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난 자리의 아동 돌봄 (3) – 돌봄 협치를 꿈꾼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는 초등 방과후 돌봄을 8시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이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의 시간을 연장하여 돌봄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한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로써 학교는 하루의 절반 동안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안 그래도 자원과 공적 권위가 인정된 학교가 돌봄 시간까지 연장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되면 아무래도 지역 돌봄은 위축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교육감 후보자들까지 덩달아 돌봄 시간 연장을 공약하고 있는 판이니 이런 우려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학교 보고 다 하라고 해라. 자포자기의 심정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학교도 나름의 고충과 입장이 있어 내린 결정이란 점을 모르지 않는다. 특히 그 중심에 돌봄이 필요해 발을 동동구르는 아동과 보호자의 처지가 있는 것이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점점 일방으로 폭주해가는 돌봄제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런 제도의 급물살 속에서 돌봄의 다양성이 얼마나 더 보장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절로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협소한 이해관계를 넘어서 돌봄제도가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 고민이 들기도 한다. 지금과 같이 드문드문 필요한 돌봄 시간을 조정하거나, 종사자의 처우개선 방안을 고민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하는 것이 고민의 중심에 있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생활권역 중심의 ‘돌봄 zone’의 신설과 ‘돌봄 협치(governance)’의 운영방식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돌봄 협치의 제안은 현재 돌봄 정책이 가진 분절성과 탈지역성 및 학교 중심의 일방성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에서 나온 안이다. 아동들이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생활권역을 돌봄 zone으로 지정하여, ‘우리 마을의 돌봄은 우리가 함께 책임진다’는 돌봄 협치를 이루어내자는 것이 주요 요구안이다. 돌봄 zone을 만든 후에는 그 안의 학부모와 아동청소년, 돌봄제공자들과 지자체 및 교육청 공무원들, 기타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도록 하여, 이들이 각기 zone 안의 돌봄 정책을 함께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해보면 좋겠다는 것이 돌봄 zone을 꿈꾸면서 해본 돌봄 생각이다.
이를 행정구역과 비교해 보면 돌봄 zone은 동 단위를 중심으로 돌봄공동체를 구성하는 안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동에는 돌봄이 필요한 아동과 청소년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돌봄이 필요한지, 또 현재 제공되고 있는 돌봄 서비스들은 이러한 요구들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가면 좋을지를 동네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가며 집행해갈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오늘날 돌봄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 국공립 시설을 설치하거나 학교 돌봄을 통하지 않고서는 지역의 돌봄을 만들고 조절해갈 수 있는 공적 통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아동센터는 IMF 이후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주요한 지역 돌봄 기관으로 역할을 해왔음에도 민간에서 설치하고 운영하는 돌봄기관이라는 존재론적 한계로 인해 이러한 공적 논의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고 있다. 반면 국공립 돌봄이나 학교 돌봄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공공 기관으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중앙정부에 의해 설치되어 지역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한 자율성을 살리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또한 현재의 돌봄 기관을 이용하고 있는 이용자들의 정책적 시선이나 자세도 충분히 넓지 못하다는 한계점도 고려해 볼 만한 요소이다. 현재 돌봄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이용자들은 현재의 돌봄기관들이 사회적으로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돌봄 기관에 접근하고 있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낙후된 지역에서 민간이 설치·운영하며 주로 취약계층의 아동들에게 우선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와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에게 학원 이용시간 중간 등에 발생할 수 있는 돌봄 공백을 메워주고자 국가가 설치·운영하고 있는 다함께돌봄센터를 대하는 일부의 차별적 태도 등을 대할 때 더욱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공교육에서의 차이가 방과후 사교육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방과후 돌봄기관에 대한 계층 구분적 정책 시행이 이후의 사회통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돌봄제도의 시행은 개인적 측면에서는 한껏 합리적 선택을 하게 했을지 몰라도 사회 전체로 보아서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낼 수도 있는 저출생 현상의 한 단면을 재현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따라서 정책의 수혜를 입고 있는 보호자들과 아동·청소년들이 이 기관, 저 기관을 기웃거리며 여기저기를 소비하고 다니도록 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을 돌봄을 함께 만들고 책임져나가는 돌봄공동체를 건설하여 책임 있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봄정책 입안자들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돌봄 정책의 한계와 미비점들을 개별 시설에 대한 민원이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도록 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데에도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하고, 그를 통해 시민적 역량을 실질적으로 길러갈 수 있도록 협치의 운영방식을 돌봄 영역에 접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돌봄 zone 안의 개별 기관들이 현재와 같은 구조를 당장에 바꿀 수는 없을 터이므로 개별 기관에 부여되는 예산과 별도로 zone으로 부여되는 예산과 제도를 통해 각기 기관들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게 하고, 돌봄 zone이 지역에 맞는 돌봄제도를 실질적으로 구현해갈 수 있도록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 기관, 돌봄 제공자 각자에게만 예산을 배분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은 제공자 각자나 개개의 제공기관들이 함께 돌봄을 제공하는 다른 종사자들이나 기관들을 잠재적 경쟁자로만 인식하게 호도하거나, 상대의 입장에 둔감하게 만들어 돌봄제도를 왜곡시킬 수 있는 부정적 요인을 갖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는 돌봄 기관이 생겨나는 것도, 돌봄기관이나 종사자들이 사라지는 것도 전체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개개의 이해타산에만 근거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 단위의 돌봄 협치구조를 만들어 우리 동네 돌봄 수요를 면밀하게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현재 제공되고 있는 돌봄 현황들을 상세하게 파악한 뒤, 양질의 돌봄 서비스가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다양한 돌봄 주체들이 함께 논의하고 집행해갈 수 있도록 ‘돌봄 zone’을 만들어 돌봄이 더 이상 파편화되지 않을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언젠가 돌봄이 지방정부나 지자체를 중심으로 각 지역의 돌봄을 각자가 책임지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이므로, 지금부터라도 서로를 알고 함께 책임지는 돌봄 공동체 건설에 대한 생각을 앞당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동 단위에서 서로를 알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우리 지역에 맞는 돌봄을 함께 결정하고 집행해가는 방식을 만들어가는 ‘돌봄을 돌보는 정책’을 꿈꾸는 그 한가운데서 돌봄 협치의 생각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아직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지금과 같은 돌봄의 정글이 아니라, 돌봄의 문명화와 진정한 제도화 그리고 인간다운 돌봄을 꿈꾸고자 한다면 누군가가 정해주는 일방적 돌봄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함께 돌봄제도를 만들어가겠다고 하는 강단 있는 결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정책을 요구하는, 그런 정책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돌보는 시민, 돌봄을 받는 시민이 함께 되어보자는 생각이 돌봄 zone 안에서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돌봄 zone’을 통해 민간 돌봄기관이라는 지역아동센터의 존재론적 한계와 지역의 특성 및 자율성을 살리지 못하는 국공립 돌봄이나 학교 돌봄의 한계가 해결되어, 각각의 장점이 충분히 반영된 ‘우리가 만들고 책임을 지는 우리 지역에 맞는 돌봄’이 마련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