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승의 학습과학 특강(41) – “가르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 – 사전지식의 두 얼굴”
| 사전지식은 새 학습을 돕는 발판이자 오개념으로 학습을 가로막는 장벽입니다. 따라서 교사는 설명에 앞서 학생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업을 설계해야 합니다. |
초등학교 과학 시간, 교사가 묻는다.
“여름은 왜 겨울보다 더 더울까요?”
한 학생이 자신 있게 대답한다.
“여름에는 지구가 태양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럴듯한 설명이다. 뜨거운 난로에 가까이 가면 더 덥고, 멀어지면 덜 더우니 말이다. 학생은 아무 생각 없이 답한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문제는 그 설명이 계절 변화의 실제 원인과 다르다는 데 있다.
교사는 곧바로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교과서에도 밑줄을 긋는다. 시험에서는 정답을 맞힐 수도 있다. 그러나 몇 달 뒤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시 “태양과의 거리 때문”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기존의 생각을 밀어내지는 못한 것이다.
이 장면은 학습의 중요한 진실을 보여준다. 학생은 빈 머리로 교실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경험, 믿음, 개념, 오해를 가지고 들어온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식의 틀을 통해 해석한다.
그렇다면 가르침은 교사가 설명을 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아니다. 좋은 가르침은 그보다 먼저, 학생의 머릿속에 이미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
사전지식(prior knowledge)은 새로운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자원이면서, 동시에 학습을 가로막는 가장 완강한 장애물이기도 하다. 이것이 사전지식의 두 얼굴이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아는 것’을 통해 이해된다
인지심리학자 데이비드 오수벨(David Ausubel)은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학습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복습이 중요하다”라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정보는 기존 지식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뜻이다.
‘광합성’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학생에게 그것은 낯선 세 글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학생이 식물, 햇빛, 물, 이산화탄소에 대해 알고 있다면 광합성은 이미 알고 있는 개념들의 관계로 이해될 수 있다. 기존 지식이 새 정보를 걸어둘 수 있는 일종의 갈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사 수업도 마찬가지다. ‘산업혁명’을 공장제 생산과 증기기관에 관한 몇 가지 사실로만 배운 학생은 그것을 외워야 할 정보의 목록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농업사회, 도시화, 노동, 자본, 기술 변화에 관한 지식이 있는 학생은 산업혁명을 사회 전체가 재편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같은 설명을 들어도 학생의 머릿속에서 구성되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국어 수업에서 낯선 주제의 글을 읽을 때도 배경지식의 차이는 독해력의 차이로 나타난다. 문장을 정확히 읽어도 주제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면 글에 생략된 관계를 추론하기 어렵다. 반대로 관련 지식이 풍부한 학생은 글에 직접 쓰이지 않은 의미까지 채워가며 읽는다.
이해력이 좋은 학생은 언제나 더 뛰어난 사고 능력을 지닌 학생일까. 때로는 그렇겠지만, 많은 경우 그 학생은 지금 배우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사전지식의 차이를 능력의 차이로 쉽게 오해한다.
사전지식은 작업기억의 부담을 줄인다
사전지식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작업기억과 관련이 있다. 작업기억은 정보를 잠시 유지하며 생각하고 처리하는 공간이지만,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양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새로운 정보가 너무 많거나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없으면 작업기억은 곧 과부하에 빠진다.
다음 글자들을 잠시 기억해 보자.
ㄱ ㅈ ㅁ ㅈ ㅈ ㅇ ㅈ ㄷ
서로 관계없는 글자라면 여덟 개를 각각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기존–민주주의–제도’처럼 의미 있는 말의 초성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몇 개의 덩어리로 묶어 처리할 수 있다. 여러 정보를 하나의 의미 있는 단위로 묶는 청킹(chunking)은 장기기억에 저장된 지식이 있을 때 가능하다.
수학에서도 숙련된 학생은 ‘3×4’를 볼 때 3을 네 번 더하는 과정을 일일이 거치지 않는다. 구구단이 자동화되어 있어 답인 ‘12’를 곧바로 떠올린다. 그 덕분에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작업기억을 단순 계산에 소모하지 않고, 문제의 구조를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반면 구구단이 자동화되지 않은 학생은 간단한 계산에도 작업기억의 상당 부분을 써야 한다. 문제의 조건을 기억하면서 계산하기도, 앞 단계의 결과를 유지하기도, 다음 절차를 선택하기도 어렵다. 결국 중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놓친다. 이를 보고 교사가 “응용력이 부족하다”라고 판단한다면 진단이 빗나갈 수 있다. 응용력이 아니라 응용에 필요한 기초지식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지식은 작업기억의 물리적 용량을 늘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러 정보를 의미 있는 덩어리로 처리하게 함으로써 제한된 작업기억을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지식이 많을수록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는 학생은 더 배우고, 모르는 학생은 더 뒤처진다
이 원리는 교실의 격차가 어떻게 확대되는지도 설명한다.
사전지식이 풍부한 학생은 교사의 설명에서 중요한 정보를 알아보고, 그것을 기존 지식과 연결하며, 더 쉽게 기억한다. 이해가 잘 되니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새로운 학습은 다시 그 학생의 사전지식을 늘린다.
반대로 사전지식이 부족한 학생은 설명의 핵심을 찾기 어렵다. 새로운 정보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작업기억에 쏟아져 들어온다. 이해하지 못하니 기억하기 어렵고, 기억하지 못하니 다음 학습은 더욱 힘들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작은 출발점의 차이가 큰 성취 격차로 이어진다.
흔히 이를 ‘마태 효과(Matthew effect)’라고 부른다.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갖게 되고, 적게 가진 사람은 가진 것마저 잃기 쉽다는 의미다. 독서에서도 배경지식과 어휘가 풍부한 학생은 더 어려운 글을 읽고 더 많은 지식을 얻는다. 읽기가 어려운 학생은 독서를 피하게 되고, 그만큼 지식을 쌓을 기회도 줄어든다.
그런 점에서 “모르는 것은 인터넷이나 AI로 찾으면 된다”라는 말은 학습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판단하고, 검색 결과의 의미를 이해하며, 정보의 신뢰성을 평가하려면 이미 상당한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은 단순한 검색의 대상이 아니라 검색하고 판단하고 사고하게 만드는 기반이다.
특히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쌓은 경험이 크게 다른 학생들을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고 가정하면, 학교는 기존의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재생산할 수 있다. 사전지식의 격차를 개인의 능력 차이로 받아들이는 순간, 포용적 수업은 멀어진다.
첫 번째 얼굴: 사전지식은 배움의 발판이다
사전지식이 새 학습을 돕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학생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금 배우는 내용과 관계가 없으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수의 덧셈을 배우는 데 자연수의 연산 지식은 관련성이 높지만, 자연수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해 분모끼리 더한다면 오히려 오류를 낳는다.
다음으로 충분해야 한다. 학생이 어떤 용어나 사실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익숙해도 권력 분립, 시민의 권리, 선거와 책임의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정치 현상을 분석하기에는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
또한 필요할 때 활성화되어야 한다. 장기기억 속에 관련 지식이 있어도 학생이 그것을 떠올리지 못하면 새 학습에 사용할 수 없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교과에서 배운 내용을 스스로 연결하지 못할 때가 많다. 수학 시간에 배운 비율 개념을 과학의 농도 문제에 적용하지 못하거나, 역사 시간에 배운 산업화를 문학 작품의 시대 배경과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 그 예다.
마지막으로 지식이 적절하게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 초보자는 지식을 개별 사실의 목록으로 저장하기 쉽지만, 전문가는 핵심 개념과 원리를 중심으로 조직한다. 예를 들어 초보자는 산업혁명을 증기기관, 공장, 도시화와 같은 개별 사실로 기억하지만, 전문가는 이를 기술 변화가 생산 방식과 노동, 도시 생활을 바꾼 인과관계의 구조로 이해한다.
사전지식이 정확하고, 충분하고, 관련성이 있으며, 적절히 활성화되고 조직되어 있을 때 그것은 새로운 배움을 떠받치는 든든한 발판이 된다.
두 번째 얼굴: 사전지식은 배움의 장벽이다
그러나 사전지식이 언제나 학습을 돕는 것은 아니다. 부정확한 지식, 불완전한 경험, 지나친 일반화는 새 정보를 잘못 해석하게 한다.
어린 학생은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고 믿기 쉽다. 일상에서 무거운 돌과 가벼운 종이를 떨어뜨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흙을 먹고 자란다”, “겨울은 지구가 태양에서 멀어져서 생긴다”, “전류는 전구에서 소모된다”와 같은 생각도 나름의 경험과 직관에서 나온다.
이런 생각을 단순히 ‘지식의 부재’라고 보면 안 된다. 학생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설명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새로 배운 과학적 설명은 그 체계와 경쟁해야 한다.
더구나 사람은 새 정보가 기존의 믿음과 충돌할 때 기존 믿음을 즉시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새 정보를 기존 생각에 맞게 왜곡하거나 예외로 취급하기도 한다. 교사의 설명을 듣고 시험 답은 바꾸면서도 일상의 판단에서는 원래 생각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사전지식이 방해가 되는 또 다른 경우는 익숙한 지식을 부적절한 상황에 적용할 때다. 자연수에서는 자릿수가 많을수록 큰 수이므로 어떤 학생은 0.125가 0.8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곱셈을 하면 항상 수가 커진다는 경험 때문에 8×0.5가 8보다 작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역사에서도 현재의 가치와 경험을 과거에 그대로 투사하면 당시 사람들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문학에서는 익숙한 인물 유형을 작품 속 인물에게 성급하게 적용하면 텍스트의 미묘한 단서를 놓친다.
사전지식은 세상을 해석하게 해주는 렌즈다. 그러나 렌즈에 색이 입혀져 있으면 새로운 정보도 그 색으로 보인다.
설명만으로는 기존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교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부정확한 사전지식이 저절로 교정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오개념은 지우개로 지우듯 간단히 사라지지 않는다. 학생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설명은 일상 경험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설명을 듣고 새로운 지식을 기억하더라도, 익숙한 상황에서는 기존 생각이 다시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그건 틀렸어. 정답은 이것이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이유다. 학생은 자신의 생각이 왜 틀렸는지, 어떤 상황에서는 그 생각이 그럴듯해 보이는지, 새로운 설명이 현상을 어떻게 더 잘 설명하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계절의 원인을 가르칠 때는 “태양과의 거리 때문이라면 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은 왜 반대일까?”라고 물을 수 있다. 학생이 기존 설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현상을 만나게 한 뒤, 자전축의 기울기와 햇빛이 닿는 각도라는 새로운 설명이 그 현상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개념 변화(conceptual change)는 잘못된 답을 올바른 답으로 교체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자신의 설명을 드러내고, 증거와 비교하고, 모순을 발견하며, 더 설명력 있는 개념으로 지식 구조를 재조직하는 과정이다.
교사는 학생의 머릿속을 추측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교사는 수업 전에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학생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난 시간에 배웠으니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지 않는 것이다. 가르친 것과 배운 것은 다르다. 학생이 시험에서 한 번 맞혔다고 해서 새로운 상황에서도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사전지식 진단은 반드시 긴 시험일 필요는 없다. 수업 시작 전 몇 가지 질문만으로도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지금 생각나는 대로 써보세요.”
“다음 문제를 풀려면 어떤 개념이 필요할까요?”
“이 두 개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짧은 사전 퀴즈, 개념도, 예측 질문, 익명 응답, 틀린 예시 분석도 유용하다. 핵심은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현재 생각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학생이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 지식이 얼마나 충분한지, 필요한 지식을 적절한 상황에서 꺼내 쓸 수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사전지식을 살리는 수업
사전지식의 두 얼굴을 이해한 교사는 다음과 같이 수업을 설계할 수 있다.
첫째, 새 단원을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 사전지식을 명확히 한다. 교사는 새 내용을 설명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그 설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개념을 간과하기 쉽다. “학생들이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무엇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둘째, 관련 지식을 활성화하고 학생의 이해를 확인한다. “전에 배웠지?”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배운 내용을 실제로 떠올려 쓰거나 말하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디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확인한다. 새 개념과 기존 개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게 하면 연결이 더 분명해진다.
셋째, 부족한 지식은 짧게 집중적으로 보충한다. 앞서 확인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 학습에 꼭 필요한 핵심 개념을 골라 간단한 설명, 예시, 연습으로 보충한다. 모든 선행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칠 필요는 없다. 읽기 자료를 주기 전에 핵심 어휘와 배경을 가르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넷째, 학생의 생각을 먼저 표현하게 한다. 교사가 설명하기 전에 예측하거나 이유를 말하게 하면 숨어 있던 오개념이 드러난다. 학생도 새 설명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다섯째, 오개념을 비난하지 말고 검토의 대상으로 삼는다. 많은 오개념은 학생이 게으르거나 생각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제한된 경험을 합리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를 함께 살피면 오류가 학습의 출발점이 된다.
여섯째, 개별 지식을 관계와 구조 속에서 가르친다. 사실을 하나씩 외우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인과 결과, 전체와 부분, 공통점과 차이점, 개념과 사례의 관계 속에서 지식을 조직하게 해야 한다. 잘 조직된 지식은 기억하기 쉽고 새로운 상황에도 활용하기 쉽다.
일곱째, 수업 후에도 기존 생각이 바뀌었는지 확인한다. 설명 직후의 정답만으로 개념 변화가 일어났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며칠 뒤 다른 사례에 적용하게 하거나, 이전 생각과 현재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명하게 해야 한다.
사전지식의 격차를 살피는 것이 교육 형평성의 출발점이다
사전지식은 개인의 머릿속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정에서 나누는 대화, 접하는 책과 매체, 여행과 문화 경험, 사용하는 언어, 지역사회의 환경이 모두 지식의 출발점을 만든다.
어떤 학생에게는 교과서 속 박물관, 선거, 금융, 생태계, 오케스트라가 이미 익숙한 개념이지만, 다른 학생에게는 설명이 필요한 낯선 세계일 수 있다. 교사가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모두에게 같은 설명만 제공하면, 사전지식이 풍부한 학생에게 유리한 수업이 된다.
“이 정도는 상식 아닌가?”라는 말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상식은 모든 사람이 타고나는 지식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과 경험 속에서 익힌 지식인 경우가 많다. 교사에게 당연한 것이 학생에게도 당연할 것이라고 가정하면, 지식의 격차가 능력의 격차로 둔갑한다.
형평성 있는 수업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자료와 시간을 주는 수업이 아니다. 학생들이 새 학습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배경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출발점을 보완하는 수업이다. 사전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일부 학생에게 주는 특혜가 아니라, 모든 학생이 고차적 사고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가르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
교사는 흔히 수업을 준비하며 묻는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떤 활동을 시킬 것인가?”
그러나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학생들은 이것에 관해 이미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 지식은 정확하고 충분한가?”
“그 지식을 새로운 학습과 연결할 수 있도록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새로운 학습을 방해할 수 있는 잘못된 사전지식이나 오개념은 없는가?”
학생은 교사가 전달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사전지식을 바탕으로 선택하고, 해석하고, 연결하며 이해를 구성한다. 정확하고 잘 조직된 사전지식은 새로운 배움을 빠르게 받아들이게 하는 발판이 된다. 그러나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하게 적용된 사전지식은 새 정보의 의미를 왜곡하고 개념 변화를 가로막는다.
따라서 좋은 교사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학생이 어떤 지식의 틀로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피고, 부족한 지식은 채우며, 잘못된 연결은 드러내고, 흩어진 지식은 의미 있는 구조로 조직하도록 돕는다.
교사는 정보 전달자인가, 아니면 배움의 설계자인가?
사전지식의 두 얼굴을 이해하면 답은 분명해진다. 가르침은 새 지식을 설명하는 일인 동시에, 학생이 이미 가진 지식과 새 지식이 제대로 만나도록 설계하는 일이다. 따라서 수업은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이미 알고 있는 것,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
| <교실 적용 팁: 학생이 이미 아는 것에서 수업 시작하기>
1. 수업 준비 때 ‘꼭 필요한 사전지식’을 적어본다.
새 학습 목표 옆에 학생이 이미 알고 있어야 할 개념이나 기능을 두세 가지 적는다. 예를 들어 분모가 다른 분수의 덧셈을 가르친다면, 분모와 분자의 의미, 크기가 같은 분수, 분모가 같은 분수의 덧셈을 확인한다. ‘전에 가르쳤는가’보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2. 설명 전에 모든 학생의 생각을 짧게 확인한다.
손을 든 몇 명의 답만으로 학급 전체의 이해를 판단하지 않는다. 작은 종이나 개인 칠판에 답과 이유를 쓰게 한다. 계절을 배운다면 “여름이 겨울보다 더운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정답 여부뿐 아니라 학생이 어떤 생각을 근거로 답했는지 살핀다.
3. 응답에 따라 다음 수업 행동을 정한다.
필요한 지식이 부족하면 짧은 설명과 예시를 제공한 뒤 한 문제를 풀게 한다. 알고 있지만 떠올리지 못하면 단서나 회상 질문을 준다. 잘못된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면 그 규칙이 통하지 않는 사례를 함께 검토한다. 사전지식 확인은 학생을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결정하는 데 쓰여야 한다.
4. 오개념은 ‘예측–확인–설명’으로 검토한다.
“8에 0.5를 곱하면 8보다 커질까, 작아질까?”라고 묻고 이유를 쓰게 한다. 이어 그림이나 수직선으로 ‘8의 절반’을 확인한 뒤, 처음의 생각과 결과가 왜 달랐는지 설명하게 한다. 틀렸다는 사실만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설명이 왜 더 적절한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5. 새 지식과 기존 지식의 연결을 눈에 보이게 한다.
새 개념을 설명한 뒤 “전에 배운 무엇과 연결되니?”,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이니?”라고 묻는다. 산업혁명 수업에서는 ‘증기기관 → 생산 방식 변화 → 노동과 도시 생활 변화’를 화살표로 연결하고, 각 화살표가 뜻하는 관계를 한 문장씩 설명하게 한다. 단어를 나열하는 활동보다 관계를 설명하는 활동에 초점을 둔다.
6. 며칠 뒤 다른 문제로 다시 확인한다.
수업 직후 정답을 맞혔다고 이해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며칠 뒤 “12×0.25는 12보다 클까, 작을까? 왜 그럴까?”처럼 수업에서 쓰지 않은 문제를 제시한다. 답과 이유를 함께 확인하고, 기존의 잘못된 생각이 다시 나타나면 설명과 연습을 보완한다.
짧게 확인하더라도 모든 학생이 응답할 기회를 주고, 그 결과를 실제 수업에 반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학생이 이미 아는 것을 드러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잘못된 생각을 검토하도록 돕는 과정이 새 학습의 출발점이 된다. |
참고 문헌
• Ambrose, Susan A., et al. (2010). How Learning Works: Seven Research-Based Principles for Smart Teaching. Chapter 1, “How Does Students’ Prior Knowledge Affect Their Learning?”
• Ausubel, David P. (1968). Educational Psychology: A Cognitive View.
• Brod, Garvin (2021). “Toward an Understanding of When Prior Knowledge Helps or Hinders Learning.” npj Science of Learning.
• Chi, Michelene T. H., Paul J. Feltovich, and Robert Glaser (1981). “Categorization and Representation of Physics Problems by Experts and Novices.” Cognitive Science.
• Hattan, Courtney, Patricia A. Alexander, and Sarah M. Lupo (2024). “Leveraging What Students Know to Make Sense of Texts: What the Research Says About Prior Knowledge Activation.” Review of Educational Research.
• 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 (2018). How People Learn II: Learners, Contexts, and Cultures.
• National Research Council (2000). How People Learn: Brain, Mind, Experience, and School.
• Vosniadou, Stella, and William F. Brewer (1992). “Mental Models of the Earth: A Study of Conceptual Change in Childhood.” Cognitive Psyc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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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