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교육위원회의 목적과 성격 바꿔야
지난 7월 1일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4년간 끌어온 국가교육위원회(이하 위원회) 설치 논란이 일단 마무리된 모양새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우선, 법률안 제안 이유에서 밝힌 대로 그 취지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 교육 비전을 제시하고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다면 당연히 교육 변화를 바라는 다수 국민의 성원 속에서 여야 합의 과정을 거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실제로 이 법률안의 교육상임위원회와 법사위, 본회의 의결 과정이 모두 여당 단독으로 처리되었다. 국민과의 소통이나 의견 수렴을 위한 노력도 별로 없었다. 법률안의 내용을 말하기 이전에 이러한 일 처리 방식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하기 어렵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민주사회의 기본 원리가 아닌가! 그러다 보니 법률안 통과에 대한 국민의 반응도 시큰둥이다. 위원회 설치를 역설하던 일부 사람들은 쾌재를 불렀겠지만, 일반 상식을 지닌 사람들은 거기에 동조할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일부 세력이 일방적으로 만든 새 법률은 ‘그들만의’ 운동장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법률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많은 의문이 고개를 든다. 몇 가지 굵직한 것만 따져보자. 첫째,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안정적이고 일관된 교육정책’(제1조)이라는 위원회 설치 목적이 어느 정도나 구현될 수 있을까? 사회적 합의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 세력들이 복잡한 절충과 타협, 나눔 등을 통해 어느 정도의 일치점을 찾는 행위이다. 이 과정은 격렬한 투쟁을 수반하기도 하며, 중재를 위한 힘 있는 제3자가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21명의 위원을 대통령과 국회 그리고 교육 관련 하위 권력기관 및 단체들이 나눠먹는 식으로 구성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어떤 방식과 기제를 통해 교육에 관한 다양한 요구들을 묶어 사회적 합의안을 만든다는 것일까? 법률 제13조는 위원회가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조정하는 경우를 ① 국회, 대통령,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요청이 있는 경우, ② 일정 인원 이상의 국민 요청이 있는 경우, ③ 위원회가 국민 의견을 수렴·조정하기로 심의·의결한 경우로 열거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위원회의 주된 역할이, 지난 역대 정부에서 운영해 온 대통령 자문기구가 늘 그래왔듯이, ① 중에서 주로 정부가 요청하는 정책 사안들을 그럴듯하게 만지작거려서 정부 의도대로 추진할 수 있게 해주는 데 머물지 않을까 생각된다. 입법 기능을 가진 국회가 위원회에 요청할 것은 거의 없을 테고, 위원회가 정부와 다른 방향의 정책을 입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②와 ③은 구색 맞추기 위한 규정일 가능성이 크다. ②의 경우는 성립하기도 어렵겠지만 설사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민원 처리 형식이 될 것이며, ③의 경우는 입에 맞는 사람들을 불러 의견을 듣는 형식적 절차를 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미 있는 사회적 합의는 이해관계 조정의 재량권이 있을 때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재량권은 입법 기능이나 정책 추진에 관한 최종 결정권(재정 투입 기능을 포함하여)을 의미한다. 하지만 위원회는 입법 기능도, 재정권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위원회가 가진 권한은 정책 결정과 사실상의 권고(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 대한) 뿐이다. 이 점에서 위원회는 아무런 실질적 권한도 없이 국회와 행정부 사이에 끼인 어정쩡한 행정기구인 셈이다. 그런 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낸다는 것은 한마디로 국민 기만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주요 세력의 대표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노사정위원회조차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수없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둘째, 도대체 교육부와 위원회는 서로 어떤 관계이며 역할과 기능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가? 정부 직제상 교육정책을 대표하고 책임지는 주무부처는 교육부이다. 하지만 법률 제11조에 따르면 교육부장관은 위원회가 입안한 정책(장기정책)을 시행하고 매년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상위부처가 하위 기관에게 보고하다니! 그게 아니라면 위원회가 교육부 상부 기관인가? 분명 상부 기관은 아니다. 법률에 따르면, 위원장은 장관급(중앙 관서의 장)이고 국무회의에 참석은 할 수 있지만, 국무위원은 아니다. 결국 법률은 국무위원(장관)이 국무위원이 아닌 자(위원장)에게 지시를 받는 이상한 구조를 만들어 놓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야 각료가 청와대 비서들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비공식적인 일이고 또 원칙적으로는 잘못된 관행이다. 그런데 법률은 아예 이를 공식화해놓고 있다. 어불성설이다.
실제 기능에서도 어디가 경계인지 알 수가 없다. 법률 제10조는 위원회의 소관 사무를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에 관한 사항, 국가교육과정에 관한 사항, 국민의견 수렴·조정에 관한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글자대로만 해석하면, 위원회는 10년 계획을 세우고 다음 10년 계획을 세우기 전에는 별로 할 일이 없게 된다. 이 계획의 집행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교육정책의 계획과 집행을 서로 다른 주체가 따로 맡아 추진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가뜩이나 관료적 경직성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행정의 현실을 고려할 때 엄청난 비효율성과 행정 낭비가 예상되고도 남는다. 일선 학교 처지에서 보면, 기존의 교육지원청-시도교육청-교육부 위에 위원회라는 또 하나의 시어미가 늘어난 꼴이다. 어떤 교육정책이 현장에 맞지 않아 고쳐야 할 경우 교육부와 위원회가 서로 핑퐁 게임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만일 서로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면 참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어디가 교육부고 어디가 위원회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 직원들은 속으로 ‘차라리 한 부처로 통합하면 좋을 것을!’ 하고 외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짐짓 가리고자 위원회가 해야 할 일과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을 꼼꼼하게 나눈다면, 아마도 사소한 정책 한 가지를 조정하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과 행정력이 소모될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문재인 정부는 왜 지금까지 산적한 교육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 위원회 설치를 위해서는 집요하게 노력했는가?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에 대한 무관심은 사회적 합의 기구인 위원회가 없어서였는가?
현 정권은 내년 5월 초면 끝난다. 그리고 법률에 따르면 위원회도 내년 7월 이후에나 설치된다. 현 정부의 교육 분야 성적표는 이미 나와 있는 그대로다. 이번 법률 제정이 현 정부 성적표에 보탬이 될지 여부는 차기 정부에서 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지에 달려 있다. 만일 위원회가 ‘잘’ 구성되어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해소해나가는 주체가 된다면 현 정부의 공로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대로 기대난망이다.
이런 부정적 전망의 근거로 앞서 지적한 현실적인 문제들 외에 위원회 설치 주장의 철학과 상상력 빈곤을 추가하고 싶다. 물론 법률은 하나의 절차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법률 자체에 철학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법이 왜 필요한가, 그것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에 관해서는 법률 제정 이전에 충분히 논의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철학이 구체화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위원회 설치를 둘러싼 그간의 논의와 이번의 법률 제정 과정에서는 이 점이 빠져 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교육계가 염원해 온 것이 초정권적·초정파적 교육정책,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정책을 입안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이었지 않느냐, 이번 위원회 설치 법률이 그 염원을 구현한 게 아니냐’라고… 이에 대한 우리의 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법률이 제시하고 있는 이 기구는 초정권적·초정파적 교육정책을 만들 수도 없고 사회적 합의도 이룰 수 없다. 둘째,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교육을 지향해야 할지에 관해 아무런 전망도 비전도 제시하지 않은 채 차기 정부, 나아가 거기서 선임되는 21명의 위원들에게 전적으로 미래를 맡기고 있다. 1년 후에 등장할 그들이 정말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아마도 법률 제정을 주도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위원회 구성까지 주도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시도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게 ‘어떤 교육’이었나? 그걸 국민에게 보여주고 동의를 구할 생각은 없었는가? 대다수 국민이 ‘아, 그런 생각이라면 나도 적극적으로 응원하겠소.’라는 반응을 끌어낼 수 없었는가?
교육 변화의 원리에 관한 명쾌한 분석으로 유명한 마이클 풀란은 개혁가들이 여러 가지 교육개혁 방안을 만들고 추진하지만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가 교육 변화의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주관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점은 위원회 설치를 위한 지난 4년간의 노력과 이번의 법률 제정 과정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일단 개혁 방안이 확정되고 나면, 그것은 당초의 의도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작동하면서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미 잉태해버린 국가교육위원회의 앞날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길은 세 가지 중 하나이다. 첫째는 순산이다. 그러나 앞에서 누누이 지적했듯이 성공보다는 실패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아주 거추장스러운 기구가 될 공산이 크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면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둘째로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은 사산이다. 아예 법률을 폐기하거나 사실상 없는 법으로 방치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현 정부가 아직 남은 임기 중에 시행령을 제정할 것이고 발족에 필요한 준비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가지 대안은 위원회의 성격과 목표를 바꾸는 것이다. 우선 위원회의 성격을 상설기구가 아닌 ‘한시적 기구’로 하고 그 목적을 사회적 합의라는 형식이 아닌 내용, 예컨대 ‘현 교육체제의 근본적 개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 필요성은 우리 교육이 처한 절박한 현실이 웅변하고 있다. 사회변화와 유리된 채 갈수록 형해화되고 있는 우리의 학교 교육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새로운 위원회는 당연히 이 방안을 만들기 위한 기구가 되고 방안이 완성되면 그 존재 기간도 끝나게 된다. 새로운 위원회를 만드는 일이나 거기서 한국교육의 일대 혁신 방안을 만드는 일은 당연히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이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교육의 새 틀을 짜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차기 정부가 꼭 이 과업을 맡아 이루게 되기를 기대한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이 발행하는 저널 '교육 제4의 길'은 한국 교육 변화의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고 이를 제시하는 탁월한 정론지가 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교육전문가들로 구성된 논설위원회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울림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