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의 좌충우돌 이야기 – 바쁘다, 다문화 사회
1. 다문화 사회 정착기
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동들 중 양부모가 한국인인 아이들은 손에 꼽힌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조차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혼란은 아이들만 겪는 것이 아니다. 센터 종사자들도 아이들을 적절히 분간하여 통계를 작성하거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데 애를 먹는다. 우리가 알기에 한국 아이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건만 정작 공식적으로 다문화로 분류되는 아이들은 그 수를 훨씬 밑돈다. 중간에 국적을 취득하거나 이민 2세처럼 부모님과는 출생의 과정이 다른 아이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런 이주배경을 가진 사회구성원들과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가야 할지가 특히 관심을 끌고 있는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런 큰 담론은 작은 지역사회로 내려오면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주제들이 변곡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변주곡이 나오더라도 그러한 담론의 중심을 차지해야 하는 것은 일방적인 동화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상호주의를 바탕으로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다문화 이주민들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주는 등의 문화 이식주의적 접근법은 조금은 유행의 흐름을 빗겨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또 그런 흐름의 일환으로 이주민 여성들이 만든 사회적협동조합과 같은 당사자 조직에서 스스로 자국의 문화를 알리는 교육과정을 만들어 지역아동센터나 학교의 ‘다문화 사회 이해 수업’을 시도하고 있는 일 등이 더 의미 있는 활동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다문화 사회의 그런 흐름은 보다 성숙한 단계로 발전한 것이기에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론 개인적으로는 아직 좌충우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끔 아이들은 여러 맥락에서 자신은 중국이 더 좋다거나 자신은 중국 사람이라고 정체성을 밝히는 이야기를 듣게 되기도 하는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또 너무도 멀쩡히 이야기를 잘 나누던 아이가 아직은 한국말을 하는 게 힘들다는 속내를 고백해올 때 그런 어려움을 알아차려주지 못해서 미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또 가끔은 남모르게 남의 둥지에서 새끼를 키우는 뻐꾸기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 금방 또 깜짝 놀라서 멀지 않았던 과거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달고 살던 우리가 할 법한 생각은 아니라면서 고개를 흔들어보기도 한다. 아직 나는 이렇게 한참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어쨌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상호 간의 일이니 다문화로 혼란스럽고 힘든 것이 아이들이나 그 가족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 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원주민들 역시 생각이 많아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다문화 사회가 어느 정도나 성숙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2. 우물과 당산나무
그러나 이런 고민들을 채 어찌해볼 사이도 없이 겨울이 다가오고 아이들은 방학을 맞았다. 특히 올 겨울 방학은 길지도 않다. 하지만 코로나로 꼼짝을 할 수 없으니 아이들과 함께 공부나 하면서 짧은 방학을 길게 늘려본다. 나는 4학년 이상을 맡아서 가끔 한 명씩 붙잡고 국어책을 다시 함께 읽고 있다.
한 단원씩 같이 읽어보니 교과서 작품들이 훌륭하다는 생각들을 다시금 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 정도 깊이 있는 글들을 읽고 있는데 과연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과 걱정들을 새삼스럽게 또 해보게 된다.
4학년 국어책에서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했던 3대 작품을 꼽자면 산촌 마을의 한 아이가 댐 건설을 중지해달라는 부탁을 편지 형식으로 쓴 작품과 세시풍속에 관한 책을 읽고 독후감 형식으로 쓴 작품, 그리고 다문화 사회를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잘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까지 세 편을 꼽을 수 있다.
첫째 글은 적지 않은 아이들이 댐을 본 적도 없으니 글만 읽고 댐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글은 세시풍속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독후감 쓰기를 익히는 글인데, 세시풍속을 모르니 소재 자체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마지막 다문화 사회와 관련한 글에서는 노르웨이와 프랑스의 예를 들어 이미 다문화 사회를 이룬 유럽의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하는데, 노르웨이가 나라 이름인줄도 모르고 전 국민의 10%가 넘는 인구가 다문화 이주민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10%의 인구가 갖는 의미도 잘 느끼지 못하니 글을 어떻게 읽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계속 떨칠 수가 없었다.
특히 깜짝 놀랐던 부분은 4학년 아이들을 위한 글인데 다문화 이주민들을 ‘교육, 관심, 온정의 대상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라는 너무 함축적인 문장이 제시되었을 때이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답을 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배웠지만 모두 잊은 것인지 아무튼 역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지점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시도를 했다 실패했던 ‘함께 책읽기’를 올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작해보기로 하고 ‘기찻길 옆 아이들’이란 책을 골랐다. 매일매일 읽는 것이 아니어서 속도는 매우 느리다. 하루 두어 시간을 꼬박 들여도 한 단락이 겨우 나가는 정도니 이 책을 올해 안에 정말 다 읽을 수는 있을지 그조차 지금은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두에서부터 우물, 당산나무, 둥치, 정자, 신작로 등 아이들의 경험을 벗어난 말이 한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을 찾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책을 읽을 때에도 가능한 핸드폰을 옆에 두고 단어의 뜻도 찾아보고 필요하면 사진도 보게 하면서 더듬더듬 읽어나가고 있다. 그렇게 속 터지게 책을 읽어나가면서 우리는 언젠가 ‘우물’과 ‘당산나무’를 보러가자고 약속했다. 아직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꼭 우리 눈으로 우물과 당산나무는 한 번 보기로, 그래서 그것으로 책읽기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보약으로 삼자고 약속을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왕이면 세시풍속과 관련한 것도 한 번 보고 느낄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물론 한 번 보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가끔은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스스로가 너무 깡통의 밑바닥을 박박 긁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하는 말이다.
서구 사회가 기독교의 전통이 없이 그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듯이 우리도 우리의 근간이 되는 것들이 있는데, 다문화 사회에서 그런 근간들을 적절히 익히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올바른 상호주의는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상대에 대해 균형 있게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이것도 저것도 죄 내다버리는 그런 오류를 범하자는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러니 다문화 사회는 이것도, 저것도 모두 잘 알아야 하는 참 아이들이 바쁜 사회가 될 것 같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를 둔 다문화 배경의 학생들이 문해력 측면에서 많이 부족한 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필자이신 성태숙 선생님이 국어 교과서 읽기 활동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모습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센터의 많은 아이들이 다문화 가정이라고 하셨는데, 이러한 아이들의 문해력 증진을 위해 센터에 지원되는 프로그램 등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교과서 읽기 활동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보다 체계적인 국가 지원을 활용(국가의 도움)할 수는 없는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