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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의 주체성: 학습과 교육의 차이

#1538 최서윤,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2026.06.16
한국형 사회정서교육(K-SEE)은 CASEL의 SEL(학습 중심)과 달리 교사와 학교가 주도권을 갖고 관계 중심의 ‘교육’으로서 학생의 마음을 바라보고 이끄는 것을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2026년부터 사회정서교육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모든 학년으로 확대되었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6차시로 시행하던 사회정서교육을 17차시로 늘리고, 에듀넷에 전용 서비스를 열어 학교급별 프로그램과 실천 사례를 한곳에 모아 누구든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학생의 ‘마음건강’이 국가적 의제가 된 교육의 방향을 보여주는 반가운 진전이다.

 

그러나 한 번쯤은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에 담긴 용어의 원론적 이해와 정체성을 짚고 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교육 현장에서 ‘사회정서학습’과 ‘사회정서교육’을 혼용하고 있고, CASEL의 SEL을 마치 그대로 이어온 것처럼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을 K-SEL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습’과 ‘교육’

 

우리 교육이 사회정서학습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으로 명명한 데에는 분명 교육의 방향과 본질적 의미가 담겨 있다. 영문 표현을 예로 들어 보면 학습은 Learning이고 교육은 Education이다. 사소한 번역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여기에서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의 정체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CASEL의 SEL은 국제적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교육 접근으로서, 공식 용어로 ‘learning(학습)’을 고수한다. 사회정서역량이 수업을 통해서만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발달 과정에서 암묵적 경험을 통해서도 습득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즉 학습의 중심은 ‘학습자 개인’에게 있으며, 능동적으로 배우며 성장하는 학습자와 그 발달 과정 자체에 초점을 둔다. 이 프레임 안에서 교사는 학생이 역량을 잘 습득하도록 돕는 ‘조력자’ 혹은 ‘학습 촉진자(facilitator)’의 역할을 맡는다. 다만 ‘learning’이라는 용어를 곧 ‘개인주의’로 여겨서는 안 된다.

 

CASEL의 모델 자체도 학습자 개인을 가장 안쪽에 두고 교실·학교·가정·지역사회가 동심원으로 감싸는 생태학적 틀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학습과 교육의 차이는 ‘개인이냐 공동체냐’의 문제라기보다, 어디에서 출발해 무엇을 전면에 두느냐의 강조점 차이다. SEL이 ‘나(I)’의 감정 인식과 조절에서 출발하는 데 비해, 우리의 교육은 ‘우리(We)’라는 관계망과 그것을 가꾸는 어른의 역할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한편, ‘교육’의 어원을 보면 라틴어의 두 뿌리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기르다·양육하다·훈련하다’를 뜻하는 에두카레(educare)이고, 다른 하나는 ‘밖으로 이끌어내다’를 뜻하는 에두케레(educere)이다.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은 이 두 의미를 모두 품되, 특히 학생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능동성에 주목한다.

 

우리가 ‘교육’이라 할 때 떠올리는 것은 가르치는 자의 명확한 의도와 가치관, 그리고 학교라는 공동체의 환경 조성이다. 실제로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을 보여주는 콘텐츠는 아침 조회 대화, 교과 수업 중 짧은 활동, 생활지도 연계 자료처럼 교사가 ‘전달’하기 좋은 형태로 설계되어 있고, 정책의 핵심 성과 지표와 성취 수준도 개발되어 있다. 발달 과정으로서의 learning이 education으로 옮겨지면서, 학습자의 경험보다 교사가 이끌어가는 역량 교육이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이 나아갈 정체성과 방향을 고려할 때 분명히 짚어야 할 지점이다.

 

 

‘교육’으로 담아낸 한국형

 

사회성이나 정서는 수학 공식을 암기하듯 혼자서 ‘학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만남,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관계하며 경험되고, 교사가 보여주는 태도와 가르침을 통해 비로소 ‘교육’되는 것이다. 여기서 학습과 교육의 관계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학습은 학생 안에서 일어나는 ‘목적’이고, 교육은 그 학습이 일어나도록 교사·교실·학교가 만드는 ‘조건’이다. 한국형이 learning 대신 education을 택한 것은 학습이 결코 혼자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책과 제도적 차원에서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learning을 넘어선다’는 말은 학습을 교육으로 단순히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학습을 감싸 안는다는 의미로 읽혀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입장은 자칫 사회정서역량마저 주입식으로 가르친다는 오해를 부르기 쉽다. 교육은 교육과정 운영, 수업 설계, 학교 문화 조성 같은 제도적·실천적 차원을 포괄한다. 따라서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은 사회정서학습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이자 ‘조건’으로 학습이 효과적으로 일어나도록 설계된 교육적 환경과 실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두 개념을 동일시할 경우 사회정서역량이 단순한 교육 내용이나 평가 대상으로 축소될 수 있다. 사회정서교육과 사회정서학습의 구분은 단순한 용어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실천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이 방향성을 유지하려면, 개념의 명료성을 토대로 교사가 일상적 수업 속에서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사회정서영역을 통합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 본연의 목적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을 바라보다(SEE)

 

우리가 K-SEL이라는 용어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 교육이 가진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의 학교는 서구의 학교처럼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사회적 생존 기술을 가르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일찍이 우리는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1을 시행하여 학교 차원에서 인성교육을 강조해 왔다. 법 제정 이후 십여 년의 노력으로 예(禮)·효(孝)·정직·책임·존중·배려·소통·협동이라는 여덟 가지 핵심 가치·덕목이 교육과정에 녹아들었다.

 

우리의 교실에는 SEL의 틀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정(情)’과 ‘배려’라는 공동체적 정서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학급이라는 공동체 관계는 오랫동안 인성교육의 전통으로 실현되어 왔다. SEL이 ‘나(I)’의 감정 인식과 조절에서 출발해 타인과의 관계와 공존으로 나아간다면, 한국의 사회정서교육은 ‘우리(We)’라는 관계망 속에서 나의 위치와 책임을 자각하고 타인과 조화롭게 성장하는 것을 강조한다. 같은 생태학적 틀이라도, 한국은 그 틀을 인성교육의 전통과 관계 중심의 정서 문화로 채워 온 것이다. 이것이 한국형이 지닌 본질일 것이다.

 

 

새로운 제안: K-SEL을 넘어 K-SEE(바라봄)로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면, 한국형만의 교육 철학과 교사의 주체성을 담은 새로운 이름이 제안될 필요가 있다.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이 지향하는 ‘보편적 마음교육’을 실현하려면,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면밀히 관찰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교사의 시선은 오늘날 교육 현장을 힘들게 하는 학생과의 관계를 회복할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교육 성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교사의 사회정서역량과 정서적 안녕이 교사–학생 관계, 학급 풍토, 나아가 SEL의 성공적 실행을 좌우한다는 점은 ‘친사회적 교실(prosocial classroom)’ 모델2로도 정리된 바 있다.

 

L(learning)을 E(education)로 바꾸는 것은 단순한 단어의 교체가 아니다. 이는 교육 현장의 주도권을 교사와 학교가 갖고, 책임지고 ‘마음교육’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따라서 한국형 사회정서교육(K-SEE: Korean Social and Emotional Education)이라는 명칭을 제안하며, ‘SEE’라는 단어가 품은 ‘보다’, ‘바라보다’, ’지켜보다‘, ‘관찰하다’, ‘이해하다’라는 폭넓은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교육의 시작은 따뜻한 교육자의 시선으로 학생 개개인의 존재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SEE)에서 출발한다. 학생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교사가 자신의 마음을 먼저 돌보면서 상처받은 학생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SEE) 일이다. K-SEE는 단순히 정서적 기술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교실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고(SEE), 교사와 학생이 눈을 맞추며 마음을 나누는 능동적 교육의 과정이다. 우리는 학생의 삶과 내면을 깊이 ‘바라보는(SEE)’ 교육자로서 사회정서교육을 실현해야 한다.

 

 

다시 교육을 ‘보다(SEE)’

 

현장의 교사들은 이미 알고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찾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며, 타인과 손잡게 만드는 것은 개별화된 모듈 ‘학습’이 아니라, 교사의 따뜻한 시선과 교실의 안전한 문화가 만들어 내는 ‘교육’의 총체적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말이다.

 

이즈음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SEL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어떻게 우리 교육 과정에 적용할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 학생들의 정서를 어떠한 방향으로 ‘교육’할 것인가이다.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의 본질과 철학적 주체성을 찾아 의미를 더하는 일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교사가 학생의 마음을 깊이 바라보고(SEE), 이해하고(SEE), 알아가며(SEE) 능동적으로 이끄는 일. 그것이 바로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이 찾고 지켜가야 할 주체성일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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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법제처. 인성교육진흥법(2015)
  2. Jennings, P. A., & Greenberg, M. T. (2009). The prosocial classroom: Teacher social and emotional competence in relation to student and classroom outcomes. Review of Educational Research, 79(1), 491–525.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최서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교육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회정서교육의 현장 적용을 위한 연구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예비교원, 현직교사, 학부모 교육을 통해 학교 현장의 한국형 사회정서교육의 안착을 위해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wejo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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