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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학습부진과 격차 완화, 해외 사례에서 배운다(6) – “호주의 다양성을 학습 자원으로 전환하는 형평성 모델”

#1476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6.03.18
한국의 다문화 학생 지원 정책은 주로 한국어 교육과 문화 적응에 초점을 맞출 뿐, 학업성취 격차를 체계적으로 해소하는 구조가 부족합니다. 호주의 경험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공합니다.

 

 

전 세계 교육 체계는 점점 더 다양해지는 학생 구성을 마주하고 있다. 이민, 난민, 국제결혼 증가로 교실 안에는 다양한 언어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학습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풍요로움이 될 수도, 불평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핵심은 교육 체계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호주는 이민자 국가로서 오랜 기간 동안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교육 체계에 통합해 왔다. 특히 원주민(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학생, 난민 배경 학생, 영어 추가 학습자(EALD: 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or Dialect) 등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교육적 성공을 이루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잘 정리되어 있다.

 

호주의 접근법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차이를 결핍이 아닌 자산으로 본다’는 관점 전환이다. 이중언어 능력, 다문화 경험, 다양한 관점—이것들을 학습의 장애물이 아니라 학급 전체를 풍요롭게 하는 자원으로 바라본다.

 

한국도 비슷한 전환점에 서 있다. 2024년 현재, 한국의 다문화 학생 수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학생의 약 3.6%에 해당한다(교육부, 2024). 서울의 일부 학교에서는 다문화 학생 비율이 30%를 넘기도 한다. 이는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다문화 학생 지원 정책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주로 한국어 교육과 문화 적응에 초점을 맞출 뿐, 학업성취 격차를 체계적으로 해소하는 구조는 부족하다. 호주의 경험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공한다.

 

 

호주의 다문화 학습 환경

 

호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다양한 국가 중 하나로, 202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특성이 인구와 언어 구성 전반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 인구의 약 30%가 해외 출생
• 300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됨
• 학생의 약 25%가 가정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 사용
(출처: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2021)

 

원주민 학생은 전체 학생의 약 6%를 차지하지만, 학업성취 격차는 여전히 크다. 2022년 NAPLAN(전국 학력평가) 결과를 보면, 원주민 학생과 비원주민 학생 간 읽기·수리력 격차가 평균 2-3학년 수준 차이를 보인다(Australian Curriculum, Assessment and Reporting Authority, 2022).

 

난민 배경 학생도 중요한 집단이다. 호주는 매년 수천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며, 이들 중 상당수가 학령기 아동이다. 이들은 종종 교육 공백과 트라우마, 심각한 언어 장벽을 경험한다(Matthews, 2008).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호주 교육 체계는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이 아니라 ‘형평성 있는 교육(equitable education)’을 목표로 한다. 형평성이란 모든 학생이 자신의 출발점과 필요에 맞는 지원을 받아 동등한 성공 기회를 갖는다는 의미다.

 

 

영어 추가 학습자(EALD) 지원 체계

 

호주의 다문화 교육 정책에서 EALD 지원 체계는 문화반응적 교수를 교실 안에서 실제로 구현하는 핵심 장치다.

 

1) EALD란 무엇인가?

 

EALD는 “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or Dialect”의 약자다. 이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거나, 학교에서 사용하는 표준 호주 영어(Standard Australian English)와 문법과 어휘 체계가 다른 영어 방언을 사용하는 학생들을 지칭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학생들이 포함된다:

 

• 이민자 가정 학생
• 난민 배경 학생
• 원주민 학생(많은 원주민 공동체가 독특한 영어 방언 사용)
• 일시 체류 비자로 호주에 온 학생

 

EALD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나, 이는 문제가 있었다. 많은 학생들에게 영어가 ‘두 번째’ 언어가 아니라 세 번째, 네 번째 언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Second Language”는 ‘부족한 것’이라는 결핍의 프레임을 내포했다.

 

반면 EALD는 ‘추가(Additional)’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학생이 이미 가진 언어에 영어를 더하는 것이라는 긍정적 관점을 담았다(Gibbons, 2015). 이는 용어의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사와 학생의 인식에 큰 차이를 만든다.

 

2) EALD 진단과 단계별 지원

 

호주의 여러 주는 EALD 학습자를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지원한다. 대표적으로 South Australia주의 EALD Learning Progression을 살펴보자(Department for Education South Australia, 2020).

 

이 프레임워크는 EALD 학습자의 영어 발달을 4단계로 구분한다:

 

• Phase 1: Beginning

– 영어 노출이 제한적이거나 전혀 없음
– 간단한 일상 표현과 명령 이해
– 지원: 집중적인 영어 지도, 시각 자료 활용, 모국어 지원, 또래 버디 시스템

 

• Phase 2: Emerging

– 일상적 대화 가능, 하지만 학업 언어는 어려움
– 간단한 문장으로 의사소통
– 지원: 학업 어휘 명시적 교수, 문장 구조 연습, 읽기 유창성 지원

 

• Phase 3: Developing

– 대부분의 사회적 상황에서 효과적 의사소통
– 학업 텍스트 이해 시작, 그러나 복잡한 구조는 어려움
– 지원: 학업 텍스트 읽기 전략, 쓰기 구조 교수, 내용 영역별 어휘 지원

 

• Phase 4: Consolidating

– 다양한 맥락에서 영어 사용 능력 발달
– 학업 텍스트 이해 및 생산 가능, 세련됨 증가
– 지원: 비판적 문해력, 고차원 사고 기술, 학업 장르별 쓰기

 

중요한 것은, 이 단계가 단순히 ‘얼마나 영어를 못하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각 단계마다 구체적인 교수 전략과 지원 방법이 제시된다.

 

3) EALD 전문교사와 협력 모델

 

호주의 많은 학교에는 EALD 전문교사(EALD Specialist Teacher)가 배치된다. 이들은 일반 교사와 협력하여 EALD 학습자를 지원한다. 협력 모델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띤다(Hammond, 2014):

 

• 협력 교수(Co-teaching)

EALD 전문교사가 정규 수업 시간에 교실에 들어와 일반 교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 이는 핀란드의 특수교사 협력 모델과 유사하다.

 

• 소그룹 지원(Small Group Support)

EALD 학습자 소그룹(3-5명)을 대상으로 집중 지도를 제공한다. 주로 언어 기술, 어휘, 학업 텍스트 읽기 등에 초점을 맞춘다.

 

• 교사 자문(Teacher Consultation)

EALD 전문교사가 일반 교사에게 학생별 맞춤 전략을 조언한다. 예를 들어, 특정 학생을 위한 수업 자료 수정, 평가 방법 조정 등을 함께 논의한다.

 

• 부모 및 지역사회 연계

EALD 전문교사는 종종 통역 서비스를 조정하고, 부모와의 의사소통을 돕는다. 또한 지역사회 언어 지원 프로그램과 학교를 연결한다.

 

4) EALD 지원의 핵심: Scaffolding

 

EALD 교육의 핵심 개념은 비계 설정(Scaffolding)이다. 이는 학생이 현재 수준에서 다음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일시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호주의 EALD 연구자들은 다양한 scaffolding 전략을 개발했다(Gibbons, 2015; Hammond & Gibbons, 2005):

 

• 언어적 scaffolding
가장 직접적인 지원 방식이다. 교사는 학업 어휘를 명시적으로 가르친다. 예를 들어, 과학 수업에서 “증발”이라는 용어를 가르칠 때, 단순히 정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일상 경험(예: “빨래가 마르는 것”)과 연결하고, 여러 맥락에서 반복 사용하게 한다. 복잡한 문장은 간단하게 풀어주고, 문장 시작 프레임을 제공한다(예: “I think… because…”, “First… then… finally…”). 중요한 것은 구두 연습을 충분히 한 후에 쓰기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말하기가 쓰기보다 인지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 시각적 scaffolding
언어 장벽을 우회하는 방법이다. 그림, 도표, 그래픽 조직자를 활용하여 개념을 시각화한다. 실물이나 모형을 사용하고, 동영상 자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식물의 광합성을 가르칠 때, 텍스트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이어그램, 실제 식물, 애니메이션 영상을 함께 활용한다.

 

• 맥락적 scaffolding
학생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한다. 새로운 내용을 학생의 실생활 경험과 연결하고, 학생의 문화적 배경 지식을 수업에 통합한다. 구체적 맥락에서 시작하여 점차 추상적 개념으로 이동한다. 예를 들어, 분수를 가르칠 때 피자나 떡을 나누는 경험에서 출발하여 수학적 표기법으로 나아간다.

 

• 상호작용적 scaffolding
사회적 학습의 힘을 활용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또래와 대화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협력 학습을 구조화한다. 중요한 것은 안전한 질문·대답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EALD 학습자는 종종 틀릴까 봐, 웃음거리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교사는 실수를 학습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교실 문화를 만든다.

 

핵심은 이러한 지원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이 능력을 발달시키면 교사는 점차 지원을 줄여나간다(Gradual Release of Responsibility). 처음에는 교사가 많이 도와주지만, 점차 학생이 독립적으로 할 수 있도록 물러선다. 이것이 “비계”라는 은유의 본질이다. 건물이 완성되면 비계는 철거된다.

 

 

문화반응적 수업 설계

 

문화반응적 수업(Culturally Responsive Teaching: CRT) 설계는 다문화 학생의 언어·문화적 배경을 학습의 출발점으로 삼아, 교실 수업과 학교 실천 전반을 재구성하려는 접근이다.

 

1) 문화반응적 교수란?

 

EALD 지원이 주로 ‘언어’에 초점을 맞춘다면, 문화반응적 교수는 더 넓은 개념이다. 이는 학생의 문화적 배경, 경험, 관점을 교육 과정의 중심에 놓는 접근법이다.

 

문화반응적 교수의 창시자인 Geneva Gay(2010)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학생의 문화적 특성, 경험, 관점을 교수 학습의 통로로 사용하여, 학생을 더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것”

 

호주에서는 특히 원주민 학생을 위한 문화반응적 교수가 오랜 연구와 실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원주민 학생들의 학업성취 격차는 사회경제적 요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부적합한 교수 방식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Sarra, 2011).

 

2) 원주민 교육의 교훈

 

호주 원주민 교육의 역사는 쓰라린 것이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동화 정책”이 지배했다. 원주민 아이들은 가족과 분리되어 기숙학교로 보내졌고(Stolen Generations), 그곳에서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버리도록 강요받았다. 이는 심각한 트라우마와 세대 간 상처를 남겼다(Dudgeon et al., 2014).

 

1990년대 이후, 호주는 이러한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핵심은 “문화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활용하는 것”이었다. 여러 혁신적인 학교와 프로그램이 등장했으며,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가 Queensland주 Cherbourg State School이다.

 

Cherbourg는 대부분 원주민이 거주하는 소외된 지역이다. 2004년 이전까지 이 학교의 학업성취도는 주 최하위였고, 출석률도 50% 미만이었다. 그러나 Chris Sarra 교장이 부임한 후, 학교는 극적으로 변했다(Sarra, 2011).

 

Sarra가 한 일은 다음과 같다:

 

• 높은 기대 설정

“원주민 학생은 어차피 못한다”는 낮은 기대를 거부하고, “우리 학생들도 훌륭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학교 전체에 확산시켰다.

 

• 문화적 정체성 강화

원주민 언어와 문화를 교육과정에 통합했다. 원주민 장로를 학교로 초대해 전통 이야기와 지혜를 나누도록 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도록 했다.

 

• 지역사회 참여

부모와 지역사회를 학교 의사결정에 포함시켰다. 학교가 지역사회의 공간이 되도록 했다.

 

• 교사 역량 강화

교사들에게 원주민 문화와 역사에 대한 연수를 제공했다. 문화적으로 적합한 교수법을 개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5년 만에 출석률이 95%로 올랐고, 전국 학력평가에서 주 평균을 넘어섰다. Cherbourg의 성공은 호주 전역에 영감을 주었고, 이후 “Stronger Smarter 프로그램”1으로 확산되었다.

 

3) 문화반응적 교수의 실천 원칙

 

호주의 경험에서 추출한 문화반응적 교수의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Gay, 2010; Sarra, 2011; Ladson-Billings, 1995):

 

• 원칙 1: 학생의 문화적 배경 알기

교사는 학생의 가정 언어, 문화적 관습, 가족 구조, 이민 배경 등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관심’이 아니라 ‘전문성’의 일부다.

 

• 원칙 2: 높은 기대와 지원의 균형

문화적 배경을 학생의 낮은 학업성취나 학습 수행의 어려움을 정당화하며 기대를 낮추는 근거로 삼지 않는다. 동시에 학생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지원을 제공한다.

 

• 원칙 3: 포용적 교육과정

교육과정이 다양한 문화적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 문학 작품에 다양한 배경의 저자 포함, 역사 수업에서 다각적 관점 제시, 과학에서 비서구 문명의 기여 다루기 등.

 

• 원칙 4: 문화적으로 적합한 교수법

예를 들어, 많은 원주민 문화에서는 협력과 공동체가 중시된다. 개인 경쟁보다는 그룹 활동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일부 문화에서는 질문에 즉각 대답하는 것보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존중의 표시다.

 

• 원칙 5: 가족과 지역사회 참여

다문화 가정은 종종 학교 참여에서 장벽을 경험한다(언어, 과거 경험, 문화적 차이 등). 교사가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환영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4) 실천 사례: NSW의 다문화 교육 정책

 

New South Wales주 교육부는 2020년 “다문화 교육 정책(Multicultural Education Policy)”을 개정하며, 모든 학교가 문화반응적 교육을 실천하도록 요구했다(NSW Department of Education, 2020). 이 정책은 다음을 포함한다:

 

• 교육과정 수준
모든 교과에 다양한 문화적 관점을 포함하도록 요구한다. 예를 들어, 역사 수업에서는 단일한 내러티브가 아니라 다양한 집단의 경험과 관점을 다룬다. 인종차별과 편견에 대한 비판적 논의도 교육과정에 통합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의 모국어와 문화를 학습의 장애물이 아니라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 학교 환경 수준
물리적·상징적으로 포용성을 드러낸다. 학교 곳곳에 다국어 표지판과 안내문이 배치된다. 다양한 문화적 축제를 인정하고 기념한다. 이는 단순한 ‘문화의 날’ 행사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모든 학생이 자신의 정체성을 존중받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 교사 역량 수준
모든 교사가 문화적 역량(cultural competence)을 갖추도록 연수를 의무화한다. 여기에는 자신의 암묵적 편향(implicit bias)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법도 포함된다. 또한 교사들이 통역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언어 장벽을 넘어 학생 및 가족과 소통하는 능력을 기른다.

 

• 가족 참여 수준
다문화 가정이 학교 참여에서 겪는 장벽을 허문다. 학교는 다국어로 된 소통 자료를 제공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부모 참여 방식을 개발한다. 예를 들어, 일부 문화권에서는 학교에 직접 찾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므로, 지역사회 공간에서 만나거나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언어 및 문화 단체와 협력하여 가족을 학교 공동체로 끌어들인다.

 

이 정책의 핵심은 문화적으로 적합한 교육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이다. 모든 학교, 모든 교사가 이를 실천해야 한다.

 

 

학교 차원의 통합적 형평성 전략

 

호주의 형평성 전략은 단일 프로그램이 아니라 통합적 접근이다. 언어 지원, 문화반응적 접근, 학업 지원, 사회정서 지원이 함께 작동한다.

 

1) 난민 배경 학생 지원 사례

 

난민 학생들은 특별한 어려움을 겪는다. 많은 학생들이 교육 공백, 트라우마, 심각한 언어 장벽을 경험한다. Victoria주의 “English Language Schools”는 이들을 위한 특화된 지원을 제공한다(Matthews, 2008).

 

Victoria주는 단계적 통합 모델을 운영한다. 난민 학생이 일반 학교에 바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준비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집중적 영어 및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다(6개월-1년). 학생들은 전문 English Language School에서 집중적 영어 교육을 받는다. 단순히 언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호주 학교 시스템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트라우마 인식 기반 접근(trauma-informed approach)을 바탕으로 한 사회정서 지원 및 상담, 학업 기술 및 학습 습관 개발이 함께 이루어진다.

 

두 번째 단계는 일반 학교로의 점진적 전환이다. 학생들은 일반 학교로 전학하지만, 지속적인 EALD 지원을 받는다. 또래 멘토링 프로그램이 제공되며, 정기적으로 진전을 모니터링한다.

 

세 번째 단계는 장기 추적 및 지원이다. 일반 학교로 전환했다고 끝이 아니다. 2-3년간 추가 지원이 제공되며, 학업 및 사회적 적응을 모니터링한다. 필요시 추가 개입이 이루어진다.

 

이 모델의 핵심은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 난민 학생이 일반 학교에 적응하는 데는 보통 5-7년이 걸린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Cummins, 2000).

 

2) 이중언어 프로그램

 

호주의 일부 학교는 이중언어 프로그램(Bilingual Programs)을 운영한다. 이는 학생의 모국어를 유지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접근법이다. 연구에 따르면, 모국어가 강한 학생이 제2언어(영어)도 더 잘 배운다(Cummins, 2000).

 

예를 들어, Victoria주의 일부 학교는 전환형 이중언어 프로그램(Transition Bilingual Program)을 운영한다. 초기에는 학생의 모국어로 50% 이상 수업하고, 점차 영어 비율을 늘려간다. 이는 학생이 언어 장벽으로 학업 내용을 놓치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영어를 배울 수 있게 한다(Mercurio & Scarino, 2005).

 

3) 원주민 교육 보조원(Aboriginal Education Workers)

 

많은 호주 학교에는 원주민 교육 보조원이 배치된다. 이들은 원주민 공동체 출신으로, 학생과 가족, 학교 사이의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한다(Buckskin, 2016).

 

이들의 주요 역할은 다음과 같다:

 

• 원주민 학생에게 문화적으로 안전한 공간 제공
• 교사에게 문화적 맥락 설명
• 가족과 학교 간 의사소통 지원
• 교육과정에 원주민 지식과 관점 통합 지원
• 원주민 학생의 출석과 참여 독려

 

연구에 따르면, 원주민 교육 보조원의 존재는 원주민 학생의 출석률과 학업성취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Buckskin, 2016).

 

 

정책 효과에 대한 연구 증거

 

호주의 형평성 전략은 효과가 있는가? 증거를 살펴보자.

 

1) EALD 학생의 성취

 

연구에 따르면 체계적인 EALD 지원을 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영어 발달이 빠르고, 학업성취도가 높다(Hammond, 2014). 특히 다음과 같은 지원이 효과적이었다:

 

• 명시적인 언어 교수
• 정규 수업과 통합된 EALD 지원
• 학업 어휘와 텍스트 구조 집중 교수
• 모국어 활용

 

흥미롭게도, 호주의 이민자 2세대 학생들(부모는 해외 출생, 본인은 호주 출생)은 전체 평균보다 높은 학업성취를 보인다. 이는 적절한 지원과 이중언어·이중문화의 자산이 결합될 때 가능한 결과다(Australian Council for Educational Research, 2020).

 

2) 문화반응적 교육의 효과

 

Cherbourg와 같은 성공 사례 외에도, 여러 연구가 문화반응적 교육의 효과를 입증한다. Sarra(2011)의 연구는 “Stronger Smarter 프로그램”을 도입한 학교들이 다음과 같은 개선을 보였다고 보고한다:

 

• 원주민 학생 출석률이 평균 15% 증가
• 학력평가 결과 향상
• 학생 자존감 및 학교 소속감 증가
• 학부모 참여 증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개선이 단지 ‘문화 프로그램’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화적 존중과 정체성 강화가 높은 학업 기대 및 질 높은 교수와 결합될 때 효과가 나타났다.

 

3) 장기적 효과

 

호주의 종단 연구는 EALD 및 문화반응적 지원이 장기적으로도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초등학교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은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장기적 효과를 보였다:

 

• 중등학교에서도 학업적 성공 지속
• 고등학교 졸업률 증가
• 대학 진학률 증가
• 사회정서적 웰빙 향상 (Dooley, 2009)

 

 

한국 교육에의 시사점

 

호주의 경험은 단순한 해외 사례가 아니라, 한국의 다문화 교육 현실을 비춰보는 하나의 거울이다. 여기에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다문화 교육의 한계를 짚고, 적용 가능한 방향을 모색한다.

 

1) 한국 다문화 교육의 현황과 한계

 

한국의 다문화 교육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문화 학생이 누구이며, 어떤 방식으로 지원받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절에서는 한국 다문화 학생의 구성과 현재 지원 정책의 한계를 짚는다.

 

• 국제결혼 가정 자녀

주로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동남아시아, 중국 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전체 다문화 학생의 약 70%.

 

• 외국인 가정 자녀

부모 모두 외국인인 경우. 주로 중국 조선족, 몽골, 베트남 등.

 

• 중도입국 자녀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부모의 재혼 등으로 한국에 입국한 경우.

 

현재 한국의 다문화 학생 지원은 주로 다음에 초점을 맞춘다:

 

• 한국어 교육(Korean as a Second Language: KSL)
• 문화 적응 프로그램
• 정체성 교육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 한계 1: 결핍 관점

“한국어를 못한다”, “한국 문화를 모른다”는 결핍의 프레임이 지배적이다. 학생이 가진 이중언어 능력, 다문화 경험은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 한계 2: 학업 지원 부족

한국어 교육은 제공되지만, 학업 언어(academic language) 발달과 교과 학습 지원은 부족하다. 일상 대화는 가능하지만 교과서를 읽고 시험을 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학생이 많다.

 

• 한계 3: 교사 역량 부족

대부분의 교사가 다문화 학생 지도에 대한 체계적 연수를 받지 못했다. “친절하게 대하면 된다”는 수준의 인식에 머물러 있다.

 

• 한계 4: 분리된 지원

다문화 학생 지원이 정규 수업과 분리되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별도 공간에서 별도 시간에 지원받는 것은 낙인 효과를 만든다.

 

2) 한국형 EALD 모델 구축

 

앞에서 살펴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언어 지원을 보다 체계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호주의 EALD 모델을 참고해, 한국형 언어 지원 체계의 구축 방향을 제안한다.

 

• KSL 진단 프레임워크 개발
현재 한국어 능력 진단 도구는 있지만,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를 안내하는 발달 단계 프레임워크는 부족하다. 호주의 EALD Learning Progression처럼, 한국어 발달 단계별로:

– 학생이 할 수 있는 것
–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 구체적 교수 전략

을 제시하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 KSL 전문교사 배치
다문화 학생이 많은 학교에 KSL 전문교사를 배치하고, 이들이 호주의 EALD 전문교사처럼 역할하도록 한다:

– 정규 수업 내 협력 교수
– 소그룹 집중 지도
– 일반 교사 자문
– 학부모 의사소통 지원

 

• 학업 언어 집중 지도
단순한 일상 한국어를 넘어, 학업 언어(academic Korean) 발달에 초점을 맞춘다. 교과별 핵심 어휘, 텍스트 구조, 읽기 전략 등을 명시적으로 가르친다.

 

• Scaffolding 전략 보급
모든 교사가 기본적인 언어 scaffolding 전략을 알도록 한다:

– 시각 자료 활용
– 핵심 어휘 사전 교수
– 문장 프레임 제공
– 또래 협력 구조화

 

3) 문화반응적 교육 도입

 

언어 지원만으로는 다문화 학생의 학습 격차를 해소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실 수업의 관점과 방식을 전환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문화반응적 교육 실천이 필요하다.

 

• 교사 연수 개편
다문화 교육 연수가 “○○나라 문화 알기” 수준을 넘어, 다음을 포함해야 한다:

– 문화반응적 교육의 원리
– 암묵적 편향 인식하기
– 높은 기대와 지원의 균형
– 문화적으로 적합한 교수법
– 가족 참여 전략

 

• 교육과정 포용성 강화
한국의 교육과정도 더 포용적이 되어야 한다. 문학 작품에 다양한 배경의 저자 포함, 역사에서 다각적 관점 제시, 다문화 학생의 경험과 지식을 중요한 학습 자원으로 활용 등이 있어야 한다.

 

• 이중언어 자산 활용
학생의 모국어를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활용할 자산’으로 본다. 이중언어 능력이 인지 발달과 학업성취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를 교육 현장에 알린다.

 

4) 구조적 지원 강화

 

교실 수업의 변화만으로는 다문화 학생 지원을 지속하기 어렵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인력과 시스템 차원의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

 

• 다문화 교육 보조원 배치
호주의 원주민 교육 보조원처럼, 다문화 배경 보조원을 학교에 배치한다. 이들은 학생과 가족의 언어로 소통하고,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한다.

 

• 통합적 지원 체계
언어, 학업, 정서, 가족 지원이 분절되지 않고 통합적으로 작동하도록 한다. 한 학생을 중심으로 여러 지원이 조율되는 사례 관리(case management) 방식.

 

• 장기 추적 및 지원
단기 프로그램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학생을 지원한다. 연구에 따르면 제2언어 학습자가 학업 언어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는 5-7년이 걸린다(Cummins, 2000). 초등 시기에 지원을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5) 실천 가능한 첫 걸음

 

제도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에 앞서 교실과 학교, 교육청 차원에서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아래의 제안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일상 속에서 시작하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 과제들이다.

 

• 교실 수준

– 다양한 문화를 대표하는 자료와 이미지를 교실에 배치
– 학생의 모국어를 환영하는 표지판 마련
– 다문화 학생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눌 기회 제공
– 언어 scaffolding 전략 적용
– 또래 버디 시스템 활용

 

• 학교 수준

– 다국어 안내문과 표지판 마련
– 통역 서비스 확보
– 다문화 가정 환영 행사 마련
– 교사 전문적 학습 공동체에서 다문화 교육 논의
– 지역사회 언어·문화 단체와 협력

 

• 교육청 수준

– KSL 전문 인력 확충
– 교사 연수 프로그램 개발
– 우수 사례 발굴 및 확산
– 지원 가이드라인 개발

 

 

호주가 우리에게 묻는 것

 

호주의 경험이 한국에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다양성은 문제가 아니라 자산이다.”

 

다문화 학생은 ‘도와줘야 할 불쌍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이중언어 능력, 다문화 경험, 다양한 관점이라는 독특한 자산을 가진 학습자다. 교육 체계가 이 자산을 인정하고 활용할 때, 학생은 성공한다. 그리고 그 성공은 학급 전체, 학교 전체, 사회 전체를 풍요롭게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호주도 여전히 원주민 학생의 학업성취 격차, 난민 학생의 트라우마, 언어 장벽 등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완벽한 해법은 없다. 하지만 호주가 보여준 것은 방향이다. 결핍이 아닌 자산, 동화가 아닌 포용, 낮은 기대가 아닌 높은 기대와 지원의 균형.

 

한국도 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20만 명의 다문화 학생은 한국 교육의 ‘부담’이 아니라, 교육 체계가 이들의 언어와 문화, 경험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들은 한국 사회를 더 풍요롭고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호주가 보여준 것처럼, 다양성은 자동으로 힘이 되지는 않지만, 올바른 선택과 실천을 통해 우리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

 

참고 문헌

 

• 교육부 (2024). 2024년 다문화 학생 현황. 대한민국 교육부.
• 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2021). 2021 Census: Cultural diversity. Commonwealth of Australia.
• Australian Council for Educational Research (2020). PISA 2018: Insights and interpretations. ACER.
• Australian Curriculum, Assessment and Reporting Authority (ACARA) (2022). NAPLAN 2022 National report. ACARA.
• Buckskin, P. (2016). Engaging Indigenous students: The important relationship between 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students and their teachers. In K. Price (Ed.), 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education: An introduction for the teaching profession (pp. 164-180). Cambridge University Press.
• Cummins, J. (2000). Language, power, and pedagogy: Bilingual children in the crossfire. Multilingual Matters.
• Department for Education South Australia (2020). EALD learning progression. Government of South Australia.
• Dooley, K. (2009). Re-thinking pedagogy for middle school students with little, no or severely interrupted schooling. English Teaching: Practice and Critique, 8(1), 5-22.
• Dudgeon, P., Milroy, H., &Walker, R. (Eds.) (2014). Working together: 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mental health and wellbeing principles and practice (2nd ed.). Commonwealth of Australia.
• Gay, G. (2010). Culturally responsive teaching: Theory, research, and practice (2nd ed.). Teachers College Press.
• Gibbons, P. (2015). Scaffolding language, scaffolding learning: Teaching English language learners in the mainstream classroom (2nd ed.). Heinemann.
• Hammond, J. (2014). An Australian perspective on standards-based education, teacher knowledge, and students of 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 TESOL Quarterly, 48(3), 507-532.
• Hammond, J., &Gibbons, P. (2005). Putting scaffolding to work: The contribution of scaffolding in articulating ESL education. Prospect, 20(1), 6-30.
• Ladson-Billings, G. (1995). Toward a theory of culturally relevant pedagogy. American Educational Research Journal, 32(3), 465-491.
• Matthews, J. (2008). Schooling and settlement: Refugee education in Australia. International Studies in Sociology of Education, 18(1), 31-45.
• Mercurio, A., &Scarino, A. (2005). Heritage languages at upper primary level in South Australian primary schools. Department of Education and Children’s Services, South Australia.
• NSW Department of Education (2020). Multicultural education policy. State of New South Wales.
• Sarra, C. (2011). Strong and smart – Towards a pedagogy for emancipation: Education for first peoples.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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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Stronger Smarter 프로그램 – 호주 퀸즐랜드에서 시작된 국가 차원의 교육 이니셔티브로, 원주민(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학생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결핍’이 아닌 ‘자산’으로 인식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프로그램은 교사의 기대(expectations), 관계 형성, 문화반응적 교육을 핵심 원리로 삼아 학교 전반의 학습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현재는 Stronger Smarter Institute를 중심으로 호주 전역의 학교와 교육청에서 운영되고 있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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