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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의 문제를 푸는 책들(12) – “교육은 세상을 바꾸는가, 재생산하는가”

#1537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6.11

Michael W. Apple, 『Can Education Change Society?』 (Routledge, 2012) 비평

                                                                                            

『Can Education Change Society?』의 국내 번역서 소개: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살림터, 2014)

 

 

미국의 교육학자 마이클 애플(Michael W. Apple)은 학교가 사회의 불평등을 어떻게 재생산하는지, 그리고 교육이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평생 탐구해 온 비판교육학의 대표적 학자이다. 그는 교육을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권력과 가치가 작동하는 사회적 실천으로 보았다.

 

애플은 교육을 바라보는 오래된 낙관론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교육은 정말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질서를 반복해서 재생산하고 있는가.

 

우리는 수십 년째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말을 들어왔다. 교육이 기회의 사다리라고 했고, 교육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사다리 아래에 선 아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어떤 아이는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학원과 과외의 도움을 받지만, 어떤 아이는 사다리 자체를 제대로 붙잡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명문대 입시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사교육비는 더 올라갔으며, 부모의 경제적 배경과 자녀의 학업 성취 사이의 상관관계는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 그렇다면 교육은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있는 세상을 그대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애플의 답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세상을 재생산하기도 하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어떤 지식을 가르치는가, 누구의 목소리가 반영되는가, 교육이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에 따라 교육은 지배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해방의 실천이 되기도 한다.

 

 

재생산의 힘과 저항의 가능성

 

애플의 출발점은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학교는 사회가 원하는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 것은, 대개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교과서는 누군가의 관점에서 쓰인다. 무엇을 ‘공식 지식(official knowledge)’으로 삼느냐의 결정 자체가 이미 권력의 행사다.

 

그가 이전 저작 『이데올로기와 교육과정』(1979)에서 분석했던 것처럼, 어떤 지식이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어떤 지식이 배제되느냐는 결코 가치중립적인 문제가 아니다. 미국 역사 교과서에서 원주민의 목소리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노동운동의 역사가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어지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 공식적 교육과정에는 항상 ‘숨겨진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 함께 흐른다.

 

그렇다면 애플은 교육에 대한 비관론자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재생산의 논리를 인정하면서도, 역사 속에서 실제로 교육이 변혁의 동력이 되었던 순간들을 꼼꼼하게 발굴한다. 그 사례들이 이 책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다.

 

 

역사가 증언하는 변혁의 교육들

 

애플이 가장 먼저 소환하는 인물은 W. E. B. 두보이스(W.E.B. Du Bois)다. 흑인 학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두보이스는 교육을 단순한 직업 훈련으로 축소하려 했던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의 노선에 맞서, 흑인 청년들에게 비판적 사고와 ‘영혼의 자유’를 길러주는 교육을 주장했다. 그에게 교육은 생계를 위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억압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었다.

 

또 하나의 강력한 사례가 ‘하이랜더 민중학교(Highlander Folk School)’다. 1932년 테네시 주에 설립된 이 학교는 노동운동가와 시민권 운동가들을 교육했다. 여기서 배운 사람들 중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자 파크스도 있었다. 로자 파크스가 1955년 12월 버스에서 ‘일어나라’는 요구를 거부한 것은 단순한 충동적 행동이 아니었다. 그는 그해 여름 하이랜더에서 시민권 교육을 받는 등 오랜 준비를 해온 활동가였다.

 

애플은 또한 1960년대 미국 남부의 ‘자유 학교(Freedom Schools)’를 상세히 분석한다. 흑인 학생들이 공립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들—자신의 역사, 자신의 권리, 저항의 언어—을 가르쳤던 이 학교들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지식을 만들어가는 공간이었다. 애플이 강조하는 것은, 이 모든 사례에서 교육이 사회운동과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진 교육이 아니었다. 거리와 교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온 편지

 

책의 후반부에서 애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더욱 구체적이다.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Porto Alegre)의 ‘시민 학교(Citizen Schools)’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1990년대 노동자당 집권 시절, 이 도시는 교육과정 자체를 지역 공동체와 함께 재구성하는 실험을 했다. 교사, 학부모, 학생,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우리 마을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토론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은 교과서 속 추상적인 문제 대신 자신들이 실제로 겪는 주거 문제, 교통 문제, 환경 문제를 학습 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경험이 수업의 중심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교사들은 교과서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에서, 지역사회의 삶과 교육과정을 연결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표준화 시험 점수를 올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교육은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 물론 애플은 이것이 완벽한 모델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 실험이 축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사례를 통해 ‘두터운 민주주의(thick democracy)’—형식적 참여를 넘어선 실질적이고 일상적인 민주주의—가 교육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맞서고 있는 것

 

애플의 비판적 시선은 오늘의 교육 현실을 향해서도 날카롭다. 그는 ‘새로운 보수주의 동맹’이라고 부르는 흐름—신자유주의적 시장화, 신보수주의적 가치 통제,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 전 세계 교육을 동시에 재편하고 있다고 본다.

 

이 흐름의 공통된 특징은 교육을 개인의 경쟁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축소한다는 것이다. 표준화 시험, 성과 기반 평가, 학교 서열화, 교사 효과성 측정—이런 것들이 교육의 언어를 점령해 버리면, 정작 교육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진다. 교사는 전문적 판단을 가진 교육자가 아니라 성과 지표를 달성해야 하는 기술자로 전락한다.

 

“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는 ‘누구의 지식인가’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이 문장은 애플이 40년 넘게 일관되게 주장해 온 핵심이다. 지식은 중립적이지 않다. 교육과정은 항상 특정한 세계관을 담고 있다.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교육을 하게 된다.

 

 

한국 교육에서 이 물음을 되묻는다면

 

애플의 물음을 한국 교육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우리의 공교육은 지금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 아니면 기존 사회 질서를 재생산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불편하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그 열정이 향하는 곳이 문제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좋은 대학 → 좋은 직장 → 안정된 삶’이라는 경로를 향한 치열한 경쟁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가 클수록, 교육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역설적으로 교육은 더욱 경쟁의 도구로 변해간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학습 격차의 문제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듣지만 어떤 학생은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학생은 점점 뒤처진다. 가정의 경제적 여건, 부모의 학력, 사교육 기회, 학습 지원 환경의 차이는 학생들의 출발선을 다르게 만든다. 그런데 학교는 종종 이러한 차이를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의 차이로 설명한다.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는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높은 성취를 보이는 학생에게는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라고 말한다.

 

물론 개인의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애플의 시각에서 보면 여기에는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학생들이 처한 조건은 과연 공정했는가. 같은 결승선에 들어왔다고 해서 같은 출발선에서 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바꾸어 설명한다. 그 결과 학교는 격차를 줄이는 공간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격차를 확인하고 정당화하는 공간이 될 위험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원격수업 기간 동안 학습 격차는 크게 확대되었고, 특히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과 취약계층 학생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왜 저 학생은 공부를 하지 않을까?” 애플이라면 아마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왜 그 학생이 배우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가?”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비판적 사고, 창의성, 협력과 같은 미래 역량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역량이 실제로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길러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역량은 선언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뒤처진 학생에게 충분한 지원이 제공되지 않고, 학습 격차가 누적된 상태에서 역량 교육만 강조된다면 결국 더 많은 혜택은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있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교육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공적 질문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교육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만 이야기되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공공재로서의 역할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교육이 모든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는 제도라기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제도로 인식될 때, 교육은 변화를 만드는 힘보다 재생산의 힘에 더 가까워진다.

 

애플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육을 설계하는 권력, 교육과정을 결정하는 권력, 무엇이 중요한 지식인지를 판단하는 권력, 그리고 누구에게 더 많은 교육적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력이 어디에 있느냐가 교육의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는 단순히 “학생들이 왜 성취하지 못하는가”를 묻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교육 체제가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 구조 앞에서 교사는 무력한 존재인가. 애플의 대답은 단호히 ‘아니오’다. 그는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organic intellectual)’ 개념을 교사에게 적용한다. 유기적 지식인이란 서재에 앉아 사유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식을 만들어가고 그것을 실천으로 연결하는 지식인이다.

 

교사는 국가가 정해준 교육과정을 전달하는 기계가 아니다. 교사는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매일 수십 가지 교육적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다. 어떤 질문을 허용하느냐, 어떤 이야기를 들어주느냐, 어떤 학생의 경험을 수업의 중심에 놓느냐—이 모든 선택이 이미 정치적이다.

 

그러나 애플은 교사 개인의 각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집합적 행동’이다. 하이랜더 학교도, 자유 학교도, 포르투알레그리의 시민 학교도 교사 한 명의 노력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었다. 학교 안의 교사들이 서로 연대하고, 학교 밖의 사회운동과 연결될 때, 교육은 비로소 변혁의 힘을 얻는다.

 

 

이 책이 교사에게 전하는 메시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하나는 ‘무거움’이다. 교육이 생각보다 훨씬 자주 기존 사회를 재생산하며, 구조의 힘이 얼마나 완강한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또 하나는 이상하게도 ‘희망’이다. 역사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이 가능해진 순간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애플은 구체적인 이름과 장소와 이야기로 보여준다.

 

애플이 이 책을 통해 교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결국 이것이 아닐까.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세상을 읽고 세상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교사는 교실을 벗어나기 어렵다. 수업 준비, 학생 상담, 행정 업무로 하루가 빠듯하다. 그 안에서 교육의 사회적 의미를 고민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애플은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교육은 지금 무엇을 재생산하고 있으며,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누구에게 더 많이 열려 있는가. 학교는 불평등을 줄이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는가. 교육과정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는가, 아니면 특정한 관점만을 반복하고 있는가.

 

애플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여기로 모인다. 교육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교육은 언제나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그 영향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떤 사회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교육은 언제나 무언가를 재생산하고, 언제나 무언가를 변화시킨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이다.”

 

마이클 애플의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교육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뿐 아니라,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만든다. 읽는 내내 불편하고, 읽고 나서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때문에 이 책은 오래 남는다. 그것이 이 책의 진짜 가치다.

 

 

<교실 적용 팁>

 

① 교과서가 담고 있지 않은 목소리를 수업에 들여온다. 교과서는 누군가의 관점에서 쓰인다. 역사 수업에서 교과서의 서술 외에 다른 입장이 있는지를 함께 물어보는 것, 특정 사건에서 누구의 이야기가 빠져 있는지를 짚어보는 것—이것이 ‘숨겨진 교육과정’을 드러내는 첫걸음이다.

 

② 학생의 삶과 경험을 수업의 재료로 삼는다. 포르투알레그리의 교사들이 지역사회의 삶을 교육과정과 연결했던 것처럼, 학생들이 살고 있는 동네, 겪고 있는 문제, 일상에서 접하는 경험과 언어를 수업 안으로 끌어들인다. 교과 내용이 자신의 삶과 닿아 있다고 느낄 때 학생은 지식을 외우는 사람에서 지식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달라진다.

 

③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함께 묻는 습관을 만든다. 뉴스 기사 하나, 정책 발표 하나를 수업 자료로 삼아 “이것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가”를 토론하는 것은 어떤 교과에서도 가능하다. 이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비판적 사고를 훈련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다.

 

④ 학급 운영에서 실질적인 참여의 경험을 만든다. 형식적인 학급 회의가 아니라, 학생들이 실제로 결정할 수 있는 작은 것들—교실 규칙, 모둠 과제의 방식, 학급 행사의 내용—을 함께 정하는 경험이 민주주의를 몸으로 배우게 한다. 참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⑤ 동료 교사와 수업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만든다. 애플이 강조하는 것은 교사 개인의 각성이 아니라 집합적 실천이다. 수업 아이디어, 학생 이야기, 교육과정에 대한 불만—이런 것들을 혼자 안고 가지 않고 동료와 나누는 것이 교실 바깥의 변화를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

 

⑥ 학생들에게 ‘정답’뿐 아니라 ‘질문’을 가르친다. 애플은 민주주의 교육의 핵심이 비판적 질문이라고 보았다. 학생들이 단순히 답을 외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그런가?”, “누가 결정했는가?”, “다른 가능성은 없는가?”를 묻도록 돕는다.

 

 

※ 이 시리즈는 AI 도구를 활용해 원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하고, 필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한국 교육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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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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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양은숙 수정 삭제

    ” 읽는 동안 불편했다, 그래서 더 가치있다.”라는 대표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책임이 학교에, 교사에 있다는 흐름에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현재 참교육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학교 현장이 희화화되고 있는 듯해서 더 힘든 시간입니다, 개인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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