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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 네비게이터 101 – “보수, 좌향좌! 진보, 우향우!”

#217 이재경, 뉴욕주립대 버팔로 교육대학 석좌교수 2016.07.20

지난 번 칼럼 “수퍼맨, 우리 아이를 구해줘!”에서 교육이 나아갈 목표와 방향, 즉 비전과 전략의 열쇠는 리더십이고, 교육혁신을 이끌 현장의 리더가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을 배에 비유하자면 배가 항로를 못 찾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배 안에 탄 많은 학생과 학부모 승객들은 머리가 어지럽고 탈출하고픈 지경이다. 문제는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 같은 선장이 자주 바뀌는 한편, 그때마다 인기를 따라서 혹은 권력을 따라서 항로가 자주 변경된다는 점이다. 때로는 교육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모두 뱃사공이 되어 서로 노를 잡고 다투다 보니 그 배가 산으로 갈 지경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은 바람을 많이 탄다. 혹자는 교육개혁을 시계추에 비유하기도 하고 혹자는 사이클(유행주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새롭다고 주장하는 교육정책도 알고보면 오래전에 시도되었던 정책의 재탕이거나 재포장되어 리브랜딩한 경우가 종종 있다. 교육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실증적인 연구를 통한 증거기반이 약한데다가 정치사회적인 풍랑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대학입시 정책은 조변석개의 대명사로, 또 고치고 바꾸고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대의명분이 없는 정책은 없지만 ‘정말 실리가 있는지,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를 묻고 싶다.

 

교육에서 이념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대립양상이 복잡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교육과정 대 학생, 즉 우선순위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보수는 교육과정을 우선시하는 반면에, 진보는 학생을 우선적으로 챙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모두가 교육의 핵심적 요소들이다. 학생이 없는 (즉 배우려고 하지 않는) 교육과정은 의미가 없고, 또한 교육과정이 없는 (즉 배울 기회가 없는) 학생에게서 어떤 교육의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 고래 싸움에 공교육이 침몰하게 되면 학생과 교육과정이 모두 온전할 리가 있는가?

 

진보는 학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학교와 교사에게 보다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의하면 교육에서 재정지출과 학습결과의 관계는 일관적이지 않고, 관계가 있다 해도 그다지 크지 않다(저소득층이나 개발도상국과 같이 교육 인프라와 지원이 미흡한 경우는 예외). 한마디로 교육개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 지원이 많으면 좋지만 재정의 낭비와 비효율의 문제가 발생한다. 노력하지 않는 교사와 학생에게서 향상을 기대할 순 없다. 그리고 지원이 과연 학생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교원단체가 학생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학생이 조합에 가입해 회비를 내야 할 거라는 농담까지 생겨났다.

 

반면에 보수는 자원의 낭비를 막고 효율성을 증대하고자 교육에서 정부의 역할보다는 시장(market)의 기능을 강화하여,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공급자 인센티브를 높이고자 한다. 한편 교육과정을 수호한다는 명분 하에 교과서의 내용과 기준을 통제하고, 시험을 통한 학생평가를 강화하여 교육의 책무성을 높이고자 한다. 학교선택 및 운영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신에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을 묻고자 당근과 채찍을 쓴다. 그러나 연구에 의하면 학교선택과 고부담 시험(high-stakes testing) 등을 통한 책무성 정책은 일관된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고 교육과정 왜곡과 시험점수 부풀리기 같은 역효과를 낳았다.

 

미국교육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이념전쟁 같지만 승패는 결국 학생에 대한 교육의 결과로 심판한다. 과거에 진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유행한 학생중심의 열린교육 정책이 학습향상에 실패했던 이유는 학생들의 호기심과 탐구활동을 이끄는 과학적인 교육과정과 교사의 리더십이 부족해서다. 반면에 보수진영에서 추진한 교육과정 표준화와 고부담시험을 통한 성적 따기 위주의 학교/교사 책무성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교육성과를 시험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재단한 탓이다.

 

보수건 진보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의 진단도 제대로 않고 마치 특효약인 것처럼 새로운 처방전을 내놓는다. 그 실험대상인 학생과 학부모가 피해자다. 결국 보수와 진보 모두가 교육의 패자인 셈이다. 완벽한 정책은 없다. 그러나 결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문제를 개선하느냐, 아니면 독선과 오만으로 이를 반복하느냐이다. 보수적 교육정책의 신봉자였던 사학자 다이앤 라비치(Diane Ravitch)는 학교선택과 고부담 시험정책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부작용을 낳았다는 연구결과를 시인하고 그 대안을 제시했다.

 

교육의 배를 흔드는 정치적 외풍은 내일 어디로 불지 모른다. 교사들이 앞장서 미래의 주인인 학생들을 잘 교육하여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윈윈(Win-Win)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의 진보적 교원노조 AFT(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의 전 수장 알버트 셴커(Albert Shanker)가 낙제학생들의 대안교육을 위해서 지금은 공교육 민영화의 아이콘이 된 차터스쿨(자율형 공립학교)을 처음 제안했던 것처럼 교육혁신에는 좌우가 없다. 교육계는 진영의 벽을 없애고 보다 나은 학생을 위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서로 마주 보며 협력할 때 박수를 받을 것이다.

 

“보수, 좌향좌! 진보, 우향우!”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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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립대 버팔로 교육대학 석좌교수 이재경

연세대 졸업(교육학 학사와 석사) 후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뉴욕주립대 버팔로(University at Buffalo, SUNY) 교육대학 석좌교수(UB Distinguished Professor)로 재직 중이며, 또한 미국 교육학회 펠로우, 스탠포드대 행동과학연구센터 펠로우, 콜로라도대 교육정책센터 펠로우이다. 주요 저서인 "학력격차의 해부"(The Anatomy of Achievement Gaps)를 통해 미국 교육의 수월성, 형평성, 그리고 책무성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였고, 한국과의 국제비교를 통해 새로운 교육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옥스포드 대학 출판사 발간). 특히 미국의 낙제학생방지법의 효과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 등을 통해 모든 인종 및 사회집단 간의 학력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의 평가와 논의에 기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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