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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학교 공간이 욕망을 만났을 때

#627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 2021.04.14

학교와 교육에 자리 잡은 욕망

 

학교와 교육은 많은 이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학교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공간이지만, 누군가의 욕망으로 좌지우지되어 그 기능이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욕망들은 모두 교육을 위함이라고 포장되지만, 실제 교사와 학생들의 눈에는 전시행정으로 보이거나 불필요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것을 주도하는 이들은 시대와 시기,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중앙정부, 장관, 교육감, 교육장, 교장, 교사, 학부모 등 누구든 될 수 있다. 일부의 사례지만, 지역에서 힘이 있는 유력 정치인(시·도의원, 국회의원 등) 학부모들은 학교에 각종 사업을 챙겨주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교사들은 승진이나 교육전문직원 전직에 도움이 되는 실적을 만들기 위해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학교를 수단화하여 생각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고 아직까지도 학교는 지시와 통제에 의해 움직인다. 슬프지만 많은 교원들이 이 점을 인정한다.

 

교사로서 학생들과의 일에 대해 고민을 할수록 교직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자면 수업, 학생 생활, 학부모 상담,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에 대해서이다. 힘들지만 전문성이 쌓이고,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높여 준다. 그런데 이러한 전문성이나 사명감과는 거의 관련 없이 교사를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행정업무와 각종 사업이다. 행정업무는 교육부나 교육청의 요구로 꼭 해야 하지만, 교사의 전문성을 높여 주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각종 행정업무를 통해 교육행정에 대해 이해하고, 국가공무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반대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가 교육과정과 수업에 대한 전문성을 쌓기 전에 행정영역에 특화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데 둘 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교사들이 맡고 있는 행정과 교육을 분리하자는 목소리1도 나오고는 있으나, 이견도 많고 법령 문제가 결부되어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각종 사업이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신념이 악순환을 만들기도 한다. 사업을 학교가 원해서 하는 경우는 드물고, 원한다고 해도 특정인이 주도하여 암묵적인 강요에 의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구성원 대다수가 특정 사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는 생각보다 찾아보기 어렵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생각보다 정책사업에 대한 피로도가 높기 때문이다. 기존에 경험했던 많은 것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교육적이지 않았고 누군가의 영전에만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되어 움직이지 않는 학교 구성원들이 많은 상황이다. 학교에서 교육을 최종적으로 수행하는 이들은 교사이다. 때문에 교사들은 사업이 교육과정 영역 안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한다. 결국 정책사업의 핵심 성공 요인은 평범한 교사들의 인식과 사기이다.

 

결국, 학교를 힘들게 하는 바탕에는 교육부·교육청의 욕망이 깔려있다. 선한 의도로 학교를 변화시킨다는 명목이지만, 결국 학교의 파행 운영에 일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반기를 드는 소수가 있지만, 대부분은 익숙해져서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대충 하는 이들도 있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이들도 있다. 성실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평균 이상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소모적인 일들이 많아 피로가 쌓인다.

 

상황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구성원 중에 ‘전에 학교에서 이런 일을 했는데’, ‘옆에 학교에서는 이렇게 한다는데’, ‘이건 하는 게 좋은데’ 등의 첨언으로 관행적인 요소들을 추가하는 이들이다. 근거 없는 ‘카더라’로 온갖 문서를 만들게 한다. 보통의 교사들은 이러한 요구에 응하는 것이 힘들고 고달프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고경력자들의 말을 비꼬는 분위기는 학교에도 있다. 젊은 교사들의 ‘을질2’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지만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경력 교사의 노하우는 존중돼야 하지만, 몇 십 년간 유지되어 온 관행이라며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연륜과 관행의 강요는 구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직종에 비해 특히 교직에서 법적 근거보다 관행적 요인들이 많이 작동한다. 교원업무경감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면 불필요한 업무가 많은 원인 중 다수는 학교 내의 관행적인 요소들에 있다. 이것들만 포기해도 학교는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왜 하는가. 잘못된 집념과 제도에 길들여진 습관이 이유일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학교를 위한 것인지, 교육을 위한 것인지 따져보고, 안 해도 되는 것이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야 불안감이 해소되는 교원이 있다면, 그가 학교 내 연구·교무 업무 등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한 길일 것이다.

 

자기 과시의 욕망을 학교에서 풀고자 하는 구성원도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 뛰어난 언변과 문건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때로는 범접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활동을 해왔으며 그렇기에 주목 받아야 한다고 암시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학교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한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활동적이고 실천하는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하다. 이럴 경우, 학교에는 문제가 생기고 만다. 욕망이 지나치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일이 생기고 주변인들과 마찰을 빚는다. 소신이 너무 강해 타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이런 교원이 한두 명씩 있는데, 그 수가 평균 이상으로 많아지면 그 학교는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모두가 자신의 소신을 내세우다 보니 갈등이 생긴다. 학교 구성원들이 힘 있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패가 갈리고, 그 사이에서 저경력 교사들은 어느 위치에 서야 하나 눈치를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학교가 특정인들의 소유물처럼 인식되고 그 학교를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구성원들이 학교에 무관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주도권을 가진 이들은 소통이라 말하지만, 분명 영향력에 대한 자기과시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입히게 된다.

 

욕망을 가진 이들 중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강한 이들이 있다. 흔히 말하는, ‘자리’에 대한 욕구이다. 교장승진(공모제 포함), 교육전문직원 전직, 장학관·교육장에 대한 의지이다. 물론 권력에 대한 욕구가 나쁜 것은 아니다. 분명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다만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교장·교감·연구·교무 등 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 중추적인 일을 하는 이들이 교육전문직원 전직(장학사 시험 합격, 장학관·교육장 임용)에 생각이 있다면, 교육청에서 시키는 모든 것들을 다 수행하고 거기다가 무언가를 더해서 자신만의 업적으로 만들어 운영하고는 한다. 대표적으로 연구·시범학교 같은 사업을 따오고, 따온 이후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하면서 다른 학교와의 차별성을 만들려고 한다. 여러 가지 사업을 중복해서 가져오고 이것을 학교와 개인의 실적으로 끌어들인다. 학교 내 구성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거나 학교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 파급력은 더 크다. 학생과 교사는 수업과 교육과정 운영은 뒤로 한 채 행사기획과 행사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주도권을 가진 이들의 변명은 모두가 교육과정이며 학생과 교직원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이 얼마나 행복할지’를 생각해보라며 자신의 욕망은 숨기고 변명한다. 이 방식이 대부분의 학교에서 통용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과정과 결과보다는 개인의 영달·영전, 명예 등을 목표로 노력한 이들 중 상당수가 목적을 달성하고, 이들이 교육청에 진입하여 동일한 패턴을 학교에 강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교육자치나 진보교육감 이후로 이 방식이 없어졌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오히려 교육부보다 시·도교육청의 입김이 세지면서 이런 방식들이 더욱 공고화된 것 같다. 사실상, 은근히 장려되는 분위기이다. 학교는 이용 가치가 있는 대상일 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으로 깔려 있다. 교육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정책에는 연구·시범학교가 기본이다. 교육부의 연구·시범학교 중 성공하지 않은 사례가 없는 것을 보면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과거처럼 승진가산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시·도교육청이 제동을 걸어 쉽지 않지만, 여전히 구시대적인 방식을 고수하면서 학교에 정책사업을 강요하고 있다.

 

과거 연구·시범학교에 근무하면서 발표회를 가진 적이 있다. 발표회 당일 모든 교직원과 학부모가 한복을 입고 교육청 직원을 맞이하였으며 지역 축제가 되어 주변 어르신까지 초대하였다. 교육부 관계자도 참석하여 흡족해 했다. 외부에서 보기에 참 좋았겠으나,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한 학기를 수업을 제대로 못한 채 하루 행사를 준비해야 했던 교사들이 있었다. 행사를 위해 홍보 CD가 필요했다. CD를 하루에 500장을 제작했는데(당시 표현으로 구웠는데) 한 대의 컴퓨터에서 CD 한 장을 굽는데 5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대략 다섯 장 중 한 두 장은 불량이 나와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야 했다. 3일을 꼬박 CD를 만들고, 포장지를 인쇄하고 포장하는 일을 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퇴근 시간 새벽 3시. 다음날 학생들은 피곤한 선생님 때문에 수업이 더 즐거웠을지 모른다. 당시 지역 신문에도 실렸으며 교육장과 교육감은 이 발표회로 전 학교를 독려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형식과 절차가 약간 달라졌을 뿐 결국 비슷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우수사례와 벤치마킹에 대하여(파랑새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지금도 쏟아지는 공문들, 그 안에 학교별 우수사례가 있다. A지역의 B학교의 우수사례를 열거하면서 벤치마킹하라고 한다. 학교 규모, 지역 환경, 소득 수준, 교사들의 연령대와 역량, 예산 지원 주체, 지원시스템과 인력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냥 우수사례다. 쉽게 말해 그런 우수사례가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우수하지 않은 학교다. 이것이 일반적인 교육부와 교육청의 방식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도 많다. 우수하지 않은 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발생하는 열패감, 그로 인한 피로도 증가와 학습된 무기력, 이를 느끼는 교사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우수사례가 된 학교는 더욱 주목받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학교들은 무능한 학교와 교원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도태된다. 우수학교로 선정된 학교 기피 현상도 발생한다. 우수사례를 가진 학교가 영원할까? 그렇지 않다. 예산 지원이 끊기거나 주도했던 교원이 떠나면, 성공의 신화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또한, 우수사례로 소개되면 외부에서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언론에서 주목하여 더 많은 사업과 예산이 내려온다. 우수사례라는 유명세는 기피학교라는 낙인으로 되돌아 오기도 한다. 어떤 사업이든 10년 전 우수사례로 소개된 학교가 현재 어떤 모습인지 찾아보라. 아마 대부분의 학교가 우수사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모습일 것이다. 실망할 필요 없다. 그것이 학교 안의 삶이고 어쩌면 그것이 학교의 본 모습이며 우리가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아닐까 싶다. 파랑새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일반학교, 비(非) 우수학교는 사실 우리가 추구했던 학교일 수 있다. 무엇이 우수한 것인가에 대한 재개념화도 필요하고 이렇게 전시적인 것들이 학교 교육에 과연 도움이 되었는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자기 과시, 강한 권력욕을 바탕으로 막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평범한 교사와 평범한 교장·교감, 그리고 평범한 학생들과 학부모면 충분하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실패와 좌절이 꼭 나쁘지 않은 것은 경험적으로도 알고 있다. 실패를 통해 다음의 성공을 기약하며, 하나씩 바꾸어 나간다. 결과적으로 우리 삶은 실패의 연속이나, 절대 패배자가 아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삶에서 완벽하고 달콤한 성공이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성인보다 미숙한 존재들과 함께 하는 학교에서의 시간은 인생의 희노애락의 축소판이다.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정책에는 완벽한 우수사례가 존재한다. 그 우수사례 속 흔히 말하는 넘사벽3의 모습을 대면하고 많은 교사들이 이를 외면한다. 대부분의 학교는 상처와 실패 투성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이 만들어 놓은 정책, 사업, 공문, 행정들로 몸살을 앓는 치열한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학생들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혹자는 이들을 나태한 교사, 무능한 교사, 월급쟁이 교사라 비웃는다. 교육부나 교육청이 만들어 놓은 우수의 잣대에 그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한’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가치 있는 모두에 대한 비난은 결코 학교교육에 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우수학교를 봐 왔고, 막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교장, 교감, 연구·교무부장을 봐 왔다. 그리고 그들은 영전했다. 묵묵히 학교를 지킨 우수하지 못했던 평범한 교사들은 주목받지 못했고, 주목받을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그들의 희노애락과 실패사례를 살펴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전국의 1만 개가 넘는 학교들이 모두 우수사례는 아니나,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 모든 학교는 그만의 빛깔을 낸다. 우수사례를 집중적으로 홍보할 시간이 있다면, 실패사례에도 주목해 봤으면 한다. 어쩌면 실패사례에 대한 수집이 학교를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축구 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겠다고 골대 앞에만 모여있으면 누가 수비를 하고, 골키퍼를 하겠는가? 주목받지 않는 일을 하고 있거나 빛나는 곳에 있지 않다고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교육감 직선제 10년이 지났고, 진보교육감이 다수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우수사례는 쏟아지고, 많은 교사들이 무기력해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몇몇의 욕망을 위한 들러리 역할을 원하는 교사는 없다. 어느 정도 경력 있는 교사들은 학교가 욕망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망가지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경력이 쌓이다 보니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현실과 타협하는 이들이 많아질 뿐이라 안타깝다.

 

 

학교 공간과 욕망과의 단절이 성공을 담보한다

 

학교공간 혁신은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다. 그 변화의 시작이 우수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교사들이 주인공이 되었을 때 변화는 시작된다.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부터 버려야 한다. 또한, 우수사례를 부르짖는 이들이 아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야 한다.

 

혁신학교의 경우 공간적 측면에서 대규모 공사나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채 인식의 변화를 먼저 제시하였다. 즉, 교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 복도나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는 환경적 변화를 모색하였다. 학교 공간을 다양하게 재구성하여 노작교육이나 생태 환경 교육을 진행하였다. 복도나, 운동장, 특별실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였다. 때로는 학생들의 학교 밖 활동을 장려하였다. 체험학습을 학생들이 직접 주도하여 기획하고, 교실과 학교 밖에서 배움을 얻도록 하였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마을 축제나 지역사회 네트워크와 교류하면서 다양한 이들과 더불어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2025년 시작하는 고교학점제에도 학교 교육과정, 학교 간 교육과정, 학교 밖 교육과정이 있는데, 이것은 12년 전인 2009년에 혁신학교에서 이미 계획하고 시행했던 것이다. 다만, 홍보되지 않았고 누군가의 욕망으로 자리잡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가 ‘학교공간사업’ 하면 떠올리는 대규모 리모델링, 증·개축 사업 등이 능사는 아니다. 독일, 일본 등 여러 해외 사례를 보면 최신식 학교보다 전통적인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과정과 수업방식을 고민하여 성과를 낸 곳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혁신학교가 이를 증명하였는데, 시설 환경 개선이 꼭 대규모 리모델링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옳지 않다. 교사들이 고민해서 학교나 지역에 맞는 최선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물론, 환경적 개선도 필요하고 예산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본질은 교육과정에 있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요인이다.

 

 

학교 공간과 그린스마트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문재인 정부 들어 학교공간사업이 시작되었고, 나름 호응이 있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러한 작업들이 시작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학교는 일제강점기 이후 획기적인 공간 개선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개성 없는 학교의 획일적인 모습은 교육과정이나 시스템의 문제와도 연결되지만, 그만큼 관심 밖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2021년부터 그린스마트 뉴딜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공약이나 국정과제가 아닌 코로나로 침체된 경제 활성화의 측면이 크다. 표면적으로는 노후된 학교 시설 공사이나 이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노후된 학교의 시설 공사나 경제 활성화 모두 좋지만, 실상은 과거의 모습을 답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학생, 교사, 학교의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획일화된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부 내의 교육시설과가 주도하게 된다면 이러한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교원이나 학생들도 대규모 공사를 하게 되면 어차피 4-5년 후에 완성되어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애정을 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하는데, 한 가지는 그린스마트가 교육과정 중심의 사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기획에 있어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높은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부 내의 교육시설과가 아닌 정책기획관 또는 별도의 T/F를 구성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TF에는 예를 들어 교육과정, 민주시민, 학교시설 등의 담당부서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중앙교육연수원, 한국교육개발원, 직업능력개발원 등이 참여해야 한다. 전문가 집단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방식에서 탈피해야 좋은 기획이 나올 수 있다. 초기 기획안이 나오면 학생, 학부모, 교사, 교원단체들의 의견 수렴이 이루어져야 한다. 관련하여 정책연구를 추진할 필요도 있다. 중앙정부에서 모든 방향을 다 결정할 필요는 없다. 일부는 시·도교육청에 재량권을 주고, 최종적으로는 단위학교에 재량권을 주어야 한다. 시·도교육청(시·도교육감협의회)과 예산의 구성, 사업의 방식, 집행 절차에 대해 사전에 논의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교육과정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게 된다.

 

그린 뉴딜의 경우 총 18조 500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히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4대강 사업과 거의 맞먹는다. 이렇게 거액이 들어가는 사업에는 국민 공감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업 시작과 성과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사업에 대한 공감을 얻는 작업을 거치고 공모 등의 절차 방식을 도입하여 제도의 투명성을 담보할 필요도 있다.

 

예산 배분 방식도 다양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17개 시·도교육청의 규모와 40년 된 노후학교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획일적인 기준으로 예산을 분담하다 보면, 예산의 배분이 학교 현장과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노후된 학교라도 관리가 잘 된 학교에 굳이 대규모 공사를 할 필요는 없다. 학교에 예산 투자 사업이나 리모델링된 사례가 있는지 전수조사 한 후 해당 학교를 기준으로 예산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역이 기준이 되면 17개 시·도교육청에 나누어 주는데 집중하여 예산의 효율적 활용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기준점이 없으면 학교마다 예산을 몇 억 원씩 주고, 생색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을텐데 미래학교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신설학교나, 전면 리모델링 수준의 학교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맞다. 과거 교과교실제가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교과교실제 전용교실 구축이나 전자칠판 구입에 예산을 다 써버리고, 정작 제대로 이용도 못하고 흐지부지된 사업들이 많다. 유사한 전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과거 교과교실제와 학교 리모델링 사업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한 설문, 연구, FGI, 토론회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린스마트 뉴딜과 관련된 주도권을 교사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 경제논리로 접근한다면 굳이 학교에 접목시키지 말고, 아파트나 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학교 공간 혁신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당연히 교육과정과 연계되어야 하고 그 방향키는 교사에게 주어야 한다. 교사들에게 주도권을 주면 위험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혁신학교처럼 교사들에게 자율성과 주도권을 주어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분위기는 단순히 인식 제고나 홍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관련된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주도성을 가진 이들을 키워나가야 한다. 혁신학교도 초창기에 다양한 아카데미 과정으로 체계성을 갖추어 나갔다. 학교공간사업이나 그린스마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린스마트 센터를 운영하여, 수업을 하지 않는 교사들이 그곳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가장 높은 이들은 교원인데, 이들이 수업-생활지도-행정업무를 하면서 미래학교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므로 새로운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교원정책을 전환하여 수업을 하지 않는 ‘행정교사제(가칭)’를 도입한 후 미래학교사업을 기획·운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그린스마트(또는 학교공간사업) 센터장이 되어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들이 설계자, 집행자, 행정가, 학생-학부모,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일을 할 것이다. 5-10년 후를 바라본다면 그 성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학교마다 그린스마트 센터 참여 교사를 둔다면 사업을 위한 사업이 되기에 지역교육청별, 거점학교별로 두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현실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발성을 가지는 이들을 중심으로 최소한으로 구성하고 이들에게 인센티브도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 교원에게 헌신과 사명감을 강요하던 시대는 지났다. 가령 관련된 교육전문직원 트랙을 만든다든지, 수당을 현실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발성을 가지게 하려면 인센티브만으로도 부족하고, 명예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관련된 연수휴직, 연수파견, 석사과정 등을 만들어 교육 후에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업에 있는 이들을 오후나 주말에 불러 형식적인 연수를 시키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후 그린스마트 사업이 어떻게 평가 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학생과 교육과정이 그 중심에 없다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사업을 진행하는 이들이 꼭 기억했으면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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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군인, 소방, 경찰처럼 행정과 본업을 담당하는 이들을 분리하자는 것. 교직에서 행정은 행정직원이나 행정실무사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행정업무와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행정교사제’를 도입하자는 요구가 대두되고 있다.
  2. 갑질의 반대말로 쓰이는 용어
  3.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 홍섭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연구위원이며, 교육정책 관련 다수의 저서 및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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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1. 박철우 안토니오 수정 삭제

    훌륭한 글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단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이치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교육이기에 모든 것을 일통하는가 싶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2. 김태균 수정 삭제

    선생님의 고민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수업을 하지 않는 교사들을 행정교사제(가칭)를 통해 미래학교사업을 기획 및 운영할 수 있게 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수업을 하지 않기에 현재의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높을 지도 걱정되며, 수업을 하면서 더불어 학교 공간을 고민해야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생과 교원들이 공사 후 완성될 공간의 수혜자가 아니란 생각에 해당 사업에 소극적이고 별다른 애정이 없을 것이란 말씀에도 공감이 갑니다. 따라서 행정교사제를 시행한다면 소속된 교사들은 학교 내 교사 및 학생들과의 소통에 힘써야 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해당 사업이 교육과정 중심의 사업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봅니다.

  3. 정민형 수정 삭제

    명문이네요…그린스마트학교 사업이 성공하려면…저는 질관리 측면이 중요할 것 같아요..예산을 투입하여 운영하는데 유지 보수할 부분에 대한 고려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 선생님과 행정실도 여기에 참여했던 교원들이 빠지는 순간 그대로 끝나겠지요?
    학교나 교육지원청에서 우리 이만큼 했으니까 나 장학사-장학관 시켜주세요…국장시켜주세요..그걸 하기 위해 희생된 선생님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참 대안은 어떤게 있을지..결론은 승진체계를 바꾸어야 하는데 행정과 가르침은 같이 병행이 되면 안되나 싶네요…꼭 제 이야기인 것 같아서 느낀 게 많았습니다. ㅠㅠ

  4. 전남교사 수정 삭제

    구구절절 공감이네요. 관리자와 욕망의 화신이신 분들이 이 글을 보고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좋겠네요. 그 욕망의 화신들 때문에 기본 교육과정을 제대로 하는 건 제껴놓고 겉보기에만 있어 뵈는 프로그램과 행사들로 허덕이고 있는 교사입니다. 왜 실무를 하고 있는 교사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에 힘빼고 있는지…학생들을 위해서라는 말이라도 안하면 덜 토나오겠죠?

  5. Rulang 수정 삭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나리만큼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욕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기에 벌어지는 수많은 씁쓸한 교육현장의 일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온전히 아름다운 ‘교육 그 자체’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생들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시는 평범한 교사들께 감사한 마음을 드립니다. 그리고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애쓰며 조용히 공교육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교육공동체구성원을 응원합니다…

  6. 김종해 수정 삭제

    글 잘 읽었습니다. 교육전문직처럼 일정 기간 이상 교직 경력을 가진 교사 중 희망자를 선발해 행정교사(가칭)로 전직토록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인사 제도 혁신과 연계해 연구해가며 보완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7. 123 수정 삭제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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