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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관련 청소년 목소리] 잊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나요?

#78 김유진, 이우고등학교 학생 2014.06.10

세월호에 대해 칼럼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나는 무어라고 말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머리 속에 혼동이 가득 찼을 뿐, 내가 생각한 것들이 있기나 할까 그야말로 의미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되었다. 게다가 누군가 나의 글을 읽을 것이라는 부담감으로 인하여 자기검열을 거치며 스스로를 기만할까 혹 칼럼의 형식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생각을 나열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그러나 글이라는 매체가 가진 사고의 자유로움에 의지해 생각을 이어나가려고 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세월호 사건에 대해 나는 공감능력이 다소 떨어졌다고 말해야겠다. 어렸을 적, tv속에서 교통사고로 일가족 사망 등이 하루에 한번 꼴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객체 없는 꾸짖음, 분노 등의 감정을 느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마음에 온전히 휩싸일 수 없는 것 같아서, 스스로에 화가 나고 슬픈 감정이 들어온다. 학교에서는 그 일이 있은 이후 삼삼오오 모여 세월호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평소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모여서 종이에 메시지를 적고, 별을 접어 단원고에 전달하는 ‘별에 담다’를 기획하기도 하고, 안산의 분향소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다시 일상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나를 보며 마음한편으로 불편한 마음이 들어왔다.

 

워낙 다른 문제라 비교가 조심스럽지만 작년 국정원대선개입사건에 대해서는 불의의 감정이 생겼고, 민주적인 사회를 저해한다는 문제인식이 생겼었다. 게다가 누구의 잘못인지도 판단할 수 있었고, 정의를 외치는 공간에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은 슬프다, 안타깝다 등의 생각과 감정은 이어졌지만, 객체를 탓하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내적으로 나는 고3이라는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최소한의 책임이 있었던 사람들을 탓할 자격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로 사건의 문제와 이후를 일축했다. 그런데 국가라는 것은 사실상 명확한 실체가 없을뿐더러 예기치 못한 일에 대한 대비와 책임을 모두 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 세월호가 이동을 멈춘 8시52분 이후 9시46분까지의 긴 공백에 대해서 왜 준비된 대처를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우리는 화가 나는 것이다. 내적인 책임에 대한 불편한 마음으로 인해 사회적인 논의로의 확장을 막는 태도 또한 바르다고 하지 못하기에 이제 우리는 그 객체를 찾아야한다.

 

1차적으로 긴급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못한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접대비에는 9억 원을 들여가며, 선원들의 안전교육을 위한 연수비에는 1523만원 밖에 쓰지 않으며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청해진해운, 또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제 너머에 12차례 점검을 받았으나 모두 이상 없다는 결과를 내린 해피아, 사용기간을 20년에서 30년으로 법을 계정한 관계자, 사건 초기 생존자 집계도 하지 못했던 정부, 정부 외에도 각종 오보와 정부관계자 위주의 말을 보도하며 상처를 준 기자들과 방송관계자들, 선거운동에 이번 사건을 이용해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을 한 정치인들, 각종 기사들마다 악플을 남긴 네티즌들, 문자를 조작하여 관심을 받으려했던 사람 등 우리사회를 이루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들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누군가는 정치적인 문제로의 변질이 옳지 못하다고 하나, 이렇게 그 너머 너머를 살펴보면 우리의 삶에 작용하여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정치이고, 함께 논의하여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그것이다.

 

조금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서, 이번 사건을 통해 의문을 던졌던 것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물음이었다. 선원들의 수차례 지적이 있었음에도 청해진해운이 안전문제를 도외시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끝에는 ‘돈’이 자리하고 있었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누구나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훌륭한 경영자의 자질은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라 말하는 사회통론 속에 자라난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다. 우리사회는 세계화와 경제발전을 우선시하며, 소외된 삶의 조건에 대한 반성 또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속에 무한경쟁의 논리는 공생의 가치와 공동체의 존재를 위협하며, 삶의 질의 향상에 대한 고민을 자꾸만 뒤로 미루게 한다. 심지어 정치인들도 개발업자들과 함께 끊임없는 토목, 건설을 일삼는다. 기업이 늘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허황된 광고 속 표어처럼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여 기업의 이윤을 이끌어내는데 최대한의 지원을 해주고 있다. 기업의 이윤은 이끌어 냈지만 그 믿음의 결과는 윤리가 실종된 사회인 양성이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간다운 사회인을 기르는 것이 목표인 사회라면 교육을 되돌아보고자 할 것이나 모든 문제의 해결을 교육으로 귀결시키는 것도 바르지 못하다. 그것은 오히려 교육의 본질을 훼손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교육이 감당하고 있는 역할을 고려하여, 대안을 제시해고자 한다.

 

한 번의 안전사고 이후 학교 내 학생들의 현장체험 활동을 막아버리는 것은 아이 목욕물을 버리다 아이까지 버리는 식의 대안일 뿐이다. 형식상의 안전교육을 늘리는 것 또한 그렇다. 이제는 교육계에서도 이러한 식의 단편적인 해결방안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우선 학생들에게 기존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당연한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 필요하다. 그것들은 철학적이기도, 사회감수성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시민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하며, 행사성을 띤 교육에서 벗어나 실질적이고 생활에 밀접해 있는 안전교육도 보강해야 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경우 자전거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모착용 캠페인을 하고 있다. 또한 학교에서 학생들의 자치시간을 확보하여,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의무적 자치 환경 마련보다는 자치의 의미와 권리에 대한 인식의 토대위에 전개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짐은 무겁기에 운영상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의 조언과 지도가 필요하다. 마땅한 담당교사가 없다면 자치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성장과정을 함께 해야 한다.

 

나와 친구들은 그동안의 사회적인 문제에 고민하고 시위들에 참여하면서 ‘진정 우리가 무언가 바꾸기 위해, 또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함께 힘을 모으는 것뿐이기에 현장으로 갔지만, 듣는 이 없는 공간엔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였어도, 아무리 큰 소리로 외치고, 부르짖어도 허허할 뿐이었다. 시민들이 모여 소리를 내었으면, 이후에 대안을 마련해야할 정치적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지 않기에 이제는 시민들이 나서서 대안을 논의하는 일까지 맡아야 할 판국이 되었다. 이 일을 맡아줄 시민단체도, 정치인도 그 누구도 없다. 그렇기에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수 없다. 미안하다는 말 또한 그렇다.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고, 결국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일 뿐이다.

 

10년에 한 번꼴로 이어지는 대형 사건들에 많은 이들이 지치고, 허무한 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우리는 슬픔을 느끼고, 이후에 대해 논의를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며, 끊임없이 대답 없는 질문들을 던져야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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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고등학교 학생 김유진

이우고등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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