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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반환점을 돈 2기 진보교육감 – 진보적 교육감, 진보의 교육감, ‘진보교육’ 감, ‘교육 진보’ 감?

#218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2016.07.20

이른바 2기 진보교육감의 임기가 절반이 지났다. 2기 진보교육감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다는 것은 이른바 1기 진보교육감 때와는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우선 양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1기 때는 진보교육감이 6명에 불과하여 소수의견 그룹에 불과했다. 하지만 2기 때는 무려 13명이나 되는 진보교육감이 탄생하여 오히려 보수교육감이 소수의견 그룹이 되었다. 전국의 12,000여 개의 초·중·고등학교들 중 무려 11,000여 개의 학교들이 진보교육감 관할에 놓였다고 하면 더 실감이 날 것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여건과 인식도 진보교육감에게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빨갱이 교육감 등의 의구심 어린 눈총도 거의 사라졌다. 혁신학교나 학생인권 같은 의제도 이제는 상당히 보편화 되었다. 대구, 경북 등 이른바 보수교육감의 텃밭에서도 혁신학교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수업이 도입되고, 성적 줄 세우기 교육을 벗어나야 하며, 문예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김영란 법 제정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부정과 비리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도 매우 높아졌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진보교육감들에게는 도리어 위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1기 때는 청렴한 공직사회, 체벌에 대한 반대, 다양한 학생 참여형 수업 장려만으로도 진보교육감의 차별성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보수 정권이 자유학기제를 먼저 도입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진보진영에서 수능의 난이도를 낮추고 등급제 자격 고사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지금은 보수 정권이 앞장서서 수능을 물 수능으로 바꾸고 있다. ‘진보교육감’이라는 브랜드만으로 희소성을 주장하며 지지를 호소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오히려 지역에 따라서는 ‘진보교육감’이라는 말에 피로감을 느끼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왜 교육감이 아닌 진보교육감을 선출해야 하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설명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문제는 진보교육감이라는 말 자체가 마치 장님 앞에 선 코끼리처럼 의미가 너무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이유로 다른 성격의 교육감 이미지들을 만들어 놓고는 저마다의 ‘진보교육감’을 규정한다. 그리하여 진보교육감 앞에는 수많은 “진보교육감은 ~~해야 한다.”라는 요구들이 쏟아져 내린다.

 

당연히 이걸 다 들어줄 수는 없다. 이 요구들은 스펙트럼이 넓을 뿐 아니라 심지어 서로 상충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중 일부만을 취사선택하면 “진보교육감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우리를 배신했다.”라는 식의 비난이 사방팔방에서 터져 나온다.

 

이때 누구에게도 비난 받지 않는 길을 찾으려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그 길은 치명적인 함정이다. 한쪽의 비난을 잠 재우면 마치 풍선처럼 다른 쪽에서 “배신자”, “무능력자” 등등의 비난이 쏟아져 나오는 일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우왕좌왕 하다 보면 결국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이 산으로 강으로 정신없이 오가다가 결국 바다 구경도 못해보고 임기가 끝나버린다.

 

그러니 진보교육감은 어떤 의미에서의 진보교육감이 될 것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진보적’ 교육감, ‘진보의’ 교육감, ‘진보교육’ 감, 그리고 ‘교육 진보’ 감 중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선택해야 함을 말한다.

 

‘진보적’ 교육감이란 사회 진보를 추구하는 교육감이다. 즉 교육행정, 학교 운영을 민주화하고 권위주의를 일소하고, 교육의 여러 혜택이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더 많이 주어지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교육감이 진보적 교육감이다. 만약 진보적 교육감의 길을 선택했다면 어떤 특정한 방향의 교육철학이나, 특정한 교육방법을 주장하거나 요구하는 일까지는 손대지 말아야 한다. 더군다나 특정한 유형의 모델을 혁신학교라고 규정짓고 기존 학교를 구시대 학교로 매도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행위를 하는 순간 진보적 교육감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진보적 교육감에게 혁신 학교란 특정한 학교 모델, 특정한 수업이 이루어지는 학교가 아니라 교육 주체들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민주적이고 창조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일 뿐이다. 어떤 방식의 교육을 할지는 각 학교에서 교사들이 정할 일이지 교육감이 예시를 들어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적 교육감이라면 혁신학교의 모델을 지정해 주는 일보다는, 다른 학교보다 더 열성적이고 창조적으로 운영될 혁신학교가 가능하면 중산층 주거지역보다는 취약계층 주거지역에 집중되도록 예산이나 교육 자원 배치를 조정할 것이다.

 

‘진보의’ 교육감은 자신을 진보진영의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이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교육감이다. 달리 말하면 운동권 교육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진보교육감 중 대놓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의외로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실제 선거 과정에서 이른바 ‘진보진영’ 단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상의 권리이자 의무다. 설사 진보진영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교육감은 교육을 생각해야지 진영을 우선시해서는 안된다. 만약 교사보다 운동권 인사들과의 소통이 많다고 느껴진다면 진보 교육감은 냉철하게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물론 교사와 소통하는 것은 운동권과 소통하는 것보다 답답하고 지루하다. 교사들은 그 본성상 보수적인 성향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완전한 진보가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교육은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일임과 동시에 과거의 유산을 전수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중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지 않다. 진보 교육감도 교육감인 이상 교육을 책임져야지 특정한 진영의 운동 지형을 넓히는 일에 의식적이던 결과적이던 복무해서는 안된다.

 

‘진보교육’ 감은 교육에 대한 여러 견해들 중 ‘진보교육’이라는 특정한 견해를 지지하고 이를 관철시키려는 교육감이다. 거칠게 분류하자면 장 자크 루소를 그 기원으로 하고 존 듀이를 거쳐, 프레네, 몬테소리, 비고츠키, 프레이리 등의 교육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진보교육’으로, 리차드 스탠리 피터즈, 제롬 브루너(1990년 이전) 등의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면 ‘보수 교육’으로 볼 수 있다. 또 미국에서는 진보주의 교육학에 가까운 타일러, 블룸 등도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주의 쪽으로 분류된다. ‘진보교육’ 감은 자신이 실제로 진보주의 교육학에 정통한 교육자라면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보수교육’ 감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4년마다 벌어지는 교육감 선거를 수준 높은 교육 토론의 장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육감 자신이 진보교육학에 대한 충실한 학습과 연구 없이 다만 진보교육을 내세우는 몇몇 학자나 교육 단체의 의견에 따라 ‘진보교육’을 추진하는 경우다. 이는 일선 학교의 교육전문가들인 교사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심하게 표현하면 진보라는 이름의 파쇼에 가깝다. 만약 자기 자신이 충분히 교육학을 연구하고 실천한 교육자가 아니라면 진보교육감은 ‘진보 교육’ 감이 되려고 나서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진보의’ 교육감은 바람직하지 않고, ‘진보교육’ 감은 현행법상 교사가 교육감 선거에 나서거나 관여할 수 없기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진보교육감은 상당히 오래 전에 교사였거나 혹은 초중고등학교 교육 경력이 없는 대학교수들, 그것도 교육학 전공자보다는 각종 시민운동에 참여했던 교수들이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선택지는 ‘진보적’ 교육감 뿐일까? 하나가 더 남아있다. 그건 바로 교육을 특히 공교육을 각종 정치적, 경제적 풍파로부터 지켜내고, 교사와 학생의 상호관계를 소중하게 여겨 이 싹이 훌륭한 교육으로 무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를 스스로 어떤 진보교육을 주창하기보다는 교육이 스스로 진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교육 진보’ 감이라고 불러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진보적’ 교육감, ‘진보교육’ 감과도 크게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 진보교육은 학생이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을 중요시한다. 진보교육의 핵심은 ‘학생 중심’이 아니라 학생이 올바른 길로 성장하도록 나쁜 외적 영향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을 그저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을 낡은 제도나 관행, 편견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보교육감 역시 교사가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고, 교사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외적 간섭과 억압을 막고, 학교에 찌들은 낡은 관행과 제도를 혁파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즉 진보적 교육감의 역할을 함으로써 교육의 진보를 이루고 그럼으로써 진보교육을 꽃피우는 것이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그렇게 꽃 피운 진보교육을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의 학생들이 누릴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제공한다면 금상첨화가 되겠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바로 진보교육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청렴한 학교니, 학생중심의 교육이니, 문예체 교육이니, 창의적인 교육, 협력적 교육 같은 것들은 이제 보수교육감, 수구교육감도 다 외치는 구호가 되었다. 문제는 그것을 관철시키는 방식이다.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교사들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능동적으로 제거해 주느냐 아니면 교사들에게 진보하라고 강요하느냐, 바로 여기에서 진보교육감의 리트머스 종이가 드리워질 것이다. 2기 진보교육감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고 있는 시점에서 진보교육감을 자처하는 교육감이라면 자신의 마음 속에 리트머스 종이를 한 번쯤 담가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민주주의가 남는다. 존 듀이의 기념비적인 저작이 ‘진보와 교육’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교육’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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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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