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희 교육감표 책임교육의 현장을 다녀오다
대안학교라면 사립학교로만 생각하고 공립 대안학교가 있는 줄 모르는 분들이 많다. 그럴만한 것이 아직까지도 전국적으로 11개밖에 안 된다. 그 중 제법 유명한 학교가 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남 창원의 태봉고라면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자리 잡은 현천고는 작년 3월 개교해서 이제 2학년까지 채운 신생 공립대안고다. 녹음이 푸르른 6월 23일, 강원도 공립대안학교 현천고와 전 체시설을 위스쿨로 전환해서 운영 중인 강원학생교육원을 찾아갔다. 강원도 민병희 교육감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혁신적 책임교육의 현장 두 군데를 견학한 셈이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횡성군 둔내면 현천고에 들어서자 박경화 교장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자주색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맘씨 좋은 동네형님 스타일. 매우 리버럴한 학교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박경화 교장은 평교사에서 바로 교장으로 부임한 이른바 내부공모제 교장선생님으로, 이 학교를 2년 넘게 준비한 태스크 포스의 일원으로 전국의 공사립 대안학교를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준비과정이 길고 철저했지만 횡성 학교사택에서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주말부부생활을 감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단다.
개교 준비단계에서는 지역사회에서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 돼 반대운동도 전개됐다. 이상한 애들만 모아놓은 학교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꾸준하고 정성 어린 노력으로 지금은 많이 완화됐지만 횡성군을 넘어 강원도 전체에서 학생을 받는 학교라서, 그것도 신생학교라서, 지역사회와 섞이는 게 쉽지만은 않다. 지금도 체육선생님이나 음악선생님을 지역사회로 파견해서 동네주민들에게 배드민턴이나 악기레슨을 제공하는 등 지역사회 속으로 자연스럽게 배어들어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천고는 학년당 15명씩 3학급으로 한 학년이 총 45명에 전체 학생 수가 135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대안고등학교다. 작년에 개교했기 때문에 현재는 2학년까지밖에 없고 내년이 돼야 꽉 찬다. 학생 정원을 135명으로 정한 이유 중 하나는 강원도의 2014년 고등학교 중도 탈락생 수가 1,350명이었기 때문이다. 이 중 10%만이라도 제대로 교육해서 학업을 계속적으로 유도해보자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현천고에 오는 아이들의 70%는 흔히 말하는 부적응학생, 상처 많은 아이들이고 나머지 30%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대안교육을 받으러 들어오는 아이들이라는 설명이다. 학부모들은 입시교육을 원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야만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낼 수 있다. 모든 학생은 100% 무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며 금요일 5교시를 끝내고 집에 보낸다. 규칙을 어겨서 벌을 받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일요일 저녁에 돌아올 수 있다. 여기서는 학교에 안 와도 되는 정학보다 기숙사 퇴사조치를 아이들이 제일 싫어한다. 집이 아무리 멀어도 학교를 날마다 통학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 수는 적지만 학교시설은 전혀 작지 않다. 우선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남녀 기숙사동이 하나씩 있다. 그리고 특별활동실이 워낙 잘 돼 있다. 목공실, 음악실, 요리실, 미술실, 밴드실, 연기실은 물론 노래방까지 없는 게 없다. 도서관과 체육관 외에 공연과 모임 목적의 다목적 강당도 따로 있었다. 이 정도 시설이면 세상 어디에 내놔도 훌륭한 학교인 것이 틀림없다. 교직원 수로도 아주 좋은 학교다. 교사 14명을 포함해서 총 24명의 교직원이 학생 135명을 돌보기 때문에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10명이 채 안 된다.
학교의 비전은 ‘앎과 삶이 하나 되는 행복공동체’. 교육목표는 당연히 앎으로 성장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행복한 사람 되기다. 이 교육목표를 위해 교육과정도 특색 있게 짰다. 협동조합이해과목, 행복탐색과목, 의사소통기술과목 등이 대표적이다. 생각하는 삶과 표현하는 삶이란 대주제 아래 무학년제로 제공되는 선택과목들이 여럿 있다. 학생들은 매 학기 두 주제군 각각에서 1개씩 2개의 교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이런 교과는 학년에 상관없이 함께 공부한다.
현천고는 특성화고등학교로 분류되기 때문에 50% 이상 전문교과를 제공해야 한다. 다른 특성화고와 달리 이 시간들에 직업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고 입시경쟁교육에 매달리는 일반고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체험학습과 노작교육, 예술교육을 실시한다. 특히 1인1악기를 목표로 다양한 음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파트별 연습실을 여럿 거느리는 음악실과 밴드실을 보며 이 학교뿐 아니라 모든 학교의 표준시설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현천고가 중점을 두는 활동은 공동체회의다. 매주 전원이 모여서 학생생활에 관계되는 큰 쟁점을 놓고 자유토론을 실시하며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한다. 철저하게 자치와 책임을 훈련하는 셈이다. 저녁 7시에서 9시까지는 자율동아리시간이다. 힙합, 연극, 난타, 만화, 언론 등 아이들의 관심사에 따라 수시로 동아리가 만들어진다. 어느 정도 지속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학교가 지원해준다. 90명의 학생 중 30명이 담배를 피웠으나 현재 17명으로 줄어들었다. 약간의 양성화정책과 철저한 자율규제가 효과를 내고 있다.
1학년 때는 전원이 2박3일간 장장 횡성군과 원주를 도는 150킬로미터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간간히 지역역사와 생태를 학습하며 고갯길이건 어디건 다함께 움직인다. 한 사람이라도 힘들어서 자전거에서 내리면 전원이 내리게 돼있다. 2학년 때는 3박4일간 80킬로미터 도보여행을 한다. 이때도 지역역사와 생태를 학습하고 체험한다. 3학년에 뭘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2학년 아이들은 내년엔 3보1배(3步1拜) 여행을 시킬 게 틀림없다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린단다. 실은 마음 맞는 아이들끼리 조를 짜서 자율여행을 가게 할까 고민 중이란다. 수학여행은 따로 없다.
박경화 교장선생님은 “우리학교의 라이벌은 믿거나 말거나 민사고”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다. 민사고와 매해 티볼 경기를 치르는데 금년엔 현천고, 작년엔 민사고가 이겼단다. 민사고가 이겼을 때 현천 아이들은 바로 축하를 건네고 후속경기에서 민사고를 응원한 반면 금년도 대회에서 현천고가 이겼을 때 민사고 아이들은 축하도 응원도 안 해주더란다. 그런 속 좁은 행태를 보고나서 이제는 민사고도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이런 기상과 마음으로 쭉 나아가기 바란다.
현천고보다도 더 놀라운 민병희 교육감표 강원책임교육의 현장은 강촌에서 좀 더 들어가면 있는 강원학생교육원이다. 강원도를 제외한 시도교육청 학생교육원은 100% 고품질 수련시설로 운영된다. 레크리에이션 1급자격증이 있는 청소년지도사들이 상주하며 초중고생 수백 명을 1박2일이나 2박3일 프로그램으로 돌린다. 아이들은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다양한 야외활동을 즐긴다. 바위타기를 비롯해서 다양한 시설과 장비가 완비돼있다. 몸 쓰는 걸 좋아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에게는 수학여행보다 더 재밌는 추억거리가 된다.
하지만 강원학생교육원은 다르다. 여기는 수련시설이 아니라 상담치유와 회복을 전문으로 하는 위스쿨로 운영된다. 2013년에 환골탈태하기 전까지는 이곳도 수백 명의 아이들을 받는 전형적인 교육청 직속 학생수련시설이었다. 이 시설을 상처투성이 말썽꾸러기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전문시설로 탈바꿈시킨 것이 민병희 교육감이다. 그는 확고한 비전과 의지로 2년 넘게 준비해서 2013년 봄부터 새롭게 문을 열었다. 본인과 학부모의 동의를 받아서 학교가 의뢰한 초고난도 아이들 25명을 받아서 6주간씩 기숙생활을 시키며 자아를 만나고 내면의 힘을 키우는 책임교육의 현장으로 바꾼 것이다. 이 프로그램만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이 무려 열여덞 분이나 된다. 그 가운데 열 분은 상담전문가들이고 나머지는 교과교사들이다.
당연히 비용이 만만치 않다. 6주 프로그램은 연중 4회 실시된다. 연간 총 100명의 초고난도 아이들을 위한 집중 돌봄 시설인 셈이다. 최근에 초등학교 말썽꾸러기들을 위한 2박3일 프로그램도 추가했지만 말썽꾸러기 중고생들의 자퇴방지와 자생력 회복을 위한 6주간 집중상담치유프로그램이 여전히 주축이다. 이를 위해 행정직까지 무려32명의 직원을 쓴다. 인건비와 시설관리, 교육운영 경비까지 연 18억쯤 소요된다. 소소한 여타 프로그램 운영을 감안해도 6주 프로그램에 거의 1인당 1천5백만 원 가까운 큰 돈이 투입된다는 뜻이다. 1년 공교육비로 학생 1인당 1천만 원을 쓰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큰 투자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향후 100년 넘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합목적적 투자라고 할 수 있다.
6주 프로그램을 연 6회쯤으로 늘려서 더 많은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면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을까? 프로그램 전후해서 워낙 많은 준비시간과 평가시간, 사후관리시간이 들기 때문에 그게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이는 물론 선생님과 학부모를 미리 접촉해서 아이의 성장경로와 문제상황을 파악하는 준비과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의 노동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첫 주는 날마다 밤 10시까지 낯설어하며 저항하는 아이들과 씨름한다. 집단상담과 개별상담을 통해서 아이 하나하나와 신뢰와 라포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두 손 두 발 다 든 아이들을 25명이나 모아놓고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고 손이 갈지 생각해보라. 이 아이들은 문제가 많은 가정에서 자라났든가 비뚤어진 반항으로 길을 잘못 들어선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좋은 생활습관이 별로 없고 결핍과 박탈, 불신과 조롱에 익숙해진 상처 많은 아이들이다. 폭력성과 공격성이 높고 자존감이 낮으며 우울감이 높은 아이들이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이 뭐가 문제냐”며 진심으로 수용하고 지지하는 이곳 선생님들, 정말 대단하시다. 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현천고와 학생교육원의 혁신적인 교육과정과 교육시설은 미세한 부분까지 여기 선생님들의 생각과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 선생님들은 뭔가 공교육의 새 역사를 열고 있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얼굴이 빛났다. 무엇보다 고난도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넉넉한 품이 느껴졌다. 선생님들의 헌신과 열정이 없이는 결코 혁신교육이나 책임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었다. 강원학생교육원과 현천고등학교의 감동적인 책임교육은 사명감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일군(逸群)의 선생님들이 민병희 교육감의 확실한 지원 아래 철저한 학습과 세심한 준비를 거쳐 만들어낸 강원교육의 걸작이자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뿌듯했다. 아이들의 삶에서도 이곳을 거치면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지나갈 것 같다. 아이들이 그 힘으로 신발끈 다시 매고 길 떠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이제야 비로소 공허한 말의 잔치를 넘어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의 치열한 현장을 갖게 됐다. 민병희 교육감은 아침마다 배드민턴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주말이면 밭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뚝심 있게 강원혁신교육을 추진한다. 민병희 교육감, 그가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