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교육을 바꾸려는 것일까…
정부의 교육 정책은 정권에 따라 겉모양만 이리저리 달라졌지만, 결국 현실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여기서 현실이란 살아가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학교 수업 내용, 문제풀이와 단순암기 중심의 수업 방법,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 학생들의 불필요한 노력, 일반고 황폐화, 학력 저하, 계층 이동의 단절과 사회적 양극화 등의 문제를 말한다. 수많은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좋아지지 않는 이유를 꼽아보면 분명 손가락이 모자랄 터이나, 말로 내놓은 정책과 실제로 보여준 정책 행위의 불일치라는 정부의 무능과 구조적 한계도 하나의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온간 화려한 단어로 무장한 국가 교육과정이 학교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된 적이 있었는지 돌아보면 말로 내놓은 정책과 행위로서의 정책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정부 관료는 청와대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으며 책임은 정권에게 있다고 강변할 것이고, 청와대도 남 탓을 하며 책임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5년 동안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정부의 정책 결정 및 집행 구조 역시 무능과 무책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정부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국민들이 더 나은 현실을 살 수 있도록 만들고 미래를 대비하게 할 책임이 있다.
정부(혹은 정책을 추진하는 청와대)의 정책은 의도의 진정성, 정책 설계의 목적과 정책을 구현하는 수단의 적절성을 기준으로 성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책 의도의 진정성을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이른바 정무적인 판단 하에 급조되었더라도, 이리저리 화장과 변장과 위장을 거치고 그것도 모자라 그 위에 가면까지 덮어쓰고 나면 그 ‘민낯’이 원래 어떠했는지 정책의 입안자조차 구별하기 어려울진대, 일반 국민이 그것을 알기란 요원하다. 그러므로 대개의 정책은 목적과 수단을 기준점으로 하여 타당성을 예측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정책의 성패는 국민들이 정책(혹은 정책을 입안한 사람)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주는가에 달려있다. 그 다음이 정책 목적과 수단의 적절성이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제시된 공약들로 미루어 보건대, 새로운 교육부 장관의 임명과 더불어 교육과 대학입시는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수능 전 영역 절대평가, 내신 절대평가(학업성취도 평가), 고입 제도 개선, 특목고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국립대 통합 등 교육 정책의 현실적인 무게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연초에 교육부가 수능 절대평가와 성취평가제 시행 여부를 7월에 결정하겠다고 공언했고, 이 두 사안은 이미 2년 전에 결정이 유보된 적이 있기 때문에 현 정부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정책은 아니지만 이번에 결정해야 한다. 다만 7월이 아니라 8월에 해야 한다.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풀세트화된 패키지 정책을 단번에 내놓을 수는 없다.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재차 검증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무엇을’ 결정할 지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할 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관행은 권력을 가진 몇 명 사람이 결정하고 정부가 그들을 대행하여 시안을 발표하고, (대개 파행으로 끝나는) 그들만의 형식적인 공청회를 거친 뒤 정책을 확정하고 시행한다. 그 다음에 들어온 새로운 권력은 과거의 결정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들의 새로운 정책을 같은 방식을 통해 결정한다.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통해 정책의 진정성을 국민들과 공유하기보다는, 마치 내가 바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권력자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과시한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정부 정책으로부터 소외되었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정부 정책은 신뢰를 잃었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정부 정책은 결정 과정의 중요성이 성공의 관건이다. 국민들이 충분히 의견을 표출하고 토론하며 더불어 같이 결정을 만들어 갈 때, 정책은 생명력을 갖고 국민들에게 스며든다. 5년짜리 정책이 만들어 질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오래 유지될 정책이 만들어 질지는 결정 과정에 달려 있다. 정말로 교육을 바꾸려고 한다면 정책 결정 과정을 국민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정책(결정권자)의 진정성을 믿고 공감한다.
새 정부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시금석이 수능 정책이다. 수능이 전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대학입시는 필연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정시모집에서 수능만으로 커트라인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상위권 대학만이 아니라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거의 모든 대학이 마찬가지 상황을 맞는다. 더구나 수능 문항이 1학년에 배우는 공통과목에서 출제된다면 수능의 변별력은 더욱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몇몇 대학들과 사교육업체에서는 변별력 저하를 우려하며 수능 전면 절대평가를 반대한다. 더 나아가 학생부전형의 불공정성을 비판하며 마찬가지로 수능 전면 절대평가를 반대한다. 수시를 축소하고 정시를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절충안으로서, 수능 전 영역 절대평가가 아니라, 현재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한국사, 영어에 이어 2021학년도에 절대평가 영역을 하나 더 늘려보자는 주장을 한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혼합된 현 수능의 점수체계는 무엇을 평가하겠다는 철학과 개념이 사라진,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선택지는 둘 밖에 없다. 전면 상대평가, 아니면 전면 절대평가,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선택지는 무의미하며, 절대평가를 다른 한 영역으로 부분적으로 확대하자는 주장은 미봉책도 되지 못한다. 부분 확대 주장은 대입전형의 안정화도 내실화도 아닌 수능 변별력 지키기일 뿐이다. “second chance”라는 명목으로 뒤늦게 철든 학생, 재수생, 검정고시생들을 거론하는 것도 평소의 모습으로 보건대 낯선 풍경이다. 새로 임명된 교육부 장관은 여름이 가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으로 정부 정책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전면 상대평가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전면 절대평가를 선언할 것인가. 여기에 현 정부의 진정성이 담겨 있다. 철학도, 진정성도 없는 부분적 절대평가 확대를 결정한다면 고교학점제를 비롯한 다른 정책들도 무의미해진다. 그렇게 된다면 현 정부는 정말로 교육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척만 한다는 사실을 정권 초부터 선언하고 가는 매우 “솔직한” 정부로 평가될 것이다.
수능이 전면 절대평가로 전환되어야 문·이과통합을 지향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교육 현장에서 유의미해지고, 고교학점제와 새로운 고교 유형체계도 필요성이 확산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수능 전면 절대평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일반) 학교 교육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다. 새로운 (일반) 학교 교육이 경제적 여건과 지역 환경에 따른 학력 격차를 줄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키우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는 일이 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다. 수능 전면 절대평가가 새 정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라면, 정부 정책의 목적은 새로운 학교 교육의 철학과 가치이다. 학교 교육을 통해 아이를 어떤 어른으로 키울지 개념을 정립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철학과 가치라는 큰 그림과 더불어, 그것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을 정책으로 제시하는 작은 그림들도 국민들에게 같이 제시되어야 한다. 고교학점제, 고교 유형 재정립, 스마트학교, 학교간 연합과 연계, 학교와 학교 밖의 연계, 학생·교사·건물을 공유하는 학교 모형 등이 새로운 학교를 위한 정책, 즉 작은 그림에 해당한다. 수능 절대평가를 출발점으로 하여 교육 혁신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이슈는 학생 중심 교육을 하는 학교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정의하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지에 대한 총체적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학생마다 다른 “꿈과 끼”를 무시하고 수능으로 대학에 가는 체제라면 아무리 “꿈과 끼”를 강조해도 공허한 울림에 그친다. 일본 정부는 이미 2015년부터 10년 계획을 세워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입시 그리고 대학교육을 새롭게 설계하고 집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새로운 학교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새 정부 정책의 진정성, 정책 설계의 목적과 정책 수단의 정합성을 보여줄 책임과 의무를 새 교육부 장관이 맡게 되었다. 수능 점수라는 하나의 잣대로 줄을 세우는 평가 방식은 사라져야 한다. 학생의 서로 다른 동기와 의지, 학습 경험, 서로 다른 영역에서 필요한 학업 역량을 무시하고, 변별력이란 허상을 기준으로 줄을 세울 수 없다. 수능 정책의 진정성이 출발점이다.
학생 중심의 새로운 학교 교육을 구상한다면, 필자가 다른 연구보고서 등을 통해 제시했던 아래의 모형을 참고할 수도 있다.

교육은 사람을 지향하지 수치에 따른 변별력을 지향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이다. 무엇을 위해 “말씀”대로 행동하지 않는가.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