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 씨를 뿌리는 사람
| 본 글은 2021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게재되었습니다. |
2021년 3월, 나의 설렘 가득한 첫 교직 생활이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 준비해왔고 항상 꿈꿔왔던 일이었기에 열정 하나만은 남부럽지 않았던 나. ‘한 사람,한 사람만을 위한 교육을 실천하겠다’라는 거창한 포부를 안고 들어선 학교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학생이 좋아해 주었고 노력한 만큼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학생들 속에서 유독 겉도는 학생이 하나 있었다. 만나는 날이 하루하루 쌓여가도 여전히 마음의 벽이 한없이 높던 아이. 눈에 계속 밟혔지만,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갈피조차 찾지 못해 속만 까맣게 태우게 만드는 씨앗이(가명)였다.
무엇을 물어보아도 씨앗이는 싫다고만 했고, 질문이 많아지고 관심을 둘수록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다가가려 하면 겁이 나서인지 아니면 귀찮아서인지, 자꾸만 멀어지려 하는 청개구리 같은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해 하던 찰나 우연히 학습 부진 학생과 관련한 연수를 듣게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무반응에 나는 상처받고 지쳐가는 상황이었다. 당차게 시작했던 자신감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반복되는 실패와 이에 따른 무력감에 빠진 학생을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요?”라고 스스로 되뇌었던 질문을 지도교수님께 하게 되었다.
내게 교수님은 “그 학생은 3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지 몰라요.”라고 대답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교육은 씨를 부리는 일 같아요. 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 단순히 씨를 뿌리는 것에 그칠지 모르고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사랑과 정성을 받은 씨앗은 분명 인생의 한 지점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가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저 선생님이 묵묵히 선생님의 일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내 손으로 어떻게 바꾸어 보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학생 그 자체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들여다 보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씨앗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한글이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한글을 제때 학습하지 못하면서 점점 또래와의 학습격차가 심해지고, 거듭된 실패 속에 무력감만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침 등교 시간을 활용하여 한글 공부를 해보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씨앗이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만 해도 아무것에도 관심 없어 보이던 학생이, 기대에 차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해보자는 마음을 굳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자신하며 아침 공부를 선언한 이후, 나의 고생길은 시작되었다. 학습 수준에 맞추자니 생활 연령에 맞지 않아 서적이나 교육용 보드게임을 나이에 맞게 재구성하여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또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키다리샘 예산을 활용하여 샤프를 비롯한 문구류를 선물하기도 하고, 아침 식사로 두유와 같은 건강식 간식을 챙겨주며 정서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채워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욕심을 내려놓고 그저 학생에게 진심으로 다가갔을 뿐인데 학생은 눈이 부실 만큼 변화하기 시작했다. 내 태도의 변화는 학생에게 단단한 신뢰로 받아들여졌으며, 내가 쏟는 정성만큼 학생 스스로 노력하고 성실한 태도로 임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씨앗이는 여전히 한글을 완벽하게 읽고 쓰지 못하고, 습관처럼 “포기할래요.”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젠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읽고 써보려 노력하고, “포기할래요.”라고 말한 후엔 “아, 이게 아닌데.”라고 고쳐 말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은 먹는 게 싫다며 급식을 깨작거리던 아이가 밥을 한가득 받아 골고루 먹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던 아이가 아주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좋은 이삭을 거두는 것에만 집중하던 내게 ‘씨앗이’라는 작지만 소중한 ‘씨앗’이 와주어서 고맙다. ‘ 잘하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자세와 진심으로 다가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씨앗이,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많은 다른 씨앗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싶다.
“사랑과 정성을 받은 씨앗은 분명 인생의 한 지점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가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저 선생님이 묵묵히 선생님의 일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중화중학교 교사로, 2021년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글을 게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