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은 왜 실패하는가?(4) – 교육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2)
1. 시작말
이번이 “교육개혁은 왜 실패하는가?”란 제목으로 쓰는 네 번째 칼럼이다. 지난 칼럼에서는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로 ‘교육변화의 이해 부족’에 대해 살펴보았다. 교육개혁으로 인한 변화는 이해당사자에 따라 대개 다른 ‘의미(meaning)’로 다가온다. 따라서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개인과 집단 모두가 변화를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할 것인가가 핵심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혁은 의미의 공유(shared meaning)에 실패한다. 아예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찍이 풀란은 자신의 책(LEADING in a culture of CHANGE, 2004)에서 “변화는 관리될 수 없고 오직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변화란 자발적으로 이끌릴 수 있는 것이지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했다. 이 말이 갖는 함의는 매우 크다. 교육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번 칼럼에서도 지난 번에 이어 교육개혁의 실패 요인으로 교육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교육개혁에 대한 이해 부족을 좀 더 자세히 분류하면 ‘교육변화의 의미에 대한 이해 부족’, ‘교육변화의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 ‘교육변화의 원리와 실행 전략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번 칼럼은 ‘교육변화의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 중심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실패 원인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먼저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풀란의 『교육개혁은 왜 실패하는가(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 NMEC)』(Michael Fullan, 5th edition. 2016)(이하 줄여서 NMEC)란 책에 나오는 관련 내용을 인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2.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주요 원인과 해결책
교육개혁에 관심이 많거나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교육개혁은 대부분 실패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예상컨대 “대학의 견고한 서열과 학벌주의 때문이다.”, “대입시 때문이다.” “교육부의 전횡 때문이다.” 등이 원인으로 지목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은 좀 다르다. 교사들은 이런 진단에 동의하면서도 “대학서열이 완화되고 대학입시가 바뀌어도, 또 교육행정 민주화가 진전되어도 학교 교육은 거의 변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분들이 많다. 질문에 대한 교사들의 대답은 왜 이렇게 다를까? 교사들의 말이 맞다면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은 학교교육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지 학교교육의 변화에 관한 세계적 교육 컨설턴트인 마이클 풀란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1) 교육개혁에 대한 이해 부족
풀란은 교육개혁이 단순히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교육개혁의 핵심은 학교의 문화를 바꾸는 일임을 강조한다. 학교 문화란 학교 모든 기능에 영향을 주는 구성원들의 신념, 가치관, 관점, 관계, 태도, 규칙, 의식(rituals) 등으로 드러나는 학교의 인격(persona)과 같은 것이다. 학교 문화는 구성원들의 가치관, 상호작용, 일상의 관행 등으로부터 형성되며 학생, 교사, 학부모, 학교 경영자 및 기타 구성원들 모두가 학교 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왜 대학의 서열을 완화하고, 대입 제도를 바꾸며, 교육행정을 좀 더 민주적이게 만드는 것과 같이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일에만 몰두해왔을까?
풀란은 교육개혁을 위해서 시스템 즉 구조의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학교의 문화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만큼의 핵심은 아니란 주장이다. 구조가 변해도 학교교육은 꿈쩍도 않을 것이라는 말은 그것이 수업 중심, 학생 중심의 새로운 문화로 바꿔내지 못할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교육시스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립된 존재로 살아갈 것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식의 냉소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교육개혁과 학교 문화에 대해 풀란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960년대의 대규모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혁신적인 정책의 개발에만 초점을 맞추고 혁신이 일어날 학교와 학구의 문화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쪽)
“현재의 상황(status quo)을 강화시키는 요인은 제도 전반에 걸쳐 존재한다. 현 제도는 다양한 형태로 여러 분야에 걸쳐 연결되어 있다. 교육 제도 내에 존재하는 고립주의와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교사들이 물리적으로나 태도적인 측면에서 함께 협력하여 공동으로 계획을 실행하고, 서로의 수업을 관찰하고, 교수 전략을 배우고 실험, 수정하도록 도우려면 다년간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실천이 있어야 한다. 개혁이란 단순히 최신 정책의 시행이 아니다. 교실과 학교, 학구, 대학 등의 문화를 바꾸는 작업이다.” (9쪽)
풀란에 따르면 교육개혁은 구조적인 변화와 함께 학교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의미의 공유(shared meaning)’가 내적 동기로 전환되고 이것이 다시 집단적 책임감(collective responsibility)이 강한 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하지만 관료들 중심으로 추진하는 대부분의 교육개혁은 현장에 적용하려는 순간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문제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이 아닌 학자, 관료들 및 정치가들이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기 때문이다. 교육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교육 변화의 이론과 특성에 대해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교육 변화의 역동성(dynamics)에 대한 이해 부족
풀란은 교육개혁에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변화의 의미와 변화의 역동성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화의 이해당사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변화에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요소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 또 변화는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다음은 NMEC에 나오는 관련 내용들이다.
“한편 변화의 현상학, 다시 말해 변화의 계획이 원래의 의도와 달리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를 검토해보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사회 개혁이 실패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또한 교육의 변화는 사회정치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고 이해하는 능력이 필수다. 이 책의 성공 여부는 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 책의 내용을 읽고 개인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변화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요인을 깨닫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당면한 주변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실행으로 옮기는지에 달려 있다.” (10쪽)
“우리는 대부분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특정 방향을 지향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는지 모른다. 목표 지점에 도달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특정 교육 변화와 연관된 가치, 목표 및 결과를 염두에 두되,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개인, 교실, 학교, 지역 및 국가적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사회정치학적 과정으로서 교육 변화의 역동성(변화에 관련된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 변화패턴, 변화 강도 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의미의 문제란 변화의 주체들이 무엇이 변화해야 하며, 어떻게 이 변화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을지 파악하는 일이다. 한편 이 두 요소가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재형성해나간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10쪽)
교육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육변화의 역동성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복잡성(complexity)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교육 관련 복잡계 이론에 대해서는 후속 칼럼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3) 개혁가의 잘못된 가정과 강한 집념
풀란의 NMEC를 번역하면서 교육개혁에 대한 그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 부분이 하나 있다.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주요 원인의 하나가 ‘개혁가의 잘못된 가정과 강한 집념’이란 분석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한국 교육개혁의 수많은 실패가 바로 이 한 마디로 다 설명이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빨리 펴내서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을 담당할 모든 분들에게 책의 주요 내용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이에 관한 NMEC의 내용 두 가지를 인용하겠다.
“대부분의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는 좋은 자료가 부족했다든가 전문성 개발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든가와 같은 특정한 기술적 문제나 행정 지원 부족 등을 훨씬 넘어선다. 보다 근본적으로 표현하면, 교육 변화가 실패하는 이유의 일부는 계획자들이 가진 잘못된 가정 때문이고, 나머지는 큰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81쪽)
“문제가 발생하는 초기 단계 원인의 하나는 원하는 특정 변화를 실행에 옮기고야 말겠다는 개혁가의 집념 때문이다.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는 개혁가의 집념이 강할수록 변화의 절차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의 양은 흔히 반비례한다. 사실 특정 변화에 대한 강한 집념은 효과적인 변화의 프로세스 수립에 장애물이 될 수 있으며, 두 가지 요소(집념과 프로세스 수립)는 어떤 사회적 변화의 사례에서도 별개의 측면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은 교육 변화의 계획에 항상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는 길을 안내하기보다 길에 방해가 되기 쉽다.” (82쪽)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이 담고 있는 변화의 가설은 얼마나 믿을만 한가? 변화의 가설이란 “A를 바꾸면 B라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와 같은 행동이론(theory of action)을 말한다. 수학능력시험을 9단계 절대평가로 바꾸면 경쟁이 완화되고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과제가 담고 있는 가설이 얼마나 정확하고 믿을 만한 것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대 다른 정부들처럼 문재인 정부도 교육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교육의 변화 원리를 잘 모르면서 의지만 강한 것은 재앙으로 이어진다. 개혁가의 집념이 너무 강하면 반대목소리는 들리지 않으며 들으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우려되는 사항이다. 개혁 성공의 핵심원리의 하나는 반대쪽 목소리에서 배우고 이들을 변화에 동참시키는 것이 핵심인데도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의 성패는 반대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열고, 의미 공유(shared meaning)의 과정을 거쳐 이들을 변화에 동참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다.
4) 정치적 목적 우선
사람들은 교육의 중립성을 주장하지만 교육이 중립적으로 다뤄지는 곳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교육은 그 나라의 문화적 바탕 위에서 정치적으로 관리된다. 이런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뜻은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교육부의 행정 독점이 심하니 교육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대신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자는 것에는 교육부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순수한 뜻도 담겨 있지만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초중등 교육에 있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중 누가 더 많은 권력을 갖느냐에 대한 다툼과 긴장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도 있으며 지나치지만 않다면 이는 건강한 현상이다.
필자가 국가교육위원회 안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이것이 학교교육의 질 향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변화에 대한 무지와 변화 역량의 부족, 여건의 불비로 인해 어떤 정책을 펴도 대부분 실패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만일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옥상옥을 만든다면 이는 정치적 목적은 달성할지 몰라도 교육적 목적의 달성과는 거리가 멀다. 21세기 교육행정의 새로운 흐름은 중간리더십(leadership from the middle)의 도입이다. 이는 중앙정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지방정부-학교’란 행정체계는 유지하되 하향식과 상향식의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다. 풀란은 이런 점에 대해 놓치지 않고 NMEC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관료주의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학교교육에 변화를 도입하는 것의 정치적, 상징적 가치가 변화로 인한 교육적 혜택이나 변화의 실행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 결과 학구와 학교들이 관련 문화나 역할행동(role behavior: 특정 역할이 요구하는 행동이 무엇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할 계획 및 전략의 개발), 교수학습 개념의 변화보다는 내용, 목표, 기준, 구조 등의 피상적 변화를 도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큐반, 2013; 엘모어, 2014b).” (66쪽)
수능을 9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결정은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하려고 하는가? “수능을 9등급 절대평가로 바꾸면 ‘~’이란 긍정적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란 가설에서 ‘~’ 부분이 매우 불확실하다. 만약 공약을 지키기 위해 고교 내신은 현재의 상대평가 9등급으로 둔 채 이렇게 수능만의 전환을 결정한다면 이는 교육적 목적이라기보다는 공약의 이행이라는 정치적 행위에 더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5) 조급한 착수와 성과 기대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이유에 대한 연구나 분석을 살펴보면 그 원인으로 빠짐없이 ‘조급한 착수와 성과 기대’가 포함된다. 졸속 추진에 관한 한 한국은 세계 1위가 아닐까 싶다. 교육과정 전면 개정의 경우 주요국들은 10년을 잡는데 한국의 2015개정 교육과정은 왜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 안에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급하게 추진되었을까? 그 당시 이에 대해 의사결정자에게 물어보니 국회나 청와대에서는 “교육과정 개정에 뭐 그렇게 기간을 길게 잡느냐?”며 더 단축시킬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교육변화의 의미, 원리, 역동성을 모르는 정치인들은 그렇게 말할 법도 하다. 이들에게는 정권의 재창출이 최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조급한 착수와 성과 기대’에 관한 NMEC의 내용을 살펴보자.
“도입의 결정이 정치적 필요나 개발 시간은 확보하지 못한 채 단순히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점 때문에 이루어진다면 변화의 질은 떨어지고 필요한 자료나 기타 자원이 준비되지 않을 수 있다. 달리 표현해서, 실행은 그 다음 문제이고 우선 도입부터 하고보자는 인식이 지배하게 되면, 적합한 자료를 만들어낼 후속 조치나 준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야심찬 프로젝트는 거의 항상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추진된다. 그 결과 도입의 결정과 실제 시작 단계 사이의 기간이 너무 짧아 변화의 질에 충분히 신경을 쓸 수 없게 된다. (73쪽)
“교육자들은 흔히 변화의 함의가 무엇인지 충분히 생각해보지도 않고 급하게 새로운 구조적 변화와 전략을 채택한다고 한다. 한 지역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사람들은 바로 실행에 돌입한다. 카네기 재단의 「전환점(Turning Points)」이란 연구 보고서의 내용이 좋다고 이를 도입하기 위해 바로 팀을 구성하는 식이다.’ 우리가 팀을 구성하는 이유는 뭘까? 팀의 목적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면 ‘글쎄 그냥 팀을 구성하고 있어요.’라는 식의 반응이다. (25쪽)
“지난 이십 년간 교육개혁의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성공적인 사례로 보이는 경우도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필자는 부진한 학교 또는 학구의 정상화에 걸리는 기간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제3판에서 언급했듯이 초등학교의 정상화는 3년, 고등학교는 6년, 학구는 (규모에 따라 다르다) 8년(Fullan, 2001)이 걸린다. 6년 후(2007)에 출간한 제4판에서는, 가장 최신 지식에 따라 이 속도를 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8년이 지난 오늘날은 주 또는 국가 전체의 실질적인 발전이 5년에서 7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17쪽)
‘조급한 착수와 성과 기대’는 졸속 개혁의 대표적 특징의 하나이다. 위 인용문에 의하면 변화를 위한 지식과 제도라는 인프라가 선진국인 캐나다조차도 주 수준의 개혁에 소요되는 시간이 5~7년이라면 한국은 이보다 더 걸릴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100대 과제 중 7개에 달하는 교육 공약을 임기 내 다 실행하겠다면 이는 과욕이다. 개혁의 프로세스를 제대로 갖추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탄탄한 기초연구 위에 각 단계별로 자체 평가하면서 추진해야 교육개혁의 실패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6) 구조적 변화에 초점을 맞춤
교육개혁은 궁극적으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할 수 있다. 즉, 구조의 변화로는 성공하더라도 학생의 학습, 성장에 있어 원하는 수준과 질을 이루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대부분의 개혁은 구조의 변화에 그치고 만다. 미국의 주공통핵심성취기준(CCSS) 도입이 대표적인 예다. 성취기준도 훌륭했고, 평가도 질 높게 개발했다. 하지만 이런 성취기준과 평가에 연계해 교수 역량 개발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풀란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고 그의 예상은 사실로 드러났다.
미국의 차세대 과학 교육과정을 모델로 삼은 2015개정 교육과정은 어떤가? 2015개정 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이 역량의 강조인데 역량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가 매우 미흡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평가도 개발하지 못했고, 일부 과목에 대해 예시 정도를 개발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개정된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새로운 교수 역량을 개발하는 것은 너무나 먼 얘기고 매우 큰 숙제다. 미국은 교육과정 개정과 이를 반영한 평가를 동시에 개발했다. 그것도 2가지나 된다. 한국도 앞으로는 교육과정 개정 절차가 정상적이어야 한다. 내년이면 2015개정 교육과정이 단계적으로 도입되는데 역량 평가에 대한 준비가 이렇게 안 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한국의 교육개혁도 실질적인 교육의 질 개선보다는 구조적 변화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수능, 대입전형 그리고 교육과정 개정이 대표적인 영역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할 예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도 실제 실행에 옮겨진다면 구조의 변화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매우 높다. NMEC의 관련 내용을 소개하겠다.
“정부는 항상 실행이 아닌 ‘도입’에 치중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계획 실행의 기간은 거의 대부분 다음 선거까지의 기간보다 짧다. 이러한 현상 뒤에는 구조적인 변화의 도입이 관계, 역량, 동기 부여 등 문화적인 변화를 꾀하는 작업보다 쉽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엘모어(Elmore, 2000)는 대부분의 정책(바우처, 차터, 현장 기반의 관리)이 ‘내용이나 질적인 측면에 시사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전형적인 구조적 변화’라고 말한다.” (196쪽)
“범교과적 학습을 중시하는 교육과정은 또 어떠한가. ‘범교과적 교육과정을 도입하자.’ 왜 이것을 도입해야 하는가? 목적은 무엇인가? 범교과적 교육과정 도입을 우리는 어떠한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누군가가 질문을 통해 이러한 대화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런 논의를 하지 않는다. 질문하는 접근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단순히 ‘이런 수업이 중학교 과정에 좋은 방법이다’라고 하면 변화의 과정이나 달성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채 모두 뛰어드는 것이다. 구조만 바꾸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5쪽)
교육개혁이 구조적 변화에 그치는 것을 누가 원하겠는가? 실질적인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없어서도 아니다. 변화의 원리에 대한 이해와 성공적 경험이 부족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을 뿐이다. 교육개혁이 구조적 변화와 함께 실질적 교육의 질 향상을 이뤄내려면 몇 가지 핵심 성공요인이 있고 이 요인들이 함께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풀란은 ‘시스템 전체가 움직이게 하기(Making All Systems Go)’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속 칼럼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7) 민원 처리식(reactive), 분절적(fragmented) 접근
선거 공약을 통한 교육개혁의 문제점과 한계는 분명하다. 유권자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식이기 때문에 교육개혁의 내용이 민원처리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도 전형적인 민원처리 성격이 강하다. 교육개혁이란 작은 것 하나를 빼고 더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땜질 식 처방으로는 근본적인 개혁을 이룰 수 없다. 분절적 접근은 ‘시스템 전반에 걸친 개혁’(system-wide reform)이란 변화 원칙에 정면 위배된다. 변화에 성공하려면 특정 변화와 연관된 요소들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공약에 들어있는 ‘수능 절대평가 전환’, ‘고교 학점제 도입’ 등이 전형적인 민원처리식, 분절적 접근이다. 예로,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내신 평가, 대입전형 그리고 교육과정 운영 등과 함께 생각해야 했으며, 고교 학점제는 내신 평가, 대입전형, 교사양성 등과 함께 다루었어야 했다. 이와 관련된 NMEC의 내용을 보자.
“바로 이러한 이유로 시스템 전반에 걸친 지속가능한 개혁을 위해서는 다음의 3수준 개혁에 주목하는 것이다. 지역 학교와 공동체 수준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개혁을 1수준, 학구 수준에서의 개혁을 2수준, 주 또는 국가 수준에서의 개혁을 3수준(Barber & Fullan, 2005; Fullan, 2005)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을 시스템 전반의 변화(system-wide change)라 부르며, 많은 진전을 이루고 있다(Fullan, 2010a, 2013a).” (18쪽)
“처음부터 어떤 형태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거나 또 일어난다 하더라도 유지되지 않는 이유는 인프라가 취약하거나 도움이 되지 않거나 목적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프라는 변화의 초점이 되고 있는 단위가 무엇이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상위 단위들을 말한다.” (18쪽)
교육개혁에 있어 민원처리식, 분절적 접근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스템 전반에 걸친 개혁 방법을 택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속 칼럼에서 자세히 소개하겠다.
8) 하향식, 획일적 개혁
오늘날 한국 학교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교사 중심의 획일적 교육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동은 각기 다양한데 배우는 내용, 배우는 속도, 배우는 방법, 평가 방법이 모두 붕어빵처럼 획일적이다. 또한 아동들의 재능과 강점은 다 다른데 인지적 성장에만 매달린다. 정서적, 윤리적, 신체적 성장은 늘 소홀히 다뤄진다. 이는 교육의 표준화와 관련이 깊다. 문제는 이에 대해 교육당국은 물론이고 사회가 무관심하거나 눈감고 있다는 점이다. 잠자는 아이가 없어지고 학교폭력이 줄어들려면 모든 아이의 강점과 잠재력을 존중하고 키워주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의 획일성은 교육행정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상황이 다 다른데 한국의 교육개혁은 대부분 한날한시에 전국의 모든 학교에 획일적으로 적용된다.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이 거의 다 획일적이다. 미국처럼 어떤 정책이 맞지 않으면 주별로 시행을 2~3년 늦춰 주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획일성은 한국의 학교교육이 실패하는 핵심 원인의 하나이다. 이에 대해 NMEC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하겠다.
“개별 상황의 고유한 특수성이 변화의 프로세스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한 상황에서는 작동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54쪽)
“정책 입안자들과 행정가들이 동원하는 변화의 여건과 전략은 득이 되기보다는 방해 요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학적으로 말한다면, 현재와 같은 여건에서는 오직 소수의 교사들만이 동기를 가지고 효과적인 변화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명백한 전략도 소용이 없는 듯하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 노력 역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낭비로 끝난 경우가 더욱 많았다.” (12쪽)
“학생을 변화 프로세스의 참여자로 즉 변화 주체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필자가 8장에서 설명했듯이, 학생의 이런 수동적인 역할은 변하기 시작하고 있지만, 근래 들어서야 그 변화가 시작되었다. 교육계에서는 이 변화를 위해 하향식으로 강제하는 접근과 상향식으로 자발성을 기반으로 이끌어 내는 접근, 이 두 가지를 절충한 방식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런 작동 원리는 매우 강력해서 개선의 잠재력이 매우 높다.” (16쪽)
“위로부터의 하향식 변화 추진은 교사의 소진(burnout)만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Fullan, 2004)
“무엇이 문제인가를 결정할 때 이것이 매일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 교사들의 입장이 아니라 정책 결정자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이 문제다. ” (Fullan, 2004)
획일성을 줄이는데 있어 교수학습 차원에서는 개별화 지도가, 행정차원에서는 교육자치가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분권화와 학교자치를 어떤 수준까지 진전시킬지 자못 궁금하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기본적인 준비조차 안 된 자치의 확대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는 철없는 아이에게 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자율이란 국가 교육이 지향하는 사명, 핵심가치, 비전, 기본원칙 등이 잘 갖추어지고 이것이 내재화되어 있을 때 줄 수 있다. 준비가 된 만큼 자치를 넓혀 가는 것이 옳다.
9) 표준화 시험 결과에 의한 책무성 관리
‘교육의 표준화’란 모든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도달해야 할 교육의 목표와 교과목별 성취기준을 교육과정이란 형식으로 국가가 사전에 만들어 제시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의 표준화는 모든 학생들을 최소한의 성취 목표(=표준)에 도달시키자는 매우 좋은 의미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다르게 발전했다. 한국이 교육의 표준화 취지를 살리려면 모든 학생들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명 일제고사)의 보통학력(=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수준의 50%)에 책임지고 도달시켜야 한다. 주요 선진국은 지속적인 형성평가를 통해 이에 도달시키려고 진지하게 노력을 한다. 유급제도도 있고, 졸업이 불가능해 스스로 학교를 포기하는 비율도 20%를 넘는다. 한국은 출석률만 갖추면 상급학년으로 진급시키고 졸업장을 준다. 매우 무책임한 교육이다. 풀란이 말한 도덕적 교육목표는 안중에도 없다. 기껏 정부가 한다는 것이 표준화 시험 성적으로 강력하게 책무성 관리를 한다. 책무성(accountability)이란 국가가 설정한 성취목표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만약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도달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라고 각 학교에 다그치는 것을 말한다. 책무성 관리를 표준화 시험의 결과 즉 성적으로 하기 때문에 학교는 시험성적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하게 되었다.
이제 교육생태계가 크게 변하고 있다. 배우는 공간도 변하고 문제 해결형 수업의 비중도 높아져 갈 것이고 그에 따라 질적 평가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지필고사의 결과로 책무성을 관리하는 것은 부적합한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책무성 관리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조차 언급하는 글이나 목소리가 없다. 심각한 문제다. 학자들의 역할, 국책기관의 역할이 아쉽다. 책무성에 관해 NMEC에 나오는 일부 내용을 소개하겠다.
“책무성에 대한 초점은 교육자들이 효과적인 지도 역량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책무성 관리를 통해 교육을 이끄는 접근은 시스템 개혁은커녕 책무성을 얻는 최선의 방법도 아니다. 시스템 전체의 개혁이 일어나려면 변화의 주도자들이 교육자 대다수의 동기부여와 역량 구축에 신경을 써야 한다. 책무성에 관한 당근과 채찍과 같은 조치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지도, 달성할 수도 없다.” (44쪽)
“켄터키와 버몬트 주 교육부(SDE)의 역할에 관한 사례 연구를 진행한 루시(Lusi, 1997)는 책무성 주도의 전략 자체로는 결코 교육 변화에 성공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 이유를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거리상으로도 가깝지 않은 대다수 실행자들의 대규모 관행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략) 여하간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혹독한 책무성 조치는 성공에 필요한 신념이나 행동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196쪽)
새로운 책무성에 대해서도 풀란은 단연 세계적 전문가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속 칼럼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10) 변화 역량의 부족
지난 칼럼 245호 및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과제와 전망’이라는 흥사단 본부 발표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 문제점 분석과 새로운 대안 제시’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은 대부분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면서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실패하게 될 이유로는 풀란이 말하는 ‘도덕적 교육목표의 결여’, ‘의미의 공유과정의 부재와 부실’ 외에 변화를 이뤄내는 데 필요한 ‘역량의 부족’을 들었다. 이때의 역량이란 변화의 의미, 원리, 기술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갖춘 사람과 리더십, 교사의 수업 개선 전문성 등을 다 포괄한다. 투입할 시간과 자원도 역량에 포함될 수 있다. 한국의 교육정책은 늘 그러했듯이 의지만 강하고 역량과 여건을 갖추는 일에는 늘 소홀했다. 그래서 모든 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관련해서 NMEC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실상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이었다. 엘모어(1995)는 이런 변화 모델이 결여하고 있는 것을 아래와 같이 분석했다. 혁신에 대한 엄청난 압력과 인센티브로 인해 많은 학교들은 개혁을 수용했다. 하지만 개인이나 조직 모두 이런 개혁을 감당할 역량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표면적인 수준의 개혁은 이루어졌지만 현장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구조만 일부 바뀌었을 뿐 교사들의 교수법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7쪽)
“실천적 행동을 기반으로 한 또 다른 강력한 지침은 역량 구축이다. 변화를 위한 초기 개선 노력을 할 때 역량 구축에 먼저 힘을 쓰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그 이유는 사람들이 개선 방법을 모르거나 또는 개선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아서라고 가정하라. 이 단계에서는 평가란 것이 좋은 동기부여의 요인이 될 수 없고 공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평가가 공정하게 받아들여지는 위치가 되었을 때 나중에 평가해도 된다).” (50쪽)
“효과적인 변화 작업은 좋은 아이디어를 형성, 재형성해나가며, 동시에 참여자들의 역량과 주인의식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아이디어와 역량, 주인의식의 구축이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변화는 실패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두 가지 요소를 잘 다룰 수 있을 때, 변화의 성공 확률은 극적으로 높아진다.” (41쪽)
“요약하면, 개인적인 보상이나 유인책만으로는 집단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없다. 목표에 보다 빨리 도달하고 싶다면, 역량 구축에 투자하고 집단적으로 그 목표에 도달하도록 해야 한다.” (45쪽)
교육개혁의 주요 전략의 하나로 ‘역량 구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학교 변화는 교장과 교사들의 역량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등사고력을 키워주는 일도 교사의 관련 전문성이 갖추어졌을 때만 가능하다. 『학교교육 제4의 길(The Fourth Way)』(2014)란 책에 보면 세계 주요국들의 성공 사례와 성공 원리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중 하나가 낙후 지역의 교육을 혁신하고자 할 때 돈이나 서비스를 더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지역의 역량을 키워 스스로 살아가고 혁신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지역사회 개혁가를 키우고 지역의 자원을 나누는 방식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관점의 전환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아동수당, 청년수당 등 무엇인가를 더 제공하는 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역량의 향상을 통해 지역이나 학교들이 자치를 통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11) 질 낮은 교사-학생 관계
풀란은 변화의 성공을 위해 ‘도덕적 교육목적’(moral purpose)(☞ 칼럼 256)이 제1의 요소라면, ‘관계의 개선’은 제2 요소라고 말한다. 이것 없이는 도덕적 교육목표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 개선이 중요하지만 이를 이루는 일은 매우 어렵다. 필자가 교원 연수를 할 때 학교가 학생들에 대해 좀 더 민주적이고, 덜 권위적이고, 덜 차별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면 이런 말에 불편해하는 교장, 교사들이 적지 않다. 과거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 필자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점에 있어서 학생의 인식과 평가가 교원의 인식과 평가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누구의 인식과 평가를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 학생의 인식과 평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NMEC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하겠다.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제기하는 가장 큰 불만은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신경쓰지 않는다.’란 점이다.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서 배제된 느낌, 자신들을 가르치려는 교사들로부터 분리된 느낌, 혼란스럽고 적대적인 세상에서 표류하는 느낌을 겪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대부분의 교사는 아주 열심히 가르치고 있으며 학생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교사들은 신경을 쓰지만, 학생들이 충분히 관심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교사와의 유대관계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딩스 Noddings, 2005 재인용).” (140쪽)
▶ 학생이 인식하는 교사와의 관계
“•교사를 학생들에게 전반적으로 불공평하게 대하는 이로 인식하며, 특별히 자신에게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교사가 자신에게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부정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신뢰할 수 있는 교사가 있다면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상당 부분 교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Rudduck, Chaplain, Wallace, 1996 재인용) (141쪽)
“소속감은 좋든(끌어들이는 경우) 나쁘든(겉돌게 되는 경우) 강력한 변인이 된다. 콰글리아와 코르소는 소속감을 두고 ‘본인의 고유함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지내는 것,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해주는 이가 있는 것, 개인의 노력과 인내, 좋은 시민의식, 재능을 알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학교에서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라는 문항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학생들은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8배 높았고 교실에서 질문하는데 편안함을 느낀다고 답할 확률은 4배, 더 좋은 학업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답할 확률이 3배 높았다(Quaglia & Corso, 2014, 2014 재인용).” (144쪽)
“첨언한다면 앞서 얘기한 바대로 온타리오 주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900여 곳의 고등학교 졸업율을 68%에서 84%로 향상시켰다. (나의) 포부, (나의) 학습, (나의) 소속감이라는 3가지 ‘나의(MY)’를 바꾸어 일어난 일이었다. 쿼글리아와 코르소는 또한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신다’라고 답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미래를 준비시켜준다고 믿을 확률이 5배, 스스로를 독려하며 열심히 공부할 확률이 3배 더 높은 사실을 발견했다. ‘나의 학습’의 경우, ‘선생님 덕분에 학교란 즐겁게 배우는 곳’이라고 답한 이들이 수업 참여를 즐긴다고 답할 확률이 7배 높았고, 창의적이 되도록 교사의 독려를 받는다고 답할 확률도 7배,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교사가 도와준다고 답할 확률이 7배 높았다(Quaglia & Corso, 2014 재인용).” (144쪽)
12) 미래 사회변화에 적응 못함
학교교육의 실패는 교육의 목적과 실행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학교교육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실패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학교가 개인의 사적 욕망의 실현을 돕는 것에 너무 치중하고 있다. 다시 말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과 능력,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하고 헌신하려는 마음을 키우는 교육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후자 점점 더 많은 직업이 자동화되어 가는 시대에 예상되는 실업에 대비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자와 관련해 NMEC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좁은 기술을 측정하던 시대는 거의 지나갔다. OECD가 최근 초점을 두고 있는 부분을 인용하면, ‘글로벌 역량’(6Cs, 사회감수성 개발, 웰빙, 기업가적 역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PISA 연구진은 15년 간 대규모 표본의 1학년(6세) 학생들의 발전을 살펴보는 프로젝트 2030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 개발 방식과 상태를 조사하는 프로젝트이다(OECD, 2015). 이 프로젝트는 ‘아동들에게 단순히 교과 내용을 가르치는 것에서,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의 나아갈 길을 안내할 나침반과 같이 길을 찾는 기술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OECD, 2015).” (245쪽)
“새로운 기계의 시대에 가치 있는 지식 근로자로 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우리의 조언은 단순하다. 3Rs보다 상상력의 발휘(ideation)와 큰 틀의 패턴 인식, 복잡한 소통 기술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Brynjolfsson & McAfee, 2014).” (245쪽)
3. 맺음말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이유는 매우 많다. 하지만 여기서는 풀란이 NMEC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 중심으로 아래의 12가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1) 교육개혁에 대한 이해 부족, 2) 교육 변화의 역동성(dynamics)에 대한 이해 부족, 3) 개혁가의 잘못된 가정과 강한 집념, 4) 정치적 목적 우선, 5) 조급한 착수와 성과 기대, 6) 구조적 변화에 초점을 맞춤, 7) 민원 처리식(reactive), 분절적(fragmented) 접근, 8) 하향식, 획일적 개혁, 9) 표준화 시험 결과에 의한 책무성 관리, 10) 변화 역량의 부족, 11) 질 낮은 교사-학생 관계, 12) 미래 사회변화에 적응 못함
이상의 12가지 이유를 한 마디로 줄이면 ‘교육개혁에 대한 이해 부족 및 변화 원리에 대한 무지’가 될 것이다. 이중 특별히 유념해야 할 내용은 1), 2), 3), 5), 7), 10)이라고 생각된다. 교육개혁이 무엇인지 이해도 부족한 상태에서 변화의 역량도 갖추지 못한 채 민원 처리식으로 또 분절적으로 조급히 교육개혁에 착수하고 성급히 성과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바로 교육개혁을 실패로 몰고 가는 지름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상의 12가지 내용을 잘 살펴서 모두에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