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혁신학교 퇴직교사의 교육이야기
좋은 기회가 선물처럼 찾아오는 건 네잎 클로버를 만나는 것과 같다. 이번 인터뷰가 그랬다. 이달의 글감을 찾던 차에 흔치 않은 행운을 우연히 마주쳤다. 발단은 오늘의 주인공과 내가 함께 들어있는 텔방에서 닉네임 시몽백작이 제공했다. 지난 3월 1일, 그는 시민의 날개를 달고 첫날을 맞이한 한 명예퇴직 교사에게 틈틈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교사들이 정치기본권도 없는 ‘2등 시민’이라는 사실을 빗대어 “이제야 ‘면천’ 되셨네요”라고 축하하며 이른바 ‘면천 인터뷰’를 시작한 것이다. 두어 시간 후 박재동 화백이 가세해 무려 20개의 질문을 단 두 줄로 쏟아냈다. “가장 기억나는 학생 10명은? 가장 기억나는 수업 10개는?” 이쯤 되면 아이들 말로 “허걱ㅠ”이 아닐 수 없다.
그 전날 밤 12시를 기해 25년 만에 교사직의 명예와 멍에를 동시에 내려놓은 주인공은 서울의 공립중학교에서 역사와 사회를 가르친 강민정 선생님. 그는 지인들 누구나가 인정하는 열정과 책임감으로 이번에도 모든 질문에 순식간에 답변을 써내려갔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생생했다. 누구는 영화를 보는 듯하고 누구는 시나리오를 읽는 듯하다고 평했다. 10개의 수업과 10명의 학생 얘기를 통해 텔방 친구들은 강민정 선생의 교사 시절과 수업시간을 조금씩 엿볼 수 있었다. 그가 교사로서 만나 대부분 함께 성장하는 데 성공했으나 더러는 실패했던 아이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강민정 선생의 절대적인 겸손에도 불구하고 텔방 인터뷰는 한 인간이자 교사로서 강민정 선생의 여러 미덕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적어도 텔방 식구들은 모두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오랜 경력의 교사라면 몇 개씩 다 있게 마련인 미담성 얘기보다 더 강하게 내 눈길을 잡아당긴 것은 답변 중 드문드문 짧게 튀어나온 강민정 선생의 교육, 교사, 혁신학교 관련 단상들이었다. 특히 2011년부터 북서울중(혁신학교)의 초대 혁신부장으로 만4년을 헌신했던 분이라 혁신학교를 보는 눈이 예리하고 따뜻했다. 나는 이런 내용은 텔방 밖으로 걸어 나와 공유되면 바람직하겠다고 판단했다. 굳이 익명처리를 고집하는 강민정 선생을 간신히 설득해서 ‘면천 인터뷰’의 단상들을 발췌해 정책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여기에 내가 대여섯 개의 질문을 보태고 답변을 받아 오늘의 ‘혁신학교 퇴직교사 강민정 선생님과 나눈 교육이야기’가 탄생했다. 웬 뜬금없는 인터뷰인지 궁금할 독자들을 위해 경위를 밝힌다.
Q. 4반세기를 봉직해온 학교와 교사직을 떠나 자유시민이 됐다. 퇴직소감은?
25년 가까운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보람 있었던 때도 많았지만 교사로서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도 많이 생각났다. 그러나 마지막 근무학교가 혁신학교였기 때문에 교사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실천해볼 수 있어서 큰 미련은 없는 것 같다. 요즘 촛불정국으로 온 사회가 정치화된 시점이기 때문인지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정치적 자유를 누릴 수 있어 이제야 비로소 완전한 시민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Q. 교사생활의 마지막 2년을 서울시교육청에서 혁신교육지구의 협치 틀을 짜고 내용을 다지는 일을 했다. 혁신교육지구가 뭔가? 그만큼 중요했나?
혁신교육지구는 교육의 내용, 방법, 주체 면에서 교육에 대한 기존 프레임을 확장시킨 정책이다. 학교와 마을이 협력하여 지역의 아이들을 함께 교육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학교교육도 정상화시키고, 해체된 마을도 복원시켜 마을교육공동체를 새롭게 구축해 보자는 것이 혁신교육지구다. 2012년 구로, 금천에서 시작된 혁신교육지구는 올해 서울 전체 25개 자치구 중 22개 자치구가 함께 하는 것으로 확산되어 서울 아이들이 혁신교육지구 정책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제 학교교육에서도 마을의 교육자원이 함께 할 뿐 아니라, 철저하게 사적 영역에 맡겨져 있던 학교 밖 아이들의 삶도 공적 공간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혁신교육지구는 장기적으로 볼 때 학교도 살리고 마을도 살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Q. 교사생활 내내 전교조에서 활동가로 지냈다. 전교조는 어떤 존재였나? 전교조에 바라는 게 있다면?
내 교직생활은 전교조와 함께 해 온 시간이기도 하다. 교육현장에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준 이들이 전교조 교사들이었다. 혁신학교의 교육적 성과들의 뿌리에는 그 이전의 많은 교육실천들이 연결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전교조의 참교육운동이 큰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전교조 조합원이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현재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내몰려 안타깝다. 우리나라 노동기본권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생각한다. 빠른 시일 안에 전교조가 합법성을 되찾고, 학교현장에서 혁신교육 실천 주체로 더 열심히 활동하여 우리나라 교육발전의 명실상부한 주체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Q. 처음 지정된 혁신중학교에서 4년간 혁신부장을 맡아서 성공사례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교사에게 혁신학교란 무엇인가?
내 경우만 말하자면 혁신학교 시절은 교육의 근본에 대해 뿌리부터 완전히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교육관, 학생관, 수업관, 교사론 등등. 그 과정은 교사로서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성장의 과정이었으며 다른 모든 성장과 마찬가지로 기쁨이 수반됐다. 혁신학교를 통해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모두 변화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갖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Q. 혁신교육은 교육을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가르침 중심에서 배움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양자가 정말 다른가?
많은 교사들이 자신은 괜찮은 교육자이고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라는 함정이 도사린다. 자신이 잘해준다고 생각하는 게 늘 상대방에게도 그런 건 아니다. 나도 아이들을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스스로 여겨왔지만 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교직생활 20년이 다 되어 혁신학교를 접하게 되면서 잘 가르친다는 것과 잘 배운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에 대해 비로소 인식하게 됐다. 이런 깨달음과 실천경험 없이 교사생활을 마쳤다면 정말 아쉬웠을 것 같다.
Q. 그렇다면 잘 가르치는 교사를 넘어 좋은 교사란 어떤 교사를 말하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교사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학습의욕을 높일 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로 고민한다. 그래서 주로 조리 있으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교사의 주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얼핏 보면 학생 중심 사고인 것 같지만 실은 여전히 학생을 대상화하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교사가 열심히 잘 가르친다고 그게 곧 아이들이 잘 배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사의 주된 역할이 지식전달자가 아닌 이상 수업은 아이들이 잘 배우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야 한다. 교육적 행위는 본질적으로 관계와 소통의 문제다. 관계와 소통이라는 관점에 서게 되면 관계 속에 있는 학생도 관계의 완전한 한 주체일 수밖에 없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학생 스스로 배움을 자기화하는 과정이라야 하고 교사의 전문성이란 이를 최대한 촉진하는 설계자, 조력자로서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교사 자신도 소통의 한 주체이면서 동시에 학생 배움의 도구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은 지식의 권위자나 교화 혹은 강압주체로서의 교사란 인식과 양립할 수 없다. 이럴 때 학생들은 더 이상 평면적인 지식흡수자로서 단일한 객체가 아닌, 각자의 관심과 특성, 경험을 달리하는 하나하나의 존재로 교사에게 다가온다.
Q. 교사들뿐 아니라 학생들도 과연 이런 변화를 반기는가?
내가 있던 혁신학교에서 1, 2등을 다투던 중학생이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얘기한 내용으로 대신하겠다. “혁신학교 수업 덕분에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나 소위 말썽꾸러기 친구들을 이해하게 됐고 그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한테도 배울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들으면서 난 감동했다. 사실 인터뷰하겠다고 나설 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기존방식으로도 공부에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혁신학교의 팀 프로젝트 발표수업은 수준 차이가 나는 4명으로 팀을 짜는 관계로 공부 잘하는 아이 입장에선 좀 답답할 수 있어서다.
학교 안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혁신학교는 교사의 자율성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율성을 중심으로 교육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수업평가, 동아리 활동 평가, 스스로 만드는 축제나 학교행사, 학교장과 학생회 대표 간의 정기 간담회 등은 많은 혁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아이들이 자율성을 보장받게 됨으로써 학교에 대한 주인의식도 높아질 뿐 아니라 학습에 대한 의욕도 훨씬 높아진다. 혁신학교 이후 수업시간에 자거나 딴 짓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진 것은 나를 비롯한 모든 교사들에게 정말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Q. 혁신비관론자들은 혁신학교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일부교사들의 헌신 덕분에 가능해 지속가능성이 없는 반면 일반학교에는 그나마도 없어서 학교혁신이 확산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내가 있던 혁신중학교는 신설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된 경우였기 때문에 일반교사들이 훨씬 많았다. 우리학교의 혁신학교 경험은 특정교사의 능력이나 헌신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한 혁신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학교 내에 교사의 자발성을 견인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일반교사들의 혁신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교사의 자기혁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교사 개인에 대한 요구로 풀기보다는 지속적으로 교사들의 집단지성이 발현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준다면 상당 정도 해결 가능하다.
일반교사의 경우 외부에서 볼 때 우리 교육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정체되어 있고 심지어 교육자로서의 책무감이 낮은 게 아닌가 하는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들 가슴 깊은 곳에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신념과 무관하게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는 아름다운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결코 쉽게 보지는 않지만-왜냐하면 너무 뿌리가 깊고 복합적 요인의 결과라- 교사들의 변화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다.
Q. 혁신학교라는 모범사례가 만들어졌는데도 일반학교에서는 학교혁신이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학교는 교장하기 나름이라는데 혹시 교장선생님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학교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학교장과 교사들이 같은 교육관과 비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학교장과 교사들 간에 교육관의 차이로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는다. 더구나 아직은 학교운영에서 학교장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혁신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교사들이 있어도 이것이 현실화되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학교관리자들은 현재의 교장승진제도를 통해 교장이나 교감이 된 이들이라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 친숙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민주적 학교운영을 핵심으로 하는 혁신에 저항하는 이들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여러 혁신학교의 경험을 보면 기존 학교장들 중에서도 새로운 리더십을 받아들이고 혁신학교의 적극적 주체로 나서주는 이들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현행 교장 승진제도를 개선해야 하지만 현재 학교장들도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Q. 지금의 교장승진제도 아래서는 어째서 권위주의형, 관료주의형 교장이 양산되는가?
현행 교장승진제도는 교육을 잘 하는 교사보다는 행정을 잘 하는 교사, 교장의 코드에 순응하는 교사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승진에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평정권을 교장이 가지고 있고 온갖 가산점을 따야 승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승진체계 자체가 권위복종형 교사 중심이고 가산점 획득이 수월한 행정이나 업무 중심이다. 그래서 학교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나, 또한 일반교사들의 혁신의지를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장승진제도를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
Q. 교장승진제도를 어떻게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나?
행정을 잘하는 교사가 아니라 교육을 잘하는 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교장 자격증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자격증 없는 일반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는 내부형 공모교장제도가 있기는 하나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가산점을 쌓아 자격증을 받음으로써 교장이 되는 현 제도는 폐지되고 내부형 공모교장제도가 전면화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학교구성원들에 의해 교장을 선출하는 교장선출보직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
Q. 교사에게 수업시간과 교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라서 모든 상황적 변수를 제거하더라도 교실은 늘 불완전한 교사와 학생 간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모든 건강한 만남(관계)이 그러하듯 불완전한 교사와 학생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교실은 다른 말로 하면 상호 성장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Q.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교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적지 않다. 상호 성장의 공간에서 왜 교사의 성장이 지체된다고 보나?
현실의 교사는 권위주의적이고 관료화된 학교조직 문화 속에서 교육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잃고 기계적인 업무수행자로 전락한 측면이 강하다. 당연히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 자존감 상실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급기야는 큰 사고만 안 나면 된다는 식의 태도, 늘 하던 수업을 관성적으로 하는 것에 만족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성장하고 발전하지 못한 채 정체하게 된다.
Q. 교사들도 학교 가기 싫다는 책 제목이 생각난다. 최근 고등학교 교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왜 그런가?
그 책은 초·중·고 급별 관계없이 모든 교사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학교교육문제의 원인은 다른 데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한국교육문제의 심화 정도에 비례해서 사회적으로 그 책임을 추궁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교사들의 자괴감이 지난 10년 간 부쩍 커진 이유이자 조기퇴직이 급증하는 이유다.
특히 말씀하신 것처럼 최근에는 고교 교사들이 제일 심하다. 자사고, 특목고 등으로 인해 고등학교 교육여건이 악화되면서 절망과 좌절,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급증했다. 게다가 고등학교는 이미 성인에 가까운 아이들이라 교육개입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반면 목전에 다가온 대학입시 규정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Q. 교사들의 책임감과 헌신성을 지금보다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교사들에게 교육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해주면 그들의 교육 열정은 살아난다는 것이 혁신학교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교사의 자율성 인정과 학교의 민주적 운영이다. 그런 뒤에 교사들에게 엄중한 책임과 자기혁신을 요구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물론 교사 자신의 자기혁신을 위한 노력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교원노조도 불법화하고 일체의 정치적 권리도 행사할 수 없게 교사들의 손발을 묶어놓은 상태에서 이런 요구는 교사 개인 차원의 헌신이나 도덕적 자세를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Q. 교사의 자율성과 학교의 민주적 운영을 강화하려면 학교정책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혁신학교에서 하는 걸 학교정책으로 시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자율성 인정, 평가권 인정, 학교사회 인정, 학교운영의 민주성 회복, 학교장의 민주적 리더십 확대 등이 모든 학교에서 제도와 정책을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
Q. 조금 화제를 돌려보자. 선생님이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면 문제아는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직접 경험한 사례를 하나만 들어본다면?
내 담임 반에 학교에서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끼와 재능이 많고 공부도 곧잘 한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학기 초부터 사고를 치며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을 힘들게 해서 버릇없고 다루기 힘든 아이로 낙인 찍혔다. 고민 끝에 나는 그 아이와 교환일기를 쓰기로 했다. 노트 하나에 매일 무언가를 적어내면 나는 거기에 내 생각이나 얘기를 적어주는 식으로 방학을 뺀 1년 내내 매일 진행했다. 반항도 했지만 얼러가며 그렇게 일 년을 보내니 적어도 담임인 나와는 보이지 않는 신뢰관계 같은 게 생겼다. 몇 년이 지나 대학 잘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비로소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Q.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많이 만났을 것 같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아이를 하나 꼽는다면?
반지하 연립에서 할아버지와 의붓할머니와 함께 어렵게 사는 아이가 있었다. 학교에 잘 안 왔다. 마침 그 아이 집이 큰애 어린이집 가는 길에 있었다. 어느 날부터 안 되겠다 싶어 아침마다 그 아이 집 앞에서 아이를 깨워 학교가라고 채근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지금도 우리 큰애는 그 아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아침마다 교사인 엄마가 매일 불러댔던 그 이름이 20년이 넘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어느 겨울 아침 비닐로 된 창마저 반쯤 찢긴 그 집 앞에 서서 아이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이런 학생들은 어쩌면 특별한 교육적 돌봄이 요구되는 아이들이다. 교육복지제도가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교육불평등 해소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특히 학교교육의 전체 시스템이 이런 아이들 하나하나를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이것이 공교육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일은 교사 개인의 몫인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Q. 아무리 노력해도 수업은 늘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 제일 아쉬웠던 수업의 하나를 공개한다면?
빈부격차를 공부하던 수업시간에 여러 이야기 중 당시 포장마차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한 이에 대한 신문기사 얘기를 들려줬다. 아이들의 의견을 묻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반의 모범생 반장이 “그 사람은 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그렇게 살게 된 거니 죽은 걸 다른 사람 탓할 일이 아니다”는 논조로 발언했다. 충격을 받았지만 수업 종료 종이 쳤고 다음날 수업에서도 진도 압박 때문에 이어갈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게 아니었어도 당시에 내가 그걸 주제로 전체토론을 했을지 자신이 없다. 아마도 내가 수업시간 일부를 일장 연설로 훈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교사인 내가 그때 좀 더 깊이 들어가 교육적으로 풀지 못한 아쉬움이 내내 남는 수업이었다.
Q. 단속대상 포장마차 주인의 분신사건처럼 논쟁적 사회현안을 수업시간에 다루는 게 바람직한가? 만약 다룬다면 교육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바람직한가?
세월호 어머니가 교사들과 함께 하는 어느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 잊히질 않는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잃고 나서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들, 아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게 제대로 교육시켜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교육은 삶의 태도와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아이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잘 살아가려면 자신들이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할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세상의 문제들, 특히 치열하게 논쟁 중인 문제들에 아이들이 무지해지는 것은 교육의 기본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문제들을 교사의 의견이나 관심에 치우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논쟁적 방식으로 배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Q. 실제로 교사들은 논쟁적인 사회현안 수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런 현상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에 뿌리를 둔다. 정치적 무권리상태가 교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존재라서 국가에 대한 기본적 권리, 특히 정치적 기본권을 박탈당한 인간은 건강한 시민, 건강한 인간으로 서기 어렵다.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강요당하는 삶은 단지 정치적 영역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왜곡시키는 원인이 된다. 늘 본질을 회피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적당히 안주하고, 개인적 취미생활에 올인하는 인간으로 서서히 변형되는 게 현실이다.
Q. 현행법은 교사에게 투표나 할 뿐 선거와 정당 등 정치세계에 얼씬거리거나 정치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교사의 임무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다고 규정한다. 정치기본권도 없는 2등 시민교사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1등 시민을 길러낼 수 있는가?
너무 아픈 부분을 지적해 주셨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에는 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 양성이라고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교사들은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정치기본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이 점에서 시민적 권리를 갖지 못한 교사들이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하기는 근본적으로 어렵다 생각한다. 독일의 경우는 교사들이 민주시민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될 뿐 아니라 정치교과 담당교사의 경우에는 오히려 정치활동이 권장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박탈했던 교사의 시민적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첫 번째 필수요건이라 생각한다.
Q.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이 교육적, 정치적으로 필요한 일이더라도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당적을 허용하면 교사가 수업시간 중에 자신의 정당과 당론을 옹호할까봐 겁이 난다. 학부모의 우려를 불식시킬 방안이 있는가?
독일에서 1976년에 합의가 이루어진 보이텔스바흐 합의라는 게 있다. 이는 교화와 주입 금지, 논쟁성 재현, 학생이해 상관성 이라는 아주 간단하지만 중요한 교육원칙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 학교교육에서도 이 세 가지 원칙은 그대로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교사의 정치적 견해가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주입되는 것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는 교화와 주입 금지와 논쟁적 수업 방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교사들의 정치활동금지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수업시간과 학교현장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교사와 교육의 정치 중립성을 명분 삼아 교사가 교육감 선거에도 출마할 수 없고, 교육감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도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Q. 이제 마무리를 위해 다시 주제를 돌려야겠다. 교사들은 “선생님 만나서 교사의 길을 꿈꾸게 됐고 결국 교사가 되었다”는 제자가 나타나면 제일 행복할 것 같다. 혹시 그런 제자를 뒀나?
우리 반 부반장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우리 반에 자폐를 앓고 있는 친구를 솔선하여 도와주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작년에 20년 만에 전화를 해 와서 인근 학교에 교사가 되었다며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당시 우리 반 생활이 너무 즐거웠고, 그 때 교사에 대한 꿈을 구체적으로 갖기 시작했었다고 이야기해줘서 고마웠다.
Q. 교사 제자를 포함한 새내기 교사에게 무슨 얘기를 꼭 해주고 싶나?
교사는 다른 직업과 달리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 각자의 인생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교단에 설 때 이런 생각을 다분히 추상적으로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교사인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자라도록 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누군가 알려줬더라면 내 교직 생활은 훨씬 더 시행착오도 적고, 더 풍부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후배 교사들에게 이 점을 꼭 얘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회가 있으면 꼭 혁신학교에서 근무해 보라는 것이다. 교육전문가로서 교사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더 깊이 되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Q. 끝으로 교육전문가이자 자유시민으로서 향후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아이들 교육을 위한 기여는 꼭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교사로서의 삶은 마무리했지만 민주시민교육단체인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라는 곳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학교 안팎에서 교육혁신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도 더 빨라질 것이다. 또한 나는 개인적으로 교직을 떠나 ‘완전한’ 시민이 되었지만 학교 현장에 있는 50만 교사들은 아직 그 족쇄에 묶여 있다. 25년 함께 한 교직 동료들의 시민적 권리 회복을 위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인터뷰를 보시는 많은 분들이 징검다리교육공동체의 활동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시면 참 고마울 것 같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