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은 왜 실패하는가?(2)- 낡은 인프라와 졸속 접근
1. 시작말
• 질문자: “현재의 수능 9등급 상대평가를 9등급 절대평가로 바꾸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성적 경쟁의 강도가 줄고 학교교육의 질이 개선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 아인슈타인: “그것은 대표적인 미친 짓입니다.”
• 마이클 풀란: “관련 시스템 전반을 함께 개선해야 합니다.”
이상은 아인슈타인(살아있다고 가정하고)과 교육개혁의 세계적 대가인 마이클 풀란 박사에게 한국의 수능 평가 관련 가상 인터뷰를 해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미친 짓(insanity)이란 과거와 똑같은 방식을 반복하면서 미래에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일”(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이란 말을 남겼다. 한편 마이클 풀란은 교육개혁은 개혁하고자 하는 문제와 관련된 핵심 단위 3~4개를 동시에 개선(system-wide reform)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며 컨설턴트이다. 위 가상 인터뷰는 수능의 9등급 절대평가 전환이 기대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란 뜻을 담고 있다.
지난 칼럼 “교육개혁은 왜 실패하는가?(1)”에서는 교육개혁을 실패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잘못된 진단, 잘못된 처방’을 소개했는데 수능의 9등급 절대평가 전환은 ‘잘못된 처방’이며 외고·자사고 폐지 추진은 ‘졸속 접근’의 대표적 예이다. 그 이유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다. 이번 칼럼에서는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요인으로 ‘낡은 인프라’와 ‘졸속 접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낡은 교육 인프라’
교육개혁을 실패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 중 하나는 ‘낡은 인프라’이다. 이는 위 가상 인터뷰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말과 관련이 깊다. 현재 한국의 학교시스템은 산업시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는 똑같은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할 필요가 있었던 때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정보와 지식도 귀했고 교사가 가장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의 교수법이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교육시스템에 머물러 있다. 시스템 전체가 다 낡았다. 대표적인 것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나이별 학년 구성과 표준화된 교육과정의 운영
한국의 학교교육은 나이별로 아동을 묶는(grouping) 학년제로 운영된다. 물론 세계 대부분의 학교들도 초등학교, 중학교 수준에서는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학년의 구성은 학생 간 차이가 커서 모든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시스템에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적용할 경우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히 고교 수준에서는 무학년제 실시와 탈표준화(post-standardization) 수준의 교육과정의 유연한 운영이 필요하다. 교육의 표준화는 표준화 시험 성적을 기반으로 한 책무성 관리와 맞물릴 때 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다. 교사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전문성 개발을 막을 뿐 아니라 표준화된 교육과정은 가르치는 내용, 방법, 수준 등을 획일화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은 흥미, 준비도, 능력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학포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탈표준화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다.
2) 교육과정의 과도한 학습량
21세기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시대라 할 만큼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식 습득 중심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많은 성취기준과 학습량이라면 교사는 진도를 나가기에 급급해서 지식의 습득도 어려운 상황이며 활용은 더욱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교육과정 학습량의 적정화를 비롯해서 지식의 습득보다는 핵심개념과 핵심원리를 깊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3) 중앙집권적 교육행정 구조
한국은 중앙정부가 교육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정도가 세계에서 가장 심한 나라에 속한다. 고교 수준에서도 배울 내용을 대부분 국가가 결정한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단위 학교나 교사에게 자율성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좀 심하게 말해 한국의 교사는 교과서 내용을 전하는 전달자이자 기술자이며 기능인에 가깝다. 아동에 맞는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가르친 대로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교사에게 사명감이 투철한 교육자가 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갖추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적정 수준의 학교자치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제 중앙에서 교육을 관리 통제하는 시대는 지났다. 각 학교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변화도 빠르다. 학교교육의 개선에 성공한 나라나 주들을 보면 공통점 중 하나가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와 운영을 뒷받침해준다는 점이다. 21세기 사회에 맞는 교육행정은 하향식과 상향식의 적절한 균형을 갖추는 것이 효과적이다(Fullan, 2016). 아울러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공통적인 내용과 양도 법으로 강제화하는 것은 최소화하고 학교와 교사에게 재량권을 지금보다 넓혀주어야 한다.
교육부는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교사의 전문성 신장의 최대 장애요인이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인 교육과정 운영이란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4) ‘평가’란 꼬리가 ‘교육과정’이란 몸통을 통제하는 구조
한국 초중고의 경우 실제적인 교육과정은 교과서와 평가다. 교과서 내용을 중심으로 배우고 수업은 평가를 위해 존재하는 상황이다. ‘교육의 목적 = 시험 성적 향상’인 것이다. 이런 낡은 인식과 구조 속에서는 어떤 교육개혁도 기대하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이런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고 교실 수업에서의 평가는 ‘학습과 성장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growth)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5) 표준화 시험 성적에 의한 책무성 관리
한국을 포함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교육의 질 관리를 위해서 국가수준의 표준화된 교육과정과 평가제도를 만들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책무성을 관리한다. 이로 인해 학교교육의 모든 활동은 시험을 중심에 두게 된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어떤 선의의 교육개혁(예: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시도하더라도 기대하는 성과를 얻기는 어렵다. 교육의 탈표준화와 새로운 책무성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할 때다.
6) 내신 상대평가 제도와 NEIS 체제
대입전형에서 대세가 되고 있는 수시전형은 고교 과정의 내신 평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학교교육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계층 상승이다. 학벌을 중요시하고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한 한국의 경우 상위 5%에 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상대평가는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고교 과정의 경우, 교육적 관점서 보면 절대평가를 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면 상대평가의 필요성이 크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쉽지 않다. 이는 내신 부풀리기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대부분의 개인들에게는 계층 상승이나 좋은 일자리가 교육과정의 학습보다 우선일 것이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의 어려움도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사회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와 이해당사자들 간의 대타협이 필요하다.
한편 현재의 학생부 기록 방식도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NEIS 체제는 교육을 표준화하는 대표적인 기제의 하나다. 수시전형의 비중이 지금처럼 높으면 학교수업은 NEIS 기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NEIS 기록의 내용이나 원칙에 있어서 전국 공통은 최소화하고 각 단위학교가 창의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내신 상대평가(고교)와 NEIS 체제를 이대로 유지한다면 시험과 점수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을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7) 가정과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십이 약한 구조
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가정과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학교의 해결 역량을 넘어서는 것들이 많다. 교육과 관련된다고 모든 책임을 학교와 교사에게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교육의 책임을 학교,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가 나누어져야 한다. 그래서 가정과 지역사회가 학교교육의 좋은 파트너가 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가 먼저 개방성, 투명성을 높이며 가정과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들과 학부모들 간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민원 제기자와 방어자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관계 속에서는 가정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핀란드 교육탐방을 갔을 때 어떤 종합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교사란 가르치는 사람이기 전에 ‘가정과 소통하며 가정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란 말씀을 했는데 크게 공감이 갔다.
8) 대학이 성적으로 줄 세워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잘못된 믿음
한국 대입전형의 특징은 지금까지 성적 중심의 선발이었다. 수시전형에서는 내신 성적이 중요하고 정시전형에서는 수능 점수가 결정적이다. 문제는 학생을 0.1점 단위로 줄 세워 뽑는다는 점이다. 과연 수능 점수 몇 점 차이가 더 우수한 인재를 분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당연히 될 수 없다. 인지적 학습능력만 뛰어나고 지덕체가 고르게 발달되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부모의 경제력과 노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 성적으로 줄 세워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은 정의롭고 공정한가? 그렇지 않다. 수능과 내신 모두 5단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동점자는 추첨으로 선발하자는 제안은 바로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더 강하게 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전형의 폐해는 극에 달하지 않았는가? NEIS 기록을 둘러싼 각종의 부정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교육을 입시준비 기관으로 만들었고 아동의 건강과 삶의 질을 세계 최하위로 떨어뜨린 데에 대한 상당 부분의 책임은 대입시에 있다. 또한 대입시 성적의 상당 부분은 부모의 경제력과 지원이 만들어낸 것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이렇게 만들어진 성적으로 줄 세워 성적 우수 학생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은 한국을 점점 더 계급사회로 몰아가는 일이다.
대학들이 사회적 책임 의식을 제대로 회복해서 경쟁의 강도를 크게 낮출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사교육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 세계 최하의 출산율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대입전형의 기조를 계속 유지한다면 어떤 교육 개혁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9) 현재의 교원 선발, 평가, 승진, 전보 제도
지금과 같이 교원을 시험으로 선발할 경우, 인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을 교사로 뽑을 수는 있지만 가슴이 따뜻하고 특히 공부에 힘들어하는 아동을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교사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교원을 선발하는 것에서 양성하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또한 교원평가 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오래전부터 확인된 바 있다. 이는 교원들 간의 협력을 방해한다. 교원평가와 승진제도 역시 아동의 지도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많은 교사들은 이것만 제대로 개선해도 학교교육의 효과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교원 전보제도는 주인 없는 학교를 만들고 있다. 곧 떠날 학교를 목숨 걸고 혁신을 할 교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교원의 선발, 평가, 승진, 전보 등 근본적인 변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10) 비뚤어진 교육관
한국의 경우 좋은 학교란 상위권 대학에 많이 합격시키는 학교다. 그래서 학습 지도도 상위권 대학에 갈 가능성이 높은 상위권 학생들 위주로 이루어진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는 중하위권 학생들은 수업에서 배제되며 차별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학교란 아픈 환자는 소홀히 하고 건강한 사람만 돌보는 병원과 같다.”란 말이 학부모로부터 나왔겠는가. 관심과 돌봄이 가장 필요한 아동을 제쳐두고 잘하는 아이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가장 부끄럽고 부도덕한 교육 관행이다. 교육자들이 도덕성을 회복하고 사명에 충실하지 않는 한 모든 아동들의 강점과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교육의 실현은 어렵다.
이상과 같은 낡은 교육 인프라 속에서는 어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도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지금의 학교시스템(schooling)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인슈타인의 조언처럼 한국의 교육개혁은 앞으로도 ‘미친 짓’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기존의 학교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으며, 질 높은 연구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아울러 대부분의 교육개혁을 실패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인 ‘졸속 접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위에서 살펴본 내용이 제도의 문제라면 ‘졸속 접근’은 절차와 변화 역량의 문제다.
3. ‘졸속 접근’
교육개혁을 실패하게 만드는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졸속 접근’이다. 졸속 접근이란 문제해결의 원칙이나 타당한 절차, 면밀한 준비도 없이 빠른 추진에 초점을 두고 조기에 성과를 바라는 접근을 말한다. 졸속 추진의 가장 큰 특징은 환경 분석 부족, 변화에 성공하기 위한 전략의 부재나 미흡, 준비를 위한 시간 부족, 관련 기초연구 부족, 필요한 역량과 여건 마련 부족, 이해당사자들 및 반대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고 반영하려는 노력 부족, 장애요인에 대한 분석과 대안 마련 미흡, 지지층 확보를 통한 공감대 확산 미흡 등이다. 졸속 접근의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 문제의 근본 원인은 내버려 두고 표면에 나타난 증상만을 완화시키려는 접근
② 개혁의 목적과 수단, 전략이 불일치하는 접근
③ 구조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수업의 질 개선에는 소홀한 접근
④ 열린 접근 대신 닫힌 접근
⑤ 근본적인 재설계는 않고 기존 제도의 부분적 수선만 하는 접근
⑥ 하향식과 상향식의 절충(push&pull)보다는 하향식 밀어붙이기(push) 위주의 변화를 추구하는 접근
⑦ 자율과 책임보다는 통제와 평가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접근
⑧ 관련 요소들 간의 연계와 통합이 부족한 접근
⑨ 교사와 학생을 변화의 주체로 삼기보다는 변화의 대상으로 삼는 접근
⑩ 중장기적 관점은 고려하지 않는 단기적 접근
⑪ 상충되는 요소의 절충 대신에 양자택일 방식의 2분법적 접근
⑫ 증거나 연구기반 접근 대신 직관에 의존하는 접근
⑬ 복잡계 특성을 지닌 문제를 선형적인 방식으로만 해결하고자 하는 접근
⑭ 변화의 방향과 내용을 먼저 정해놓고 의견 수렴 과정을 형식적으로 하는 접근
⑮ 이해당사자의 시각보다는 공급자의 시각에서 추진하는 접근
바로 이런 졸속 접근은 교육개혁이 실패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보자. 문재인 정부는 오는 8월 중 2021학년도부터 적용할 수능 체제를 발표하기로 되어 있다. 그 중에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이란 대선 공약도 함께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주요 언론은 연일 이로 인한 상위권 변별력 부족을 보도하고 있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 공약이 벽에 부딪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는 졸속 추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주된 원인은 전형적인 닫힌 접근을 통해 대안도 없이 불쑥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점이다. 졸속 접근의 특성 중 ②④⑤⑧⑩에 해당된다. ‘외고·자사고 폐지’의 경우도 전형적인 ‘졸속 접근’이다. 의욕만 앞섰지 전략의 부재가 심각한 수준이다.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우선 문제해결을 위해 열린 접근을 했어야 했다. “수능이 학교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외고·자사고의 존재가 사회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먼저 던졌어야 했다. 이렇게 열린 접근을 통해 폭넓은 사회적 토론과 설득의 기회를 충분히 가졌더라면 옹색하기 짝이 없는 ‘9단계 절대평가’와 같은 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질문을 새롭게 제시하고 추진하는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먼저 대학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설득을 했어야 했다. 이를 통해 기존처럼 객관식 문제 풀이 점수로 학생을 줄 세우는 것의 타당성, 그리고 이것이 고부담이기 때문에 학교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얼마나 크고 심각하며 이것이 장래 한국의 생존과 어떻게 직결되는지에 관하여 사회 다수 구성원들로부터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냈어야 한다. 필요할 경우 사회적 압력을 동원하는 전략도 세웠어야 했다. 외고·자사고 폐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가상 인터뷰에서 인용한 풀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시스템 차원의 개혁’(system-wide reform)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과 관련된 시스템적 요소로는 ‘대입전형, 수학능력시험, 내신평가’ 및 ‘학교교육에 끼치는 영향 분석’ 등이 있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고 할 때는 ‘대입전형, 수학능력시험, 내신평가’의 미래방향을 함께 연구하고 논의했어야 한다. 이런 관련 요소들 간에 서로 상충되는 것은 없는지 등도 면밀히 따져봐야 했다.
사실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 공약은 목적이 불분명했다. 만약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려는 목적이 학교교육의 경쟁 강도를 줄이고 내신평가도 질 높은 절대평가를 지향하도록 하는 것이란 점을 분명했더라면 ‘9등급 절대평가’라는 졸속 안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9등급 절대평가로는 현재의 상대평가가 갖는 경쟁 강도를 줄이기 어렵다. 적어도 5등급 절대평가는 되어야 절대평가 전환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고교 내신은 현재의 상대평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검토하는 모양이다. 이는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이럴 경우 지금의 상대평가만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제도 변화의 효과는 없으면서 이해당사자들의 불만만 키우기 때문이다.
늦더라도 제대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수능이 학교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외고·자사고의 존재가 사회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주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졸속 접근의 요소를 줄여야 한다.
4. 맺음말
교육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앞에서 살펴본 10가지 낡은 교육 인프라와 15가지 졸속 접근은 모든 교육행위를 왜곡시키고 어떤 교육개혁도 도입 목적의 달성을 어렵게 만든다. 이들이 교육개혁을 실패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인데도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에 이 10가지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내용은 거의 없다. 신기할 정도다.
이런 교육의 암적인 문제점들을 우리가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서는 리더가 왜 이렇게 없는가? 매우 유감스럽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이상과 같은 졸속 접근, 낡은 시스템을 이대로 두고 교육공약의 이행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면 결과는 매우 비참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교육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르게 인식하고 정공법으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과 외고·자사고 폐지에 대한 기득권층의 저항은 문재인 정부나 일부 교육감들의 어설프고 낡은 접근, 전략 부재 때문인 면이 크다. 새정부 및 김상곤 교육부장관과 국가교육회의에 바란다. 바람직한 교육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기존의 문제 있는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졸속적 접근 대신 검증된 접근으로 개혁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