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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수업, 교사의 도덕성과 학습과학을 층위로 받아들여 : 영림중학교 국어수업을 중심으로

#536 박제원,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2020.05.06

진보교육감은 새로운 학교모델로 ‘혁신학교’를 내세웠고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2019년 경기도 교육청이 발간한 ‘경기혁신교육 10년’에는 혁신학교에 대한 평가가 잘 드러나 있다. 혁신학교는 한국교육에서 “경쟁적이고 입시중심적인 교육을 벗어나 학생들을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 터전이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학부모들은 혁신학교의 신규 지정이나 연장에 대해 여전히 반발하고 대도시나 고등학교일수록 더욱 거세다. 그런 까닭에 지난 6∼10년 동안 비 혁신학교보다 행정적, 재정적으로 특혜를 누렸지만 두드러지게 그 규모를 확장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혁신학교에 대한 논란은 진행형이지만 새로운 학교모델로 등장한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혁신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한 그동안의 갈등이 합리적인 분석보다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논증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교사의 도덕적 태도만으로 의미 있는 학습이 가능한가?

 

혁신학교는 교육과정을 ‘학생들이 실제로 경험한 내용’이라고 보았다. 의도된 교육계획에 그치지 않고 ‘교육목표’, ‘수업’, ‘교육적 성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려고 했다. 교사가 의도된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하지만 학생에게 실제로 학습이 이루어졌는지, ‘교육목표’, ‘수업’, ‘학습내용’, ‘평가’ 등이 학생을 ‘지성’, ‘감성’, ‘시민성’이 조화로운 전인적 인간으로 키웠는지, 의도하지 않지만 ‘부정적인 잠재적 사고’를 하게 했는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은 ‘수업’과 ‘평가’로 실현된다. 평가는 수업에서 학습한 내용을 측정하여 교수와 학습을 향상시키기 위한 피드백 과정이기 때문에 혁신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수업에 맞춰야 한다. 혁신학교는 교사가 주도하는 ‘강의식 수업’에 대해 부정적이다. 학생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수업에서 학생 간의 협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학생이 주도하는 ‘짝’이나 ‘모둠’식 활동수업을 권장한다. 더구나 모둠을 학력수준에 따라 동질적으로 나누면 학생에 대한 ‘분리적인 억압’이기 때문에 교사의 간섭을 배제하고 발달 측면에서 초등학교 1,2학년은 ‘짝’으로, 3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는 ‘4인 모둠’을 구성하여 협동적으로 탐구하게 했으며, 그때 의미 있는 소통과 배움이 일어난다고 본다. 즉 학생들이 오케스트라형의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주도적으로 과제를 해결하는 학습만이 비코츠키의 발달이론에 나타난 ‘잠재적 발달수준’과 ‘실제적 발달수준’의 경계인 ‘근접발달영역’을 ‘실제적 발달수준’으로 전화하고 ‘새로운 근접발달영역’까지 창조할 수 있으며, 배움이 늦은 단 한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모두를 위한 수업’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혁신학교 교사들은 특히 수업에서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 무척 주의한다. 교사는 학생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학생의 실수를 자연스러운 성장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퇴색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과의 만남이 의미 있는 대화를 이끌어 내고 교육적 성장에 기여하려면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학생은 수업 중에 교사가 그의 의견이나 답안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과제를 발표할 때에 듣고 있는지에 대해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확인하며, 교사가 주도하지 않아도 모둠에 주어진 과제를 적극적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수행하는 잠재적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본다. 가령 “모둠활동에서 학생은 재미있는 과제는 당연하지만 재미없어 보여도 특정한 모둠이 자발적이고 희생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경우는 도전적으로 수행한다.”고 본다. 또한 학교는 지적, 정서적으로 불완전한 학생들에게 무지를 깨닫고 충동을 조절하여 전인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곳이기 때문에 학생 하나하나 모두에게 자주 의견을 표현하고 발표하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이처럼 혁신학교 교사들이 학생을 발달이 더딜 뿐 교사와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시선은 비 혁신학교 교사들에게도 울림이 크다. 그동안 학생들을 관성적으로 대하며 지내던 ‘교사의 삶’을 성찰하고 원형을 복원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

 

다만 학생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는 모범적이지만 그 태도만으로 혁신학교에서 “수업이 의미 있는 학습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숙고해봐야 한다. 더구나 상당수의 혁신학교는 지금도 그 방식으로 수업하기 때문에 혁신학교의 일반적인 수업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교사의 교수학습의 질을 개선하고 학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불가피하다. 혁신학교였던 서울의 영림중학교에 근무한 박○○ 교사의 국어수업이다. 그는 교과서에 실린 소설인 ‘하늘은 맑건만’을 8차시로 나눠 수업한다.

 

○ 수업목표
소설에 실린 등장인물 간의 다양한 갈등을 중심으로 소설을 이해한다.

 

○ 수업구성(총 8차시)
1차시, 갈등의 종류/ 2차시, 소설의 전체 줄거리 파악하기/3차시, 발단부분 파악하기/ 4차시, 전개부분 파악하기/ 5차시, 위기부분 파악하기/ 6차시, 절정부분 파악하기/ 7차시, 결말부분 파악하기/ 8차시, 국민 참여재판, 역할극으로 정한다.

 

○ 수업지
학생의 학습동기를 위해 학생에게 각 차시에서 소설의 단계에 나타난 내용 중에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시하고 수업지의 문구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작성한다.

 

혁신학교에서 활발한 교사공동체는 수업에 긍정적이다. 공동체에 참여한 교사들이 수업교사가 준비한 수업을 둘러싸고 집단지성으로 ‘주제’, ‘용어’, ‘전개방식’ 등에 대해 토의하여 학생의 이해를 돕는 더 나은 수업형태를 찾기 때문이다. 영림중학교 교사공동체도 국어를 담당하는 박○○ 교사와 다른 교과 교사들이 참여하여 공동으로 수업을 준비한다. 하지만 학생의 이해에 대해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A교사(수학), B교사(기술)는 교사 토의에서 “교사가 수업에서 소설의 구성인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에게 소설을 읽게 한 후에 직접 나누게 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이처럼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사는 학생에게 소설의 구성 단계에 대해 이론적으로 각 단계의 특징을 설명해야 한다. 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학생중심의 모둠활동을 할 경우에, 사교육에 기대지 않거나 학업능력이 부족한 학생이라면 모둠활동에서 협동적 나눔이 이루어져도 ‘수업지’나 ‘평가지’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크게 어려움을 겪는다. 더구나 거의 모든 학생에 해당되는 경우라면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수업교사는 학생에게 소설의 구성에 대해 이론적으로 교수학습을 하지 않는다. A교사(수학), B교사(기술)가 “학생마다 소설에서 관심을 두는 사건이나 갈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르고 수학에서도 수학적 개념이나 공리에 대해 다양하게 증명하거나 설명하는 차이를 들어, 소설을 5단계로 구분하여 활동하도록 하기보다는 각자의 이해를 발표하자”고 제안했고, 수업교사도 학생들이 소설을 A교사(수학), B교사(기술)처럼 이해할 수 있으며, ‘날 것’ 그대로의 ‘하늘이 맑건만’을 이해한 수업도 흥미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사한 토의가 이어졌다. “교사는 소설에서 주인공인 문기의 갈등에 대해 수업지에 ‘내적갈등’, ‘외적갈등’으로 구분하고 학생들이 활동하도록 했는데 그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즉 학생에게 ‘내부’, ‘외부’라는 조건을 달지 않는 ‘열린 과제’가 탐구에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제안이 이어졌다. “학생이 ‘갈등의 양상’에 대해 탐구하는데 ‘양상’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우니 그 용어를 ‘내용’으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그런데 ‘양상’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자주 나오고 고등학교의 국어, 사회, 과학 교과에도 보편적으로 쓰인 ‘용어’이다.

 

 

선행지식에 대한 측정과 지식의 조직화보다는 활동에 집중

 

이러한 수업방식이 학습에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 없다. 학습자에게 ‘학습은 이해’이고 ‘수업은 교과의 핵심개념을 이해하여 다른 상황에 전이하는 역량을 키워 나가는 과정’인데 수업이 학생의 지식수준에 순응하여 이루어지고 활동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교사가 수업으로 학생에게 교과의 핵심개념을 ‘이해’하고 ‘전이’하여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려면 단순하게 사실적 지식을 분리하고, 나열하여 기억하게 하는데 그쳐서도 안 되지만 그 지식을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능한 조건을 가정하여 지식을 활용하도록 구성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 즉 혁신학교 수업의 틀은 교과에 나온 ‘사실적 지식’을 소홀하게 여긴다는 통념 이외에 ‘지식’, ‘조건’, ‘맥락’의 세 측면이 조화롭게 구성된 형태라고 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첫째, 교사는 학생의 지식과 신념에 관심을 두었지만 ‘선행지식’에 대한 관찰과 측정이 부족했다. 학생을 적극적인 학습자로 인정하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이해’나 다른 상황으로의 ‘전이’는 이미 이해하고 믿는 기존의 사실이나 경험에 근거한다고 보았지만 수업에서 학습자가 기존의 잘못된 신념이나 지식에 근거하여 불완전하게 학습하는데도 그 방식을 수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물고기는 물고기다(Lionni,1970)’는 육지에서의 일에 대해 깊은 흥미를 갖는 물고기에 대해 쓴 이야기이다. 개구리가 물고기에게 육지에서 새롭게 경험한 새, 소, 사람에 대해 사실적으로 설명했지만 물고기는 ‘새를 날개를 갖는 물고기’로, ‘소를 소젖을 달고 있는 물고기’로 그린다. 이처럼 물고기가 경험한 실재를 다르게 그리는 활동을 발산적인 ‘창의적 사고’라고 할 수 있지만 학습자가 새로운 지식을 현재의 지식에 기초해 구성할 때에 논리적으로 오류에 빠지는 위험을 보여준다. 교육심리학자인 Brewer(1989)의 실험에서도 보듯이 교사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아이에게 공 모양처럼 ‘구’임을 설명하고 도전적인 과제를 주었는데 상당수의 아이들은 팬케이크 모양의 평평한 표면이 공 모양 안이나 위에 있다고 상상하고 사람이 그 위에 서 있다고 이해하였다. 아이들은 그들이 지구의 표면에 서거나 걸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지구 모양을 사고하여 그 문제를 이해했고 공 모양의 지구를 선입견으로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신학교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처럼 수업에서 ‘선행지식’이 끼치는 영향이 큰데도 그와 관련된 교수 역할을 제한했다. 앎에 대한 구성주의 이론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말해줘서는 안되며, 학생이 스스로 지식을 구성해야 한다고 착각했다. 구성주의자는 학습의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지식이 사전지식을 바탕으로 구성된다고 가정하며, 교사의 단순한 강의를 듣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구성하기 위한 의욕적인 노력이라고 본다.(Cobb,1994). 즉 교사가 위의 두 사례인 ‘물고기는 물고기다’ 이야기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학생에게 배우게 할 때에 수업의 형식이 강의인가, 활동인가에 집착하면 효과적이지 않다. 그러니 교사는 수업에서 선행지식과 교육내용에 대한 학생의 해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강의와 활동을 구분하기보다는 수업하는 학생의 학습수준에 따라 수업을 구성해야 한다.

 

영림중학교 교사는 국어수업에서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구성의 5단계’와 관련된 학생의 선행지식을 측정하지 않았고 그 지식을 교수하는 절차마저 아예 생략하였다. 교사는 수업에서 “학생이 소설의 5단계에 대한 지식이나 그에 따른 신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그 상태를 학습의 시작점으로 하여 학생의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을 파악할 때에 학습을 증진할 수 있는데 ‘지식과 신념에 대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의미를 자의적(恣意的)으로 받아들였다. 즉 ‘학생의 지식과 신념을 무조건 수용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없는데 무조건 수용하고 있거나 이미 정확하게 안다고 가정했다. 또한 교사는 그 지식이 ‘오 개념’일 경우에 적극적으로 수정하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모둠 활동에서 학생 간의 대화와 만남을 방해하는 활동으로 착각했다. 그 까닭은 혁신학교 교육철학으로 수용한 사또 마나부(佐藤学)의 ‘배움의 공동체’ 철학에 대한 경직된 해석과 수업에서 교사의 지위 및 역할을 편향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했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교수는 학생의 삶과 분리된 특정한 교육목표나 과정을 종속적이고 수동적으로 주입하는 과정으로만 보았기에 수업에서 학생을 동등하게 대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한 원칙이며, 이러한 도덕적 태도는 학습과학을 벗어나는 교수학습방식으로까지 나아갔다. 심지어 사또 마나부의 교육철학에 의하면 ‘교사의 강의도 배움을 키우는 만남’인데 가급적 수업에서 배제하였고, 그에 따라 코칭 역할마저 제한했다. 이처럼 교사와 학생의 관계 및 수업에 대한 ‘근본적 본질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혁신학교의 근간이던 사또 마나부의 교육철학마저 왜곡하는 역설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도 혁신학교의 수업방식이 바뀌지 않는 까닭은 학교개혁의 토대가 되었던 ‘외부로부터 내부를 성찰’하려는 태도를 멈췄기 때문이다.

 

결국 사또 마나부의 가다머(Hans Georg Gadamer)적인 교육에 대한 인식론과 비코츠키(Lev Semenovich Vygotsky)의 발달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혁신학교의 수업은 ‘구성주의’ 틀에서 이루어졌지만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근대철학에 담긴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도식적으로 이해하고, 그 틀을 고수하여 학습을 이해했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의 선행지식에 대한 개입을 차단하거나 최소화하는 수업이 정당하다”는 착각이 나타났다.

 

교사는 학생이 지식을 조직화하도록 교수학습을 해야 한다. “사실적 지식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개념적 틀을 바탕으로 사실과 아이디어의 관계를 이해하여, 학습한 내용을 다양한 상황에서 인출하고 적정하게 적용하는 역량을 촉진시켜야 한다.” 전문가와 초보자의 차이는 풍부하게 구조화된 지식기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사실적 지식을 바탕으로 과제를 계획하고, 패턴을 감지하며, 합리적으로 논쟁하며, 새로운 문제를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학생의 학습역량이 성장하려면 수업 내용을 단순하게 암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심층적으로 이해하여, 그 내용을 사용가능한 지식으로 변형시킬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학생이 수업에서 개별적으로 배운 지식 간의 ‘패턴’, ‘관계’, ‘불일치’ 등 구조를 파악하는 사고역량을 키울 수 있게 해야 한다. 학교에서 교과수업으로부터 얻는 사실적 지식은 제한적이지만 그 개념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면 지식의 행간을 읽어, 보이지 않는 정보의 의미까지 추론하는 전문가적 자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습방식은 교사가 학교수업에서 학생에게 사실적 지식을 전수하는데 제한적이지만 그 지식의 학습과 전이를 향상시킬 수 있는 수업방식에 대해 성찰하도록 한다. 또한 이처럼 지식을 형식적이고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방식과 그에 따른 주의력은 외부적 환경자극이 바뀌거나 복잡해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며 좀처럼 산만해지지도 않는다. 그 점에서 교육은 학생에게 ‘단순한 지식’이 아닌 ‘형식적 지식’을 갖고 활동하도록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Hendrickson&Schroeder(1941)는 ‘물속으로 다트 던지기’ 실험을 했다. 한 집단은 겉으로 보이는 다트 판의 위치와 실제의 위치가 왜 다른가에 대해 빛의 굴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다른 집단은 이런 설명이 없이 단지 다트 던지기만 연습했다. 두 집단 모두 표적이 12인치 물 속에 있는 상황에서는 동일하게 잘 수행하였다. 하지만 다트판을 물 속 4인치 위치로 바꿨을 때는 빛의 굴절 원리를 학습한 집단이 자신의 배운 원리를 새로운 전이시켜 더 뛰어나게 수행했다. 이 결과는 빛의 원리를 조직화해서 이해할 경우에 과제에 대한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경우를 보여준다.

 

교사공동체에서 “수업지에 소설의 주인공인 문기의 갈등에 대해 ‘내적갈등’, ‘외적갈등’으로 구분하고 학생들이 활동하도록 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은 학습과학에 근거했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내부’, ‘외부’라는 조건을 달지 않는 ‘열린 과제’가 탐구에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항상 성립하지 않는다. 담당교사는 학생에게 수업지에 ‘조건’을 부여하여 소설을 탐구할 적에 지식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역량을 기르려고 했다. 소설에서 문기는 외적 갈등을 해결해 나가지만 내적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거듭 문제적 상황에 빠진다. 그는 심리적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감추거나 버리고 싶은 까닭에 갈등은 지속적이다. 교사가 수업지에 내부, 외부라는 기준을 제시한 까닭은 학생에게 소설에 나타난 갈등을 단순하게 이해하게 하기보다는 층위를 두어 내적 갈등이 본질적이고 외적 갈등은 외피적인 현상으로 파악하는 구조적 학습을 위해서였다.

 

물론 이○○(수학) 교사, 남○○(과학) 교사처럼 수업지에서 ‘기준’을 제외하고 본문에서 갈등을 다 찾게 하여 분류하고 각 갈등이 어떤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으며 차이가 나는지 말하게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처럼 학생에게 구조적이고 형식적인 지식을 형성하기 위한 모범적인 방식은 그 수업에서 실현하기 어렵고, 실현되지도 않았다. 그 증거가 또 다른 제안이다. “학생이 ‘갈등의 양상’에 대해 탐구하는데 ‘양상’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우니 그 용어를 ‘내용’으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수업교과인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데도 사실적 지식인 ‘양상’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그 소설을 읽고 수업지의 질문에 대해 구조적으로 지식을 분류하여 핵심개념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더구나 사실적 지식에 대해 사전적으로 명료한 이해는 지식의 구조화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 질문이 ‘핵심개념’이었다면 깊이 다뤘어야 했다. 교사가 수업지를 제작한 까닭은 학생이 모둠활동에서 수업단원에 나온 모든 주제나 내용을 피상적으로 다루는 대신에 핵심개념을 중심으로 소수의 주제를 심층적으로 탐구하여 이해하도록 하는데 있다. 그런데 ‘양상’이라는 용어를 그보다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바꿀 경우에 소설에서 갈등을 분석했을 때에 갈등에 나타난 ‘패턴’, ‘관계’, ‘불일치’ 등 구조를 파악하는 사고역량을 기르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다시 말하면 수업에서 사실적 지식을 크게 늘리지 않더라도 지식의 이해와 전이를 위해 꼭 필요한 개념에 대하여는 다양한 예를 제시해서라도 교수했어야 했다. 그 착각은 ‘지식에 대한 오해’로까지 이어진다. 학생들은 소설의 내용을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하여 수업지에 대해 다양한 답안을 제시했는데 담당교사는 “지식의 깊은 생명력은 정답에 있지 않다.”고 평가한다. 즉 “교사들은 정해진 답을 기대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상하지 못한 답안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설령 오답이라도 시간의 여유를 주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지식과 정답의 관계에서 과정적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지 정답에서 미끄러지는 방식을 수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교사에게 “학생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답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과정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수업을 구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지식을 구조화하는 사고도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혁신학교 수업에서 이 방식이 일반화된 까닭은 “모둠활동을 하면 학습수준이 높아진다.”고 획일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사또 마나부조차 “수업에서 기계적으로 학생 중심의 모둠활동을 할 경우에 배움이 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협력학습과 협동학습을 구분하며 협력은 모둠활동의 목적이 아니며 하나의 조건이다. 모둠을 구성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다양하기 때문에 모둠토의에서 그의 의견을 제시하고 발표하면 사이좋고 즐거운 협력학습은 이루어지겠지만 이미 아는 내용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에 꼭 새로운 배움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배움은 아는 지식을 이야기하는 활동이 아니라 모르는 지식을 탐구하는 협동적 과정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교사는 수업 시작부터 학생들이 모둠학습을 하도록 해야 하지만 수업지에 심화적인 ‘점프과제’를 넣도록 했다.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4,5,6학년 문제를 내고 모둠활동을 하게 해도 문제될 것이 없고, 오히려 학생들이 계속 점프하는 경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그도 수업에 대해 “지식을 조직화하는 구조적인 활동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본다.

 

 

교사의 도덕과 학습과학을 인과론적이거나 층위로 받아들여

 

그런데 혁신학교인 영림중학교의 국어수업에서 보듯이 실제의 수업은 그처럼 수행되지 않았다. 그 까닭은 혁신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도덕적으로 대우하면 학습효과가 커진다.”는 명제를 인과론적으로 이해하거나, “도덕과 학습과학을 상하위의 층위로 두고 사고하였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또한 단원이나 주제학습에서 ‘이번 시간에는 ○○에 대해 학습 합니다’ 등 동기유발을 위한 지나친 설명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 취지를 벗어나고 확대 해석하여 “교사가 모둠에 개입하여 힌트를 주거나 설명을 하면 아이들끼리의 모둠활동을 멈추게 하고 개입하지 않으면 움직인다.”든지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활동지를 나누어주고 바로 활동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좋다.”등, 특정한 수업방식을 정형화하고 일반화하여 수용함으로써 학습과학의 원리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교사의 배움, 사또 마나부&배움의 공동체 연구회
교사들이 함께 성장하는 수업, 서동석 외 6명
교육과정 – 수업 – 평가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이형빈
미래교육 교사가 디자인하다, 곽덕주 외 6명
진리와 방법, 가다머; 이길우 외 2인 편역
학습과학, 신종호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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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박제원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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