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사태가 교육공동체에 던진 질문: 오답은 어떻게 배움이 되는가
| 배재고 야구부의 혐오성 응원 구호 사태는 역사적 무감각에서 비롯된 문제였으며, 이후 공동체가 학생들을 품고 사과·참배·화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응보적 정의를 넘어선 회복적 정의의 실천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합니다. |
오답이 보여주는 것
교사는 채점을 하다가 문항 하나에서 유독 많은 학생이 같은 오답을 골랐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오답 하나하나는 사소한 실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 전체가, 학년 전체가 약속한 듯 똑같은 지점에서 틀렸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개별 학생의 부주의가 아니다. 그 문항은 아이들이 언제 어디서 개념을 잘못 배우게 되었는지를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 된다. 좋은 교사는 그 오답을 나무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가르쳤는지를 되짚는다.
지난달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서울 목동구장에서 터져 나온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응원 구호는 바로 그런 오답과 같았다. 한 경기, 몇 마디 구호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드러낸 것은 몇몇 아이들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 교육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역사와 혐오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채 지나쳐 왔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제일고와의 경기 도중 외친 구호는, 지난 5월 스타벅스코리아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 모양 텀블러 할인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5·18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은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한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5·18을 폭동으로 왜곡하거나 희생자를 조롱하는 밈으로 소비되어 온 내용들을 연상시켰다. 이로 인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긴급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배재고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기고 있던 아이들은 왜 조롱을 했을까
먼저 사실관계를 짚자. 문제의 구호가 나온 시점은 배재고가 이미 승기를 잡은 상황이었다. 상대의 심리를 흔들어 실책을 유도하려는 전략적 도발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승패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표현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 구호는 승리에 도취한 흥분, 우리 편이 이기고 있다는 고양감을 표출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 “흥”을 표현하기 위해 골라 든 언어가 하필 특정 지역과 특정 역사적 비극을 조롱하는 밈이었다는 사실이며, 그 구호를 내뱉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배재고 교장이 사과 과정에서 밝혔듯, 학생들은 ‘5·18의 역사적 무게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승부를 가르기 위한 악의적 도발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문제는 더 깊다. 아이들에게 그 말은 그저 흥이었고, 그 흥의 재료가 혐오였다는 사실조차 정작 자신들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의는 아니었다”고 해명하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이 희석될 수는 없다. 악의의 유무와 피해의 실재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발화자에게 혐오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그 말을 들은 이가 느낀 모욕감과 상처, 그 말이 소환한 국가폭력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보며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남겼다. 거대한 해악은 흉악한 광기나 확신에 찬 증오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성찰하지 않는 사유의 정지, 즉 ‘무사유’에서도 자라난다는 통찰이었다. 배재고 학생들에게서 우리가 본 것은 아렌트가 말한 의미의 ‘악’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 개념이 짚어낸 핵심, 즉 깊은 반성 없이 관성적으로 남발되는 언어와 행동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낳을 수 있는지는 이 사건에 그대로 적용된다. 악의 없는 혐오, 문제의식 없는 조롱이야말로 가장 다루기 어려운 형태의 혐오다. 명백한 악의는 비난하고 처벌하면 그만이지만, 무감각 위에 얹힌 혐오는 교육과 성찰이라는 훨씬 더디고 근본적인 처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배재고와 광주일고가 보여준 회복의 과정
문제의 본질이 ‘악의’가 아니라 ‘무감각’에 있다면, 해법 역시 단죄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는 이 사안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회적 경고로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징계는 문제의 시작을 정리하는 절차일 뿐, 그 자체로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진짜 해법은 잘못을 저지른 이가 자신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마주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무심코 뱉은 말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였는지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 그리고 그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가해자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다. 내밀어진 손을 잡아줄 줄 아는 피해자 쪽의 관용이 함께해야 비로소 완결된다.
다행히 이번 사태는 이 해법의 실마리를 현실에서 보여주었다. 사건 발생 일주일 만인 지난 6일, 배재고 학생 선수단과 학부모, 교직원 등 86명이 광주일고를 찾았다. 처음 방문 요청이 있었을 때 광주일고 측은 ‘학생들이 사과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만남을 미루기도 했다. 상처받은 이에게 용서는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준비되었을 때 내어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비의 시간을 거친 뒤, 두 학교는 다시 마주 앉았다.
배재고 학생들은 사과문을 낭독하며 고개를 숙였고, 두 학교 선수들은 마주 서서 차례로 손을 맞잡으며 화해했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만 해도 감돌던 긴장은 어느새 풀렸고, 곳곳에서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은 고개 숙인 배재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배재고 학생들, 고개 들고 어깨 펴라.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방문단은 이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국립 5·18민주묘지를 함께 참배했다.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언어와 정치의 언어
그런데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과와 용서와 화해는 결코 두 학교 학생들만의 일로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부터 여러 주체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주체들이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에는 뚜렷한 온도차가 있었다.
한쪽에는 이 사건을 진영 대결의 소재로 가져간 정치권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모 의원은 “배재고 야구부는 즉각 해체하고, 학생들의 행위는 학교폭력으로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모 의원은 “스타벅스, 일상적 단어마저 정치적 금기어로 만들고 혐오의 굴레를 씌우는 행태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분열 정치가 빚어낸 과잉 이념화 촌극”이라며 맞섰다. 사건은 순식간에 “누가 옳은가”를 다투는 진영 논쟁의 소재로 소비되었다. 이 구도 속에서 학생들은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확인하기 위한 사례, 즉 ‘타인의 영역’에서 해석되고 활용되는 소재로 전락했다.
반면 다른 한쪽에는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있었다. 배재학당 총동창회 김동연 회장은 지난 3일 협회를 찾아 탄원서를 낭독하며 이렇게 말했다. “후배들은 아직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다.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며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 너무나 소중한 가치다.” 그는 이어 “선배, 아비와 같은 심정으로 호소드린다”며 “이 땅의 아들이자 후배로 품어주시고, 한 번의 경험이 평생의 교훈이 돼 더 성숙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8만 동문이 함께 책임지고 후배들을 이끌 방법을 찾아서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두 개의 언어를 나란히 놓아 보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정치권은 사건 ‘바깥’에 서서 그것을 자신의 논리를 입증하는 재료로 삼았다. 반면 동문과 교사들은 사건 ‘안’에 서서, 학생들을 ‘타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후배’, ‘소중한 제자’, 심지어 ‘아비의 마음으로 품을 아들’로 마주했다. 전자에게 학생은 해석의 대상이었고, 후자에게 학생은 함께 책임지고 함께 성장해야 할 ‘우리’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과와 용서와 화해가 결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두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한 아이의 잘못을 함께 짊어지겠다고 나선 8만 동문의 책임감, 제자를 끝까지 품고 가르치겠다는 교사들의 태도, 그리고 그 잘못을 마주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마침내 손을 맞잡아 준 광주일고 공동체까지, 이 모든 이들의 태도가 모여 비로소 화해라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회복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짊어질 때 완성된다.
이는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를 넘어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선택한 사례로 읽을 수 있다.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을 체계화한 하워드 제어는 그의 책에서 “범죄는 사람과 관계에 대한 침해이며, 그 침해는 다시 바로잡아야 할 의무를 발생시킨다”고 썼다. 응보적 정의가 “누가 잘못했는가, 그에 상응하는 벌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회복적 정의는 “누가 상처를 입었는가, 그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관계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를 묻는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징계가 응보적 정의의 절차였다면, 그 이후 동문과 교사들이 나서고 두 학교가 스스로 만들어낸 사과와 참배, 화해의 악수는 회복적 정의의 실천이었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임을 묻는 절차와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온전한 정의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회복적 절차를 이끈 것은 노련한 정치인들이 아니라 학생들과 그들을 품에 안은 동문·교사 공동체였다. 정치권이 진영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 학교 공동체는 훨씬 성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냈다.
책임을 토대로 용서로 나아가기
다만 이 화해의 장면에 감동한 나머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회는 혐오 표현을 일상화해서는 안 되며, 그에 대해 분명한 경고와 책임을 묻는 일의 중요성을 잊어서도 안 된다. 협회의 중징계와 강한 여론의 질타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과 함께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와 책임 추궁 역시 무조건적인 정죄, 낙인찍기, 영구적 배제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징계와 사회적 질책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가해자가 잘못을 직면하고 더 나은 길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과정의 일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용서는 가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용서하지 못한 채 원한과 상처에 붙들려 있는 피해자 역시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를 이끌었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이를 자신의 책 제목이자 평생의 신념이었던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다(No Future Without Forgiveness).”
배재고와 광주일고 학생들이 손을 맞잡은 그 순간, 두 공동체는 함께 자유로워지는 길에 들어섰다고 나는 믿는다. 가해 학생들은 역사 앞에 정직하게 섬으로써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 성장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되었고, 피해 학생들은 상처를 상처로만 남겨두지 않고 그것을 딛고 관계를 새로 쓸 수 있는 힘을 확인했다.
오답은 끝이 아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오답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정치는 이 오답을 진영의 언어로 채점해 서로에게 붉은 줄을 그었다. 그러나 정작 오답을 풀어낸 것은 정치가 아니라 교육이었다.
그리고 그 교육은 한 명의 좋은 교사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동문과 교사들이 아이들을 ‘후배’로, ‘제자’로 품으며 나섰고, 광주일고 역시 상처를 먼저 돌보며 사과를 받아들일 시간을 가진 뒤 마침내 손을 내밀었다. 이것이 교육공동체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개인의 문제로 고립시켜 폐기하지 않고, 학교와 동문과 교사가 함께 책임을 짊어지며 그 아이가 다시 배울 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람들의 연결망. 한 아이의 오답은 그 아이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그 아이를 품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을 배재고와 광주일고는 몸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배재고 사태는 덮어버릴 부끄러움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한 페이지로 남았다. 이 페이지가 대한민국 교육공동체 전체의 배움이 되어,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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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으로 있으며, 교사로 시작해 교육운동, 정책연구를 거쳐 교육현장과 제도, 그 틈을 들여다보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2025 대한민국 교육트렌드(공저)’ 등이 있습니다.
- 전 미추홀외국어고 교사
- 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