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아이랑, 교육과정이랑 싸워야 할까?
지나온 흔적은 물론 새로 갈 길도 현장에 있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금년도 교육부의 유아교육 핵심 정책에 누리과정 개편이 들어있다. 현행 누리과정이 “초등학교 준비교육 위주의 학습, 교사의 계획서 위주 교육, 현장의 자율성 제약”임을 진단하고, “개별 유아의 다양한 특성 고려, 자유 놀이 권장과 상호작용 강조, 현장 자율성 존중”으로 개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 방향으로 누리과정을 운영하는 기관, 교사들이 있다. 지난 토요일 또 한 기관을 다녀왔다. 놀이를 설명하는 교사들의 어휘는 정확하고 아름다웠다. 자유롭게 놀이하면서 배움을 창출해 내는 교실 환경은 아이들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1. 3년차 교사의 깨달음
교직에 진입한지 이제 3년 된 함 교사는 아이들의 놀이를 ‘양식 전복’과 ‘자연산 전복’으로 구분 했다. 교사가 아이들의 놀이를 심화, 확장시키기 위해 “ ~ 해 볼까?”라고 질문하거나 이런 저런 재료를 지원해주면 놀이가 ‘양식’이 되고, 그냥 그대로 아이들한테 맡겨두면 ‘자연산’ 놀이가 된다는 것이다.
함 교사는 자연산 놀이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과의 접속을 통해 전개되는데 그것은 경험 간의 접속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러한 접속을 통해 아이들은 다양한 놀이를 만들어간다고 했다. 이제 3년차인 교사가 얼마나 아이들의 놀이를 잘 들여다보았으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저런 어휘를 사용하며 설명을 할 수 있는지, 너무나 놀랍고 기특했다.
2. 8년차 교사의 성찰
이 교사는 경력이 8년차였다. 놀이와 관련하여 그동안 자신이 고민해 왔던 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예를 들면 이 교사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더 의미있는 놀이일까?”
“나는 왜 완성된 놀이에 대한 욕심과 압박감을 가지고 있을까?”
“이상적인 형태나 결과물을 향해 놀이가 발전해 가는 것이 놀이중심 교육의 가치일까?”
이 교사는 본인은 항상 목표를 생각하는 교사였다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며 즐기는 놀이가 있고, 아이들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교사가 생각하는 목표를 향해 발전해 가는 놀이로 구분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이를 만들어갔던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웠냐고 물어본 것에 대한 답을 소개했다.
현미경을 가지고 놀았던 아이들 “신기했어요. 관찰하는 재미. 그냥 눈으로 봤을 때는 털 같았는데 현미경으로 보니깐 가시라는 걸 발견했어요.”
가면라이드 이그제이드를 공연한 아이들 “춤. 노래. 용기를 갖고 무대 올라가기. 친구들과 신나게 놀이하는 거”
물에 뜨는 배를 만든 아이들 “물에 뜨는 배 만드는 방법.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거. 실험하는 거”
돌 파는 가게를 운영한 아이들 “돈 버는 방법. 돌 파는 방법. 돈 모으는 방법. 숫자 세기.”
그 외 아이들은 “자신감. 종이에 글자 적기. 친구들과 다같이 사이좋게 노는 법.” 등이다.
교사가 목표를 생각하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다양한 층위의 목표를 이미 습득하고 있다. 놀이를 해가면서 친구들과 함께 배움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제시된 역량 – 자기 관리, 지식정보처리, 창의적 사고, 의사소통, 공동체 역량 – 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OECD가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들”이라고 제시한 지식, 기술, 태도와 가치, 역량, 실행도 다 포함하고 있다.
이 교사가 제시한 만 5세 아이의 “돈”을 살펴보자.

단위를 셀 수도 없는 이 아이의 돈에는 ‘돌 가게’ 경험과 유니세프가 하는 일에 대한 지식을 넘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과 가치가 담겨있다. 만약 이 아이의 놀이에 교사가 목표를 설정했다면 어땠을까. “돌 가게 경험을 통하여 돈의 단위를 이해한다.”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목표 중심의 학습, 내용지식의 재생산이나, OECD가 미래사회에 필요하다고 제시한 역량이라는 외침은 유아들의 자발적인 놀이 속에서 창출되는 다양한 층위의 배움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진다.
3. 교사는 아이랑 싸우지 말고 교육과정과 싸워야 할까?
“오늘도 온 종일 아이들과 씨름을 했다.”고 하루를 평가하는 교사들이 있다. 실습을 다녀온 학생이 말했다. 교사는 매일 매일 아이들과 싸우고 있다고. 그러나 교사는 아이들과 싸울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과 싸워야 하는 것 같다고. 아이들을 놀게 하려면 그래야 할 것 같다고.
현행 유아교육과정-누리과정-은 내용이 많다. 즉 교사가 가르쳐야 할 양이 많다. 교육계획안에는 목표가 강조된다. 교사의 머리 속에 학습 목표와 내용이 잔뜩 들어있다면 아이들의 놀이를 그냥 둘 수 없다. 간섭하고 지원해서 놀이를 확장시키고 목표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다. 놀이는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다.
이번 누리과정 개정은 교사가 교육과정과도 아이들과도 싸우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놀이가 살아날 수 있도록, 유아가 주도할 수 있도록 교사의 학습과 목표 실행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어야 한다. 아이들과 교사가 놀이하는 일상을 통해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그 과정에서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배움이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 이글은 6.16. 토요일 풍무 숙명유치원에서 개최된 어린이교육문화비평학회 제14차 연구세미나에서 있었던 함재영, 이미애 두 교사의 발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임.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유아교육 전공으로 한국교육개발원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유아교육정책을 연구했으며, 현재는 동국대(경주)에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위원, OECD 유아교육과 보육정책 국가조정관,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유치원교육과정 개정 등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정책 제안은 유아교육-유치원-교육부, 보육-어린이집-복지부로 이원화된 유아교육과 보육체제를 단일부처로 통합하자는 것이며, 이 안은 지금까지도 미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최근에는 미래를 위한 배우기와 익히기에 쏠려있는 유아기를 아이들이 주도하는 생동하는 놀이 중심으로 되돌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