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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의 문제를 푸는 책들(11) –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1535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6.04

Mike Rose, 『Why School?: Reclaiming Education for All of Us』 (The New Press, 2009) 비평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시간. 뒷자리에 앉은 준호가 또 문제를 틀렸다. 세 번째다. 교사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 학생은 수학에 소질이 없나 보다.’

 

준호도 안다. 자기가 수학을 못한다는 것을. 중학교 때부터 계속 그런 말을 들었다. “너는 수학 머리가 없어.” “문과형 학생이구나.” 이제는 스스로도 믿게 되었다. ‘나는 똑똑하지 않아.’ 그런데 방과 후, 준호는 PC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한다. 실시간으로 전략을 짜고, 상황을 분석하고, 확률을 계산한다. 팀원들의 능력을 파악해 역할을 배분하고, 상대의 다음 수를 예측한다.

 

이 장면을 본 사람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 복잡한 사고 과정을 실시간으로 해내는 학생이, 정말 ‘공부 머리가 없는’ 걸까? 그렇다면 학교는 대체 무엇을 측정하고 있는 걸까? 학생의 지적 능력인가, 아니면 학교가 요구하는 특정한 방식의 표현 능력인가?

 

우리는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무관심하다. 학교가 너무나 당연한 제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교사에게 배우며, 시험을 보고, 졸업을 한다. 이 과정은 마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질서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Mike Rose는 준호 같은 학생들을 보며 묻는다. 학교는 정말 모든 아이를 위한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학교가 요구하는 방식에 잘 적응하는 일부 학생들에게만 유리한 제도로 기능하고 있는가.

 

그의 책 『Why School?: Reclaiming Education for All of Us』는 단순히 교육 정책을 논하는 책이 아니다. 학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아이들의 가능성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는지를 다시 묻게 만드는 책이다. 그가 던지는 여러 질문은 결국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진다. 학교는 과연 모든 아이를 위한 곳인가.

 

 

학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Rose는 미국 교육에서 오래된 두 가지 관점을 대비시킨다.

 

첫 번째는 선별의 관점이다.

 

학교가 능력 있는 학생을 가려내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시험과 성적은 그 선별을 위한 도구가 된다. 학생들은 줄 세워지고, 등수가 매겨지고,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으로 나뉜다. 이 관점에서 교사의 역할은 명확하다. 가르치고, 평가하고, 구분하는 것.

 

두 번째는 발달의 관점이다.

 

학교가 학생이 지적 능력을 키워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교육은 잠재력을 발견하고 확장하는 과정이 된다. 모든 학생은 성장할 수 있으며, 교사의 역할은 그 성장을 돕는 것이다.

 

이 두 관점은 교실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수학 문제를 틀렸다고 하자.

 

• 선별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 학생은 수학에 소질이 없다.”
• 발달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묻는다. “이 학생이 이해하지 못한 지점은 어디일까?”

 

겉으로는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교사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진다. 하나는 학생을 판단하고, 다른 하나는 학생을 이해하려 한다.

 

 

정비소에서 만난 철학자들

 

Rose의 글이 특별한 이유는 교실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그는 명문대나 영재교육 현장보다, 직업학교와 지역 대학, 일반 공립학교의 교실을 더 오래 들여다본다. 흔히 “평범한 학생들”이 모여 있다고 여겨지는 곳들이다.

 

그러나 Rose는 바로 그 교실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지적 활동과 깊은 사고의 순간들을 발견한다.

 

자동차 정비 학교의 한 수업

 

학생들이 고장 난 엔진 앞에 모여 있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교사가 묻는다. “원인이 뭘까?”

 

학생들이 하나씩 말한다.

 

“배터리 문제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스파크 플러그?”
“연료 공급 문제 아닐까요?”

 

교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하나씩 확인해 보자.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학생들은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수집하며, 논리적으로 원인을 좁혀 간다. 배터리를 확인하고, 전압을 측정하고, 연결 상태를 점검한다. 한 학생이 말한다. “배터리는 정상이니까 점화 시스템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이 장면을 지켜보던 Rose는 이렇게 쓴다.

 

“일은 실용적일 수 있지만, 그 안의 사고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The work may be practical, but the thinking is often complex.)

 

이 학생들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가설 설정, 실험, 검증, 결론. 대학 실험실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사고 과정이다.

 

하지만 누가 이 학생들을 ‘지적(知的)’이라고 부르는가? 이 문장은 교육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흔든다. 학문적 공부만이 지적 활동이라는 생각 말이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사고’이고, 엔진을 수리하는 것은 ‘기술’이라고 구분한다. 철학책을 읽는 것은 ‘지적’이고, 요리 레시피를 개발하는 것은 ‘실용’이라고 나눈다.

 

Rose는 묻는다. “정말 그럴까?”

 

 

저는 똑똑하지 않아요

 

Rose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학교가 학생의 지적 능력을 너무 쉽게 판단해 버린다는 점이다. 성적이 낮으면 이렇게 말하기 쉽다.

 

“이 학생은 공부에 흥미가 없다.”
“기초가 부족하다.”
“노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Rose는 이런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 준다.

 

Rose가 만난 한 여학생 이야기

 

루시(가명)는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낮았다. 특히 수학과 과학을 어려워했다. 교사들은 그녀를 ‘학업 능력이 부족한 학생’으로 봤다.

 

Rose가 루시를 인터뷰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똑똑하지 않아요. 학교 공부는… 저한테는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Rose가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니,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루시는 집에서 어린 동생 둘을 돌보고 있었다.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해서 방과 후에는 루시가 책임자였다. 그녀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동생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가계부를 관리했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식료품을 사고, 급한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갈등을 중재했다.

 

Rose는 묻는다. 이것이 ‘사고 능력’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루시는 계획을 세우고, 자원을 배분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능력을 매일 사용하고 있었다. 학교의 기준으로 보면 ‘학업 성취가 낮은 학생’일 수 있지만, 사고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학교가 루시의 이런 능력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실에서의 작은 순간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교실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중학교 2학년 국어 시간

 

민아는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200자 일기도 쓰기 힘들어한다. 문장을 길게 쓰지 못하고 자주 멈춘다. 맞춤법도 자주 틀린다. 교사는 생각한다. ‘이 학생은 글을 잘 쓰지 못하는구나. 표현력이 부족해.’

 

그런데 어느 날, 학급 회의 시간.

 

“수학여행 갈 곳을 정해야 해요. 어디가 좋을까요?”

 

학생들이 하나씩 의견을 낸다. 놀이공원, 박물관, 역사 유적지. 그때 민아가 손을 든다. “저는… 박물관이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 시험도 있잖아요. 그리고 놀이공원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부담되는 친구들도 있을 것 같아요. 박물관은 입장료도 저렴하고, 다 같이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사진 찍기도 좋아요. 나중에 졸업할 때 추억으로 남을 만한 곳이잖아요.”

 

교실이 조용해진다.

 

민아는 방금:

 

• 여러 선택지를 비교했다.
• 경제적 형평성을 고려했다.
• 학업적 가치를 평가했다.
• 정서적 의미를 분석했다.
• 설득력 있는 논리 구조로 제시했다.

 

교사는 깨닫는다. 문제는 사고 능력이 아니라 표현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민아는 생각을 말로는 명확히 표현할 수 있지만, 글로 옮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일 수 있다. 글쓰기 기술이 부족한 것이지, 논리적 사고가 없는 게 아니다.

 

Rose가 말하는 교육의 핵심은 바로 이런 순간에 있다. 학생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라. 먼저 그 학생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보라.

 

 

학교의 진짜 역할

 

Rose는 학교의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교육은 사람의 지적 삶을 확장해야 한다.”
(Education should expand a person’s intellectual life.)

 

시험 점수를 높이는 것만이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학생이 세상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교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학생의 지적 가능성을 넓히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선별하고 있는가?

 

교실에서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 선별 중심 교실:

 

•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
• 손 든 학생 → “역시 잘하네”
• 손 안 든 학생 → “이해 못 했구나”
• 결과: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뉨

 

♣ 발달 중심 교실:

 

•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 여러 방법 제시
• 틀린 답에서도 사고 과정 찾기
• 결과: 모든 학생이 자기 방식으로 참여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학생이 받는 메시지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 교육에 주는 시사점

 

이 책을 한국 교실에서 읽으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선별’에 너무 익숙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은 등수를 안다.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누가 공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 모두가 안다. 중학교에 가면 더 명확해진다. 내신 등급, 전국 석차. 고등학교에 가면 문과/이과로 나뉘고, “넌 수학 머리가 없으니까 문과 가”, “넌 암기 못 하니까 이과 가”라는 말을 듣는다.

 

아래의 Rose 질문은 우리에게 예리하게 꽂힌다.

 

“그 학생이 정말 ‘수학 머리가 없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 학생의 수학적 사고를 발견하지 못한 걸까?”

 

한국의 많은 ‘학습 부진’ 학생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정말 지적 능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학교가 요구하는 특정한 방식의 표현과 평가에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Rose가 만난 자동차 정비 학생들처럼, 한국의 특성화고 학생들도 고차원의 복잡한 사고를 한다. 요리 학교 학생들은 화학 반응을 이해하고, 미용 학생들은 색채 이론과 디자인을 적용하고, 건축 학생들은 공간과 구조를 분석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고 부른다. 인문계에 가지 못한 학생이라고 본다.

 

Rose는 묻는다. “누가 그렇게 정의할 권리가 있는가?”

 

 

그러나 남는 과제

 

이 책은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학생의 지적 가능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흔들고, 학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다만 책의 초점은 구체적인 제도 설계나 실천 매뉴얼보다는 교육의 본질적 방향을 성찰하게 하는 데 더 가까워 보인다.

 

예를 들어 “학생의 다양한 지적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그렇다면 교육과정과 평가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대학 입시와 학교 구조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또한 이 책은 미국 교육 현실을 배경으로 쓰였다. 직업교육과 인문교육의 분리, 지역 대학 시스템, 교육 불평등의 구조 등은 한국의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Rose의 통찰을 한국 교실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교실에서 당장 사용할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학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다시 점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시선의 변화가 때로는 교육 변화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이 교사에게 전하는 메시지

 

『Why School?』은 거창한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교사에게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학생의 능력을 너무 빨리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험 점수가 학생의 지적 능력을 모두 설명한다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질문이다.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Rose의 대답은 분명하다. 학교는 일부 학생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학교는 모든 학생이 자신의 지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교실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 조용히 앉아 있는 학생.
• 문제를 풀다가 멈춘 학생.
• 성적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

 

그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의 질문이 달라질 수 있다. “이 학생은 왜 못할까?”가 아니라 “이 학생은 지금 무엇을 이해하고 있고, 어디에서 막히고 있을까?”

 

준호가 다시 수학 문제 앞에 앉아 있다. 또 틀렸다. 하지만 이제 교사는 다르게 묻는다.

 

“준호야, 이 문제를 어떻게 풀려고 했어? 네 생각을 들려줄래?”

 

그 질문 하나가, 학교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교사에게 주는 선물이다. 화려한 해법이 아니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그 눈으로 학생을 다시 보는 것, 그것이 교육의 시작이다.

 

 

<교실 적용 팁>

 

학생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묻는다. “이 학생은 왜 못할까?”를 “이 학생은 지금 무엇을 이해하고 있고, 어디에서 막히고 있을까?”로 바꾸는 것이 출발점이다. 틀린 답 앞에서 “어떻게 풀려고 했어? 네 생각을 들려줄래?”라고 묻는 습관 하나가 교사의 시선을 선별에서 발달로 옮긴다.

 

교실 밖에서 이미 하고 있는 것을 수업 안으로 들여온다. 게임에서 전략을 짜고, 동생을 돌보며 살림을 꾸리고, 엔진 앞에서 원인을 추론하는 것—이 모두가 고차원의 사고다. 학생이 학교 밖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교사가 보지 못했던 지적 능력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표현 방식과 사고 능력을 구별한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이 말로는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펼칠 수 있다. 수학 문제를 못 푸는 학생이 요리 재료의 비율을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학생이 학교의 특정한 표현 방식에 어려움을 겪는 것인지, 사고 자체가 없는 것인지를 먼저 구별해야 한다.

 

특성화고 학생, 학습 부진 학생을 다르게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요리, 미용, 건축, 자동차 정비—이 분야의 학생들이 실제로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공부 못하는 학생”이라는 말이 얼마나 좁은 시선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게 된다. 누가 그렇게 정의할 권리가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시작이다.

 

 

※ 이 시리즈는 AI 도구를 활용해 원서의 핵심 내용을 추출하고, 필자가 내용을 검토·수정하여 한국 교육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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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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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양은숙 수정 삭제

    학교는 모두를 위한 곳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은 이제 공공재가 아닌 공동재로 전환되어야 하며, 교사는 긍정적 변수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대표님 글에서 위로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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