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서술형이라는 또 하나의 정답
| 논·서술형 평가 확대 논쟁이 시험 형식의 선택 문제로만 흐르는 것을 경계하며, 정답은 특정 평가 형식이 아니라 수업의 목표와 학생의 배움에 맞추어 교사가 평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
오랜만에 교실에서 수업을 했다. 학교를 떠난 지 무려 4년이 지났지만 학교 주변을 오가며 교육과 관련된 일을 이어 왔으니, 교실이 그다지 낯설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시작하려 하니 익숙함과 낯섦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가 서 있는 곳은 학급 교실이 아니라 공용 교실이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교실을 찾아 이동해 왔고, 손에는 태블릿 PC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내가 학교에 있을 때 코로나19를 거치며 교실의 스마트화도 본격화되었다. 대규모로 태블릿 PC가 보급되었고, 교실에는 전자칠판이 설치되었다. 인터넷 기반 수업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도 빠르게 마련되었다. 그때만 해도 이런 변화가 학교의 일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년 만에 다시 마주한 교실에서 학생들은 태블릿을 자연스럽게 켜고, 화면을 오가며, 자료를 찾아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학교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교실이 이렇게 달라진 것과 달리, 학교 밖의 논쟁은 여전히 평가 방법의 형식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논·서술형 평가를 얼마나 확대할 것인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객관식과 서술형 가운데 무엇이 더 공정한지를 놓고 목소리가 높다. 평가를 교육의 방향이 아니라 시험지의 모양으로만 말하는 순간, 빠르게 변한 교실의 현실은 논쟁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학생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어떤 유형의 문항을 몇 퍼센트로 넣을 것인지가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논·서술형이라는 방향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나는 논·서술형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논·서술형을 새로운 만병통치약처럼 내세우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객관식을 논·서술형으로 교체하는 일이 아니라, 수업의 목적과 학생의 배움에 맞추어 교사가 평가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평가의 형식이 교육 전체를 일방적으로 끌고 가게 해서는 곤란하다. 평가는 다시 수업과 배움의 흐름 안으로 돌아와야 한다.
평가는 흔히 교육의 마지막에 놓인 절차로 여겨진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이 무엇을 배웠는지 확인하고 성적을 매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평가는 교육의 끝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과 학생의 성장을 확인하는 자리다.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학생이 공부하는 내용과 방식이 달라지고, 무엇을 배움의 결과로 인정하는가에 따라 교사의 수업도 달라진다. 그래서 평가 방법을 바꾸는 일은 시험지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학교에서 어떤 배움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지 결정하는 교육적 선택이어야 한다.
객관식 평가도 분명 필요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학생의 기초 지식과 개념 이해를 살필 수 있고, 채점의 편차를 줄이며, 특정 학습 요소를 빠르게 진단할 수 있다. 그러니 객관식이라는 형식 자체를 낡았다고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문제는 한 가지 형식이 교육 전체를 지배할 때 생긴다. 정답을 고르는 일이 평가의 중심이 되면 학생은 정답에 이르는 동안 무엇을 생각했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정답을 찾아냈는지를 보여 주게 된다.
논·서술형 평가가 열어 주는 공간은 넓다. 같은 자료를 읽고도 서로 다른 해석에 이를 수 있고, 한 문제에 하나의 문장만이 아니라 근거와 맥락을 갖춘 여러 답이 나올 수 있다.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세우고, 그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고, 다른 사람의 반론을 예상하면서 답을 고쳐 쓸 수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주어진 답을 찾아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서술형 평가를 넓혀 가자는 문제의식은 설득력이 있다. 학교가 학생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외운 내용을 다시 내놓는 능력만은 아니라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읽고, 해석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표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데에도 큰 이견은 없다. 다만 여기서 곧바로 ‘모든 학교가 같은 비율로 논·서술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논·서술형은 교육적으로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지, 모든 수업과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의 이름이 아니라 평가가 수업과 만나는 방식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한 편의 글을 읽고 관점을 비교하게 했다면 논·서술형 답안이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기초 개념을 익혔는지 확인하는 단계라면 짧은 문항이나 선택형 문항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여러 번의 실험과 토론을 통해 생각이 달라지는 과정을 살피려면 한 번의 긴 글보다 관찰 기록과 성찰문이 나을 수 있다. 평가의 타당성은 논·서술형이라는 표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기로 했는지와 무엇을 확인하려는지가 일치할 때 생긴다.
사교육 억제라는 명분
논·서술형 평가로 전환하자는 주장에는 꼭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이유가 따라온다. 사교육을 줄이는 수단으로만 앞세우는 순간, 평가의 교육적 의미는 오히려 흐려질 수 있다. 사교육이 늘어나는 까닭은 시험 형식 하나에만 있지 않다. 대학 입시의 불확실성, 학교와 지역 사이의 교육격차, 성적이 곧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는 구조, 학교 수업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학습량과 정보의 격차가 함께 작용한다. 이런 조건을 그대로 둔 채 객관식을 논·서술형으로 바꾼다면 사교육이 사라지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옮겨 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미 교육 정책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학원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 왔다.
논·서술형 평가가 도입되면 학생과 학부모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 어떤 표현이 좋은 점수를 받는가. 채점 기준은 무엇이며, 학교마다 다른 평가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학교가 이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못하면 사교육은 ‘논·서술형 문제 풀이’, ‘답안 구조 훈련’, ‘교과별 서술 템플릿’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생각의 다양성을 키우려던 새로운 형식이 모범답안의 문장을 외우는 또 다른 경쟁으로 바뀔 수도 있는 셈이다.
사교육을 줄이고 싶다면 국가가 평가 형식을 한꺼번에 지정하기보다 학교 수업이 학생의 배움을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조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학생이 수업에서 읽고 토론하고 써 본 경험이 있어야 평가의 자리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다. 교사가 평가 기준을 미리 설명하고, 초고에 피드백을 주고, 다시 고쳐 쓰게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학교의 교사에게는 수업과 평가를 함께 설계할 시간, 학생의 답을 충분히 읽을 시간, 동료와 기준을 협의할 시간이 부족하다. 이 조건을 바꾸지 않고 시험 형식만 바꾸면 사교육 억제라는 목표는 달성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평가 개편을 공론화한다고 한다. 국민의 의견을 듣는 일은 필요하지만, 논의가 다시 시험 형식의 선택에만 머문다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이번 공론화가 문항의 모양을 정하는 절차를 넘어,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성장의 과정을 확인할 것인지 묻는 자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디지털 교실과 AI 시대, 평가의 초점
태블릿 PC와 전자칠판이 있는 교실이라고 해서 학생의 배움이 저절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는 자료가 넘치지만, 자료가 많다고 질문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화면을 빠르게 넘길 수 있다고 해서 생각의 속도와 깊이가 함께 자라는 것도 아니다. 디지털 도구는 수업의 가능성을 넓혀 주지만, 무엇을 관찰하고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는 여전히 교사와 학생의 몫이다. 평가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환경에 맞는 새로운 문항 형식을 찾는 일보다,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사고와 판단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피는 일이 먼저다.
인공지능은 객관식 문제의 정답만 찾는 것이 아니라 꽤 그럴듯한 서술형 답안도 만들어 낸다. 이제 긴 글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학생의 사고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논·서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평가가 될 수 있을까. 학생이 어떤 자료를 읽고 어떤 질문을 만들었는지, 만들어진 답을 어떻게 검토하고 고쳤는지, 자신의 경험과 수업의 맥락을 어떻게 연결했는지를 묻는 평가가 필요하다.
AI 시대에 필요한 힘은 정답을 생산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그 답을 의심하고 다시 판단하는 능력이다. 서로 충돌하는 자료를 제시해 판단의 근거를 묻게 할 수도 있고, 처음 쓴 답을 동료의 질문을 받아 수정하게 할 수도 있다.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대안을 비교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교사는 토론 뒤 성찰문을 선택할 수 있고, 어떤 교사는 실험 보고서나 프로젝트 기록, 발표와 질의응답을 선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의 이름이 아니라 학생의 사고가 실제로 드러나는 장면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다고 AI를 무조건 배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 AI의 답변을 비판적으로 읽고 오류와 편향을 찾아내는 능력을 평가할 수도 있다. 다만 무엇을 참고했고, 무엇을 자신의 판단으로 고쳤는지 기록하게 해야 한다. 평가의 질문도 ‘AI를 사용했는가’에서 ‘AI를 사용한 뒤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바꾸었는가’로 옮겨 갈 필요가 있다. 태블릿을 손에 든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기를 일률적으로 배제한 시험장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을 잃지 않는 배움의 경험이다.
획일화된 평가 실시는 다양성을 지운다
논·서술형 평가를 넓혀 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논·서술형 자체가 다시 획일화되는 일이다. 모든 학생에게 같은 분량을 요구하고, 같은 시간 안에, 같은 문장 구조로 답하게 하고, 정해진 핵심어가 들어갔는지를 중심으로 채점한다면 그것은 이름만 서술형일 뿐이다.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보다 채점자가 기대하는 문장을 먼저 추측하게 된다. 객관식의 보기에서 벗어나려고 시작한 평가가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보기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획일화는 문항의 모양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마다 다른 수업의 맥락을 지우고, 학생마다 다른 표현 방식과 사고의 경로를 하나의 기준에 맞추려 할 때도 일어난다. 물론 모든 결과를 무제한으로 인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교육 목표에 맞는 기준은 분명해야 하지만, 그 기준에 도달하는 경로까지 하나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
논·서술형 평가는 특히 교사의 전문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 같은 답안이라도 수업에서 무엇을 목표로 삼았는지에 따라 읽어 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가의 타당성은 모든 교과에 같은 틀을 씌우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무엇을 배우기로 했는지, 그 배움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제대로 연결하는 데서 나온다.
교사의 교육 목표가 서로 다른데 평가 방법만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어색하다. 수업은 교과의 성격과 학생의 발달 단계, 지역의 삶, 교사의 문제의식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평가도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한 편의 긴 글이 알맞은 수업이 있는가 하면, 짧은 답변을 여러 차례 고쳐 쓰게 하거나 모둠 토론과 개별 성찰을 함께 살피는 편이 더 적절한 수업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교육 목표와 평가 방법이 잘 만나는 지점을 찾는 일이다.
평가의 선택권을 교사에게 돌려주자
평가 방법을 정하는 권한은 수업을 실제로 설계하고 실행한 교사에게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교사에게 평가를 마음대로 맡기자는 뜻이 아니다. 교육과정의 성취기준과 학교의 공동 원칙을 바탕으로 하되, 교사가 자신의 수업 목표와 학생의 상황에 맞는 평가 방법을 선택하고 필요에 따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는 평가의 철학과 최소한의 공정성 원칙, 학생의 권리, 기록과 이의신청의 절차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수업에 같은 문항 비율과 같은 답안 형식, 같은 채점표를 강제하는 일까지 맡아서는 안 된다.
교사의 자율성은 평가의 질을 낮추는 위험 요소가 아니라 평가를 살아 있게 하는 조건이다. 교사는 학생의 배움이 어디에서 막히고 어디에서 확장되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본다. 수업을 함께 만든 교사는 학생이 왜 그런 답을 썼는지, 어떤 질문을 거쳐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 이전보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읽어 낼 수 있다. 외부에서 정한 하나의 문항 형식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배움의 장면을 발견하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이다.
교사는 평가 전에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평가할 것인지 학생에게 알리고, 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학생의 답을 성실하게 읽고, 결과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평가 방법을 선택했다면 왜 그 방법이 이 수업에 적절한지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이 해야 할 일도 분명하다. 논·서술형 문항을 몇 퍼센트로 늘리라고 지시하기보다, 교사가 평가를 설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수업과 행정의 조건을 바꾸어야 한다. 교과별 평가 사례를 나누되 우수한 답안만이 아니라 여러 수준의 답안과 그에 대한 피드백 사례도 쌓아야 한다. 공정성을 높이는 일은 표준 답안을 촘촘하게 만드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평가의 목적과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학생이 자신의 결과를 이해한 뒤 다시 배울 수 있게 하는 데서 나온다.
다시 평가를 생각한다
평가를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평가를 교육의 본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평가가 학생을 줄 세우는 장치에 머물지 않고, 학생이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무엇을 더 물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배움의 과정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객관식도 논·서술형도 목표에 따라 쓰일 수 있다. 관찰과 대화, 실험과 발표, 포트폴리오와 프로젝트도 교육 목표에 따라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
내가 다시 교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태블릿을 들고 있었지만, 그들의 배움은 화면 안에만 있지 않았다. 자료를 고르는 손길, 친구의 말에 멈추는 표정, 처음 쓴 답을 지우고 다시 쓰는 순간, 발표 뒤 질문을 듣고 생각을 바꾸는 장면 속에 배움이 있었다. 평가가 이런 장면을 보지 못하고 마지막에 남은 답안만 바라본다면, 디지털 교실도 결국 오래된 시험장의 다른 모습이 될 뿐이다. 새로운 기기를 들여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배움으로 볼 것인지 다시 정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가의 유형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평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정답을 고르는 학생만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학생을 보고, 완성된 답만이 아니라 답을 고쳐 가는 과정을 보고, 같은 결과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로로 도달한 배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평가 방법을 하나로 통일하기보다, 수업의 목표와 학생의 배움에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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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인창고 교장을 마치고, 현재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G-SDGs) 교육위원장, 온배움터(구 녹색대) 생태교육연구소 소장, ‘김덕년의 행복한 학교이야기’ DJ 등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꿈꾸고 싶은 교육낭만주의자로, 교육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에서 국어를 공부하고, 온배움터(옛 녹색대) 생태교육과에서 생명이 중심이 되는 교육생태계를 고민했습니다. 저서로는, <주도성과 진로교육>(교육과실천, 2025)[신간], <주도성>(교육과실천, 2023), <아름다운 숲을 닮은 배움공동체>(케렌시아, 2022), <교사교육과정>(교육과실천, 2022), <포노사피엔스를 위한 진로교육>(교육과실천, 2021), <과정중심평가>(교육과실천, 2018),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에듀니티, 2017) 등이 있습니다. 연구로는, <고교 교육 환경 변화 전망과 과제:학생들의 시선으로>(한국교육개발원, 2018), <학생부종합전형의 내실화와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연계방안>(한국외대,2018), <학교생활기록부 기반 면접 및 구술고사 연구>(서울대, 2017) 등을 진행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