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교교육 변혁을 위한 10가지 질문과 10가지 대안
목차
1. 시작말
2. 한국 학교교육 변혁을 위한 10가지 질문과 10가지 대안 모색
<질문1> 우리는 어떤 새로운 미래학교를 원하며 이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가?
<질문2>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교육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질문3> 21세기에 적합한 교육과정은 무엇이고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가?
<질문4> 학습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육(Meaningful Education for All)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질문5> 교사들을 집단유능감·집단책임감·사명감이 강하고 전문성이 뛰어난 공동체로 어떻게 거듭나게 할 수 있는가?
<질문6> 21세기 교육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질문7> 학교교육을 바르게 견인할 대입전형 제도는 어떤 것인가?
<질문8> 미래의 학교교육 거버넌스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질문9> 새로운 미래교육 생태계에 적합한 책무성 제도는 어떤 것인가?
<질문10> 학교교육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의 원리를 필요로 하는가?
3. 맺음말
1. 시작말
20세기 산업수요에 맞추어 만들어진 현재 한국의 학교교육은 심각하게 병들었다. 『핀란드 교육의 교훈(2012, 2015)』의 저자 Pasi Sahlberg의 용어를 빌면 학교교육은 전 지구적 규모로 번진 교육개혁운동(Global Educational Reform Movement: GERM)에 의해 이 운동의 두문자(頭文字)가 가리키는 GERM 즉 세균에 감염된 것이다. 대표적인 증세는 교육을 표준화하고 표준화 시험의 결과로 책무성을 관리함으로써 교육을 시험 성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다. 또 핵심과목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지덕체의 고른 발달을 저해했다. 정답만을 찾게 함으로써 새로운 실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꺼리게 만들었다. 이는 치명적인 GERM 바이러스의 대표적인 폐해다. 그동안 세계 어떤 나라도 아직 이 세균을 퇴치할 해독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보스턴 대학의 교수인 앤디 하그리브즈와 데니스 셜리가 『학교교육 제4의 길』이란 책을 통해 교육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학교교육 제4의 길은 GERM 바이러스의 원인분석과 퇴치를 겨냥한 최초의 종합처방전인 셈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핵심 메시지는 “이제 낡은 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과감히 새로운 비전의 길인 제4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성공을 넘어 공동선을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의 길이고, 사회통합의 길이며 인간성이 넘치는 세상을 추구하는 길이다. 이는 또한 모든 아동청소년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최고의 재능을 발견해 키워주는 길이며 학생을 승자와 패자로 가리지 않는 새로운 길이다. 이는 기존의 제도 속에서 최적화를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 학교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길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을 계기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에 대해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마치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교육이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과 매우 달라져야 하는 듯 접근하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이미 미래사회는 우리 곁에 와 있다. 가령 2030 미래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할 도전은 이미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고 이야기해왔던 것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은 현재의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재의 교육이 마주한 도전은 그대로 놔두고 미래의 학교교육으로 관심과 초점을 이동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접근이다. 교육의 기본과 근본은 사회가 변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2030년 미래교육/미래학교 상상’에 관한 세계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런 때일수록 한국의 학교교육이 기본에 충실하며 차분히 ‘학교교육 제4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자는 한국의 미래 학교교육의 방향을 탐색하기 위해 10가지 질문을 선정하고 그 해법을 제4의 길 방식으로 찾아보고자 한다.
2. 한국 학교교육 변혁을 위한 10가지 질문과 10가지 대안 모색
한국의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매우 많다. 그러나 핵심은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 각자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면서 모두가 승자가 되는 학생중심 교육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아래와 같이 10개의 질문을 선정했고 이에 대한 필자의 대안을 정리해보았다.
<질문1> 우리는 어떤 새로운 미래학교를 원하며 이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가?
미래학교에 대한 예측이나 연구는 매우 많다. 대표적인 예가 OECD DeSeCo(Definition and Selection of Competencies, 2002) 프로젝트의 6가지 학교교육 변화 시나리오와 영국 FutureLab의 Beyond Current Horizons 연구(2007)가 제시한 6가지 시나리오다. 이는 학교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식의 연구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학교교육 변화를 몇 개의 시나리오로 작성해본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세상과 교육의 변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검토해볼 수 있게 해주고, 우리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의미가 있다.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미래의 학교교육 관련 연구들이 있는데 그 내용이 우수하여 한국이 교육의 미래를 연구할 때 참고하면 좋을 만한 것들이라 여기에 소개한다.
1) 유럽위원회 합동연구소(IPTS)의 ‘학습의 미래(The Future of Learning)’
○이는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소속 합동연구소(JRC: Joint Research Centre)의 하나인 IPTS(Institute for Prospective Technological Studies)가 유럽 각국의 다양한 분야에서 선발된 13명의 전문가로 국제 연구팀을 구성해서 수행한 연구 결과물이다. 이 연구는 연구 기법(GCM: Group Concept Mapping)뿐만 아니라 내용도 우수하다. 이 연구는 연구를 시작한 시점(2010)으로부터 10~20년 후 교육과 훈련에 일어날 주요 변화를 ‘중요성과 실현가능성’을 기준으로 12개 항목(교육에 있어서 기술의 사용; 학습을 향상시키는 도구와 서비스; 교육의 오픈 소스; 평가와 자격 인증; 교육의 글로벌화; 학교의 역할; 개인화와 직업준비 교육; 교사의 역할 변경; 평생학습; 비형식 교육의 비중과 중요성 증가; 학습의 개별화와 사회적 학습; 교수학습 원리의 인식론적/존재론적 기반)으로 분류하고 주요 예측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 2030년 미래교육/미래학교 상상
• 상현실/중강현실이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이다.
• 학습 효과를 높이는 약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복용될 것이다.
• 관심이 같은 동료들과 그룹을 지어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과 서비스가 개발될 것이다.
• 교육의 오픈 소스가 광범위하게 채택될 것이다.
• 배우는 방식대로 평가하는 방식이 개발될 것이다.
• 자격증의 글로벌 표준이 제정될 것이다.
• 어떤 자격증을 가졌는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 모든 교육시스템은 상호 연결될 것이다.
• 학교의 주 역할은 학습자 각자가 어떤 학습경로를 선택하고, 어떤 학습 유형과 필요한 자원을 선택하며, 학습한 내용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안내하는 역할이 될 것이다.
• 학교는 공동체의 지식 센터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 탐구중심의 교수요목을 제공하는 대학들이 생겨날 것이다.
• 목적과 흥미에 따라 분야 간, 과목 간 학교 간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것이다.
•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고등교육은 민간 개인의 부담으로 전환되기 시작할 것이다.
• 학급 구성의 기준은 연령 대신 지식, 역량, 흥미, 학습유형 등이 될 것이다.
•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경로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 학습은 개인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외부 평가에 의존하지 않게 될 것이다.
• 교사 본연의 역할은 학습의 중재자/(공동)학습자가 되는 것일 것이다.
•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 내 사람들과 학습하는 것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 전문성 네트워크가 교육의 다양한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교육은 학교교실을 떠나게 될 것이다.
• 학교를 중단하는(또는 졸업하는)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질 것이다. 학습에 더 적합한 환경과 대안이 학교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 학습은 점점 더 맥락이 있고 범교과적 문제해결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 전통적 교과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다. 학습자가 범교과적 학습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 한국사회는 우선 이 연구가 밝히고 있는 미래교육의 상상 중에서 ‘교육은 학교교실을 떠나게 될 것이다.’란 예측에 주목했으면 한다. 이미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 한다. 학교가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교육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사람들은 학교 밖에서 대체 수단을 구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가장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한국이다. 보완 및 대체수단으로는 사교육, 대안교육 등이 있다. 지금은 마을교육도 불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에는 또 민주시민교육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생학교’라는 곳도 생겨나고 덴마크식 새로운 학교의 실험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모두 학교교육의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 생각된다.
그 다음으로는 위 연구가 예측하고 있는 내용 중 ‘학급 구성의 기준은 연령 대신 지식, 역량, 흥미, 학습유형 등이 될 것이다.’,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경로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학습은 개인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외부 평가에 의존하지 않게 될 것이다.’ 등에도 주목했으면 한다. 이런 예측은 매우 공감이 가는 것들이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연간 수십조 원의 금전적 낭비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이 수많은 아동·청소년들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견하고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낭비를 넘어서 헌법 11조 ①항(‘누구든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을 위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최소한 10~20년 앞을 내다보며 제4의 길이 말하는 가슴 뛰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교육비전을 만들고(☞ <질문2>의 ‘한국 학교교육 비전’) 이를 실현하기 위해 모두의 지혜와 노력을 합쳐야 할 것이다.
2) 벨기에의 ‘학습 및 재설계 연구소(The Learning and Redesign Lab)(이하 L&R 연구소)’의 “2030년 미래학교: 어떻게 학습과 연구를 더 매력적이게 만들 수 있을까?(The New School in 2030: How can we make learning and working attractive?)”란 연구보고서
○ 2014년에 공개한 이 연구보고서는 벨기에(더 정확히는 벨기에의 플랑드르 자치지역)의 교육부와 교육위원회, 그리고 킹바우도우인 재단(King Baudouin Foundation)의 공동 사업으로 추진된 결과물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는 일이다. L&R 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2가지 핵심질문으로 이 연구를 시작한다.
아동들이 학업과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주는 것
1. 우리는 2030년의 미래학교를 어떤 방법으로 배우고 연구하는(to learn and to work)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 수 있을까?
• 과제: 바람직한 미래 구상, 도발적인 제안서 작성
2. 2030 미래학교를 실현시키기 위해(to make it happen)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과제: 실현 수단의 강구 및 변화 전략 수립
○ 이들은 2030년 미래학교의 새로운 모델로 ‘학습공원(The Learning Park)’을 소개한다. 학습공원은 오늘날의 학교를 대체할 매력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적 학교의 모습일 수 있다. ‘학습공원’은 지역사회 속에 뿌리를 내린 열린 학습공간이다. 이는 물리적 공간과 가상공간에 동시에 존재한다. 또한 사람들을 초대해 관계를 맺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열린 공간이지만 때로는 필요에 따라 전통적인 학교처럼 닫힌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핀란드도 이보다 앞서 2030년의 학교모델로 ‘학습마을(learning village)’을 제시한 적이 있다 이 둘은 그 특성이 매우 유사하다. 이런 미래학교는 연령에 관계없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서로로부터’ 배우는 장소다. 그리고 무학년제이며 교사는 팀으로 기능하게 된다. 학교 운영방식도 지역에 따라 그 규모와 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학교 내에 ‘아카데미(academy)’라고 부르는 작은 학교가 있고, 이런 아카데미 속에는 소규모(15-20명) 학습공동체인 ‘학습가족(learning family)’이 있다. 미래학교의 운영 방식은 매우 민주적이며 협동조합과 흡사하다.
미래학교 학습공원은 학사운영이 매우 신축적이고 여유가 있다. 오전에는 가장 기본적인 교과 수업을 한다. 전통적인 학교처럼 많은 과목을 강제로 배우게 하지 않는다. 2030년쯤에는 지금의 ‘강제’란 것이 대부분 ‘선택’에 맡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한국에도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를 학생들이 결정하게 하는 실험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벨기에의 L&R 연구소가 상상하는 2030년 미래학교는 파격적이지만 이미 한국에도 이런 움직임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일반학교와 대안학교, 일반고와 특성화고, 학교와 마을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앞으로는 학년의 구분, 나아가 초중고의 경계 역시 흐려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제기능을 하는 학교가 되려면 나이보다는 흥미, 장래 희망, 학습 이력 등이 학습단위(learning unit) 혹은 학습그룹(learning group) 편성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의정부의 ‘꿈이룸 학교’가 대표적인 예다. 학생의 구성을 보면 일반학교, 대안학교, 홈스쿨링 출신의 학생은 물론 학교를 다니지 않던 학생 등이 함께 어우러진 학교다. 초등학생과 고교생이 한 팀이 되고 초등학생이 팀장이 되기도 한다. 이는 학습공원이나 학습마을의 초기 형태라고 생각된다. 이런 변화는 빠를수록 좋다. 정부나 교사는 이를 막지 말아야 한다. 공적 학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학교 밖 시스템에서 필요한 것을 찾거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공교육 외부에서 성공적인 교육실험이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공교육을 변혁시키는 새로운 힘이자 모델이 되게 해야 한다.
○ 미래의 학교는 학교란 개념 자체가 변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이제 교육이 일어나는 장소를 학교로 한정하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21세기는 다양한 장소와 공간에서 학습이 일어난다. 학교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가정과 지역사회를 학습의 주요 파트너로 포함시켜야 한다. 학습의 모든 책임을 학교로 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교육의 목표를 학교 혼자서 달성하는 것은 실현가능하지도 않다. 이제 교육의 책임을 학교에만 있는 것으로 규정하지 말고 가정과 지역사회(기업, 민간단체, 시민단체 포함)도 교육이 일어나는 중요한 장소 즉 학교로 규정해야 한다. 이를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것도 검토해보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미래 사회에는 학교의 개념부터 달라져야 한다.
○ 바람직한 미래학교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바람직한 미래학교의 상을 도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바람직한 새로운 미래학교의 모습(☞ <질문2> 한국 학교교육의 비전 제안. 이찬승, 2016)을 도출한다 해도 이를 실현시키는 일은 몇 배나 더 어렵다. 바람직한 미래학교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리더십(social justice leadership)이 절실하다. 이는 ‘공정한 교육을 통해 모든 아동의 잠재력을 탁월하게 실현시키기(excellence through equity)’와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높은 기대 유지와 성장관점 유지)’, ‘격차를 줄인다’란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도덕성 높은 교육목적(moral purpose)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질문2>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교육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 21세기가 16년이 지난 지금 각국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이를 교육의 역할과 기능에 반영한다. 이런 움직임은 주요국의 교육비전이나 교육목적에 잘 나타나 있다. 몇 가지 예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핀란드의 교육비전
‘폭넓은 교과목으로 구성된 교육을 탁월하게 실행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미래, 건강과 높은 삶의 질, 경제적 경쟁력을 확보한다(Broad-based education and excellence guarantee a sustainable future, well-being and economic competitiveness).’
핀란드의 교육비전은 국가의 생존, 학생들의 건강과 삶의 질, 그리고 경제적 경쟁력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과거 어려웠던 국가의 역사가 반영된 듯하다.
▷ 스웨덴의 교육목표
① 개인의 자기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to satisfy individual wishes and desires)
②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운다(to bring up democratic citizens)
③ 계층 간의 격차를 줄인다(to decrease the difference between classes in society)
(황선준, 2007)
매우 간명하고 표현이 추상적이지도 않다. 이런 교육목적의 표현 방식은 공유하기도 쉽고, 구체적이어서 교육의 성과를 평가할 때 명확한 기준의 역할을 할 수 있어 바람직하다. 이 세 줄이 모든 교육에 있어서 정북이라는 방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 온타리오 주의 새로운 교육목표
① 탁월성(excellence)을 추구한다(이때의 탁월성은 모든 아동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음).
② 공정한 교육(educational equity)을 추구한다.
③ 아동의 웰빙(wellbeing)을 촉진한다.
④ 학교교육에 대한 자신감(public confidence)을 향상시킨다.
▷ 앨버타 주의 교육비전
① 참여적이고 고등사고력을 갖춘 사람(Engaged Thinker: “I collaborate to create new knowledge.”)
② 윤리적 시민(Ethical Citizen: “I do the right thing because it is the right.”)
③ 모험에 도전하는 사람(Entrepreneurial Spirit: “I create new opportunities.”)
위 사례의 공통점은 좋은 표현을 다 나열하지 않고 추상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수의 핵심 목적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나중에 실행과 평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 한국의 학교교육의 비전, 목적, 목표도 구체적이고 현재의 시대상황을 반영하며 실제적인 것이면 좋을 것이다.
▷ 한국 학교교육의 비전 제안(이찬승, 2016)
“2030년까지 출신·성장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아동·청소년들이
– 신체적·정서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을 유지하는 일,
–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 이를 키우는 일,
– 진학·취업·삶을 위한 준비를 충실히 하는 일,
– 개인의 발전과 성공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성공에 기여하는 일,
– 참여하고 기여하는 책임 있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는 일을
교육목표로 삼고 이를 충실히 실천하는 학교 및 학습공동체를 구축한다.”
▷ 한국 학교교육의 새로운 목표 제안(이찬승, 2015)
① 양극화, 사회갈등 심화로 인한 사회, 학교, 개인의 지속 가능성 위기 → 공정한 학습과 성장기회 제공
② 학교교육이 개인의 이익과 성공 추구에만 몰두하고 있어서 학교와 사회의 지속가능성 위기 → 공동선의 추구
③ 학교 안팎의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 책임 있는 민주 시민성 함양
④ 상위 20-30%를 위한 교육 → 모든 아동의 재능과 잠재력 실현
⑤ 지나친 만성스트레스로 정서, 정신, 신체 건강, 관계의 악화 → 정서적,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웰빙
⑥ 다수의 아동이 현재의 학교교육 내용에 의미를 느끼지 못함; 자신감 상실 →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육(Meaningful Education for All) 실현, 자신감 증대
○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교육의 우선적인 역할은 모든 학생들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실현시키는 일, 최소한의 성취기준에 도달시키는 일, 격차를 줄이는 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자는 물론 사회 전체가 ‘도덕적 교육목적(moral purpose)’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나만 잘되면 그뿐이란 태도가 아니라 서로 돕고 함께 성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래서 교육의 목적 추구에서 도덕성이 높은 나라들은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높은 기대 유지와 성장관점 유지)”, “격차를 줄인다”를 신념으로 삼는다. 한국의 학교교육은 바로 이 두 가지 신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처럼 상위 20~30%를 위한 교육을 실행하면서 수많은 아동을 일상적으로 배제한다면 이는 매우 야만적인 일이며 국가의 성장에 심각한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사회통합이나 민주주의의 발달에 큰 위협적 요인이 될 것이다.
○ 지금처럼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교육으로는 지속가능한 미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세계가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 다행이다. OECD가 PISA 성적을 발표할 때 사용한 문서 이름이 아래와 같다.
『PISA 2012 Results:
Excellence through Equity
Giving Every Student the Chance to Succeed』
‘Excellence Through Equity’ – 불과 세 단어밖에 되지 않지만 이 속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답이 담겨 있다. 이를 번역하면 ‘공정한 교육을 통해 모든 아동의 잠재력을 탁월하게 실현시키기’가 될 것이다. 이것이 학교교육이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 제4의 길이다. 이 때의 공정(equity)이란 “아동들이 학업과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것; 모든 아동들은 배우는 방식과 배우는 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각자에 맞게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Alan M. Blankstein, 2016)”을 의미한다.
○ 미국에서 최근 ‘Excellence Through Equity(2016)’란 제목의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어떻게 해야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학교와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을 포함하여 공정한 교육에 관한 책들에서 ‘사회정의 리더십(social justice leadership)’, ‘필요기반 교육과정(need-based curricular)’이란 용어가 점점 더 빈번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정의 리더십’은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리더십을 말한다.
– 아동들의 학교 밖 삶은 어떤 모습인가?
– 그들은 집에서 어떻게 학습하는가?
– 이들은 어떤 동기와 흥미를 가지고 있는가?
– 그들의 부모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 그들의 학습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서 충족되고 있지 못한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 이들이 필요한 것을 줄 수 있기 위해서 교사는 어떤 스킬과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가?
– 우리는 비난을 중단하고 아동들에 대한 낮은 기대를 중단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는가?
– 우리는 가난이 아동의 삶과 학습에 주는 영향을 정확히 이해하는가?
– 우리는 가난한 가정의 아동들을 위해 더 공정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가?
○ 교육의 표준화도 이젠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의 교육은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 어떤 내용을, 어떤 그룹이, 어떤 수준까지 공통으로 배워야 하는지를 누가 결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동일 연령의 아동들 간에도 발달 등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배울 내용과 수준을 사전에 국가가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 전인교육을 지향해야 할 때 표준화된 소수과목으로 학업성취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 다양성이 급증하는 21세기 학교교육에서 교육을 표준화하고 그 내용을 대규모의 전달식으로 지도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가?
<질문3> 21세기에 적합한 교육과정은 무엇이고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가?
○ 1980년대 결과나 수행기준 교육(outcome-/performance-based education)에 이어 1990년대에는 성취목표기준 교육(standards-based education)이 일반화되기 시작한다. 당시의 정책결정자나 교육 개혁가들은 학교, 교사, 학생이 도달해야 할 분명한 목표를 먼저 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교육을 해나가는 것의 장점에 대해서 거의 의심하지 않았다. 이런 성취목표 중심 교육은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표준화된 시험(standardized tests)을 수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치유 불가능한 수준의 바이러스가 표준화 시험 속에 잠복하고 있을 줄은 핀란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다. 이제 교육의 후기표준화(post-standardization)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논의는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래에 교육에서 공통으로 배워야 할 지식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공통의 지식, 공동의 기능 및 태도를 다루는 핵심 교육과정이 존재하는가?”
“시작점에 갖추어야 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공통의 지식이 존재하는가?”
“지식기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체계화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기본적인 지식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초등, 중등, 직업교육별로 동일한 수준으로 지식의 서술이 가능한가?”
“이러한 수준들은 참여, 사회통합, 지속가능성, 자율, 책임, 창의성 등의 핵심 가치와 어떻게 연계되는가?”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고려하면서 이상의 질문들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면 익숙해져 있는 현재의 교육 표준화와 고교체제가 어떻게 변해야 할지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앞으로의 교육과정은 제4의 길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교육 제4의 길』 은 교육과정이 새롭게 걸어가야 할 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표 1> 제4의 길이 제시하는 21세기 교육과정
▷ 교육과정의 표준화

▷ 교수학습의 범위

▷ 교육과정의 운영

▷ 교육개혁의 추진 원리

▷ 책무성의 작동 방식

(이찬승. 『학교교육 제4의 길』의 관련 내용을 재구성, 2014)
○ 아울러 한국 학교교육의 미래교육과정은 아래와 같은 3가지 측면에 유념해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1) 학생의 다양성에 반응적인 차별화 지도 도입
비교적 경제적으로 발전된 나라 혹은 새로운 노동력을 외국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나라의 21세기 학교에는 이주민으로 인해 인구의 다양성이 증가하게 된다. 또한 빠른 양극화 속에서 아동들의 학업 준비도도 계층별로 매우 다양하다. 21세기 학교교육은 이런 다양성을 수용하고 다양성에 반응적인 지도와 교수법을 강조한다. 이는 교육의 세계적 추세의 하나다.
“미래 사회에서 교육시스템의 성공 여부는 다양성에 대해 얼마나 잘 대처하며 다양한 아동들을 모두 학습에 참여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렸다.”(헬싱키 디자인 연구소, 2011)
한국의 상황을 대입해서 생각해보자. 한국의 교실에도 개인의 능력, 학습 수준이나 흥미, 장래 희망 등에 있어 크게 차이가 있는 아동들이 함께 앉아 있다. 당연히 차별화된 수업지도를 하는 것이 맞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의 기회 배분에 수능이나 내신이란 표준화 시험의 성적이 주요 기준이 되는 한 학교교육에서 다양성의 추구와 존중은 어렵다. 교실 내 다양성의 존중과 대응이 현재와 같은 한 ‘학포자’의 양산은 불가피하다. 각 개인들에게 최적의 학습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교육은 불공정한 일이며 이는 개인적, 사회적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 한국에서 맞춤식 교육을 지칭할 때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개별 맞춤교육’이란 용어는 그 사용에 있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개별’은 ‘개인별(individualized)’의 준말이다. 이는 학교교육에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계는 이와 관련된 용어를 글로벌 기준으로 바로 잡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영어권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크게 ‘학생주도 개인별 맞춤학습(personalized learning: PL)’과 ‘교사주도 차별화된 지도(differentiated instruction: DI)’, 교사주도 개인별 지도(individualized instruction)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 셋의 차이를 표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표 2> 맞춤식 지도/학습의 유형

http://education.ky.gov/school/innov/Documents/BB-KM-Personalizedlearningchart-2012.pdf 의 자료 재구성
교수학습의 유형을 위와 같이 3가지로 나눌 때 한국의 학교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학생주도 개인별 맞춤학습(PI)’이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여건상 당장 가능하지 않다. 이를 장기적으로 나아갈 방향으로 삼되, 단·중기적으로는 ‘교사주도 차별화 지도(DI)’를 여건에 맞게 절충하는 방법이 현실적일 것이다.
2) 학생 중심(student-centered) 교육 지향
○ 21세기 주요국의 학교교육 혁신방향은 ‘학생 중심 교육’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학습의 내용, 수준, 방법, 속도, 평가 등의 결정에 학습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것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교육정책 수립, 교육과정 개정 등에 학생의 직간접 참여를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학습은 교사가 가르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Instruction does not cause learning.). 학습은 학습자가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하고 다양한 정보의 조작(예: 짝과 함께 배운 내용을 토론하기, 정리하기, 비교·분석하기, 평가하기, 종합하기, 질문 만들기 등)이란 과정을 통해서 일어난다. 교사가 진도를 나가기 위해 교사주도로 강의식 수업을 하면 학습은 교사의 뇌에서만 일어나며 학생의 뇌에서는 학습이 일어나기 어렵다. 이는 교육뇌과학이 밝혀낸 주요 내용의 하나다.
○ ‘학생 중심 교육’의 또 다른 측면으로 ‘교육정책 수립, 교육과정 개정 등’에 학생의 의견을 적극 참고하려는 세계적 움직임의 배경은 이렇다. 국가는 국가 경제발전 등을 우선순위에 두고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교육과정을 개정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국가주도 방식의 교육에는 학생들이 의미를 느끼지 못하여 반응하지 않는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세계의 주요국들은 그동안 교육부와 학자들이 주도하던 교육과정 관련 정책 결정에 학생을 적극 참여시키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핀란드와 캐나나 앨버타 주다.
핀란드는 금년부터 국가교육위원회에 학생 대표를 파견한다. 앨버타 주는 교육의 변혁을 위해 학생의 의견을 듣는 제도가 매우 촘촘하다. <Speak Out Online, Speak Out Forum, Speak Out Conference, 교육부 장관과 학생 대표 간의 년 3회 교육협의>가 그 예다.
이제 ‘학생 중심의 교육’을 하는 것이 학교교육을 정상화하는 최선의 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학생 중심의 교육’에 대한 의미와 수준은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한국의 경우,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아래와 같이 다소 급진적 접근을 해갈 것을 제안한다. 이것이 학교교육을 다시 살릴 희망의 제4의 길이다.
• 기획자로서의 학생(students as planners)
•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학생(students as teachers)
• 교사 전문성 개발의 파트너로서의 학생(students as professional development partners)
• 의사결정자로서의 학생(students as decision-makers)
• 변화를 위한 작업의 동반자로의 학생(working With not For students)(출처: The Architecture of Ownership, Adam Fletcher, 2008)
○ 이상의 다양성 존중과 맞춤식 지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고 연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다양성과 개인별 맞춤학습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개별화 지도식 접근과 표준화된 핵심 교육과정식 접근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가?”
“학습과 지식 영역에서 학생들의 차이와 선호가 확연히 달라 사회적 통합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교육시스템은 이런 차이에 대응할 능력이 있는가?”
“모든 개인의 재능을 개발하는 일과 핵심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기본지식을 습득하는 일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가?”
“표준화된 시험은 다양성, 개인의 발달,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실현하려는 노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다양성에 대처하려면 대개 소규모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욕구는 대규모의 전달식 지도방식을 통해 충족될 수 있는가?”
(학습 및 재설계 연구소, 2014)
3) 교육과정 개정절차의 혁신 필요성
○ 한국의 교육과정 개정 절차는 상대적으로 매우 후진적이다. 그리고 연구와 개발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 필자가 이렇게 비판하는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국가 교육비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큰 그림(=명확한 교육비전) 없이 작은 그림 변경에만 매달리는 땜질식이다. 이런 식의 접근이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지는 자명하다. 큰 그림을 놓치며 ‘비전-목표-실행-평가의 정렬(alignment)’에 소홀해진다는 점이다. 둘째, 공감과 설득이란 과정이 매우 미흡하다. 교육과정을 모범적으로 개정하는 나라들의 특징은 철저히 국가 교육비전에 기반을 두고 교육의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형식적이 아니라 매우 충실하게 듣고 반영한다. 그래서 이런 나라나 주의 교육과정 개발은 ‘사회적 합의’에 가까운 절차를 거친다. 핀란드의 경우만 보더라도 교육과정 초안을 만들기 위해 100여 건이 넘는 의견을 각 이해당사자나 교육주체들로부터 받는다. 이를 검토하고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데 공을 많이 들인다. 참고로 핀란드는 만들어진 교육과정 초안에 대해 13세 이상 학생 65,000명을 인터뷰할 정도다. 캐나다 앨버타 주 역시 특수교육 방향 재설정을 위한 교육개혁을 할 때 이해당사자 6,000명의 의견을 들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교육과정 개정은 이런 사회적 합의 성격의 대화 과정이 없다. 깊이 성찰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 타국은 교육과정을 어떤 절차로 개정할까? 호주의 경우를 예로 살펴보고자 한다. 호주의 교육과정평가보고 기관인 ACARA(Australian Curriculum, Assessment and Reporting Authority)가 2012년 작성한 교육과정 개정 절차 자료를 보면 아래와 같다.
▷ 교육과정 개정의 4단계
• 1단계: curriculum shaping(9개월 소요)
F-12에 관한 교육과정 개발의 기준이 되는 개요(broad outline) 개발 단계
• 2단계: curriculum writing(20개월 소요)
교과별로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단계
• 3단계: preparation for implementation(12개월 소요)
교육과정 실행에 필요한 제반 준비를 하는 단계
• 4단계: curriculum monitoring, evaluation and review
교육과정 실행을 관찰, 평가, 재검토하는 과정
교육과정 개발의 각 단계가 정치(精緻)하게 짜여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할 활동과 그 활동의 결과물을 승인받는 절차까지 자세히 규정한다. 설계 단계부터 고시를 위한 최종 결과물의 발행까지 약 4년이 걸린다. 교육과정 품질기준과 참여 학교 선정도 참고할 만하다.
▷ 교육과정 품질기준
호주는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고려해야 할 품질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학생, 교사, 학교의 다양성 등을 고려하고 있는지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 참여 학교 선정
전국적으로 약 50개 학교로부터 100여명의 교사를 추천받아 교육과정 초안 검토에 참가시킨다. 이때 학교를 선정하는 기준은 지역(시골, 도시 등), 학교의 종류(공립, 종교 등), 학교급(F-2, 3-6, 7-10, 11-12), 계층(빈곤층, 중산층, 부유층), 교과, 장애 등을 고르게 반영한다.
<질문4> 학습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육(Meaningful Education for All)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 오늘날 학교교육에 대한 평가나 병든 원인의 분석은 다양하다. 필자는 최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21세기 학습과학인 교육뇌과학(일명 MBE 융합과학)적 연구결과를 적용해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뇌의 활동은 생존이 가장 우선이다. 뇌는 가장 상위체계로 자기체계(self system)란 것을 가지고 있다(Marzano, 2000). 자기체계는 세상을 이해하고 어떤 목적을 추구할까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상호 연결된 개인의 신념 체계다. 이는 한 개인의 자신에 대한 지각의 총화를 말한다. 어떤 특정 현안 과제를 마주하면 자기체계가 작동하게 된다. 뇌의 자기체계는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저 내용이 내게 필요할까? 내게 의미가 있나?’란 질문을 반사적으로 던지는 체계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해낼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는 체계다. 수업 내용이 자신이 따라가기에 너무 어려우면 뇌는 포기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실패만 거듭했어도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해 자기체계는 작동하지 않는다. 마지막 하나는 ‘지금 내가 저것을 학습할 기분인가?’를 묻는 체계다. 이는 교사가 학생의 성장을 믿고 인정하고 존중하며 학습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낮추지 않을 때만 작동한다. 한국의 학교수업은 학습자들이 자기체계를 수업 쪽으로 작동케 하여 참여나 몰입하게 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뇌과학에서는 이제 교사는 쉽고 재미있는 교육에 쏟는 시간은 10%만 할당하고 의미 있는 교육을 하기 위한 연구에 90%를 쏟으라고 조언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란 말을 구호에만 그치지 않게 하려면 학습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교육(Meaningful Education for All)을 제공해야 한다. 배울 내용, 수준, 배우는 방법, 속도 등을 국가나 교육자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는 모든 아동들에게 의미 있는 교육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오늘날 교실이 무너진 이유의 하나도 국가가 배우기를 기대하는 교육과 학생이 원하는 교육과의 불일치가 크기 때문이다. 이제 무너진 교실을 복원하려면 교육과정 기획 단계부터 학생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 모두의 성장을 이끄는 교육과정 실현: 어떤 아동도 수업에서 배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뇌과학에 근거한 차별화된 지도(Differentiated Instruction: DI),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를 도입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 수립에 착수해야 한다. 한국은 교실 내 학생 다양성은 급증했는데 이에 대응할 수단이 없다. 주요국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차이와 선호도를 반영하기 위해 차별화된 수업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차별화 지도(Differentiated Instruction: DI)는 학업성취도 향상만이 목적이 아니다. 차별화 지도를 하지 않고는 소수 학생을 제외한 다수의 학생을 낙오하게 만든다. 이는 아동의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 건강을 해친다. 차별화 지도를 하지 않고는 모든 학생들의 참여와 동기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이런 시스템을 가장 모범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곳이 캐나다 온타리오 주다. 최근 이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의 교육청들이 여기를 방문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질문5> 교사들을 집단유능감·집단책임감·사명감이 강하고 전문성이 뛰어난 공동체로 어떻게 거듭나게 할 수 있는가?
○ 한국의 학교교육에 있어서 가장 큰 위기를 꼽으라면 교사공동체가 무너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교육은 개인의 열정과 헌신에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21세기 학교가 마주하고 있는 도전적 과제들은 팀으로 해결하고 다시 팀과 팀이 모여 더 큰 팀을 이루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 미래학교의 교사는 ‘팀으로서의 교사(teaching team)’로 존재할 것이란 벨기에 L&R 연구소의 예측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교사는 고립된 섬처럼 존재한다. 마이클 풀란이 주장하는 학교교육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집단유능감(collective efficacy), 집단책임감(collective responsibility)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교사들이 소진(burnout)으로 힘들어 한다. 무기력, 자괴감에 시달리는 교사들도 많다. 매일매일 마주하는 현실이 너무 벅차다. 교장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결재해야 할 것이 40건이 넘는다고 한다. 학교가 교육행정을 하는 곳인지 학생들의 배움을 책임지고 있는 곳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학교교육 제4의 길』에서 핀란드의 한 교장 선생님의, “우리는 상부로부터 내려오는 공문 같은 것 처리에 시간을 쓰지 않고 그 시간에 학생들의 교육에 전념할 수 있어요.”란 말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교사를 변화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더 이상 걷지 말아야 할 낡고 병든 제2의 길이다. 이제 교사를 변화의 주체로 세우는 제4의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집단유능감, 집단책임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마이클 풀란이 말하는 ‘도덕성 높은 교육의 목적(moral purpose) 추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는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 ‘격차를 줄인다’란 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은 이 두 가지가 매우 취약하다. 이것이 21세기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핵심이고 희망의 제4의 길이다.
○ 교사의 전문성에는 무엇이 문제인가? 교실 내 존재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고려한 수업기술의 보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수단이 차별화 교육(DI)과 보편적 학습설계(UDL)다. 아직 한국은 이런 용어의 개념조차 생소한 편이다. 중앙정부, 학자들, 교사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모든 아동들에게 의미 있고, 모든 아동들이 반응을 보이는 교육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이미 검증된 방법들이 있다. 차별화 지도, 보편적 학습설계, 뇌기반교수학습 원리의 적용, 반응기반개입접근(Response to Intervention: RTI)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국가가 지금처럼 사전에 교육 계획을 자세히 규정하여 내려 보내고 교사를 이를 전달하는 역할에만 머물게 하면 교사의 전문성은 신장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를 교육과정의 대강화로만 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교육과정 프레임(framework)은 자세히 짤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운영의 유연성을 높이고 재량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교사의 전문성 향상과 집단유능감, 집단책임감 문화를 만들고 뿌리내리게 하려면 교사전문학습 공동체(PLC)를 활성화하고 현장연구를 강화하는 방식이 유용하다. 이는 캐나나 온타리오 주와 앨버타 주가 모범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한 수 배울 것을 제안한다.
필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입시가 교육과정을 대체하는 상황이고 ‘교육결과=표준화 시험 성적’인 환경에서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의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질문9>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 교사의 양성, 역할, 전보제도의 변화: 미래학교에 대한 칼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중심 교육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교실내 학생 구성의 다양성이 급증했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모든 아동을 성장/발달 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는 필연적으로 교사의 역할, 가르치는 방법, 교사양성 및 임용제도의 큰 변화를 요구한다. 이제 교사의 우선적인 역할이 ‘가르치는 사람’이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르친다고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학습은 학습자가 배울 내용에 대해 의미를 느끼며 능동적으로 정보를 조작(예: 적용, 분석 등)할 때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학습은 목표의 설정부터 철저히 학생이 주도하게 하고, 교사는 도와주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교사는 학습촉진자, 개별화된 학습경로를 안내하는 코치,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교사는 학생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교사는 어떻게 양성될 수 있는가? 이미 이전 칼럼에서 소개했듯이 21세기 교사는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양성하고 임용한다.
-교사 연수에 참여할 사람을 선정하는 기준은 다른 무엇보다도 학생의 다양성이 큰 학급, 다양한 문화를 가진 아동들을 잘 이해하고 헌신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인지적 능력만 뛰어나 ‘임용고시’에 합격한 사람들 위주로 뽑아서는 안 된다.
-교생 실습은 소외된 지역, 빈곤층 아동이 많이 사는 지역, 다문화 가정 아동이 많은 지역의 아동들 및 장애를 가진 아동들을 우선적으로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교사가 지금의 공립학교처럼 너무 자주 전보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특히 농산어촌의 경우, 지역사회 출신의 교사를 채용해서 지역사회 학교에 열정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질문6> 21세기 교육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앞의 미래학교에 대한 연구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래학교에서는 학생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수업이나 문제해결 수업의 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교육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동선을 추구하고 민주시민의식을 키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 역량교육의 강화도 기존의 교육평가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도록 요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평가가 아니라 국가 교육비전을 달성하고 개인이 지향하는 교육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돕기 위한 정보를 얻는 것이 평가의 주목적이 되어야 한다.
○평가에 관한 패러다임 전환은 ‘Test Less, Assess More’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의 평가인 ‘학습(결과)의 평가(evaluation OF learning)’의 비중을 줄이고 과정의 평가와 진단 성격의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 ‘학습으로서의 평가(assessment AS learning)’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현재의 입시구조와 평가에 대한 비뚤어진 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런 질문들의 답을 고안하는 것이 핵심과제다. 자기평가, 동료평가, 교사와 멘토의 관찰평가, 포트폴리오 평가,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과 학부모가 이를 인정할까? 교사가 채점에 대한 이들의 항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이 아동을 표준화 시험 성적으로 줄 세워야 한다는 현재의 능력주의(meritocracy)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표준화 시험이 경쟁의 원인이고, 대학을 서열화하는 기재란 점을 깊이 깨닫고 표준화 시험의 결과를 언제,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깊은 연구와 치열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초등학교 수준부터 참평가(authentic assessment)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 동시에 평가자에 대한 신뢰를 높여가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초등에서 중학교과정으로, 나아가 고교과정으로 참평가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여가야 한다. 이것이 GERM으로 병든 학교교육을 치유하는 길이다.
○ 21세기 많은 나라들은 평가가 교육과정을 대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대표적인 나라다. 이런 경향은 교육의 표준화가 표준화 시험을 낳고, 표준화 시험 성적을 상급학교 진학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강화되었다. 이제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평가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이제 표준화 시험과 같은 ‘정적인 평가(static assessment)’에서 ‘역동적인 평가(dynamic assessment)’로 나아가야 한다. 정적인 평가의 대표적인 것은 현재 한국의 수능, 중간 기말고사와 같은 표준화 시험이다. 전자는 학습자의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고, 안내하기 위한 데 관심이 없다. 주로 학습자 성취수준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에 사용된다. 하지만 후자는 적극적 개입을 통해 학습자가 성취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역량 자체를 키워주는데 초점이 있다. 그래서 역동적 평가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모든 학습자의 성장을 이끌어 내기 위한 더 나은 교수법을 개발하기 위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역동적 평가는 평가라기보다는 가르치는 과정이다. 평가와 학습이 하나로 통합되는 방식이다. 21세기 학교교육은 학습과 삶이 밀접히 결합되고, 문제해결과 같은 수행의 비중이 높아진다. 그래서 학교교육의 미래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2030년경이면 표준화 시험은 거의 다 폐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은 이런 미래를 대비해 지금부터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질문7> 학교교육을 바르게 견인할 대입전형 제도는 어떤 것인가?
○ 한국의 학교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을 하면 가장 자주 나오는 얘기가 “대입전형 때문에 되겠어? 입시를 바꾸어야 한다!”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 그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면 그 대답이 또한 시원치 않다. 특정 진영에서 나오는 대안은 입시철폐, 대학평준화와 수능의 자격고사화 등이 단골 메뉴다. 이런 주장이 실현가능성이 있고, 실제 그렇게 했을 때 학교교육이 좋아질까? 필자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제안을 실현가능성을 떠나 실제 그런 주장이 실현되었을 때의 실효성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는 이런 주장들이 신뢰성,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 공교육 정상화를 견인할 수 있는 한국의 대입전형의 개선방향을 모색하려면 먼저 대입전형과 관련한 한국의 고유한 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대입전형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증요법이나 선형적 접근으로 전형방법을 고치려 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전형제도나 현상은 관련된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것들이다. 따라서 대입전형의 미래방향을 탐색할 때는 현재의 제도를 잉태한 배경을 분석하고 앞으로도 대입전형 제도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요소들을 분석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진단을 잘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의 학교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고유한 환경 요소들을 무시한 대입전형의 미래방향 탐색은 의미가 적다. 어느 나라나 대입전형 제도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문제가 없는 나라는 없다. 현실적인 제약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대입전형을 수없이 바꾸어 봤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따라서 미래형 대입전형을 고안하는 방식은 기존의 접근법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를 찾기 전에 학교교육과 대입전형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요소들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표 3> 대입전형을 구성하는 요소 및 변천사(이찬승, 2015)

○ 지금까지 대입전형 개혁은 선발기능에만 초점이 과도하게 맞춰져 있다. 이제 아래와 같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각 질문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 기존의 대입전형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조금씩 개선하는 방식으로 중등교육의 대입시 종속을 해결할 수 있을까?
• 학생 선발권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과 중등교육을 정상화하는 것 중 어떤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 대학이 서열을 이용해서 별다른 노력 없이 우수학생을 선점하는 것은 공정한가? 고등교육 대중화 시대에 기존의 신입생 선발 방식을 ‘선발’에서 ‘배치’의 개념으로 바꿔나갈 필요는 없는가? 내신과 수능 모두 3~5등급 절대평가로 한 다음 각 등급에 해당되는 학생들을 추첨으로 ‘배치’하는 방식은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 있는가?
• 대학이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효과가 포함된 수능성적, 내신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워 선발하는 것은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또 이런 접근으로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담보할 수 있는가?
• 대학이 기존의 신입생 선발경쟁에서 교육경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은 존재하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 공정한 학교교육 추구: 대입전형이 학교교육을 바르게 견인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이 추구할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학교교육의 일차 목적은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태어날 때의 불리함을 좁혀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가정 배경이 좋지 않은 아동들, 학습을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아동들의 자신의 강점과 재능을 조기에 발견하고 각자 지닌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학교교육이 도와야 한다. 이는 아동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한 사회나 국가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다. 그래서 선진 교육은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 ‘모두를 위한 학습(Learning for All)’을 강조하면서 학습 장애아동, 학습이 느린 아동들도 일반적인 아동들과 똑같은 교육과정에 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에 최우선 순위를 둔다. 이런 공정한 교육의 실현은 튼튼한 ‘도덕적인 교육목적(moral purpose)’ 위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아동은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와 ‘격차를 줄인다.’, 이를 모든 교육 주체들이 ‘파트너십을 통해 달성한다.’란 믿음과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형식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 다음 공정한 대입전형 얘기로 넘어가는 접근을 했으면 한다. 이런 내용의 공정한 교육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필수적이므로 이념을 떠나 이에 동의하지 않기 어려울 것이다.
○ 공정한 대입전형의 추구: 공정한 대입전형 실행방안 제안(Fair Admissions to Higher Education: Recommendations for Good Practice)이란 제목의 슈와르츠 검토보고서(the Schwartz Review, 2004)를 보면 전형절차가 공정하기 위해서는 “출신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들은 자신의 능력과 장래의 꿈에 따라 고등교육에 대한 동일한 접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공정한 전형의 5가지 원칙(Five Principles of Fairness)’은 아래와 같다.
① 전형시스템의 투명성(system transparency)
② 전공을 이수할 능력 보유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능력(the ability to select students able to complete courses)
③ 신뢰도와 타당도가 높은 평가도구의 사용(the use of reliable and valid assessment methods)
④ 고등교육 참여를 막는 장애의 최소화(to minimise barriers to participation)
⑤ 대학의 구조와 (전형)절차의 우수성과 전문성(to be professional in terms of institutional structures and processes)
이 보고서는 공정한 대입전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원자 성취도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contextual data)의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불리한 조건에서 학업을 이어 온 지원자의 도전의식, 잠재력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대상 학생은 <부모가 고등교육 참여 기회가 적은 농산어촌 출신,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가정의 자녀들, 성취도가 낮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학교에 다닌 아동> 등이다. 이런 접근은 필히 현재의 학업성적뿐만 아니라 잠재력을 비중 있게 보자는 뜻이 깔려 있다. 이런 영미의 소수자 우대정책 기조가 한국의 대입전형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이는 내신 상대평가 제도 하에서는 지방의 1등급과 서울 외고의 1등급을 동일하게 인정하는 것, 성취평가(절대평가) 제도 하에서는 등급별 성취수준에 차이가 있더라도 지방의 A와 서울 외고의 A를 동일하게 인정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현재의 고른기회전형 정도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고 사회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이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공정’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의 힘이 크게 영향을 미친 표준화 시험성적 1점 단위로 줄 세워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대입전형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국민 대 토론이 필요하다.
○ 내신의 절대평과와 상대평가: 내신평가를 상대평가로 할 것인가 절대평가로 할 것인가에 대한 한국 교육계의 논쟁은 다분히 2분법적이다. ‘상대평가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절대평가로 해야 하는가?’ 식이다. 21세기의 문제는 이런 2분법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A or B가 아니라 A and B식의 양자포괄식, 절충식, 병행식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는 그 평가의 목적이 서로 다르다. 현실적으로 두 가지 목적이 다 필요하다. 학교 내신평가는 절대평가가 많으나 상대평가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미국(절대/상대), 일본, 중국, 핀란드(교사에 따라 절대/상대) 등이 그 예다.
현재 성취평가제가 양자포괄적 성격을 지니긴 했지만 핀란드처럼 평가의 목적에 따라 교사의 재량으로 절대평가를 할 수도 있고 상대평가를 할 수도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선발, 선별, 경쟁의 존재는 필요악으로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그리고 역량과 태도 등을 평가할 때는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평가기술의 발달로 인해 역량도 표준화시험을 통해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PISA의 ‘협업에 의한 문제해결능력 평가’가 대표적인 예다. 21세기 학교교육의 평가는 절대평가를 지향하되 상대평가도 일정부분 병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는 병행식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17년이면 2021년의 수능체제를 발표한다. 이때 발표하는 수능제도가 현재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다면 한국 학교교육의 질적 개선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2015개정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차세대 수능 연구에 박차를 가했어야 했다.
○ 수능시험의 변화 방향: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견인할 대입전형을 고안하기 위해서는 내신과 수능 간의 역학관계 법칙(혹은 가설)에 주목해야 한다.
• 법칙1: 고등교육 기회배분을 위해 수능시험은 앞으로 상당기간 존재할 것이며 학교교육에 부정적 혹은 긍정적 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다.
• 법칙2: 수능시험이 현재와 같이 학업성취도 평가에 초점을 맞추고, 객관식 위주이면서 변별력이 높은 상대평가이면, 경쟁이 강화되고 학교교육은 객관식 위주 시험문제 풀이 요령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필자가 자의적으로 만든 위 법칙 2가지에 동의한다면 수능시험이 바뀌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상위권 대학의 신입생 선발 경쟁은 치열할 것이다. 이는 ‘수능시험이 앞으로 상당기간은 학교교육과정을 계속 지배할 것이다’라는 전망과 같다. 그래서 내신과 대입시의 고리를 끊을 마땅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고, 학교교육을 객관식 문제풀이 준비기관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수능시험을 교육과정에 충실한 시험으로 바꾸는 것이 바른 방향일 것이다. 그런데 미래 교육과정에서는 고등사고력을 중심으로 한 역량 함양, 공동선의 추구, 민주시민성, 인간성, 도전의식, 협업능력 등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수능시험은 점차 논·서술형의 비중을 높여 가야 한다. 그리고 실제의 수행능력도 평가해야 한다. 이로 인한 사교육 증가나 불평등 증가 등의 문제는 별도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봐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학교교육이 의미 있고 정상화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교육 문제는 학교가 차별화,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고 중장기적으로 절대평가를 통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교육을 지양하고, 교과서를 교육과정처럼 활용하지 말고 교수학습 자료의 성격으로 규정하게 되면 점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언론들이 현 수능시험의 타당성과 질은 그대로 두고 변별력을 높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학교교육을 시험문제 풀이기관으로 만들라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따라서 학교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런 잘못된 통념의 해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입전형의 미래 방향은 우선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수능을 타당도와 변별력이 비교적 높은 바깔로레아와 같은 시험으로 변화시키든 대학별 본고사를 도입하든 학교교육의 질 향상만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열어두고 검토해봤으면 한다.
○ 추첨제를 통한 전형의 공정성 추구: 추첨은 기본적으로 입학을 원하는 학과의 지원자 수가 모집인원에 비해 많을 때 필요하다. 대입전형에 추첨제를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네덜란드가 대표적인 예다. 네덜란드는 일부 대학이나 학과를 대상으로 바로 이런 추점 제도를 오래 전부터 사용해오고 있다. 추첨을 통한 전형은 지원과 배정 일체를 대입지원중앙관리위원회(Central Application Office)가 관리한다. 경쟁률이 높은 국제 경영학과, 의치대 등이 대표적인 추점을 통한 전형이 적용되는 전공이다. 내신 성적에 상관없이 추점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GPA 수준이 7.5~8)을 가장 우선적으로 학교별 전형을 통해 선발한다. 나머지 입학정원에 대해 최소 성취기준을 통과한 지원자의 경우, 성적에 가중치를 반영한(weighted) 추첨을 실시한다. 성적 우수자 선발에서 떨어진 지원자는 추첨 전형 자격을 자동으로 얻게 된다. 이런 추첨제도를 ‘가중치를 둔 추첨전형제도(weighted lottery system)’라고 부르는데 성적이 좋은 학생들의 선발가능성이 더 높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졸업고사 성격의 시험 성적이 대입전형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는 시스템이다. 대학진학률이 70%를 넘고, 대학별 전공의 특성이 비슷한 한국의 대입전형에 네덜란드의 추첨 방식이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제 한국도 국공립대학부터 추첨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자. 국내외 입학사정관들이 학생의 합격·불합격을 가리기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indistinguishable) 경우가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입학사정관들은 지원자의 우열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 임의적 선발결정(random decision)을 한다. 가장 우수한 적격자를 가려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거의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괜한 에너지만 낭비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를 최소한 6년간 불안 속에 몰아넣고, 학교교육을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며 시험 보는 요령만 키우는 현재의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이제 1점 차이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대입전형의 낡은 길을 청산하고 제4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질문8> 미래의 학교교육 거버넌스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 학교교육 거버넌스를 논하기 위해서 거버넌스의 다양한 정의 중 가장 참고할 만한 것을 소개한다. 이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교육 거버넌스란 시스템 내에서 발휘되는 권한(authority)과 의사결정(decision-making)을 가리킨다: 교육시스템이 조직되고 권한이 부여되는 방식; 조직구조와 의사결정 절차; 공식적 역할과 책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관계, 그리고 그 목적(aim)은 교육의 목적(objectives)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조직의 디자인, 자원의 효과적/효율적 사용, 불평등의 완화, 의사결정 과정에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등이다.”(Nancy Watson, 2003)
“‘정부(government)’가 적법한 힘을 독점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질서를 유지하며 사회·경제 문제를 규제·감독·조정하는 일에 다른 실체들이 기여할 수 있는 시대를 맞았다. 이런 의미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는 상호 의존성이 있는 활동을 조정하며 이를 명령할 법적 권한을 가진 당국 없이도 변화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다. ‘정부’가 엄격한 의미에서 선출 공무원이나 법적 대표기관에 관한 것이라면, 거버넌스는 의사결정의 범위를 다른 행위자, 부문, 조직으로 확장하면서도 효율성과 효과성 그리고 결정의 합법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거버넌스’는 어떤 의미에서 다양한 정치적 영역의 조직과 참여자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정치적 관계를 구축하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다.”(Claude Lessard 외, 2004)
○ 교육 거버넌스는 일반적으로 <중앙집권화(centralization)와 분권화(decentralization); 중간 지자체(intermediary bodies)의 역할; 학교수준의 거버넌스>란 3가지 요소가 어떻게 혼합되느냐에 따라 차별적 모델을 만든다.
거버넌스 즉 공공행정의 의사결정을 위한 조정과정은 대체로 아래의 3단계로 발전되어 왔다.
• 1단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중심의 하향식 조정 방식
• 2단계: 정부의 법규 아래 시장 경쟁의 원리에 의해 자원을 배분하고 조정하는 방식
• 3단계: 공공부문과 민간부분 간의 파트너십이나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조정하는 방식
한국의 경우, 아직 1, 2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서서히 3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전통적인 조정방식인 정부(government) 주도에 의한 조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개념이 도입되었고, 지금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분 간의 파트너십이나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조정하는 제3단계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 ‘정부에서 거버넌스로(from government to governance)’라는 슬로건이 공공행정의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발전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우수한 거버넌스의 기준: 소위 ‘정부에서 거버넌스로’라는 변화와 ‘우수한 협치(good governance)’를 논하려면 협치를 구성하는 요소들과 이들의 기준(criteria)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협치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래의 4가지 요소를 잘 다루어야 한다.
• 책무성(accountability)
책무성이란 성과에 대해 설명할 책임을 말한다. 교육개혁은 책무성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이는 “누가, 무엇에 대해, 누구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는가?”란 질문에 대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취도 향상(improving student learning), 자원의 효과적인 사용(wise use of resources), 대중의 관심과 욕구의 반영(reflecting public concerns)이다.
• 절차의 투명성(transparency of process)
교육 거버넌스의 과정이 얼마나 투명한가의 문제다. 의사결정의 근거,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 역할 경계의 명확화(clarity of roles)
협치의 당사자들 간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야 하고 이것의 공유 역시 중요하다. 특히 정책결정자와 집행자 간의 역할이 명확하지 못해 일어나는 갈등과 비효율은 매우 크다. 자사고나 외고 등의 설립, 평가, 폐지 등에 대한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의 갈등이 좋은 예다.
• 지역사회의 참여(community input)
학교교육은 공공성이 강한 공공제다. 이런 성격 때문에 중앙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역할은 학교자치를 돕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주민, 기업, 종교단체, 노동조합, 시민단체 자선단체 등)가 공동 네트워크를 이루어 새로운 시민 역량을 키우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절실하다. 수평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이런 노력은 교육을 변혁시키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학교는 지역사회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지역사회는 우선순위나 프로그램 결정에 지역사회의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이것은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교육 거버넌스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중앙정부-지방정부-학교’란 거버넌스의 3주체가 권한과 책임을 적절한 수준으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주체 간의 권한의 배분은 미국, 영국, 캐나다, 핀란드, 스웨덴, 독일 등 각국의 전통과 문화에 따라 혼합의 특성이 각기 다르다. 특히 교육과정, 평가의 방식과 운영을 결정하는 경우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은 이 3주체 간의 권한 배분이 중앙정부에 치우친 대표적인 나라다. 이는 그동안의 전통적 관행도 한 몫을 했지만 한국의 경우는 학교교육이 대입시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된다. 국가가 중앙에서 강하게 통제하지 않을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 있다. 이것이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핵심과제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 거버넌스 주체들 간의 권한과 책임의 배분이 균등하지 못한 것은 주체들 간에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고 비전과 원칙에 의한 자율성 높은 행정이 부재한 나라이기 때문인 면도 크다고 생각된다.
○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교육 거버넌스 관련 핵심쟁점: 어떤 사람은 재정의 새로운 배분 방식을, 또 어떤 사람은 중앙집권적 정책결정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한편 교사는 교사가 교육과정 편성권과 평가권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말한다.
거버넌스의 운영방식과 관련해서 보면 교육의 운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의 주체들 간의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서 중앙정부는 ‘플랫폼 제공자’로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는 정부는 교육의 목적, 시설, 재정, 교원양성, 법규, 책무성, 과목별 시수 기준 등 큰 방향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하부 기관에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하여 각 지역 특성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지금처럼 교육의 내용, 운영방법 등에 대해 사전에 자세히 규정하고 하부 기관들은 이의 실행과 전달 기능에 머물게 함으로써 많은 문제점들이 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런 제도와 문화에 익숙해진 학교사회를 고려할 때 플랫폼 제공과 프레임(framework) 제공 방식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다. 주어질 플랫폼과 프레임 속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자율성과 책임을 가지고 지역 특성에 맞는 교육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의 시스템이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시중에 회자되고 있는 국가교육위원회 도입의 주장에 대해 필자는 회의적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역시 하향식(top-down), 분권화가 아닌 중앙통제식이란 점에서 또 다른 교육부가 되든가 기존의 교육부만도 못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떤 인적 구성을 한다고 해도 위원회의 전문성의 부족과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가치나 관점의 차이로 인해 교육에 관한 어떤 결정도 할 수 없거나 한다고 해도 질이 높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존의 교육부 중심 의사결정 체제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설립보다는 한국의 실정에 맞는 분권화와 학교자치의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
○ 미래형 학교교육 거버넌스 고안을 위해 던져야 할 질문들: 앞에서 소개한 벨기에 연구소가 거버넌스와 관련해서 던진 질문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는 다양성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교육시스템 구축을 촉진시킬 수 있는가?”
“정부가 학교교육 시스템의 질을 모니터하는 주요 주체인가?”
“만약 우리가 더 이상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사용하지 않거나 정부 주도의 표준화 시험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면 이 때 교육의 질은 누가, 어떻게 모니터하게 될까?”
“교육에서 다양성을 실현하고자 할 때 정부는 어떻게 동등한 기회의 제공과 (기회·자원 등의)공정한 배분(fair distribution)이란 원칙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을까?”
“정부가 학교교육의 개선과 혁신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만들고 부과한 기존의 각종 규칙과 원칙이 개선과 혁신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혁신의 촉진자가 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고, 개별학교와 사회 파트너들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학교는 어떤 방식으로 개선과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자율성(ownership)을 가질 수 있는가?”
이상은 기존의 중앙정부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를 이대로 두고 각 지역학교에 맞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정부가 온갖 제약조건들을 만들어 놓고 학교로 하여금 혁신을 주도하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란 질문이기도 하다. ‘공정한 기회의 제공, 공정한 자원의 배분’을 충족시키면서 다양성에 대한 바른 인식과 대응의 필요성이 큼을 암시하고 있다. 교육 거버넌스도 제4의 길(중간 관리자의 역할 강화 포함)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질문9> 새로운 미래교육 생태계에 적합한 책무성 제도는 어떤 것인가?
○ 교육 거버넌스와 관련해서 한국은 중앙 정부가 학교 시설과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교육목표 달성을 지원하기 위해 자원을 제공한다. 지방분권화와 교육 자치를 확대할수록 그만큼 더 외부 책무성도 강화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 점수를 공개하고 학업성취도 성적이 우수한 학교에게는 상을 주고, 저조한 학교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제 교육환경이 많이 변했다. 교육이 학교란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세상이 아니다. 사교육도 있고, 지역사회와 협력해서 하는 교육도 있다(예: 진로교육, 지역사회 봉사를 통한 교육 등). 이런 상황에서 학교-가정-지역사회-국가의 협치에 적합한 책무성의 개념은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큰 과제다.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형식의 교육 거버넌스가 발전될수록 교육의 책임은 학교-가정-지역사회가 나누어 져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중앙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징벌적 책무성은 그 타당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재고되어야 하며 새로운 책무성 제도의 도입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이 실시하고 있는 책무성 제도는 미국, 영국의 제도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을 보라. 아동낙제방지법을 통해 연방정부가 기대하는 학업성취도가 향상되지 않았을 때 교장을 파면하고 학교를 폐쇄하는 식으로 연방정부가 강력한 하향식 외부 책무성을 행사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작년 12월 오바마 정권은 그런 책무성 제도에 기반을 둔 아동낙제방지법을 폐기하고 다시 주정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교육기본법인 ESSA(Every Student Succeeds Act)에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도 지금의 책무성 제도를 폐기하고 앞으로 맞을 새로운 교육생태계에 적합한 새로운 책무성 제도를 고안할 때가 되었다.
○ 새로운 교육생태계에 맞는 새로운 책무성 제도: 한국의 경우, 세계에서도 타당성 낮은 표준화 시험 결과에 의한 결과중심 책무성 관리가 가장 강한 나라다. 이것이 대입경쟁을 강화하고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그리브즈와 셜리가 쓴 『학교교육 제4의 길(The Fourth Way)』에 나오는 용어를 빌리자면 단위학교에 무한한 자율성을 주는 제1의 길을 따를 경우, 교육의 내용과 질이 전국적으로 고르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1980년대 초 주요국에서 교육의 표준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학교교육의 제2의 길’이 등장한다. 바로 이것이 교육에서의 목표중심 혹은 결과중심 책무성 관리가 등장하고 강화되기 시작한 배경이다.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에 있어 중앙정부가 그 책무성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금 학교교육의 책무성은 표준화 시험 결과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서 교육의 본연의 모습을 잃고 있다. 그래서 교육 현장이나 정책결정자들도 과정 중심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이는 역량 교육의 강화, 수행평가 강화 등과 맞물려 있는 문제다. 결국 교육도 결과중심과 과정중심의 절충이 필요하다.
21세기 학습의 특징의 하나는 학교 밖이나 사이버 공간에서 비공식적으로 일어나는 학습의 양과 중요성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학습에 비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식적 학습과 비공식적 학습이 어떻게 학교교육 시스템에 함께 자리를 잡을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안 마련이 새로운 책무성 관리의 핵심 사안의 하나가 된다.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는 교육,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교육을 위해서는, 또 역량이 강조되는 시대에는 새로운 책무성 관리 제도가 필요하다. 즉 외부서 가하는 표준화 시험 성적 기반 징벌적 책무성이 아니라 ‘진단·다양한 수단에 의한 다중평가 → 역량 개발 및 지원 강화 → 자율과 책임 그리고 투명성 강화를 바탕으로 하는 시스템의 지속적 개선’ 방식의 ‘현명한 책무성(intelligent accountability)’ 관리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것이 제4의 길 책무성 관리 방식이다.
○ 지혜로운 책무성은 아래와 같은 것을 핵심내용으로 한다.
• 개인 및 집단적 역량 강화와 책임의 공유
• 내부 책무성과 외부 책무성의 조화와 매끄러운 연결
• 개입을 최소화하는 외부 책무성
“얼마나 많은 교육 재정을 투입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같은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교사의 공감과 협력을 얻지 못하면 기대하는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다.”(McGuinty, 2009)
“교육자들을 부정적으로 보며 더 무거운 책무성의 매를 가하게 될 경우 이룰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으며 더 많은 책무성을 지게 하기보다 더 적은 책무성을 가지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Peter Senge, 2010)
<질문10> 학교교육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의 원리를 필요로 하는가?
○ 필자에게 누군가 “한국의 학교교육의 근본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한국의 정책결정자나 이에 조언하는 분들이 변화의 원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예를 통해 살펴보자. 교육정책 결정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권력이 너무 크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어떤 해결책을 생각해왔는가?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주장해 오지 않았는가? 이게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이것이 해결의 바른 방향이 아니란 점은 이미 앞에서 자세히 밝혔다. 사교육비 감소를 위해 공교육 정상화법을 만들었다. 이게 바른 방향인가? 학교교실이 무너졌다. 교직의 정상적인 수행이 어렵다. 인성교육교법 제정이 답이 될 수 있는가? 교직사회의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하고 교사 공동체가 무너졌다. 교원성과급제와 현재와 같은 교원평가제도가 답이 될 수 있는가? 초등학교부터 대입을 위한 준비가 시작될 정도로 학교교육이 성적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문제가 있다. 자유학기제가 답이 될 수 있는가? 고교 과정에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편식이 심하다. 문이과 칸막이를 없애는 것이 가능한 일이고 답이 될 수 있는가? 대학의 견고한 서열이 문제다. 대학의 평준화가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있는가?
이상에 열거한 문제와 해법은 철저히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결핍중심 접근이다. 이는 낡은 문제해결 방식이다. 이제 다자인 싱킹이라는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통해 비전 중심 해결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목표 중심이며 대표적인 열린 문제해결 방식이다. 아래와 같은 ‘2030 학교교육 비전’을 설정하고 이런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와 운영방식이 필요한지 열린 방식으로 해법을 찾는 접근이다.
“2030년까지 출신·성장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아동·청소년들이
– 신체적·정서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을 유지하는 일,
–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 이를 키우는 일,
– 진학·취업·삶을 위한 준비를 충실히 하는 일,
– 개인의 발전과 성공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성공에 기여하는 일,
– 참여하고 기여하는 책임 있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는 일을
교육목표로 삼고 이를 충실히 실천하는 학교 및 학습공동체를 구축한다.”
디자인 싱킹 방식으로 문제해결을 접근하면 지금의 학교제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 매우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이것이 열린 문제해결의 장점이다. 비전을 바탕으로 하여 학교교육 변화를 가장 모범적으로 실시한 곳은 캐나다 앨버타 주다. 절차와 내용이 탁월하다. 한국도 이를(이혜원 외, 2016b 공교육정상화 포럼 운영 및 정책 기초연구. 한국교육과정 평가원 자료집)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학교교육 변화의 원리와 이를 실천하는 매뉴얼에 대해서는 마이클 풀란이 가장 저명한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이 분이 쓴 책에 보면 자신의 경험과 리서치 결과에 의해 다양한 원칙과 기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원리와 조언을 참고한다면 지금과 같은 실패와 비효율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풀란의 변화 모델
• 변화 프로세스의 첫 걸음은 모두가 도덕적인 교육의 이념과 목표를 갖는 것이다.
• 도덕적인 교육이념과 목표란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는 선한 의도다.
• 지도자들은 변화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변화의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는 점부터 이해해야 한다.
•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관계의 개선이다.
•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고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
• 사람들은 자신이 변화 프로젝트에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나 도덕적인 교육이념과 목표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려 들지 않는다.
• 변화 이해의 마지막 단계는 요소들이 잘 연계되어 논리성, 일관성, 통일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 변화의 과정에는 현실의 요소들이 개인의 지식 구조와 맞지 않아 ‘불편한’ 상태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스스로 그런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한다.
(Michael Fullan)
▷ 변화 프로세스의 이해
(Understanding the Change Process)
1. 지나치게 높은 혁신 목표로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2. 시행과정에 나타나는 침체나 지지부진함을 각오한다.
3. 반대의견이나 저항세력으로부터 배운다.
4. 구조개혁보다 문화의 변화가 우선이다.
5. 체크리스트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 선형적 변화는 없다. 항상 복잡성을 고려한다.
6. 리더십의 복잡성을 이해한다.
(Michael Fullan)
http://www.csus.edu/indiv/j/jelinekd/edte%20227/fullanleadinginacultureofchange.pdf
▷ 변화의 6가지 비결
• 비결1 – 교직원을 사랑한다.
• 비결2 –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의기투합할 수 있게 사람들을 연결한다.
• 비결3 – 변화를 위한 역량의 개발이 중요하다.
• 비결4 – 지속적인 학습을 문화로 정착시킨다.
• 비결5 – 데이터 접근성과 성공사례를 공유한다.
• 비결6 – 학생, 교사의 학습을 넘어 학교 시스템 전체가 열린 생각으로 복잡성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Michael Fullan)
http://www.michaelfullan.com/images/handouts/2008SixSecretsofChangeKeynoteA4.pdf
○ 한국의 학교교육이 나아지지 않는 원인으로 변화의 원리를 잘 모른다는 점 외에 또 다른 것 하나를 지적하고 싶다. 다름 아닌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는 능력의 부족”이다. 가령 현재의 학교교육이 왜 이렇게 경쟁적이게 되었을까? 매우 난해한 질문이다. 필자라면 현재의 경쟁교육의 뿌리는 ‘교육의 표준화, 능력주의, 상대평가, 절대지식관, 일자리 부족, 사회 안전망 부실’ 등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어떤가? 수많은 사람들은 ‘대입시’라고 분석한다. 교육의 표준화와 능력주의를 신주처럼 모시면서 대입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어쩌면 대입시는 ‘교육의 표준화, 능력주의, 상대평가, 절대지식관, 일자리 부족, 사회 안전망 부실’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에 가깝다. 사교육비 부담 완화에 대한 접근도 매우 허술하다. 학교가 학생 주도 개인별 맞춤학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 사교육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접근을 말하지 않는다. 헬싱키 디자인 연구소(2014)가 문제해결의 새로운 접근을 강조한 다음의 대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종류의 도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문제의 해결이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것은 문제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역별 전문화가 지배적인 문화 속에서는 이런 복잡한 문제를 깔끔하게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부족하다. 문제는 계속 역동적으로 변하고 그 복잡성은 날로 증가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게 되면 사회 구성원들 간에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해진다. 어설프게 정의된 문제를 기반으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도출하고 이를 추진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최근에 도입된 인성교육법 및 공교육정상화법,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이 문제 해결을 위한 잘못된 접근의 대표적인 예다. 한국 사회가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면 의사결정자부터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기초 원리부터 학습하면서 변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절실하다.
3. 맺음말
한국의 미래 학교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10가지 핵심질문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제 더 이상 지금과 같이 실패만 거듭하는 대증요법식 교육개혁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교육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인슈타인의 아래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나의 생명이나 삶이 걸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첫 55분을 문제해결을 위한 질문의 구상에 쓰겠다. 적합한 질문만 도출할 수 있으면 나는 그 문제를 5분 내에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위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문제를 제대로 정의할 수 있다면 이미 해답의 반은 찾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글에는 한국의 학교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이 빠진 것이 있다. 아마 아래와 같은 것들일 것이다.
“초중고 교육의 성과에 가장 영향이 큰 것은 영유아 때 주 양육자와의 애착관계를 제대로 맺을 수 있었는가의 여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지, 의료와 건강, 주택 등과 같은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 영유아 보육은 교육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양극화가 심화되고 미래 생존이 불확실하자 복지에 대한 투자의 기대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재원의 부족이 심각한 문제다. 사회경제적 위상이 낮은 계층의 아동의 교육에 투자 우선순위와 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 현재는 투자에 대한 효과가 매우 낮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문제해결은 난해하지만 문제해결의 원리를 잘 따르기만 해도 많은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맥점을 바로 잡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는 수많은 문제 중 가장 큰 뿌리 몇 개를 찾아 이의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맥을 잘 짚어 핵심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들이 많다.
한국 학교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는 무엇일까? 이는 단연코 중앙정부의 역할을 변경하는 것일 것이다. 현재처럼 중앙정부가 모든 결정을 하고 획일적인 정책을 계속 펴는 한 한국의 학교교육에 희망은 없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중앙정부는 플랫폼 제공자로 변화를 하고 17개 시도교육청이 큰 재량을 가지고 혁신을 주도하게 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다.
2017년은 대선이 있는 해다. 각 정당이나 대선 후보들의 위 10가지 핵심 질문에 주목하면서 학교교육 개선을 위한 방향을 바로 잡기를 기대해 본다.
[주] 본 칼럼은 경북대학교 중등교육연구소가 개교 70주년 기념으로 지난 6월 ‘미래 한국교육의 방향’이란 주제로 개최한 리딩 스칼라 특별 초청학술대회에서 필자가 발표했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참고자료]
• 이찬승(2015, 2016). 공교육 희망 칼럼(교육을바꾸는사람들)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
• 이찬승 외(2013). 『한국 공교육 미래방향 제안』. 서울. 교육을바꾸는사람들
• 이혜원 외(2016b). ‘공교육정상화 포럼 운영 및 정책 기초연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료집
• Hargreaves, A & Shirley, D.(2009). The Fourth Way: The Inspiring Future for Educational Change) ; 『학교교육 제4의 길』①②(번역: 이찬승 외)
• 교육과정 개발절차 V6.0(the Curriculum Development Process v6.0)
http://www.acara.edu.au/verve/_resources/ACARA_Curriculum_Development_Process_Version_6.0_-_04_April_2012_-_FINAL_COPY.pdf
• 교육과정의 설계와 구성 V3.1(the Curriculum Design Paper v3.1)
http://www.acara.edu.au/verve/_resources/07_04_Curriculum_Design_Paper_version_3+1_%28June_2012%29.pdf
• Education 2035: Where’d the Schools Go?)‘(Kurt Cagle, 2014)
https://www.linkedin.com/pulse/20141008061239-5187765-education-2035-where-d-the-schools-go
• Mapping Major Changes to Education and Training in 2025(European Commission, IPTS, 2010)
http://ftp.jrc.es/EURdoc/JRC59079_TN.pdf
• Marzano’s New Taxonomy of Educational Objectives
http://download.intel.com/education/Common/in/Resources/DEP/skills/Marzano.pdf
• The Future of Learning: New Ways to Learn New Skills for Future Jobs(JRC, IPTS, 2010)
http://ftp.jrc.es/EURdoc/JRC60869_TN.pdf
• The New School in 2030: How can we make learning and working attractive?)(The Learning and Redesign Lab, 2014, Flanders)
http://onderwijs.vlaanderen.be/sites/default/files/atoms/files/Results%20of%20the%20learn%20and%20design%20lab.pdf
• Education for All
https://www.edu.gov.on.ca/eng/document/reports/speced/panel/speced.pdf
• Learning for All
http://www.edu.gov.on.ca/eng/general/elemsec/speced/LearningforAll2013.pdf
• InspiringEducation: A Dialogue with Alvertans(Government of Alberta, 2011)
•
https://archive.education.alberta.ca/media/6884694/school%20board%20guide-april%202013.pdf
•
https://archive.education.alberta.ca/media/441524/SchoolBoardGuideFinalMar06-07.pdf
• http://www.speakout.alberta.ca/LinkClick.aspx?fileticket=67Jb6JDelPg%3D&tabid=60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