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브리티시컬럼비아 유아교육과정의 관점에서 본 ‘교육전문성’: 배움과 교육실천에 대한 명확한 지침

우리나라 유아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이 놀이중심으로 2019년에 개정이 되고, 교육과정 실행의 자율성이 강조된 이후, 교육현장에 있는 선생님들로부터 듣는 이야기와 질문들에는 유사성이 있다.
• 오늘은 아이들과 이렇게 놀아봤어요.
• 이제 현장의 놀이 사례가 넘치는데, 이렇게 지원하는 것이 맞을까요?
• 학부모님들께 아이들이 놀면서 배운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 지금 제가 하는 놀이기록이 맞는지 확인받고 싶어요.
• 놀이중심 교육을 잘 하는 조금 더 전문적인 교사가 되고 싶어요.
위의 이야기들에서 선생님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관심사와 불안을 엿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교육자인 유아교사는 아이들의 배움을 확인하고 지원하고 싶어 하며, 자신의 교육 실천이 교육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현장에 쏟아진 놀이와 자율성 담론은 유아교사로 하여금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잘해왔다고 여겨졌던 교사의 ‘교육전문성’에 대한 개념과 실천을 흔들어 놓으며 자신의 일상적 교육행위를 돌아보도록 촉구하고 있다.
본 칼럼에서는 교육전문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기존의 교육이론을 살펴보면, 교육전문성을 교사 측면에서 접근하여 가르쳐야 할 교육내용, 즉 교과지식에 대한 이해나 교수방법 역량과 연결하여 수업전문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연령과 달리, 영유아기 아이들은 세상을 만나는 방식이 다양하고 열려있으며, 놀이가 뇌운동을 가장 활성화시키는 방법이다 보니 유아교육은 전인교육이고 통합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교사중심의 교육전문성에 대한 이해는 자칫하면 유아중심·놀이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이끌어 가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교육전문성을 교사가 아닌 ‘어린이의 자발적 혹은 의도적 배움’에 초점을 두고 새롭게 이해하게 되면 위의 질문들의 답변에 대한 방향성을 다르게 설정해 볼 수 있고 불안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고는 ‘2019 British Columbia Early Learning Framework(이하, BC ELF)’를 재방문하여 교육전문성 실현의 핵심 요소인 배움(learning)과 일상적인 실천인 페다고지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막 현장이 재미있어지고, 질문들이 샘솟는 유아교사가 주체적으로 혹은 공동으로 해볼 수 있는 상황들을 상상해보고 그려보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교육이라는 분야 자체가 정해진 길과 결과로 이어지는 선형성을 따라가지 않듯이, 교육전문성 또한 하나의 도착지와 해답을 찾는 길이 아닐 터인데, 왜 BC ELF를 주목하며,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일까?
1년 전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칼럼 「2019 브리티시컬럼비아 유아교육과정에 침투한 대안담론과 언어적 전환」1을 통해 10년 만에 개편한 브리티시컬럼비아 유아교육과정의 대담성과 개정의 중점에서 드러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는 오랫동안 유아교육을 지배해 오던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한 교육에 대한 이해와 발달주의 속의 영유아에 대한 시선을 넘어, 다양한 최신 이론과 관점을 받아들이며 유아교육에 대한 인식론적, 존재론적, 방법론적 이해와 실행을 전면적으로 다르게 구현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유아의 배움과 교사의 역할 등 교육전문성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더라도 패러다임이 달라, BC ELF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선 칼럼들에서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존재론적 관점으로의 전환에 대하여 여러 차례 기고하였으므로, 본고에서는 어린이의 배움과 교사의 교육적 실천에 대해 살펴보겠다. 먼저, BC ELF가 지향하고 있는 어린이의 배움(learning)에 대한 인식론적 이해는 다음과 같다.
1. 어린이의 배움에 대한 인식론적 이해
배움에 대한 개념:
어린이는 이론을 만들고 시험해보고, 세계를 탐험하고, 생각을 표현할 때 지식을 얻는다.
배움이란 예측가능한 선형적인 진보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다. 배움은 어린이가 사람들, 공간, 생각과 물질과 관계를 맺는 사이에 예상치 못하게, 놀라운 방향으로 리좀적으로 일어난다. (BC ELF, p.25)
리좀이란?
고사리와 같은 식물로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뿌리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리좀의 이미지는 페다고지에 대해서 생각할 때 유용한 방법이다. 배움을 리좀적이라고 여긴다는 것은 배움이란 미리 정할 수 없는 것이며, 정해진 결과가 없지만, 항상 어떤 새로운 것을 생산해 가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실험해보고, 이론을 만들고, 주변 세계를 탐구하고, 그 생각을 말이나 그림이나 구조물로 표현하는 모습은 놀이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주변 공간과 물질을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허용되며, 그리고 주변 성인들이 그 때마다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을 때 흔하게 볼 수 있는 놀이 모습이다. 어린이에게 놀이에 대한 자율권이 충분히 주어지고, 놀이중심·유아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될 때, 어린이들은 주변의 성인이나 또래, 공간, 생각과 물질들과 활발히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이 때 아이들의 배움은 리좀적이어서, 매번 다른 놀이사례가 발생하며, 그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놀이사례가 넘쳐나기 마련이다. 상황을 놓칠세라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을 해놓는데,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순간들은 다시 봐도 놀라우며, 아이들이 세상을 각자의 방식들로 배워나가는 그 경로들(pathways)을 교사는 알아채고, 따라가며, 교육과정을 함께 만들어 간다.
어린이의 배움을 리좀의 이미지로 인식한다는 것은, 오늘 우리반의 아이들이 놀이하면서 어떤 생각과 이론을 만들어 내고, 어떻게 탐구해나갈지 예측할 수 없고, 정답과 정해진 결과가 없으므로, 어떤 작품이나 구성물도 가능하며, 어린이들은 항상 새로운 무엇인가를 생산해 나가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배워가는 과정들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배움에 대한 BC ELF의 인식론적 관점을 살펴보면, 과정에 집중되어 있고, 어린이를 둘러싼 환경을 분절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으며, 이어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BC ELF에서 명시하고 있는 배움에 대한 인식론적 개념을 여러 차례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관념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장의 아이들을 떠올려가며, 놀이상황을 대입시켜가며, 주도적으로 읽어 볼 것을 권한다. 배움과 리좀의 이미지를 연결해보고, 어떤 놀이상황이 떠오르는지 혹은 떠오르지 않는지, 어린이들은 마치 뇌의 시냅스 연결처럼 네트워크 속에서 세상과 만나는데, 교사인 내가 이를 분절시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제 상황 속에서 읽어낼 때, 개념적 전환들이 일어나 어린이의 배움을 바라보는 인식론적 지평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2. 교육실천에 대한 재고
(도표 1) BC ELF 목차 구성

BC ELF에서는 교사로 하여금 배움에 대한 기존의 인식론적 관점과 더불어 지금까지 해오던 교육실천, 즉, 교육전문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볼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즉, 재고(rethinking)를 2019 BC ELF 비전의 중요한 핵심으로 설정하며, 이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그 과정을 3가지 핵심 용어와 함께 소개한다. 그 핵심 용어는 ‘살아있는 탐구(living inquiries), 경로(pathways)와 비판적 성찰질문(critically reflective questions)’이다. 목차 구성에서 세 번째 장인 ‘3장. 함께 살아가고 함께 배우기’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3장에서는 살아있는 탐구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간략히 소개하고 살아있는 탐구와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는 질문들에 참여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용어들은 배움의 과정이 리좀적이고, 예측불가능하며, 역동적이라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살아있는 탐구(Living inquiries):
살아있는 탐구는 BC 교육부의 이전 교육과정인 2008 BC ELF에서 학습영역(Learning areas)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어린이, 교사, 물질과 생각들이 상호 연결될 때 발생하는 사고의 과정과 배움의 과정들을 묘사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살아있는”이라는 용어는 이와 같은 과정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며 늘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탐구”라는 용어는 어린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주의에 집중하는 것으로, 연구하고, 탐구하고, 실험하고, 질문하는 것 등을 모두 의미한다.
경로(pathways):
모든 살아있는 탐구에는 “경로”라고 불리는 세부 영역이 있다. 이 부분은 2008년 BC 유아교육과정에서 학습목표(Learning goals)에 해당한다. 경로라는 용어는 교사가 아이들의 살아있는 탐구에 참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경로”라는 용어는 선형적이지 않은 운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비판적 성찰 질문들(critically reflective questions):
모든 경로에는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련의 질문들이 제공된다.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사유를 촉발하고, 페다고지와 실천에 대한 의미와 자신의 관점에 대한 토론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BC ELF, p.63)
2019 BC ELF는 유아교사가 자신의 교육전문성을 발현시키고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에 대해 소개하고 그 개념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함께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살아있는 탐구이다. 유아중심·놀이중심으로 운영되는 교육현장은 질문, 불안과 의사결정의 순간들이 연속되기 마련인데, 이를 살아있는 탐구와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탐구과정을 경로(pathway)로 개념화하여 선형적이지 않으며 계속성과 운동성에 초점을 두어 이해하도록 한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탐구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늘 진화하는데, 어린이에 대한 나의 이론과 신념에 집중하게 될 때, 혹은 나만의 질문과 씨름할 때 발생할 수 있다. 살아있는 탐구는 명확한 답을 갖지 않은 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도록 자신의 이론과 신념에 도전하도록 이끌어야 한다(BC ELF, 2019, p.103). 때로는 탐구주제가 동료교사, 부모와 어린이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탐구는 미리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며 어린이들, 책, 강의, 동료교사와의 이야기 속에서 유기적으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시간에 초점을 두어보자. 아이들의 시간과 성인인 교사의 시간은 어떻게 다른가? 시간에 대한 세계관과 그에 따른 체화된 인지구조는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 나는 앞으로 시간을 어떻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까? 만약 시간을 일과(스케줄)가 아닌 흐름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시간에 대한 나의 인식과 개념은 우리 교실에서 아이들의 놀이를 통한 배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와 같이 살아있는 탐구과정을 거쳐가는 모든 경로에는 비판적으로 자신의 교육실천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촉발제가 되는 질문들이 함께 하며, 이 질문들을 따라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살아있는 탐구, 경로와 성찰적인 질문은 어린이, 배움과 교수실천에 대하여 사유할 수 있는 촉발제가 된다. 교사는 일상의 순간들, 마주침들, 아이디어들, 물질들과 사람들에 집중할 때, 살아있는 탐구, 경로와 성찰적인 질문들과 “함께 사유하며” 교사 자신이 갖고 있는 아동기, 교육과 페다고지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과 이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며 교육전문성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BC ELF, p.64).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때, 유아교사의 사유를 강조해왔지만 사유가 핵심이 되어야 하는 상황들과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 할지 구체적인 지침들은 제공받지 못해왔다. 2019 BC ELF로부터 어린이의 배움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전문성을 키워나갈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교육적 개념들에 대한 인식론적 전환이 필수적이며, 나의 교육실천을 일상 속에서 재고하고 비판적으로 질문해 나갈 수 있는 질문들을 만들어 내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명료화시켜서 경로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통해 인식론적 전환과 실천에 대한 재고의 기회를 얻으며 나의 탐구질문을 명료화하고, 미시적 방법들을 설계하는데 서로 도움을 받으면서 유아교사가 이와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교사마다 질문과 궁금증이 다르기에, 교육전문성의 길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갈래가 되지 않을까?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교육을 전공했으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이름과 뜻을 같이하며 교육을 바꾸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선 주요 후보들이 모두 유보통합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유아교사들의 전문성, 그리고 교육여건도 많이 개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유아교육과정이 “배움의 과정이 리좀적이고, 예측불가능하며, 역동적이라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씀주셨습니다. 저희도 누리과정이 시행되고 있는데요. 놀이중심, 유아중심의 리좀적이고 역동적인 교육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러한 교육 속에서(아무래도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교육이고 그러다 보면 다양한 교육이 여기저기서 이뤄질 것이므로) 그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