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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자유학기제, 어떻게 영혼을 불어넣을 것인가?

#264 정병오, 오디세이학교 교사 2017.03.08

자유학기제는 2012년 대선 기간에 박근혜 후보의 교육 공약팀에서 만든 아이디어였다. 그러니까 교육학에 나오는 개념도 아니었고, 학자들의 오랜 연구를 통해 나온 제도도 아니었다. 물론 이와 비슷한 제도가 몇 나라에 존재하긴 하지만 꼭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 실시 시기도 진로탐색의 적기라고 할 수 있는 중3이나 고1이 아닌 중1로 밀려났다. 그래서 자유학기제를 처음 실시한다고 할 때 이에 대해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2학기부터 자유학기제가 시범 실시가 되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유학기제라는 제도 자체는 충분히 준비되었거나 교육적 고민과 공론화를 거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 교육 가운데 들어왔지만, 그 가운데는 우리 교육이 가지고 있는 근본 모순을 건드릴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학기제가 한국 교육에 던진 파문은 대략 다음 5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중간, 기말고사로 대표되는 정기 지필 고사를 없앴다는 것이다. 교육에서 평가는 교육의 목표가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그 방법은 다양한 것이 정상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등 교육에 있어서 중간, 기말이라는 정기 지필 고사는 교육의 최종적이며 유일한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수업 자체가 목적이 되지 못하고 수업은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리고 “이것 시험에 나온다” “밑줄 쫙!”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한편으로 교사의 수업을 왜곡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의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교사를 교과서 전달자로 전락시키고 안주하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그런데 비록 한 학기이긴 하지만 자유학기제는 중등학교 단계에서 중간, 기말 고사로 대표되는 정기 집필 고사를 없앰으로써 정기 지필고사가 우리 교육의 절대적이거나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학생이든 교사든 시험을 위해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가 추구하는 본래의 목적에 따라 수업을 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학생의 성취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해주는 형태로 전환을 시키고 있다.

 

둘째, 국영수로 대표되는 주지 과목의 시수가 축소되고 그 대신 예체능 과목과 체험학습, 선택교과의 시수가 확대되었다. 비단 국영수 뿐 아니라 교과 시수 조정 문제는 각 교과와 그를 둘러싼 학계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와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싸움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국영수로 대표되는 주지 과목이었고, 국영수 수업 시수는 일종의 성역이었다. 그런데 자유학기제에서는 아이들의 전인적인 성장과 진로 체험과 탐색을 위해 국영수 중심의 주지 과목을 축소하고 입시와 무관한 예체능과 체험학습, 선택교과 시간을 확대한 것이다. 이러한 국영수로 대표되는 주지교과의 축소와 예체능과 선택교과의 확대는 새로운 제도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교육과정 20% 증감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 교육과정 20% 범위 내 증감의 자율권이 지금까지는 국영수 시수 확대의 도구로 활용되어왔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번 국영수 시수 축소와 예체능 및 선택교과의 확대를 이끌어낸 자유학기제의 힘은 실로 놀라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교사에게 완벽한 교육과정 편성권과 평가권을 주면서 교사별 평가체제를 가져왔다. 국가가 기본적인 교육과정의 틀을 제시하지만 그 교육과정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은 교사의 고유한 권한이다. 그리고 가르친 자가 가르친 내용을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것도 교육학의 가장 기본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껏 교사가 교육과정이 아닌 교과서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할 것을 요구받았으며, 평가도 자신이 가르친 내용과 무관하게 교과서의 내용을 평가해 왔다.(물론 교과서 위주로 가르쳤기 때문에 가르친 내용을 평가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교과서의 내용을 벗어나 교육과정을 창의적으로 가르친 교사의 경우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평가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교사에게 교육과정 편성권과 평가권을 주고 교사별 평가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꾸준히 되었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자유학기제에서는 정기 지필 고사를 없애고 수행평가만 실시하되, 그 결과를 계량화된 숫자가 아닌 서술식으로 기록하게 함으로써 기존에 교사를 억누르던 교과서 위주로 다른 교사와 똑같이 수업하고 똑같은 평가를 해야 하는 족쇄를 일순간에 해소해버렸다. 그렇게 함으로 모든 교사에게 실질적인 교육과정 편성권과 평가권이 주어지고 교사별 평가가 가능하게 되었다.

 

넷째, 선택교과의 확대로 아이들에게는 실질적인 선택이, 교사들에게는 새로운 교과 개설과 교육과정 설계가 가능해졌다. 그동안 아이들은 국가가 제시하는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만 가능했고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따른 실질적인 선택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선택 교과가 확대됨에 따라 자신의 흥미와 관심, 진로에 따른 교과를 선택하여 심도 깊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자신의 흥미나 관심, 진로에 따른 교과 개설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교사들은 아이들의 발달에 맞는 교과를 직접 구상하고 과목을 개설하고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기회가 확대됨에 따라 교육과정 전문가로서의 실질적인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권한은 동시에 의무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교사로서의 실질적인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교사를 성장시키는 건강한 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교육을 학교에만 가두지 않고 지역사회로 확대하고 지역사회와의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 학교는 배움을 교실 안의 배움으로 한정해왔다. 그래서 지역사회 가운데서는 섬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자유학기제에서는 직업 혹은 진로 체험을 강조하면서 지역사회의 연결을 맺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던 학교 주변의 야채가게, 커피숍, 미용실, 병원, 소규모의 공장이나 기업, 관공서 등과 관계를 갖고 그들과 함께 아이들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역사회도 처음에는 지역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다가 조금씩 지역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택교과와 관련해서도 아이들은 배우기를 원하지만 학교 내 교사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많다 보니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지역사회의 전문가나 장인들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런 부분을 통해 한 아이를 놓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경험들이 조금씩 축적되고 있다.

 

이렇게 자유학기제는 한국 교육이 오랫동안 안고 있던 핵심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많은 잠재력을 가진 제도였지만 정작 이 제도를 도입하고 운영을 했던 박근혜 정부는 그 함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자유학기제가 가진 교육적 의의를 학교 현장에 충분히 납득시키고 추진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어려움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작업 없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틀을 현장에 이식시키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는 자유학기제가 가진 교육적 의의를 각 현장에 맞게끔 창의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교육부가 제공하는 틀만 채우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당연히 교사들의 혼이 실리지 못한 제도에서 교육적 생명력이 나오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이 정부는 자유학기제가 그나마 교육적 효과가 어느 정도 있고 국민들의 호응이 조금 있자 이를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모든 학교에 전면 실시하는 무리수를 두게 되었다. 5년 정권의 한계 내에서 성과를 만들어내고 이것을 정권의 치적으로 삼고자 하는 정권의 욕심이자 관료적 정책 시행의 전형적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자유학기제가 처음 시범 실시되었던 2012년과 2013년의 경우 정부에서도 정형화된 틀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현장의 상황에 맞는 실천들을 존중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3년차 이후로 자유학기제를 무리하게 전면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부터는 교육부가 정해서 내려 준 틀을 그대로 준수하라는 지시와 복잡해진 평가 기록, 그리고 그 평가 기록을 고교입시에 반영하겠다는 전형적인 관료적 정책 방식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도교육청에서는 이러한 자율성 없는 관료적 시행이 학교 현장에 미치는 부작용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중간 관료적 통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를 이어받은 학교 현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자유학기제를 아무런 문제 없이 시행하거나 혹은 그 결과를 발표회나 전시회 형태로 생색을 내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자유학기제가 정책적 의미와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로 여러 다양한 관료적 기제만 강화되면서 학교 현장에서는 자유학기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자유학기제 시범 실시 기간 동안 많은 교사들이 “자유학기제로 인해 업무가 늘어 힘들지만 교사로서의 자율성이 확대되어 보람을 느낀다”라고 응답했던 것을 생각해볼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학교 현장의 지지를 잃은 채로 몇 년 더 지속이 되면 학교 현장의 애물단지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유학기제가 갖는 교육적 의의나 파급력을 생각할 때, 자유학기제는 비록 박근혜 정부가 시작하긴 했지만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관료적 틀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되고 새롭게 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 자칫 자유학기제에 대한 인기에 취해 자유학기제가 죽어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관료적 실시에만 집중을 한다면 자유학기제의 생명만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영혼이 빠져버린 자유학기제에 영혼을 불어넣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교육부 차원에서 자유학기제 운영 전체를 점검하고 자유학기제의 방향을 정하는 기구인 가칭 ‘자유학기제 운영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 기구에는 자유학기제와 관련된 전문성과 교육학적 안목을 가진 학자와 교원단체, 교육운동가들을 폭넓게 포함시켜야 한다. 이 기구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자유학기제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를 하는 일과 현재 자유학기제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사실 자유학기제 시행 초기에는 ‘자유학기제 기획단’과 ‘자유학기제 자문단’이 운영이 되었다. 하지만 기획단은 초기 틀을 잡을 때 몇 회 회의를 했을 뿐이고 자문단도 1년에 한두 번도 모이지 않았다. 자유학기제는 끊임없이 보완하고 방향을 새롭게 해야 할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만든 틀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행 과정에서 관료적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를 시정하고 정책의 정신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장치가 있으면 정책을 시행하는 관료들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 없이 정책이 성공할 수가 없다. 자유학기제와 관련해서도 빨리 민간 전문가 중심의 사령탑을 만들고 여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시급하다.

 

둘째로 자유학기제와 관련된 학교 현장 차원의 자율성이 더 확대되어야 하고, 단위 학교 차원에서 자유학기제의 의미 공유와 실천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학기제 시범 실시 기간에 단위 학교에서 정부를 향해 자유학기제 시행 매뉴얼을 달라고 요청을 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지필평가 폐지, 주지교과 시수 4시간 축소 등 큰 틀 범위 안에서 학교 자율로 시행하라고만 할 뿐이었다. 이는 정부에서도 구체적인 틀에 대한 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정부에서 매뉴얼을 주면 단위 학교의 자율성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학교 단위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자유학기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이 나오고 자유학기제가 확대되면서 교육부는 큰 틀 외에 세부적인 틀과 규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함으로 정부의 통제는 더 쉬워졌지만 학교에서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것을 수행한다는 수동성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유학기제와 관련해 현장의 자율성을 준다는 의미는 각 학교에 자유학기제를 실시하지 않을 자유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말 자유학기제를 하고 싶은 학교만 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학교가 하겠느냐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미 자유학기제의 진정한 교육적 맛을 본 교사들은 자유학기제로 인해 업무는 늘었지만 교육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유학기제를 제대로 경험한 학부모나 아이들은 자유학기제를 중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역량이나 의지가 없는 학교들까지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하고자 하는 학교를 충분히 지원해주고, 그 성과가 자연스럽게 교육계에 퍼져나가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정책을 성공적으로 시행하는 길이 될 것이다.

 

셋째 자유학기제와 관련해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것은 자유학기제를 중학교 3년 전 과정으로 확대하여 이를 통해 중학교 교육 혁신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 현재 자유학기제의 내용은 특별히 한 학기만 실시할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본질을 잘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했는데 별 문제가 없고 오히려 아이들과 교육이 살아나고 있다면 이를 6학기로 확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현재의 고등학교 입시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 즉, 고등학교 선발 과정에서 중학교에서의 계량화된 성적이나 석차를 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모든 고등학교 입시를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바꾸되, 특별한 목적을 가진 일부 학교의 경우만 중학교 생활기록부 전형으로 바꾸면 된다. 이렇게 되면 중학교 교육이 고교 입시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자유학기제를 중학교 3년 전 과정에 확대하는데 모든 장애물들이 제거된다.

 

이러한 자유학기제의 중학교 전 학년 확대를 통한 중학교 교육 혁신에 대한 비전 없이 단지 한 학기 동안의 자유학기 운영에만 매몰되다 보면 자유학기제가 가져온 중학교 교육 혁신의 동력과 에너지를 잃어버리고 현 체제 내에서 가동되는 하나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수가 있다. 이것은 중학교 교육 혁신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자유학기제를 도입했던 자유학기제의 처음 취지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렇게 자유학기제를 중학교 3학년 전체로 확대해 중학교 교육 혁신의 계기로 삼는 것은 한 학기 동안 실시되는 자유학기제를 잘 정착시키고 내실화시킨 후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분명한 비전으로 제시하고 동시에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한 학기 동안의 자유학기제도 그에 합당한 힘과 무게를 받을 수 있으며, 여러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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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학교 교사 정병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후 청운중, 장충여중, 양화중, 문래 중학교에서 도덕 교사로 재직했다. 교직 초기부터 기독교사들의 연합 모임인 좋은교사 운동을 창립하고 그 가운데서 교사들의 자발성과 전문성 향상을 통한 교육변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왔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표로 활동을 했다. 2014년부터는 서울시교육청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1년간의 길찾기 과정인 '오디세이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학교에서 학생의 삶과 연계된 의미있는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한 교육과정 다양화와 교사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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