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 새패러다임(8): 학습효율성 제고 위한 근본 방안
1. 서론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PISA 2006’ 성적 기준으로 우리나라 만 15세 학생들의 학습효율성 지수는 OECD 30개 회원국 중 24위이다(신진우·황형준, 2008). 학습효율성지수란 PISA 점수를 평균 학습시간으로 나눈 수치다. 우리 학생들의 주당 학습시간은 69시간 30분으로 핀란드(38시간28분)보다 30시간 이상 많았다.
PISA 2012 수학 학업 성취도를 주당 수학 학습 시간(분)1으로 나눈 효율성 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OECD 34개국 중에서 꼴찌, PISA 2012에 참여한 66개 국가 중에서는 58위인 것으로 나타났다(유한구·김영식, 2015). 이 정도면 우리 사회가 우려할만하다. 효율성 지수의 타당성이나 신뢰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아무튼 이 수치는 우리 학생들이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책상 앞에 앉아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학습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으로 선행학습 금지, 교수학습법 개선, 주말학원과외 금지, 입시제도 변경 등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약간의 효과는 있겠지만 큰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무한반복 학습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도록 유도하여 성공한다면 학습효율성 지수를 어느 정도 개선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2008년부터 해온 노력이 무색하게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주말 공부시간은 5년 전인 2009년에 비해 중학생은 42분, 고등학생은 30분이 늘었다. 쉼 없이 책상 앞에 앉아있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효율성만이 아니라 학습 흥미도와 의욕도 떨어진다는 것은 학생이나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도 모두 알고 있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학생들이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비효율성을 뻔히 알면서도 부모와 선생님들이 자기 자녀와 학생들에게는 더욱 열심히 공부하도록 닦달하는 이 유는 무엇일까?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2. 학습효율성 지수의 국제비교가 주는 시사점
학습비효율성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국가별 학습효율성 지수를 비교해본 결과 재미있는 흐름을 발견했다.
가. 아시아 국가 대 북유럽 국가
드러난 흐름 중의 하나는 아시아 국가는 학습효율성이 낮고, 북유럽 국가는 학습효율성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국가별 주당 학습 시간 평균을 보면 최상위 4개국[베트남(1위), 한국(2위), 싱가포르(3위), 상하이(4위)]은 모두 아시아 국가이다. 반면 최하위 5개국[핀란드(62위), 네덜란드(63위), 독일(64위), 노르웨이(65위), 오스트리아(66위)]은 모두 북유럽 국가들이다. 즉, 아시아국가 학생들은 수학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반면 북유럽 국가 학생들은 최소한의 시간만 투자하고 있다.
학습효율성지수는 이와 반대로 모두 주당 학습 시간이 최하위였던 북유럽 국가들[오스트리아(1위), 네덜란드(2위), 독일(3위), 핀란드(4위), 노르웨이(5위)]이 최상위 5개국을 차지했다. 반면 학습시간이 많은 아시아 국가들[베트남(66위), 한국(57위), 싱가포르(54위), 상하이(47위)]은 모두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이 안에 우리 학생들의 학습효율성을 높이고, 학생들이 여유를 즐기며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유도할 답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표 1> PISA 2012 수학 성적 순위와 학습효율성지수

나. 성적 최상위 국가 학생들의 낮은 학습효율성
또 다른 흐름은 수학성적 최상위 집단은 전반적으로 학습효율성 지수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수학성적 1위부터 5위까지의 효율성 순위를 살펴보면 1위 상하이(47위), 2위 싱가포르(54위), 3위 홍콩(35위), 4위 대만(45위), 5위 한국(57위) 등 전반적으로 낮다. 그리고 효율성 지수도 홍콩만 2.0을 가까스로 넘겼을 뿐 대부분 2.0 이하이다. 수학성적 최하위권 5개국의 효율성 지수가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모두 상위의 30위 이내에는 들었다.
<표 2> 수학성적 최상위국가와 최하위 국가의 학습효율성 비교

이러한 경향성은 무엇을 의미할까?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국가대표 쇼트 트랙 선수들이 매일 열심히 연습한다고 하여 기록이 크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의 기록을 주당 연습시간으로 나누어 연습효율성 지수를 산출하면 최고의 선수들보다는 중간 수준 선수들의 효율성 지수가 더 높을 것이다. 골프의 경우 거의 연습하지 않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필드에 나가는 주말골퍼와 매일매일 연습하는 프로골퍼의 타수를 주당 연습시간으로 나누어 효율성 지수를 내면 당연히 프로골퍼의 효율성 지수가 훨씬 낮을 것이다. 효율성 지수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연습하여 자기 기량을 유지하지 않으면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다. 수학성적 5위권 이내의 최상위 국가 학생들의 학습효율성 지수가 전반적으로 낮은 것도 같은 논리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과거 핀란드처럼 최상위권을 유지하면서도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겠지만 학습시간이 낮은 핀란드가 결국 최상위권에서 밀려난 것처럼 이는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즉, 최상위권은 효율성 지수가 낮은 것을 어느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지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사안은 아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수학성적 최상위 국가의 학습효율성 지수가 낮은 것은 당연한 귀결인데 이를 대폭 높이고자 하는 정책을 집행하면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연습(학습)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 시행하고 있는 자유학기제는 학습시간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시도하고 있는 학생들의 학습시간을 줄이는 정책이 성공한다면 수학성적은 최상위권을 벗어나 심할 경우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탓에 아직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언제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학생들이 최상위권 운동선수들처럼 그렇게 지속적으로 반복학습을 하게 하는 요인을 밝힘으로써 찾아낼 수 있다. 최상위권 국가대표 선수들이 연습효율성을 생각지 않고 매일매일 혹독한 훈련을 반복하는 이유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지 여부, 나아가 메달 색깔의 차이가 가져오는 보상의 차이가 아주 크기 때문이다. 보상의 크기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메달을 따지 못하면 거의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한 없이 연습에 매진하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고 무한 반복학습을 하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보상시스템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3. 학습효율성 지수 향상 방안
앞에서 밝힌 것처럼 성적 최상위 국가의 학습효율성 지수는 일반적으로 낮다. 다만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꼴찌라는 극단의 상황에 놓여 있어서 효율성 지수를 어느 정도는 높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성적 최상위권 국가라는 명예를 내놓아도 괜찮다는 사회적 합의를 먼저 도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PISA 성적 하락 충격으로 유도리교육을 포기하고 다시 학생들의 학습시간을 늘린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가. 우리 학생들의 학습효율성 지수가 낮은 이유
정부까지 나서서 무의미한 반복학습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음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학생들의 공부시간이 늘어만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인 원인은 입학정원이 정해져 있어서 수학능력과 무관하게 정원만큼만 뽑아야 하는 대입제도 때문이다. 스위스는 수학능력이 있는 것으로 입증만 되면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의대 제외)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2 반면 우리 대입제도는 모든 것을 점수화하여 최종적으로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운 후 때로는 총점기준 0.1점 차이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을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 문제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끝없는 반복학습을 하고 또한 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입전형제도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미 할 수 있는 시도는 거의 다 했다 할 정도로 다양한 시도를 다해보았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박남기(2003)는 ‘그림자론’을 통해 입시 문제는 사회의 전쟁(극단의 경쟁)상황이 대학입시라는 벽에 비쳐 나타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입시제도를 개선하면 입시 관련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척제를 가지고 벽에 비친 그림자를 지울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대입 총점에서의 0.1점은 대학 합격 여부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학생들이 원하는 좋은 직업을 갖게 될 것인지의 여부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북유럽복지국가 학생들도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힘든 노무직이 아니라 고급 전문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 따라서 대입제도나 대학 합격이 미래 직업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학습효율성의 차이를 가져오는 근본 원인은 아니다. 우리가 늘 예로 들고 있는 핀란드 대입제도를 우리와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핀란드도 대입전형 요소가 우리만큼 복잡하고, 시험 난이도는 우리보다 높으며, 의대·법대·교대의 입시 경쟁은 10대 1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치열하다. 우리가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칭하던 지원자의 고등학교 내신 성적, 대학수학능력시험(yliopilastutkinto), 그리고 대학 본고사 성적이 모두 반영된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처럼 과외도 받는다. 수학능력시험은 3회까지 응시할 수 있는데 한 번만 보는 사람은 10%미만일 정도로 수능성적을 올리기 위해 모두들 최선을 다한다. 수능은 주관식 서술형이고, 대학별 본고사에는 난이도가 높은 논술문제가 출제된다(정도상, 2013). 이처럼 핀란드 학생들의 대입시험 난이도가 우리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핀란드나 여타 유럽 국가들의 대입전형 요소와 시험 난이도를 보면 우리 교육부가 학생들의 학습 부담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수능 시험의 난이도를 낮추고, EBS와 연계하여 수능을 출제하며, 본고사를 못 보게 하는 것 등은 학생들의 수학능력과 미래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에는 잘못된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이 학습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공부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고 어려우며, 대입제도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실력주의가 극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대입시험이 갖는 의미가 북유럽 국가들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핀란드 학생들의 학습효율성 지수가 우리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이유와도 직결되어 있다.
원하는 학과 합격 여부가 학생들의 미래 직업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그러면 학습효율성 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좋은 직업을 갖는 의미가 가져오는 차이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노동시장의 이원화(정규직과 비정규직)와 양극화(대기업과 중소기업)가 극심하다.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하면 급여 및 직업 안정도가 크게 떨어지게 된다. 설령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하더라도 유럽복지국가처럼 삶의 질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좋은 직장의 취직 여부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하면 삶의 수준에서 차이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3 따라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자신의 실력이나 공부에 대한 흥미 여부에 관계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버티거나, 부모와 학교의 요구에 따라 버티는 시늉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극도의 불안감 때문에 지속적인 반복학습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학습효율성을 크게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복지국가인 핀란드는 설령 자기가 원하는 전문직종의 직업을 갖지 못하더라도 삶의 질이 크게 차이나거나 기본적인 생계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진학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에는 무의미하게 책상머리에 앉아 버틸 필요성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억지로 자리에 앉아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는 학생의 비율이 적은 탓에 전체 학생의 학습시간 평균이 줄어들고, 학생들 대부분의 기초학력이 튼튼한 탓에 우리나라에 비해 월등하게 학습효율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승자만이 살아남는 교육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부와 쉼을 병행할 수 있다.
나. 학습효율성 지수 향상을 위한 근본 방안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학습효율성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불안감에서 벗어나 무의미한 반복학습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공부에 흥미가 없거나 대학에서 공부할만한 수학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큰 부담없이 무의미한 학습시간을 줄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우리 사회의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실력주의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한다. 노동시장 이원화와 양극화 문제가 완화되고, 신실력주의사회(근로의욕고취형 복지사회, 공동체사회)가 구축되면 사람들은 직업과 무관하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에 지금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되면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칠 대학 합격 여부에 목매달지 않을 것이다. 교육전쟁 상황에서는 시험의 타당도보다는 객관성과 신뢰성, 그리고 공정성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지만 교육전쟁 상황이 완화되면 이에 대한 민감성 수준은 현저하게 떨어지고 대신 타당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박남기, 2003). 따라서 국가가 최소한의 기준만 정하고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완전히 위임하더라도 대학들은 창의력을 포함하여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고급역량을 측정하여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학생들은 무의미한 단순반복학습이 아니라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데 젊음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고, 학부모와 학교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 뒷바라지를 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학생들에게 그렇게 주고 싶어 하는 여유도 줄 수 있을 것이다. 신실력주의사회 구축을 통한 사회의 전쟁 상황 약화, 이를 통한 교육전쟁 상황 해소는 자연스럽게 무의미한 반복학습시간 축소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학습효율성 지수는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와 교사를 포함한 교육계가 그러한 사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교육계는 극단의 실력주의 사회가 가져오는 제반 문제점을 학생들과 우리 사회가 깨닫게 하고, 이들이 신실력주의사회에 적합하고 이러한 사회 구축에 앞장서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홍익인간 이념의 재해석과 적용을 통해 우리 학생들을 민주시민이자 세계시민이 되게 길러내야 한다. 학생들이 고통 속에서가 아니라 즐거움 속에서 미래사회에 적합한 역량을 길러갈 수 있도록 교수법과 교육내용, 그리고 입시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교육계가 해야 할 역할이다. 교육계가 주도하여 신실력주의사회의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하고 이러한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설 때 학습효율성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 문제가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다. 국가는 학교가 위에서 말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보탬이 되는 제도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참고문헌
박남기(2003). 교육전쟁론. 서울: 장미출판사.
정도상(2013.01.06.). <핀란드> 겉은 비슷하지만 속은 다르다: 우리와 비교해본 대학입시. 한국교육신문, 8.
http://www.hangyo.com/app/news/article.asp?idx=41190
스위스의 교육제도
http://ynucc.yu.ac.kr/~edupht/book/gyoyuk/global/14.html
신진우·황형준(2008.10.31.). 한국중고생 책상 앞에는 오래 앉아 있지만. 동아일보. http://me2.do/FtVjowkA
유한구·김영식(2015). PISA 및 PIAAC을 이용한 교육성과 비교와 정책과제(이슈페이퍼 2015-4). 서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주당 학습 시간(분)= 학교 내 수학 학습 시간 + 학교 밖 수학 학습 시간 + 과외 시간 + 학원 수강 시간
- 스위스는 대학입학 자격 시험(불어로는 ‘마취리테’라하고 독어로는 ‘마투라’라 함)에 합격하면 모든 대학 모든 학과(의대 제외)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 대학 정원도, 학과 정원도 없다(「스위스의 교육제도」 참고). 쮜리히 교육대학 부총장에 따르면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과의 집중 면담 등을 통해 탈락시키거나 다른 전공으로 바꾸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탈락생은 보통 신입생의 절반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스위스는 복선형 학제를 통해 중학교에 입학할 때 직업학교에 진학할지 일반학교에 진학할지를 결정한다. 복지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고 직업 간의 소득 차이도 크지 않아 이에 대한 반발은 적다. 최근 들어서는 다국적기업이 스위대기업 정규직이 100이라면 중소기업 62.1, 영세기업 53.7으로 차이가 아주 크다(대학신문, 2016.02.15. 10면).스에 진출하면서 대학 졸업자들의 급여를 크게 올리고 있어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 대기업 정규직이 100이라면 중소기업 62.1, 영세기업 53.7으로 차이가 아주 크다(대학신문, 2016.02.15. 10면).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동대학원 교육학과 교육행정학(석사),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교육행정 정책학과(박사)를 졸업하였다. 1993년부터 광주교대에 근무하면서 학급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교육행정학회장을 역임 중이다. 광주교대 총장을 역임(교대총장협의회의장직 수행)하면서 초등교원양성교육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교육전쟁론,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등 10여권이 있고, 100여 편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한국교육 경험을 통해 세계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 마르퀴스 후즈 후 인더월드와 영국 캠브리지 국제인명사전(IBC) 두 곳에 등재되었다. 블로그 <그들이 말하지 않은 우리교육 이야기>(http://ngpark60.blog.me/) 운영 등을 통해 한국교육을 새로운 시각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아울러 제자들과 함께 <교육나눔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소외계층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헌신하고 있다.
문제 진단은 맞는 듯 하지만 결과가 산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국가가 최소한의 기준만 정하고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완전히 위임하더라도 대학들은 창의력을 포함하여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고급역량을 측정하여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기 전후로 교육당국에서는 대학이 본고사를 치르겠다고 요구하는 것을 막으려 무척 애쓴 걸로 압니다.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위임하면 대학이 현재의 입시지옥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전혀 안 가는데요. 지금은 많이 줄고 있지만 대학에서 논술고사로 본 시험 문제도 창의성보다는 객관성에 더 비중이 컸었는데요, 창의성을 요구하는 문제는 채점하기 까다로워서 기피하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