은 질의 수업을 들으려면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동기부여를 얻었다. 의지를 가진 채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니 현재 중학교 공부를 넘어서 고등 대비를 위한 공부에도 관심이 생겨 주체적으로 내가 공부해야 할 부분을 찾아 공부해보곤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중2부터 현재까지 상당히 높은 정기고사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고등학교 과정의 문제들도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나의 고민과 성찰은 공부 쪽으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게 되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지 못해 기존에 알던 애들이랑 문자만 주고받던 난 갑자기 내 인간관계에 관한 의문이 생겼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의 수가 내가 바라던 수보다 적고, 그들의 성향이 나와 잘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좋아하는 만큼 사귈 수 없었는지 예상되는 그 이유들을 궁리해보았다. 그리고 나의 과거를 되짚어보다가 끝내 내가 꽤나 이기적인 아이였음을 알아채고 나의 언행에서 개선해야 할 점들을 찾아 실제로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남의 입장을 고려하는 법과 나서야 할 때를 구분하는 법들을 배움으로써 말이다. 이후에 내가 더 괜찮은 친구가 되었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더 생겨 나의 진로, 어떤 노력을 해야 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지에 관해서도 생각하고 조사했으며 실제로 수행했다. 그렇게 즐기기 시작한 ‘시나리오 작성’이란 취미는 내가 방송PD라는 꿈에 훨씬 가까워지도록 해주어 더 확고한 진로를 가지게 된 기분이었다. 코로나와 온라인 클래스가 나에게 남겼던 넉넉한 시간. 그 시간을 나는 하나의 빈 칸,들여쓰기의 칸이었다고 본다. 틈을 내어 그 전까지의 인생 글을 훑어보다 그것이 휘뚜루마뚜루 얼렁뚱땅 쓰인 글이라는 걸 인지한 난 성찰을 통해 구체적인 문제를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그 후 아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고군분투를 통해 문제점을 고치기도 했다.
공부, 인간관계 그리고 진로까지. 참 여러 분야에서 변화하게 되었다. 한 칸을 띄워 이어 쓰는 두 번째 문단은 첫 번째보다 더욱 다채롭고 찬란하다. 높은 성적과 공부 의지, 먼저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고 사귄 잘 맞는 친구들과 가까워진 선생님들, 더욱 확고해진 꿈과 이제 그것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공부하는 모습… 문단 사이의 그 틈에서 나는 진정한 의미의 학습을 하지 않았나 싶다. ‘배워서 익힘’, ‘지속적으로, 의식적으로 행동을 변화시킴’이 학습의 정의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어떤 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배우며 단연 더 좋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바꾸는 데 성공한 나는 교과 과목 그 이상의 것을 학습하고, 또 한 단계 성장한 게 아닐까?
더 질 좋은 글을 써 내려갈 기회를 준, 고마운 들여쓰기. 들여쓰기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 다음에 또 삶이 버겁게, 즐겁지 않게 느껴질 때는 문단을 마무리한 후 일부러 틈을 내겠다. 그 틈을 두고 더 나은 글을 이어쓰기 위해 또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며 고민하겠다. 한 칸의 학습과 성장을 이룬 나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들여쓰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고 다음 문단을 화려하게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남의 입장을 고려하는 법과 나서야 할 때를 구분하는 법들을 배움으로써 말이다.”
경원중학교 학생으로, 2021년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글을 게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