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돌보는 아이들 – 토요일을 돌보는 법
1. 2022년 6월4일 토요일
평소에는 10시나 되어야 문을 열지만 오늘은 센터를 이용하는 초등학생들을 두 군데로 나누어 진행해야 하므로 30분 정도 일찍 문을 열었다. 30분이나 일찍 왔는데도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던 서너 명이 보인다. 마음이 바빠지는 순간이다.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은 인근의 청소년센터로 가서 연극놀이에 참여해야 한다. 원래는 부모님과 아이들을 함께 모집해서 진행하고자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신청자가 부족하여 결국 우리 차지가 되었다. 바삐 실습생과 아이들을 보내고 나머지 아이들을 인솔해서 목공 프로그램이 열리는 곳으로 가야 한다. 평소에는 아이들과 공놀이나 체육활동을 하던 곳인데 오늘은 빙 둘러 작은 텐트를 쳐놓고 가운데에는 나무 조각을 잔뜩 모아 놓았다. 예쁘고 작은 텐트 안에는 자리가 펼쳐져 있고 망치와 못, 목공풀까지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다. 지금부터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진행자들의 도움을 받아 목재로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구로혁신교육지구사업으로 추진된 것인데 평소 아이들이 쉽사리 할 수 없는 경험이다. 부모님들께서 미리 신청을 도와주셔서 오늘 아이들을 인솔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도착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들이 만들기를 시작하니 덩달아 바빠진다. 여기를 잡아달라, 이걸 집어달라, 소소한 일거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 와중에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연락을 하고, 목공을 하는 아이들을 틈틈이 사진으로 담아 둔다. 인형 침대를 만들고, 고무줄 총을 만들고, 칼과 방패를 만들며 뚝딱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좋은 추억거리가 될 터이다. 금방 찍은 사진은 부모님들도 함께 기뻐하실 수 있도록 평소 공유하는 온라인 방에 올려둔다.
프로그램을 잘 마치고 두 팀은 각자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다음 장소인 복지관 앞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들 걸음으로 20여 분은 꼬박 걸어야 하는 거리다. 처음에는 거리가 좀 있어서 생각지 못한 장소였는데, 근처에 사는 OO이의 제안으로 오게 된 곳이다. 원래는 목공 프로그램을 하던 곳 근처에서 바닥분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 오늘 오후를 보낼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은 OO이가 자기 집 근처 놀이터로 오는 게 좋겠다고 하여 계획을 바꾼 것이다. 골목골목을 돌아나가며 OO이는 마치 여행을 가는 것 같다고 들떠 하였다.
놀이터에 당도해 보니 이미 도착한 팀들은 벌써 바닥분수 위에서 한참 놀이 중이다. 공지한 대로 물총을 가져온 아이들도 많아서 물세례부터 맞고 본다. 물총이 없으면 페트병을 가져와도 좋다고 하였기에 나도 미리 구멍을 뚫어줄 송곳을 준비해 왔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서 놀이를 하니 놀이터가 왁자지껄하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바닥분수가 멈추어버렸다. 한껏 흥이 올랐던 아이들은 시들하고 속상한 모습이다. 그러다 금세 미끄럼틀에 물을 끼얹어가며 ‘워터파크 놀이’를 만들어냈다. 나도 놀이를 제안한 OO이에게 이끌려 결국은 물세례를 맞아가며 워터파크 미끄럼틀을 타고 왔다. 물세례도 물세례지만 그 좁은 미끄럼틀에 몸이 끼지나 않을지 진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나니 놀이터 하늘에 아이들 웃음이 가득하다.
놀이를 다 마친 시간이 4시인데 아이들 몇몇은 센터에 와서 더 놀다 가겠다고 따라왔다. 2학년이지만 아직 혼자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르는 ◇◇이 □□이를 따라 집으로 돌아간 5시 반이 넘어서야 하루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실습생의 일지에 한 마디를 적는다.
“파랑새는 학교의 토요 휴업일이 시작된 이후 계속 토요일에도 운영을 해왔지만 월 30만 4천 원의 보조금으로 운영을 감당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연계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토요일 운영을 잘 하는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완벽하게 이런 말에 들어맞는 토요일이다. 덕분에 아이들 행복도 한 뼘은 자란 듯하다.
2. 토요일을 돌보는 법
그래도 이제는 살 만하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잠잠해져서 아이들과 함께 한꺼번에 식당에라도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물가가 고공행진이라 늘 가는 분식집이나 짜장면집에서 정해진 금액대로만 먹어야 하지만 이만하기가 어디냐 싶다.
토요일에 무엇을 해주겠다고 하면 무엇이든 넙죽 받아놓고 본다. 토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캠프를 제공해주겠다는 제안도 O.K., 토요일 오후에 멀리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오라는 제안도 O.K., 이 곳, 저 곳에서 열리는 토요일 프로그램 참여도 O.K.다.
이제는 주 5일제가 지역아동센터 내에서도 정착되어 어디선가 토요일에 프로그램을 제공해주겠다고 하여도 아이들을 인솔해갈 수 있는 센터들이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서 사실 토요일에 이루어지는 제안들을 신청하는 센터들 자체가 많지 않아서 허겁지겁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혹독한 현실은 그런 제안이 정말 어쩌다 한 번쯤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고 말이다.
그런 토요 돌봄을 수년째 혼자 근무해왔다. 어느 날 들었던 한 자락의 노무 교육에서 너무나 걱정스러운 소리를 들었던 탓이다. 종사자들에게 주휴일 근무수당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다가는 퇴사를 하고 나서도 법적 소송을 당할 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토요일에도 툭하면 5시가 넘어서까지 돌봄이 이루어지는데 월 30만 4천 원으로 어떻게 제대로 된 주휴수당을 지급하랴 싶어서 차라리 혼자 몸으로 때우기로 했던 것이다.
다른 종사자들은 그런 속내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시설장님이 엄청 아이들을 좋아하셔서 토요일까지 온통 근무를 하시네’라고 오해를 하는 눈치다. 좋기는 뭐가 좋겠는가? 나도 쉬는 게 좋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종사자들이 함께 짐을 같이 져주겠다고 나섰다. 사실 때로는 토요일에도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이 생겨 꼭 시간이 필요한 때도 있어서 이런 제안이 더없이 고맙기는 하였다.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힘을 덜어주기 시작하니 세상을 날아갈 듯 했다.
그리곤 결심했다. 후원금의 일부를 토요일 주휴수당에 보태기로 말이다. 물론 주휴수당은 최저임금의 1.5배로 책정하였다. 그래도 30만 4천 원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는 어디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토요일마다 더욱 센터로 몰려들고, 코로나가 잠시 물러선 지금에는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걸핏하면 늦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자유를 맛보지 말았어야 했다. 한 번, 두 번 다른 교사들이 근무를 대신 해주어 토요일에 쉬고 보니 슬슬 놀 궁리만 더 하게 된다. 토요일에 집에서 뒹굴거리다 낮잠도 즐기고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며 킬킬거리다가도 아직도 내일은 일요일, 내일도 여전히 집에서 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너무도 행복하고 또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물론 그 다음 주에는 다시금 “샘, 이번 주 토요일에는 어디 가요? 뭐 할 거예요?”라고 다시 시달려야 하지만 말이다. 글쎄 말이다. 누가 좀 잘 알려주면 좋겠다. 초등학생 아이들 한 이십 명, 토요일에 잘 놀고 올 수 있는 곳 좀 알려줄 사람 없는지 말이다. 재미난 것들이 어디 어디 꼭꼭 숨어 있는지 아시는 분, 손 번쩍!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