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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숙의민주주의의 두 모델, 공론조사와 시민의회

#304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2017.08.02

최근 들어 공론조사 방식이 뜨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6월 27일 신고리 핵발전소 5,6호 공사중단 여부를 공론조사 방식으로 결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이미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공론화조사위원회가 구성돼 몇 차례 회의가 열렸다. 회의 결과 당초 발표와 달리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진 않기로 결정했다. 시민배심원단이란 표현이 재판배심원단이 그렇듯이 사안에 대해 법적 결정 권한을 가진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신고리 5,6호 핵발전소 건설 중단 결정권은 어디까지나 정부가 갖는다. 문재인 정부는 다만 시민숙의기구의 과반수 의견에 따라서 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염두에 둔 시민숙의기구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전문가 집단이나 직접 이해관계자 집단이 아닌 일반시민으로 구성된다. 전문가는 시민숙의기구의 학습과 토론을 지원하고 보조할 뿐 시민숙의기구의 구성원은 아니다. 둘째, 시민숙의기구의 구성원들은 쟁점 사안에 대해 일련의 학습과 토론 등 숙의과정을 거쳐서 표결로 의사결정을 한다.

 

공론조사단과 시민의회는 비전문가형 시민숙의기구의 대표 격이다. 특정 주제에 대해 일반시민의 숙고된 의견 지형을 알아보려면 공론조사단이나 시민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면 된다. 공론조사방식이나 시민의회방식에 의한 공적 의사결정은 첫째, 단순한 여론조사에 맡기기에는 너무 복잡한 사안, 둘째, 전문가한테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사안, 셋째, 전문가의 의견이 분분한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사안에서 특히 유용하다.

 

공론조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문제사안에 대해 상당한 규모의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이번 신고리 5,6호사안의 경우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전국적으로 무작위 추출된 2만 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초대형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조사대상이 아무리 많아도 조사결과의 유용성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특별한 학습이나 토론 등 숙의과정 없이 즉각적으로 응답한다는 사실이 바뀌진 않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공론조사는 집단적 숙의과정과 개인적 숙고과정이 확보된 특별한 여론조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고리 5,6호 사안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단 의견이 45%, 건설 의견이 55% 나왔다고 가정하자. 여론조사가 끝나면 시민숙의기구를 구성하는 2단계로 넘어간다. 신고리 5,6호 사안의 경우 시민숙의기구를 350명 규모로 구성하고 공론조사단으로 이름 붙일 예정이다. 공론조사단을 구성할 때 최소한 두 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 첫째, 350명은 여론조사에 참여한 2만 명 가운데 자원 의사가 확인된 사람들을 모집단으로 삼아 최대한 인구학적 대표성을 갖도록 추첨과 조정으로 구성한다. 둘째, 350명 중 55%는 건설 의견, 45%는 중단 의견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공론조사단의 최초 찬반비율이 여론조사집단의 찬반비율과 같도록 구성해야 한다.

 

공론조사단을 구성하고 나면 이제 3단계 숙의과정이 기다린다. 먼저 일군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입장과 대안에 대해 균형 있는 학습자료와 쟁점과 대안리스트 등을 작성해서 공론조사단에게 제공한다. 공론조사단원들은 사전에 이 학습자료 등을 공부한다. 공식회의가 시작하면 전문가들이 간단하게 발제하고 질의에 답한다. 공론조사단원은 10명씩 35개 원탁에 둘러앉아 조별 내부토론을 진행한다. 이어서 전문가들이 전체를 대상으로 질의응답을 받고 전체토론을 진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인적인 숙고과정과 동료시민들과 숙의과정을 거친다.

 

문제의 사안에 대해 집중적인 개인학습과 집단토론, 개인숙고와 집단숙의를 거치면서 처음 여론조사 때와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충분히 논의가 무르익었을 때 표결에 붙인다. 표결결과 중단 55%, 건설 45%가 나왔다고 가정하면 막연하게 또는 확고하게 건설 계속 의견을 가졌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건설 중단 의견으로 갈아탔다는 뜻이다. 당연히 그 이유를 기록하고 분석한다. 여기에 공론조사형 숙의민주주의의 매력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방식의 숙의형 공론조사로 형성된 과반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공론조사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숙의민주주의의 또 다른 수단이 시민의회다. 시민의회는 일반적으로 선출의회가 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시민‘의회’이지만 선거로 뽑힌 시민대표가 아니라 추첨으로 뽑힌 일반시민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시민’의회다. 사안의 성격상 의회가 결정하기에 부적절한 사안들이 있다. 의원보수 책정, 의원징계, 선거구획정, 선거법개정 등이 좋은 예다. 한마디로, 팔이 안으로 굽는 이해상충 사안에서는 현역 의원이 자기대리를 하지 못하도록 시민의회에 결정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거제도 개편과 권력구조 개헌도 이런 이해상충 사안에 속한다.

 

추첨시민의회가 선출대표의회보다 숙의성이 더 높은 것은 아니다. 선출대표의회야말로 숙의성을 보장하는 최상의 형식과 절차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선출의회의 숙의성에 대한 현실적 제약요인은 대표성의 한계다. 선출의회는 특정 정당에 속한 명망가, 전문가, 엘리트 출신의 직업정치인으로 구성된다. 반면 추첨시민의회는 정당색과 당파성이 상대적으로 옅고 다양한 생업에 종사 중인 일반시민들로 구성된다. 당리당략에 휘둘리거나 엘리트 중심주의에 빠질 경우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일부 사안에서는 시민의회에 의한 결정이 더 민주주의에 부합한다.

 

시민의회 방식은 첫째, 대규모 여론조사를 먼저 시행하지 않고; 둘째, 여론조사의 의견 분포에 맞춰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먼저 살펴본 공론조사 방식과 다르다. 하지만 나머지 점에서는 같다. 시민의회도 최대한 인구학적 대표성을 갖도록 구성하고 전문가의 보좌를 받아 학습과 토론, 숙의과정을 진행한 후 주어진 사안에 대해 표결로 결정한다. 추첨시민의회는 일반시민을 통계학적, 인구학적으로 대표한다. 반면 선출대표의회는 정당의 매개를 받아 일반시민을 정치적으로 대표한다. 추첨시민의회에선 기권파도 정확하게 대표되지만 선출대표의회에선 기권파가 전혀 대표되지 않는다.

 

뻔히 국회와 정부가 있는데, 다시 말해서 대의제 기관들이 멀쩡히 돌아가는데, 복잡다단한 중요 사안을 비전문가 시민숙의기구에 맡기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이 거세다. 물론 아무 사안이나 시민숙의기구에 맡겨서는 안 된다. 사안의 속성상 또는 현실 정치적인 이유로 의회나 정부, 여론조사를 신뢰하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만 시민숙의기구를 구성해서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 공론조사단이나 시민의회는 특별검사제와 마찬가지로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교정, 보완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나는 선거제도 개편과 (권력구조)개헌은 20대 국회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1차적으로 시민의회를 구성하여 맡기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선거제도 개편은 두 가지 이유로 그렇다. 첫째, 선거제도 개편은 전형적으로 현직 국회의원의 자기대리 사안이다. 당연히 ‘현직’ 국회의원의 이해관계가 과잉 대표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19대 국회는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대신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방식으로 정치 발전에 역주행 했다. 지역구를 줄이면 선거구 조정으로 재선에 지장 받는 현역 국회의원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둘째, 선거제도 개편과 선거법 개정은 원내교섭단체들의 합의로 이뤄져온 전통이 있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바람직한 선거제도 개편도 국회교섭단체 중 하나만 반대하면 이뤄지지 못한다. 금년 2월 자유당의 막무가내 반대로 선거연령의 18세 인하가 벽에 막힌 것이 좋은 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도 현재의 4당 교섭단체 체제에서는 한 당만 반대해도 도입하는 게 불가능하다. 주요 정당의 기득권을 국민의 공익보다 앞세워온 정치권의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표자를 어떻게 뽑을지를 대표자가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거제도 개편=선거법 개정은 사안의 성격상 주권자의 일이다. 선거제도 개편을 대표자로 구성된 국회의 일로 보는 순간 현역 의원의 자기대리에서 비롯되는 이해상충 문제가 불가피하고 교섭단체에게 비토권을 부여해온 현상유지 관행이 불가피하다. 선거제도 개편만큼은 선출의회가 아니라 추첨의회에 맡겨야 하는 이유다.

 

개헌 논의도 20대 국회보다는 시민의회에 맡기는 편이 바람직하다. 권력구조 개헌은 물론이고 기본권 개헌과 경제질서 개헌도 다르지 않다. 권력구조 개헌은 대통령과 의회, 사법부 사이의 수평적 권력구조 및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수직적 권력구조를 문제 삼는다. 권력구조 개헌과정을 20대 국회가 독점하는 이상 국회의 조직적 이해관계와 현역 의원의 집단적 이해관계가 과잉 대표될 수밖에 없다.

 

수평적 권력구조 개헌에서는 대통령제 정부 형태보다 의회를 중심에 두는 의회제 정부 형태(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장차관 자리를 국회의원이 차지하는 내각책임제에 대한 선호도는 다선 국회의원일수록 높을 수밖에 없다. 수직적 권력구조 개헌에서도 지자체의 입법권과 재정권, 위상을 최소한만 강화하고 국회의 입법권과 재정권, 위상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권력구조 개헌에서 드러나는 국회의 편향성이 자기대리에서 비롯되는 문제라면 기본권 개헌과 경제질서 개헌에서 드러나는 국회의 편향성은 국회의원의 중상위층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엘리트, 전문가 출신으로 중상위층의 삶을 산다. 사회경제적 약자나 정치문화적 소수자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국회에서 과소 대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요컨대, 개헌 논의를 지금처럼 국회개헌특위가 주도하고 독점할 경우 개헌 내용이 국회(의원) 중심과 중상위층 중심에서 맴돌기 쉽다.

 

20대 국회는 개헌추진에 대한 특별한 자격이나 위임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개헌을 공약하지 않았으므로 20대 국회는 개헌에 관해 국민의 위임을 받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20대 국회의 개헌논의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앞장서고 있다. 작년 7월 정치권의 개헌파들이 염두에 둔 건 내각책임제/이원집정부제 개헌이었다. 국민들은 개헌론의 배후에서 국회 중진의원들의 권력 연장 및 분점 욕심을 읽어내고 대선전 개헌론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촛불시민혁명을 거치면서 개헌 추진에 새로운 역사적 의미와 추동세력이 보태졌다. 이제 개헌은 촛불시민혁명의 제도적 표현과 완성으로서 요구되며 반드시 국민 참여/시민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과 지방자치분권 개헌에 적극성을 보이며 개헌 국민투표 일자를 내년 지방선거일로 못 박은 점도 새로운 개헌동력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개헌 열차가 제각기 속도를 내는 형국이다.

 

촛불 개헌의 추동 주체는 20대 국회가 아니라 촛불시민이다. 20대 국회는 박근혜를 탄핵 소추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촛불 개헌의 적임자는 아니다. 무엇보다 20대 국회의 의석 분포는 촛불시민혁명과 조기정권교체 이후의 민심 변화를 조금도 반영하지 못한다. 지금 당장 총선을 실시한다면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지금의 여소야대 국회가 여대야소 국회로 재편될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자유한국당이 개헌 저지선을 넘는 107석을 갖고 뭐든지 막아낼 수 있다. 20대 국회가 주도하는 개헌이 촛불정신과 동떨어진 최저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요컨대, 20대 국회는 촛불시민혁명이라는 새 술을 담을만한 새 부대가 못 된다. 이런 사실과 논거를 인정한다면 20대 국회, 특히, 과잉 대표된 야당은 국민 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당장 개헌특위의 개헌논의 독점을 중단하고 시민의회 방식에 의한 개헌안 마련을 천명하여야 한다. 개헌 논의에 앞서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할 시민의회도 구성해야 한다. 20대 국회 대신 시민의회가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 과정을 주도할 경우 촛불혁명정신에 충실한 선거제도 개편안과 개헌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당장 시민의회부터 헌법사항이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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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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