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30년지대계 (4) – 교원업무정상화, 교육혁신의 황금열쇠
2000년이래로 매 3년마다 동시에 치르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15세 한국아이들은 단연 세계 최상위권의 성적을 자랑한다. 한두 번이 아니고 5번 모두 그랬다. 일관되고 분명하다. 15세 대한민국의 언어, 수학, 과학 능력은 세계 최고다. 언어, 과학, 수학 3과목만 친다지만 실제 문항은 그 지식을 활용하는 문제해결능력을 보기 때문에 지적역량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고 봐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PISA 결과를 볼 때마다 세계 1,2등을 달리는 아이들이 한없이 자랑스럽고 아이들을 가르쳐낸 교사들한테도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PISA 기타 국제비교평가에서 수학과 과학에 대한 지적흥미도와 자기주도학습역량, 행복감이 일관되게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온다. 지적으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공부에 매달린다는 뜻이고 스스로 공부하는 대신 학원에 다니며 공부한다는 뜻이다. 비교와 경쟁에 치여서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공부는 잘하지만 행복도 지적호기심도 모르고 사는 아이들이라는 것. 세계 최우수의 학업성취가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것이다. 한국교육의 딜레마와 가능성은 이 지점에서 한꺼번에 드러난다.
비교와 경쟁에 찌든 지금의 학교교육은 아이들의 지적흥미를 체계적으로 키워주는 대신 체계적으로 거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아이들은 세계 1,2등을 다툰다. 만약 이 아이들이 재밌어서 스스로 공부를 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날 게 틀림없다. 더욱이 흥미가 뒷받침해서 스스로 하는 공부는 지속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되면 15세 대한민국뿐 아니라 30세, 40세, 50세 대한민국도 세계 최고의 지적역량으로 상향평준화돼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타공인 인재강국으로 발전해 있을 것이다. 물론 민주시민이자 생업종사자로서 개개인의 역량도 최고도로 발달해 있을 것이다.
PISA결과는 한국교육이 학생들의 지적흥미와 행복감, 민주시민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함을 말해준다. 학생들의 지적흥미도를 높일 수 있도록 수업방식을 바꾸고 행복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학교문화를 바꿔야 한다. 학교와 교실의 큰 틀이 경쟁에서 협력으로, 차별에서 지원으로, 소외에서 참여로, 통제에서 자율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한국사회의 정치와 경제가 더 인간화되고 민주화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반쪽정치와 양극화경제로 치닫는다면, 그리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학교와 교실차원에서 경쟁이 실질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런 인식 아래 나는 교육감이 될 때 네 가지 지향을 분명히 했다. 대물림을 끊는 희망교육, 포기 없는 책임교육, 선진국형 혁신교육, 함께하는 참여교육이 그것이었다. 이런 지향을 실천하기 위해 나는 네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첫째,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열악한 학교에 더 많이, 더 빨리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둘째, 학습부진과 학교부적응 대응, 특수교육과 다문화교육 등 특별배려가 필요한 책임교육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셋째, 발표토론과 모둠협력방식으로 수업방식을 혁신하고 자율과 책임중심으로 생활지도를 혁신하겠다고 다짐했다. 넷째,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참여를 활성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학부모 참여를 제도화하고 학부모교육을 강화하며 교육자치와 행정자치, 학교와 지역사회의 담을 허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와 함께 학교급별로는 중학교를 혁신한 교육감이 되기로 마음먹었으며 교육과정에서는 문예체교육을 실질화하는 교육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학교와 교사 문화를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교육감이 된 내가 설정한 개혁목표이자 방향이었다.
교육감이 되고 6개월쯤 지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는 위에서 언급한 꼭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됐다. 교육과 학교에서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것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돌이킬 수 없는 개혁과 혁신의 선순환이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걸 깨우치고 나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교육개혁과 혁신의 황금열쇠라고 명명했을 정도다. 진보교육감 2기는 진보교육감 1기가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뒤늦게 손에 넣은 황금열쇠를 이미 손에 쥐고 시작했다는 점에서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는 후발주자의 이점이 있다.
교사문화와 학교문화를 좀 더 알고 나니 교육현장의 모든 변화는 교사에서 출발한다는 점과 교사의 전문성과 헌신성을 높이는 것으로 모든 변화가 귀결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리고 학교간, 교사간 경쟁이 아니라 학교간, 교사간 협력이 학교를 살리고 교실을 깨운다는 점을 알게 됐다. 교사들 가운데서도 동일학교, 특히 동일학년 교사들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도 알게 됐다. 교사의 전문성과 헌신성을 높이는 것이 학교혁신의 요체이며 이를 위한 자발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첫째, 교사가 교무행정과 공문처리에서 해방되어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게 함으로써 학교는 교육과정과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교원업무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학교혁신을 하려면 교원업무정상화가 최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사가 원무행정을 하지 않듯이 교사도 교무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배우가 연기에만 몰두하듯이 교사도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만 교사들 스스로 수업혁신이나 생활교육 혁신을 진정성 있게 시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교원업무정상화를 학교혁신의 선순환을 여는 황금열쇠라 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진보교육감의 성공가능성은 교원업무정상화의 착근 수준에 정비례한다.
둘째, 교육청의 정책사업과 조직규모를 대폭 줄이고 교육청의 업무방식을 혁신해서 최대한 교육청의 관료주의를 청산하고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도록 교육청과 학교 관계를 바꿔야 한다. 특히 학교예산이 최대한 학교자율로, 최대한 교육과정 중심으로 편성, 집행되게 한다. 교육적으로 중요하고 바람직한 사업은 교육청의 정책사업 형태로 일부학교에서만 선별적으로 일정기간만 제공될 것이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와 교사들의 자율적이고 전문적인 집단지성과 경험에 기초해서 모든 학교에서 상시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청을 학교지원역할로 전환하고 학교현장의 자율성을 강화하려면 정책사업 대폭감축과 학교자율예산 증액, 교육청 규모축소가 우선이다.
셋째, 현재의 스펙관리형 누적점수제 교장승진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교장의 권위에 맹종하며 교육활동보다 교무행정을 우선하고 교육과정보다 정책사업에 열중하는 풍토를 바꿀 수 있다. 그래야만 교육활동에 매진하며 전문성을 위해 노력하는 헌신적인 교사들이 우대받게 된다. 교육감은 교장승진 항목과 비중, 가산점을 100% 세밀하게 이해한 바탕 위에서 교육감이 다소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적 요소에 대해 당장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교육부가 바로잡아야할 제도적 요소에 대해서는 교육감협의회를 통해서 교육부와 국회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교장공모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혁신학교 교장을 적극적으로 발탁해서 새로운 교육철학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민주적 교장리더십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넷째, 교사들이 21세기 핵심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사연수제도를 혁신해서 교사의 수업 및 생활지도 전문역량을 강화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학생지도가 힘에 부친다는 것이 큰 이유를 차지한다. 교사양성과정과 교사임용과정, 특히 교사연수과정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학급운영역량과 생활교육역량을 집중적으로 길러줘야 한다. 이와 함께 교사학습동아리가 학교마다 운영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럴 때만이 학교가 아이들의 학습공동체를 넘어 교사들의 학습공동체로 변모할 것이다. 교사간 경쟁이 아니라 교사간 협력이 교육혁신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교사들의 연구학습동아리를 통해 교사의 전문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이 작업은 1,2년에 가능한 것도 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일이야말로 교육감이 임기 내내 노력을 경주하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위에서 간단히 설명한 황금열쇠를 손에 쥐어도 막상 개혁과 혁신이 쉽지는 않다. 어디서나 깨어있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많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과 시스템 안에서 익숙한 것에 안주한다. 주체로서 각성하고 행동하며 그 과정에서 때때로 모험과 도전을 마다않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다. 많은 이유를 대며 변화를 거부하며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다. 개혁적인 방향으로 작더라도 가시적인 성취를 이뤄내야만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과 불만 섞인 목소리를 불식시키며 개혁과 혁신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대세가 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혁신학교의 성공이 그래서 중요하다. 학교혁신의 황금열쇠가 작동가능하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