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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발행인 칼럼_3]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1562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7.15
학교는 지식 전달을 넘어, 민주주의를 배우고, 공동체를 경험하며, 사회적 약속을 실천하고, 사람됨을 기르며,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게 하는 다섯 가지 목적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이나 부모보다 먼저 AI에게 묻는다. ChatGPT는 지치지 않고 답해 주고, 칸 아카데미(Khan Academy) 같은 플랫폼은 학생 개개인의 속도에 맞춰 설명을 조절해 준다. 지식 전달이라는 기능만 놓고 보면, 기술은 이미 교사보다 더 빠르고 더 친절하다.

 

이런 변화 앞에서 우리는 학교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되었다.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학교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학교의 목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교육과정도, 수업도, 평가도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목적이 흔들리면 방법은 아무리 정교해도 방향을 잃는다. 지금 한국 교육이 겪고 있는 혼란의 상당 부분도, 사실은 방법론의 부재가 아니라 목적에 대한 합의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곳이다

 

학교는 흔히 지식을 배우는 곳이라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학교의 목적이라면 학교는 이미 위기를 맞고 있다.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인터넷이 더 빠르고, AI가 더 친절하며, 온라인 강의가 더 효율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학부모들이 “학원이나 인강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도 이 지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학교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공간이다. 민주주의는 헌법 조항을 암기한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경험 속에서 배운다. 다른 의견을 듣고, 갈등을 조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며,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설득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이 된다. 이것은 교과서로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학교생활 속에서 체득하는 삶의 방식이다.

 

존 듀이는 일찍이 학교를 “작은 사회”라고 불렀다. 그가 강조한 것은 학교가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갈등—짝을 정하는 문제, 발표 순서를 두고 벌어지는 다툼, 모둠 활동에서 무임승차를 하는 친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 모두가 민주주의를 연습하는 현장이다. 학급 회의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본 아이는,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극단적으로 배제하지 않는 법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반대로 이런 경험 없이 자란 아이는 어떻게 될까. 온라인 학습으로만 지식을 습득한 아이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하고 타협하는 근육을 기를 기회를 얻지 못한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상의 배경에는, 어쩌면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경험 자체가 줄어든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교실은 그런 경험이 매일 일어나는 공간이다. 나와 다른 친구와 같은 모둠이 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함께 과제를 수행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운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살아보는 곳이다.

 

 

학교는 공동체를 경험하는 곳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점점 선택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보고 싶은 영상만 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기도 한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만 골라서 보여주고, SNS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뭉치게 만든다. 편리하지만 이런 삶에는 한 가지 위험이 숨어 있다. 나와 다른 존재를 견디는 능력이 점점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평생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직장 동료를 내가 고를 수 없고, 이웃을 내가 고를 수 없으며, 심지어 가족조차 완전히 내가 선택한 관계는 아니다. 다른 세대, 다른 계층,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학교는 이 사실을 가장 먼저 경험하는 곳이다. 학군이나 학교 배정은 대체로 부모의 선택이지만, 일단 같은 반이 된 이상 아이들은 자신이 고르지 않은 친구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부유한 집 아이와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가 한 교실에 앉고, 성적이 뛰어난 아이와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같은 모둠에서 협력해야 한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경험은 불편할 수도 있다. 누군가와는 잘 맞지 않고, 누군가와는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공동체는 편안함 속에서가 아니라, 불편함을 함께 견디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 경험 속에서 아이들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이것은 온라인 학습이나 개인 과외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이다. 아무리 정교한 AI 튜터라도 나와 성향이 다른 급우와 조별 과제를 하며 겪는 마찰과 화해까지 만들어줄 수는 없다. 학교는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공간이어야 한다.

 

 

학교는 사회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공적 약속이다

 

학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학교는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하는 약속이다. “어느 집에서 태어났든 모든 아이는 배울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공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이념이다. 이 약속이 있었기에 근대 이후 많은 나라들이 보편 교육을 향해 나아갔고, 신분이나 재산과 무관하게 누구나 학교 문턱을 넘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 이상과 거리가 멀다. 부모의 경제력이 여전히 학습 기회를 결정하고, 지역에 따라 교육 환경도 크게 다르다. 사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가정의 아이와 그렇지 못한 가정의 아이 사이에는 학습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이 격차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어떤 아이는 방과 후 여러 개의 학원을 다니며 선행학습을 이어가는 반면, 어떤 아이는 방과 후 돌봐줄 어른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더욱 중요하다. 학교는 출발선의 차이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무상 급식, 방과 후 프로그램, 기초학력 보장 제도 같은 것들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공교육이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장치들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학교가 처음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곳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안정적인 어른을 만나는 곳이며, 또 어떤 아이에게는 집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공간이 된다.

 

담임교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한 아이의 인생 방향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듣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정에서 충분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아이에게 학교는 자신을 믿고 지지해 주는 어른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일 수 있다. 그 경험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이런 역할은 어떤 기술로도 대체되지 않는다. 공교육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사회가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약속이다.

 

 

학교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다

 

아인슈타인은 “교육의 가치는 많은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도록 정신을 훈련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좋은 학교는 시험 성적이 높은 학생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는 곳이다. 질문하는 힘, 판단하는 힘,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힘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배우고, 갈등을 해결하며,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자란다.

 

이런 힘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서서히 형성된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은 누군가 좋은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배우고, 판단력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해 본 경험을 통해 자란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힘은 실제로 나와 다른 처지의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본 경험 없이는 좀처럼 자라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학교라는, 매일 반복되는 관계의 공간 속에서 서서히 쌓인다.

 

학교는 학생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이전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학교가 진로교육을 강조하지만, 정작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좋은 직업을 갖는 것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학교가 후자를 포기하는 순간 학교는 또 하나의 학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학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곳이다

 

학교는 현재의 사회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 역사, 문화, 사회 규범을 가르치는 일은 사회가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육은 사회를 그대로 유지하는 일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함께 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민주주의도, 인권도, 평등도 모두 누군가가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면서 발전해 왔다. 여성의 참정권도, 노예제 폐지도, 아동의 노동 금지도 처음에는 당연한 질서에 대한 불편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되었다. 만약 학교가 오로지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법만 가르쳤다면, 이런 변화들은 애초에 상상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현재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발견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용기도 함께 길러주어야 한다. 기후 위기, 불평등, 세대 갈등처럼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은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이 문제들을 풀어갈 다음 세대를 기르는 일이야말로 학교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다. 학교는 사회를 복제하는 공장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다시,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학교의 존재 이유를 단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곳이고, 공동체를 경험하는 곳이며,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공적 약속이다. 또한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공간이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시민을 기르는 곳이다. 이 다섯 가지 목적 가운데 어느 하나만 잃어도 학교는 본래 모습을 잃는다.

 

지식 전달이라는 단 하나의 기능만 놓고 학교의 효율성을 따진다면, 학교는 앞으로도 계속 기술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목적을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것들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경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AI가 교사를 대신할 수 있는가를 먼저 물을 것이 아니라, 학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학교는 지식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게 하고, 공동체를 경험하게 하며, 생각하는 시민을 길러내고,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바로 그것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학교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다.

 

 

<교실 적용 팁>

 

1. 민주주의를 배우는 교실 만들기

• 매주 10분씩 ‘학급 회의’ 시간을 고정적으로 운영한다. 안건은 사소해도 좋다. 자리 배치, 청소 구역 배정처럼 학생들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부터 다뤄야 참여도가 높아진다.

• 모둠을 구성할 때 학생이 원하는 친구끼리만 묶지 않고, 학기마다 규칙적으로 재편성한다. 낯선 조합에서 오는 불편함이 오히려 협상과 조율의 연습 기회가 된다.

• 갈등이 생겼을 때 교사가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네 생각은 어떠니”, “상대방은 왜 그렇게 느꼈을까”를 먼저 묻는다. 결론보다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민주적 역량을 키운다.

 

2. 공동체를 경험하게 하는 교실 만들기
• 학기 초, 학생들이 서로의 배경과 강점을 알 수 있는 활동(자기소개 인터뷰, 강점 카드 나누기 등)을 통해 ‘다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자리를 마련한다.
• 성적이나 친분 위주가 아니라 역할 분담이 명확한 협동 과제를 자주 활용해,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의도적으로 설계한다. 예를 들어 또래 튜터링처럼 잘하는 학생이 가르치고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배우는 구조를 정기적으로 운영하면, 두 학생 모두에게 공동체 감각이 자란다.

 

3. 공적 약속을 실천하는 교실 만들기
• 학기 초 학생 개개인의 가정 형편이나 학습 배경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되,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관찰 체크리스트를 활용한다.
• 준비물이나 과제 여건의 격차가 성적 이전에 드러나지 않도록, 학교 안에서 해결 가능한 부분(교재, 준비물, 학습 공간 등)은 미리 지원한다.
•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왜 이것도 못하니”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막혔는지 같이 보자”는 태도로 접근한다. 이 작은 차이가 학생이 학교를 안전한 공간으로 느끼는지를 좌우한다.

 

4. 생각하는 사람을 기르는 교실 만들기
• 정답을 요구하는 질문보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를 묻는 열린 질문을 수업마다 최소 한 번은 던진다.
•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작은 경험(발표 주제 선정, 프로젝트 방향 결정 등)을 반복적으로 제공한다.
• 시험 대비를 위한 암기가 아니라, 배운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설명해 보게 하는 활동(짝 설명하기, 한 줄 요약 쓰기)을 수업 마무리에 할 수 있도록 습관화한다.

 

5.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게 하는 교실 만들기
• 교과 내용을 다룰 때 “지금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를 함께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 학생들이 학교나 지역사회의 작은 문제(급식, 환경, 교우 관계 등)를 직접 찾아내고 개선안을 제안해 보는 프로젝트를 학기당 한 번 이상 운영한다.
• 역사나 사회 수업에서 변화를 이끈 인물이나 사건을 다룰 때, 그들이 “당연한 것”에 처음 의문을 품었던 순간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한다.

 

참고 문헌

• 이찬승 (2023). “교육, 제4의 길” 관련 칼럼 시리즈. 교육을바꾸는사람들.
• Biesta, G. (2010). Good Education in an Age of Measurement: Ethics, Politics, Democracy. Paradigm Publishers.
• Coleman, J. S. (1966). Equality of Educational Opportunity. U.S. Departmen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 Darling-Hammond, L. (2010). The Flat World and Education: How America’s Commitment to Equity Will Determine Our Future. Teachers College Press.
• Dewey, J. (1916). Democracy and Education: An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Education. Macmillan.
• Dewey, J. (1938). Experience and Education. Kappa Delta Pi.
• Freire, P. (1970). Pedagogy of the Oppressed. Continuum.
• Nussbaum, M. C. (2010). Not for Profit: Why Democracy Needs the Humaniti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 Putnam, R. D. (2000).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 Simon & Sch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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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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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1. 궁금이 수정 삭제

    이 글을 읽는데 목에서 뜨거운 것이 차오름을 느낍니다. 슬프고 기쁜 이야기가 아닌데 말입니다. 어지러운 곳에서 보이는 중심, 기본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금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온화한 빛처럼 느껴집니다.
    너무 많은 정보와 지식의 인풋은 소화되는 과정없이 빠르게 흘러 갑니다. 기계든 사람이든, 속도와 양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본질의 값어치를 쳐주지도 않고 퇴물이 되어 버리는 사회가 된듯해 씁쓸한 요즘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학교라는 교육의 장은 학습부분만 정량적으로만 평가하면 안되는데, 오히려 학습을 보완할 수 있는 학원이 성능 좋은 최신폰이고 학교는 구형폰 같이 가벼이 여겨지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학교는 대표님 말씀처럼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경험으로 배우는 작은 사회입니다. 작은 우주입니다. 학원은 학습적인것을 보완하는 특화된 수단이고요. 학교에서 학원숙제 하는 아이들. 학원에서 지친 아이들의 쉬는 시간이 학교 수업시간. 이런 것들이..마음이 무거운 지점입니다.
    공동체가 집중하는 가치가 ‘기본’이 아닌 그걸 뛰어 넘는 드라마틱하고 확실한 결과물일테지만, 입시니 뭐니..당장은 그것이 우선일테지만, 우리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속도와 양의 사회를 지탱해줄 ‘근본적 가치’라 생각합니다. 인성, 배움의 목적, 사회 속에서 타인과 조화롭게 살아 갈수 있는 기술 등등.
    모두가 학교의 목적을 좀 더 크게 생각하고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1.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수정 삭제

      이찬승 대표님의 글 내용은 물론, 선생님의 바람까지 가까운 미래에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 구현되길 바라며 열심히 노력하는 교바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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