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육감 당선자들께 드리는 17가지 부탁 말씀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교육감 후보 중 13 곳이 진보성향의 후보가 당선되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진보 성향 후보들의 대 약진이다. 이것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진보쪽은 지금의 경쟁중심의 성적지상주의 교육을 중단하고 새로운 교육의 시대를 활짝 열어 아이들의 참된 인성이 자라고 행복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민의의 반영으로 해석하고, 보수쪽은 새로운 교육에 대한 요구이기보다는 단일화로 인한 어부지리일 뿐이라고 폄하한다. 그 근거로 진보교육감 후보들이 얻은 총 득표률은 39.6%이지만, 보수성향의 후보들이 얻은 표는 60%나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튼, 이번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은 한국 공교육 개혁의 큰 계기로 작용할 것 같다. 특히, 진보성향의 교육감 후보들은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가 매우 많이 닮아서 이 힘을 합치면 큰 에너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수 성향의 교육감들조차도 현 공교육의 개혁에 대한 열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입시중심의 경쟁교육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을 것이다.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추구하는 개혁이 긍정적 변화를 보이게 되면 현재의 보수성향의 지역으로도 번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도 그동안의 편견의 렌즈를 떼고 순수한 시각으로 새로운 교육감들이 교육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교육감 선거를 통해 나타난 공약을 보면 중앙정부와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변화에 대한 열망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잘 읽고 역사의 흐름을 그르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감 당선자분들에게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 교육감 당선자 제위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선의 행운은 각 당선자들께서 평소 진실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한국 공교육을 바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오시고, 민의를 잘 꿰고 유권자들의 바람에 부응할 수 있는 후보라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축하와 함께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17분의 교육감이 자주 함께 만나십시오.
제발 끼리끼리 만나지 마십시오.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함께 만나 경험을 나누고 사안에 따라서는 정책의 공조까지 시도해 주십시오. 교육은 우리의 미래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키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사람 및 집단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모습은 큰 아름다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또, 그때 모든 국민들은 더 큰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2. 매사를 2분법적으로 구분하지 말아 주십시오.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은 진보적 가치를 신봉합니다. 그 결과 다른 가치와 신념을 배척하거나 폄하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대로, 보수 성향의 교육감들도 진보적 가치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체계만 절대의 선으로 보는 것은 독단주의입니다.
진보나 보수 각각은 각자가 더 잘 볼 수 있는 부분이 따로 있습니다. 서로가 잘 볼 수 있는 것을 합칠 때만 전체를 다 잘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가치와 생각을 존중하면서 타협과 협력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습니다. 2분법 사고를 지양하고 독단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 주십시오.
3. 진보 성향의 교육감께서는 때로는 중앙정부나 보수 성향의 교육감과도 협력해서 교육을 바꾸어 주십시오.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중앙정부와 협조적 관계를 갖는 것은 다소 어색하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결과가 아동의 교육에 더 도움이 되는 길이라면 때로는 용기를 발휘해서 중앙정부와도 화목하게 손을 잡고 교육을 바꾸어 주십시오. 그리고 보수성향의 교육감들과도 함께 학습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를 선도하십시오. 이렇게 할 때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김지철 충남도교육감 당선자의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한 일이라면 진보적 가치든 보수적 가치든 마다하지 않겠다.”라는 말은 참으로 공감이 갑니다.
4. 잘못된 공약은 없는지 재검토 해주십시오.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을 우선시하다보면 무리한 공약이나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 공약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는 전문가의 검토를 거치지 않아 실시해서는 안 되는 공약도 보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학교교육이 지식중심에서 역량중심교육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전통적인 지식은 여전히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세월호의 평형수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튼튼할 때만 이를 바탕으로 창의력도 자랄 수 있습니다.
역량은 가끔씩 배운 지식을 가지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통해 키워주면 됩니다. 한국은 아직 입시전형에서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술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만약 역량중심교육과정을 주장하시려면 이런 역량은 전통적인 지식과 가치, 정의적 태도 등이 다 포함된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학교교육이 지식의 습득에 그치고 이를 실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해보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지식 중심의 교육에서 역량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선진 교육에서도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또, 아직 교사의 역할을 가르치는 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 ‘Teach Less, Learn More’의 모드로 가야 합니다. 배움의 주체가 학생이 되고 배움의 책임도 학생이 스스로 지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가 더 많이 가르치려고 하면 할수록 학생은 배움에서 더 멀어집니다.
5. 교육문제를 해결할 때 대증요법보다 근본적인 원인의 제거에 더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사교육비를 줄이는 문제를 예로 든다면 사교육을 유발하는 수많은 원인이 있습니다. 이런 원인들을 잘 분석해보면 가장 먼저 교육시스템과 학교 교육이 변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대학서열과 대입시, 그리고 직업의 귀천 등이 견고하게 존재하는 한 일정부분의 사교육은 불가피합니다.
학원에 대한 규제는 그 동안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효과가 있는 방안은 없었습니다. 사교육 유발의 근본적인 원인을 줄이는 데 힘써 주십시오. 가령, 내신성적을 위한 사교육의 경우, 수업의 양을 줄이고, 완전학습을 지향하는 개별화 교육이 정착될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 사교육에 대한 수요는 많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능과 같은 표준화 시험의 영향력을 대폭 줄이고 개별화 교육에 근거한 내신의 신뢰 문화를 만들어 가면 약 10-15년 후에는 사교육은 대폭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원 등이 돈을 벌 수 없어 대부분 폐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교육 유발요인을 줄이기 위해 사교육 유발요인이 가장 큰 영어와 수학과목의 성취수준을 낮추고 절대평가로 전향하는 것도 적극 시도해볼만 합니다. 이를 통해 대학 서열의 악영향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6. 공약실천을 하실 때 분절적, 선형적인 접근 대신 통합적, 생태적 접근을 해주십시오.
이런 투입을 하면 저런 산출결과를 얻을 것이란 가정을 버리십시오. 교육문제는 복잡계(複雜界) 그 자체며 원인과 결과가 선형적(線型的) 인과관계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교육개혁의 세계적 전문가인 마이클 풀런은 시스템 전반에 걸친(system-wide) 개혁을 주문합니다. 하나의 예로, 학급당 학생 수만 줄인다고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품행이 개선되지 않습니다. 관련 리서치 결과에 의하면 학생에 대한 교사의 기대, 교사의 교수법, 교장의 리더십이 함께 변할 때만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학생 수만 줄이고 여전히 교사 중심의 입시준비교육만 한다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인 효과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공약 중에는 이런 선형적인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매우 많아 보입니다. 교육문제의 상호 관련성을 면밀히 분석하여 통합적인 접근을 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입니다.
7. 관료주의의 뿌리는 교육의 표준화입니다. 교육의 표준화에 대해 중앙정부와 전면 재검토를 해 주십시오.
변화가 느리고 다양성이 그리 크지 않았던 산업시대에는 대규모 학교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관료주의 운영체계와 교육의 표준화 필성이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21세기 학교는 산업시대와 판이하게 다릅니다. 같은 학급에 수준, 관심, 목표, 학습속도 등이 천차만별인 아동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가주도의 표준화된 접근으로는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소수의 아동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수업을 따라 갈 수 없고 일상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불평등과 계층 격차를 강화하고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기재로 작용합니다.
교육과정 문서상으로는 단위학교의 자율성이 많이 신장되고 다양성이 존중될 수 있는 듯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은 평가가 교육과정을 밀어내고 대신 주인행세를 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가르치는 내용과 가르치는 방법을 표준화 시험이 결정해버립니다. 이제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교육의 접근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학교에서 수준별 수업을 합니다. 하지만 시험은 상반, 중반, 하반 모두 똑 같은 시험 문제로 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엉터리 교육이 있겠습니까? 이런 평가를 국가가 주도합니다. 교육과정 문서상에서만 자율성, 다양성을 아무리 높여도 평가가 획일적이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표준화된 교육과정은 표준화 시험을 필요로 합니다. 표준화 시험은 시험성적에 의한 책무성 제도를 요구합니다. 이 고리를 끊는 것이 한국 공교육의 가장 큰 암덩어리 하나를 도려내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의 자주성, 전문성이 길러질 리가 만무합니다. 힘들더라도 교사들로 하여금 교육과정의 편성과 교사별, 수준별 절대평가의 경험을 하나씩 쌓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분권화와 학교자치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교육 거버넌스의 개선방법을 고안하셔서 중앙정부와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는 핀란드 교육 시스템을 전형으로 하는 제4의 길(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wr_id=8&page=3)을 한국에도 실현시켜 주십시오. 우수한 혁신학교는 이미 3.5의 길 정도에 이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 미국, 캐나다, 호주 연방제 수준의 교육자치의 도입의 계기도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8. 무늬만 평준화가 되지 않도록 평준화의 장점을 살려주십시오.
진보성향의 교육감 당선자들은 평준화에 대한 열망이 큽니다. 평준화는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또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이론을 고려해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평준화는 무늬만 평준화이지 평준화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외고, 자사고, 국제중고를 일반중고로 전환하고자 할 때 반대의 명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평준화는 개별화 교육, 또래 코칭, 협력학습, 교육과정 다양화 등과 함께 추진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평준화 교육의 핵심은 공부 잘하는 아동은 더 잘 할 수 있게 하고, 공부에서 뒤쳐질 가능성이 있는 아동은 사전에 예방과 조기개입을 통해 모두의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교육입니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께서 평준화의 주장은 했지만 평준화의 장점을 어떻게 살릴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 면이 큽니다. 이점에 대해 깊은 성찰과 함께 실천적 대안을 고민해 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많은 국민들이 평준화에 대해 큰 지지를 보낼 것입니다.
9. 새로운 개혁을 제안할 때 증거기반과 정교함을 더해 주십시오.
특히 진보진영이 제안하는 개혁안들 중에는 굵직한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국공립대학 네트워크화 안입니다. 필자의 개인적 느낌으로는 이것이 실시될 경우, 기대하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 생각하지 못했던 후유증은 어떤 것이 있을지 등에 대한 증거기반의 디테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입시중심의 경쟁교육의 주원인을 대학서열의 존재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는 복잡계에 가까울 정도의 복잡한 문제를 너무나 단순화하고 선형적, 구조적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런 접근의 문제점을 몇 가지를 살펴보면, 입시중심의 경쟁교육을 완화하면 본질에 충실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경쟁의 DNA를 타고난 국민이 대학서열을 완화한다고 경쟁하지 않을까요? 우선 서울대를 국공립네트워크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연고대 입학을 위해, 또 서울에 소재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문화, 정보, 일자리, 배움 등의 기회가 다른 도시에 비해 유리하기 때문에), 경쟁할 것입니다.
궁극적인 변화의 목표는 학생의 바람직한 변화이고 전인적 성장인데 입시중심 경쟁교육만 완화한다고 전인적 성장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교육의 변화는 교사의 바람직한 인식과 행동의 변화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단연코 말하지만 현재의 중앙집권적 관료주의가 견고하게 존재하는 한, 평가가 교육과정을 종속시키고(연고대가 서울대를 대신하여 일류대가 될 것임), 그 평가를 국가가 주도하는 한, 교사는 여전히 교육과정 전달자로 머물 것이며 교사의 자발성, 헌신성,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고 그 결과 교육의 질이 나아지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또, 직업의 귀천의식과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한 경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경쟁을 줄이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하되, 경쟁을 하더라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경쟁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도 힘써 주십시오.
21세기 변화의 특징 중 하나가 도시로의 집중입니다. 서울은 세계의 미래학자들이 예상하는 바처럼 거대도시로 존재할 것이고, 교통의 발달로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될 경우, 지방으로의 우수학생 분산은 많은 비경제와 불편을 야기할 것입니다.
기존의 성공적인 혁신학교가 전인적 성장 교육을 잘 하고 있다면, 대학에 사회적 압력을 넣어 전인적 성장 중심의 교육을 한 고교생에 가산점을 주는 대입전형을 하도록 중앙정부와 함께 노력해 주십시오. 그리고 복지가 향상되고 사회 안전망이 더 튼실해지면, 또 성공의 정의가 부와 명예에서 정신적인 것, 가치적인 것으로 점차 이동을 하면, 또 자격증 시대가 활짝 열려 대학 졸업장과 경쟁을 하는 시대가 펼쳐지면 대학입시 중심의 교육은 의미있는 변곡점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연대, 고대 등의 상위권을 지향하는 학생들은 대학 입학 총 정원의 3%도 안 되는 매우 소수입니다. 이 3%에 들기 위한 경쟁을 완화하는 방법은 다른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학업성적 즉 인지적 역량으로 승부를 하는 학생군과 나머지 학생군이 인지적 역량이 아닌 다른 차별적인 역량(예: 감성 역량; 실용역량)으로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해결의 다른 방법도 열어두고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고사 직전의 지방대를 살리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면 특정 고교와 대학 그리고 특정 기업 3자 간에 협약을 맺어 맞춤형 인재양성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개혁을 제안할 때는 증거기반과 정교함을 더해 주십시오. 그래야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고 신뢰를 보낼 것입니다.
10. 파편화 된 교직문화의 원인 제거에 힘써주십시오.
교사들은 서로 상대방의 영역을 침해하거나 침해받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자 자신이 담당한 과목을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학생의 협력수업을 말하기 전에 교사의 협력과 성공사례를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 주십시오. 모름지기 교사들은 병원의 집단 진료팀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나의 학생이란 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집단 책임감(collective responsibility)과 집단 유능감(collective efficacy)을 키워야 합니다. 이런 문화를 견인할 평가시스템과 행정체제를 갖추도록 해 주십시오.
11. 교사의 권위 추락의 원인을 분석해서 권위와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주십시오.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가 오래 전 무너졌고 이의 회복이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교사를 외부에서 주어진 교과서나 설명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교사가 스스로 교재를 구성하고 평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십시오. 이때 교사의 전문성도 권위도 생깁니다.
아동을 문제풀이 기계로 만들고 교사를 문제풀이 훈련을 시키는 역할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런 역할로는 교사의 권위가 생기지 않습니다.
교사가 열정과 헌신으로 아동의 삶을 돌보고, 모든 아동으로부터 자신만의 장점을 발견하고 이를 키워주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십시오.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교사의 모습이 교사의 권위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평가는 하되 서열을 매기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어 주십시오. 서열을 정하는 시험 때문에 아동과 교사의 관계는 서로 이용하는 관계가 되기 쉽습니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로 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12. 교사의 자발성, 자존감 향상을 위해 교사에 대한 인사, 장학에 관한 제도를 개선해 주십시오.
학교가 뛰어난 교육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교사의 사기, 자존감, 자발성 향상이 필수적입니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이점에서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그저 생활인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많은 교사들은 자조적으로 자신들은 관료주의의 최 말단 단말기라고 말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중앙정부가 정해준 것을 전달하는 전달자였습니다. 그리고 관료제의 특성상 상부로부터의 수많은 지시, 간섭,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는 수동적이고 복종하는 존재로 길들여진 면이 크며, 이런 환경이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의 신장을 방해했습니다.
교사의 자발성을 훼손하는 가장 큰 요인 중 또 하나는 교사에 대한 인사권과 장학권입니다. 교장이나 관료가 인사권과 장학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교사의 전문성과 자발성을 발휘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일반 학교와 달리 혁신학교에서 어느 정도 교사의 자발성, 자존감, 책임감이 발휘되고 있는 것은 교장이나 관료가 인사권을 어느 정도 양보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교사가 자발성을 살리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교사가 교육과정 편성권과 평가권을 갖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교육과정의 문서상으로는 교육과정의 재구성을 권장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 때문에 교사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고, 고3이 되면 EBS 교재가 모든 것을 대신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사의 자발성, 자존감, 전문성이 향상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교사들에게 좀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이때 책임감도 생깁니다. 책무성은 외부로부터의 것과 내부로부터의 것이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합니다. 교사는 자율성이 적을수록 그만큼 더 편하고, 수동적이고, 비열정적이 되며 그만큼 학습자들은 학교 공부가 재미가 없고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견고한 관료주의의 폐해는 교사의 수동성과 생활인화를 통해 학생의 피해로 고스란히 전이됩니다.
또, 교권 회복을 위해 상부 관청으로부터의 수많은 지시와 통제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환경을 마련해 주십시오. 이 시점, “왜 학교는 중앙정부, 지방정부로부터 수많은 지시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교사의 자발성을 훼손하는 요소들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자율과 책임이 균형을 이루고 각종 내부 프로세스가 투명해지는 쪽으로 변화를 유도해 주십시오. 이를 위해서는 모든 학교장에게 새로운 학교 경영의 리더십과 경영 도구를 손에 쥐어 주십시오.
13. 학교문화(교직원들의 가치, 신념, 행동 패턴; 교사들의 협력과 공유 문화; 교사들의 사기와 동기; 교무실 풍토; 진도빼기 문화; 시험성적향상이 교육의 목적인 문화; 타당성보다 객관성을 중시하는 평가문화; 이중장부 현실, 행정체제, 교사들 간의 사회적 관계, 교사와 학생의 관계 등)의 진단부터 시작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수많은 교육 정책의 변화가 있었지만 거의 다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정책의 추진방식과도 관련이 높지만 학교문화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하향식으로 상부로부터 추진되는 교육정책은 현장에 내려오게 되면 교직사회에 의해 재해석되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부의 의도와는 매우 다르게 받아들여 집니다. 그동안 교육개혁의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교사들은 교육개혁에 대해 부정적 태도가 깊이 학습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려면 먼저 학교문화의 핵심인 교사들의 인식체계, 신념체계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학교문화를 바꾸는 데는 원리와 절차가 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변화는 상향식이 되게 힘써 주십시오.
14. 학습부진의 예방과 조기개입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공약 중에 있는 ‘한 사람의 소외도 없는 교육’, ‘교육불평등 해소’ 등의 용어는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의 실현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선진 교육에서는 실제 이런 교육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 시스템을 배울 것을 제안드립니다.
현재 한국은 실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wait to fail), 학습부진으로 낙인찍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기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개입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개입방식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모두를 위한 학습(Learning for ALL)’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검증된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보편적 학습설계(UDL: 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반응기반개입(RTI: Response to Intervention) 접근법, 뇌친화적 교수학습원리(Brain-Compatible Teaching & Learning) 등을 핵심요소로 하는 질 높은 개별화 교육(differentiated education) 시스템을 각 시도 단위학교에 도입하는 것을 새로운 교육비전으로 삼아 주십시오.
15. 문제행동을 줄이고,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사회성-감성 교육에 힘써 주십시오.
문제행동 개선과 학업성취도 향상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한국은 특히 그렇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차별을 당하고 자존심이 훼손되며 자신감을 잃고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선진 교육에서는 문제행동과 학업성취를 함께 다룹니다. 이 두 가지 해결에 핵심이 되는 기반은 사회성, 감성 역량입니다.
현재 한국적 인성교육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인성교육은 일반 사회, 가정, 그리고 학교 교직원들의 인성교육이 선행되어야 하고 학교 전체가 윤리적 공동체로 거듭남으로써 어른이 좋은 인성의 모델이 될 때만 학생의 인성은 변합니다. 아동의 인성만을 변화의 대상으로 하는 인성교육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인성교육의 역사가 깊은 미국이 몇 년 전 연이어 내놓은 인성교육의 실패 보고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인성교육의 실패와 성공 요인은 필자가 운영하는 사이트 칼럼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wr_id=100099).
16.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대한 원칙을 중앙 정부와 합의하는 방식을 검토해 주십시오.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지난달 공동공약을 발표하셨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일독재 미화 역사교과서 반대, 대안적 역사교과서 발행’에 대해서는 다른 방법도 열어 놓으셨으면 합니다. 진보진영에서 추진하겠다는 대안적 역사교과서는 자칫 교육부와의 갈등을 넘어 많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울 수 있습니다.
역사교과서의 역사 서술의 원칙에 합의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하십시오. 가령 천안함 사건의 경우 북한 어뢰에 의한 공격으로 공식 정리가 되었지만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석연치 않다는 설도 많았습니다. 이런 경우, 어떤 원칙에 따라 역사교과서를 서술할지 원칙을 먼저 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내용에 대해서는 통계적 방법을 동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근현대사는 교과서 서술시점에서 약 15년 전의 것에 대해서만 다루자는 의견도 많아 이런 것도 원칙에 포함시켜 사회적 합의 형식의 결정도 시도해볼 만합니다. 이렇게 할 경우, 국정으로 갈 이유도 없고 다양한 검정 교과서의 발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17. 교육을 변화시키려면 교육감님 스스로 변화의 원리와 탁월한 리더십을 갖추어 주십시오.
당위론만 가지고 밀어붙인다고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먼저 불안감을 없애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변화의 동기부터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변화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게 해 주십시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행동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필요하면 시민 단체로서 저희가 외국의 우수한 교육감 리더십 프로그램도 소개드릴 수 있습니다. 임기 내내 학습하는 교육감이 되어 주십시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