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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사과는 왜 불이익 앞에서 시작되는가

#1560 김덕년,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교육위원장 2026.07.14
배재고 사태의 신속한 사과와 수습 과정은 진정한 성찰이라기보다 불이익을 줄이려는 위기관리처럼 보이며, 이는 피해자의 상처보다 기록과 진로 손실을 먼저 걱정해 온 우리 교육의 오래된 구조를 드러낸다고 비판합니다.     

 

 

상처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말

 

‘혐오 응원’ 논란을 지켜보는 동안 마음 한쪽이 오래 불편했다. 처음에는 그 까닭이 단순해 보였다. 경기장에서 상대를 조롱하는 것도 잘못인데, 그 말들이 광주라는 지역과 5·18의 역사적 상처를 비틀어 희화화하는 데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기억이고, 누군가에게는 공동체의 존엄과 맞닿아 있는 고통인데, 그것이 웃고 떠드는 응원 구호로 소비되었다. 철없는 장난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말들은 몇 마디의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타인의 상처를 자기 흥분의 재료로 써도 된다고 믿는 감각, 바로 그 메마른 감각을 드러냈다.

 

그런데 사건 이후의 수습 과정을 보면서는 또 다른 불편함이 밀려왔다. 피해 학교 학생들의 입장이나 상처보다는 잘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일사천리로 사안이 처리된 것 같았다. 학교의 사과문, 광주 방문, 공개 사과, 5·18 민주묘지 참배, 교육감들의 동행, 언론에 비친 사과 장면까지. 겉으로 보면 빠르고 정중한 수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쉽게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육적 성찰의 과정이라기보다, 더 큰 불이익이 오기 전에 사안을 봉합하려는 위기관리의 장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피해를 중심에 둔 사과라기보다, 학교의 명예와 학생 선수들의 미래, 징계와 진로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더 앞서 보였다고 해야 할까.

 

 

사과가 늦게 도착하는 이유

 

이런 느낌이 낯설지 않았던 것은, 학교폭력 사건에서 너무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보아 왔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의 경우에도 가해 학생이 처음부터 피해자의 고통을 중심에 두고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생활기록부, 징계, 대학 진학, 사회적 평판 같은 문제가 눈앞에 닥칠 때 비로소 사과가 시작된다. 그때의 사과는 미안함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자기 방어의 언어가 된다. 피해 회복보다 미래 손실의 차단이 더 시급한 과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어떤 학생은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고, 어떤 사과는 실제로 내면의 변화에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반복해서 보게 되는 구조는 분명하다. 피해자의 상처보다 자신의 불이익 가능성이 더 큰 압력으로 작동할 때, 사과는 늘 찜찜하게 도착한다. 그래서 고개 숙이는 장면을 보면서도 끝내 마음을 놓지 못한다.

 

실제로 학교폭력 처리 장면을 떠올리면 이 구조는 더 선명해진다. 피해 학생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학급 안의 공기가 얼마나 무너졌는지보다 먼저 논의되는 것은 종종 조치의 수위다. 서면사과, 접촉 금지, 교내봉사에서부터 특별교육 이수,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에 이르기까지 어떤 조치가 내려질지, 그 조치가 학교생활기록부와 진학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가 중심 의제가 된다. 그 순간 사과는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는 언어라기보다 미래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협상의 언어가 되기 쉽다. 이번 사안에서 느껴지는 불편함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정말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배웠는가보다, 얼마나 빨리 사태를 진정시키고 앞날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가가 더 크게 작동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여기서 멈춰 ‘징계를 더 세게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만 가져가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물론 책임을 묻는 제도적 조치는 필요하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고, 더구나 바꿀 수도 없다. 이 사건을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단지 몇몇 학생의 일탈이나 규정 위반이 아니라 관계 감각의 마비에 있다. 상대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겨야 할 대상으로만 볼 때, 타인의 역사와 상처를 내 삶과 분리된 것으로 여길 때, 말의 폭력이 공동체를 어떻게 훼손하는지 느끼지 못할 때 혐오와 조롱은 ‘장난’이 된다. 승리와 실적, 진학과 진로가 교육의 중심에 놓일수록 존엄과 공존의 감각은 쉽게 뒤로 밀린다. 이번 사건은 바로 그 빈자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내는 징후인지 모른다.

 

 

벌을 넘어, 관계를 다시 배우는 일

 

생태적 관점은 인간을 홀로 선 개체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이고, 공동체와 역사와 장소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을 모욕하는 말은 단지 한 사람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관계의 그물을 찢는 행위다. 지역을 비하하고 역사적 상처를 조롱하는 언어는 공동체의 토양을 천천히 메마르게 한다. 그래서 해결 역시 상벌의 차원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징계의 완료’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다. 가해 학생이 왜 그 말이 가능했는지를 배우고, 자신이 건드린 상처의 맥락을 이해하며, 피해를 입은 이들의 경험을 듣고, 일정한 시간 동안 성찰과 실천을 통해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과문 한 장과 참배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함께 사는 법을 다시 배우는 데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성찰이고 교육이다.

 

교육부의 2026년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을 보면, 학교는 사안을 접수하면 먼저 피해 학생의 보호를 우선에 두고 관련 학생을 분리하며 보호자에게 알린 뒤 사실 확인과 조사를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필요할 경우에는 피해 학생에 대한 긴급보호와 가해 학생에 대한 긴급 선도조치도 가능하다. 그리고 일회성 조치로 끝내지 않고, 조치 이행 뒤에도 피해 학생의 학교 적응을 돕고 가해 학생의 재발을 막기 위한 지도와 주변 학생 교육을 이어 가도록 한다. 가이드북이 피해 학생 보호 조치와 가해 학생 선도·교육 조치, 그리고 사후지도를 하나의 흐름으로 제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은 단지 벌을 주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이미 훼손된 학교의 관계와 안전을 다시 돌보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은 오늘 우리가 어떤 언어를 써야 하는지, 타인의 상처 앞에서 어떻게 멈출 줄 알아야 하는지를 몸에 새기는 기억이어야 한다. 스포츠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를 꺾는 법만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법, 경쟁 속에서도 공동체의 품위를 지키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경기는 상대가 있어야 성립한다. 상대는 적이 아니라 함께 경기를 완성하는 존재다. 이 감각이 사라질 때 승리는 남아도 스포츠는 사라지고, 성적은 남아도 교육은 빈 껍데기처럼 남는다.

 

학교 안에서 이 메커니즘은 더 일상적인 형태로 반복된다. 단체 대화방에서 특정 지역이나 집안 형편, 말투를 흉내 내며 웃고, 체육시간과 급식시간에 특정 학생을 배제하고, 일이 커지면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풍경이다. 하지만 피해 학생에게 그것은 장난이 아니라 하루의 결을 망가뜨리는 공기다. 사안 처리 가이드가 사후지도와 주변 학생 교육까지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폭력은 두 사람 사이의 일이 아니라 교실 전체의 분위기, 곁에서 웃고 넘긴 학생들의 태도, 침묵한 어른들의 대응을 함께 바꾸지 않으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아이들이 혐오를 놀이처럼 말하는 동안, 어른들은 무엇을 가르쳐 왔는가. 서로를 이기고 앞서는 법, 실수하지 않는 법, 불이익을 피하는 법만 정교하게 학습시켜 온 것은 아닌가. 학교폭력에서도, 혐오 발언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것이 피해의 회복이 아니라 기록과 평판과 미래라면, 그것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교육 전체가 이미 책임을 배우는 방식보다 책임을 관리하는 방식에 더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몇몇 학생의 철없음에 대한 비난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학교가 어떤 공동체를 길러 왔는지, 무엇을 놓쳐 왔는지 묻는 질문이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관계 회복 프로그램에 관한 안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가이드북은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양측의 동의를 전제로, 사안 발생 이후 교육적 회복의 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관계 회복 프로그램이 진행되더라도 학교폭력 사안처리 자체가 멈추는 것은 아니며, 관계 회복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심의 과정에서 ‘화해 정도’에 반영될 수 있다고 안내한다. 그러니 공개사과와 참배가 필요했다면 그것은 처분을 약하게 만들기 위한 연출이 아니라, 상대 학교와 지역 공동체가 입은 상처를 이해하기 위한 시작이어야 했다. 더 나아가 학교는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말고, 야구부와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혐오 표현과 역사 왜곡의 문제를 배우는 시간, 광주의 기억과 민주주의를 듣는 시간, 상대를 적이 아니라 함께 경기를 완성하는 존재로 만나는 교류의 시간을 더 길고 천천히 조직했어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위하여

 

결국 이번 사건이 남긴 가장 큰 과제는 더 센 처벌이 아니라 더 깊은 교육이다. 상대를 조롱하지 않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감각, 역사적 상처를 외우는 지식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서 멈출 줄 아는 마음, 이기는 법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공동체 말이다. 생태교육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면, 필요한 것은 승패와 처벌의 논리를 넘어 생명을 해치지 않는 관계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사과는 불이익을 줄이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자신이 훼손한 존엄과 관계의 무게를 배워 가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혐오의 언어가 공동체를 메마르게 했다면, 그에 대한 답 역시 서로를 살리는 언어와 태도를 다시 익히는 데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정말 전해야 할 것은 사과하는 법보다 먼저, 처음부터 서로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공존의 감각인지도 모른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끝내 상대를 이겨내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같은 세계를 건너는 일이다. 학교는 이제 그 감각을 조금 더 천천히,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야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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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교육위원장 김덕년

구리 인창고 교장을 마치고, 현재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G-SDGs) 교육위원장, 온배움터(구 녹색대) 생태교육연구소 소장, ‘김덕년의 행복한 학교이야기’ DJ 등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꿈꾸고 싶은 교육낭만주의자로, 교육문제를 아이들의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연세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에서 국어를 공부하고, 온배움터(옛 녹색대) 생태교육과에서 생명이 중심이 되는 교육생태계를 고민했습니다. 저서로는,  <주도성과 진로교육>(교육과실천, 2025)[신간], <주도성>(교육과실천, 2023), <아름다운 숲을 닮은 배움공동체>(케렌시아, 2022), <교사교육과정>(교육과실천, 2022), <포노사피엔스를 위한 진로교육>(교육과실천, 2021), <과정중심평가>(교육과실천, 2018),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에듀니티, 2017) 등이 있습니다. 연구로는, <고교 교육 환경 변화 전망과 과제:학생들의 시선으로>(한국교육개발원, 2018), <학생부종합전형의 내실화와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연계방안>(한국외대,2018), <학교생활기록부 기반 면접 및 구술고사 연구>(서울대, 2017) 등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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