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학생 맞춤형’은 교육의 왕도(王道)인가?
‘학생 맞춤형 교육’은 학교 교육의 이상(理想)으로 받들어진다. 한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온 세계에서 그렇다. 학교가 ‘공장형’으로 개개인의 고유함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오랜 비판이 설득력을 얻은 성과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육에서 개인차(個人差)는 과정(課程)을 표준 삼고 그것에서 떨어짐을 뜻했지만,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교육관이 힘을 얻으면서는 집단 다양성의 표징이고 그대로 존중되어야 할 개성이라 보게 되었다. 이제는 그것을 ‘필요’(needs)라 일컫는다. 교육(내용)이 그것에 맞게 조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학생 맞춤형이라는 조어는 정부가 앞서 분별없이 쓰고 있어서 그 뜻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지만, 한 극단에서 그것은 교육의 고전적 의미를 뒤집는 데에 이르렀다. 학생이 모르는 것을 선생이 가르치는 행위를 교육이라 할 때, ‘모르는 것’을 골라 가르치는 주체는 으레 선생이려니 여겨 왔다. 이 암묵적인 전제가 ‘맞춤형’이란 깃발 아래에서는 뒤집힌다. 학생을 내용 결정 주체로 앉힌다. ‘선택권 확대’는 이제 당연하다 여겨지는 교육정책 노선이다. 저학년이나 주지 교과에서는 덜한 듯 보이지만 ‘수준’을 배려하는 양으로 변탈(變脫)할 뿐이다.
교육관이 뒤집힌 데는 ‘복지국가’라는 이념이 속화한 탓이 있다. 선진국이라면 모름지기 국민 복리 증진에 몰두해야 할 바, 한국 정부도 오직 ‘국민이 원하는 대로’ 섬겨야 할 만큼 성숙해져야 하리라 기대된다. 정치가 대중 영합의 온갖 ‘서비스’에 달려들고, ‘공교육’이 전략적 서비스 거리로 채택되는 건 시간문제이다. 게다가, 맨눈에 보이는 게 가치의 전부라 여기는 ‘실용’의 풍조에서, 학교 과목과 시장 물건에 대한 선택(가치) 저울질이 서로 달라야 하리란 염은 떠오르지 못한다. 교육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심안(心眼)을 요구한다면 비웃음 살 뿐이다.
교육이 ‘어린(愚)’ 학생을 깨우치는 활동이라면 거기에는 학생의 선호에 맡겨선 안 될 필수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교육으로 학생이 ‘사람’으로 커 가야 한다면, ‘사람 됨’의 길은 학생이 자의(恣意)로 밟게 되는 게 아니라 자의를 삼갈 이유를 교육 과정에서 터득할 때 비로소 찾게 되지 않는가? 교육을 제대로 받기 전에 교육(과목)의 가치를 헤아릴 수 있는가? 과목 선택은 과연 학생의 권리이어야 하는가? ‘적성과 흥미’에 따르면 되지 않느냐는데, 교육은 개인의 ‘내재 변수’에 맞춰지면 그만인가? 사람 됨의 규범은 개인 ‘밖’에 있지 않은가?

<교육 제4의 길> 편집실에서는 논급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에 대하여 적절한 형식으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접해보는 격식있고 함의성이 깊은 어체의 글입니다.(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조금 지나치게 고어스럽다는 느낌도 있겠네요.) 편의적으로 해석하여 몇 가지 의견을 적어봅니다.
공적 학교에서의 교육이란 무릇, 말씀하신 바와 같이 유행과 수요자 편의에만 따라 가르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만 한국의 교육환경에서 교육의 ‘필요’는 지나치게 ‘입시’에만 맞춰지기 십상입니다. 거기에 세상의 변화를 추종하는 관성에 따라 요구하는 다양한 교육적 테마 – 예를 들어 그 떠들기만 했던 4차산업혁명이니 뭐니했던 요란한 표상들 – 까지 학교현장에 들이밀고 요구하면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됩니다. 마치 백조가 수면 위로는 우아하게(다양한 교육적 테마를 추종하면서 미래형 교육을 하는 것 처럼 고상한 척 하지만 – 그런데 기껏해야 그런 것들은 생활기록부에 압축적 문구로 제작하여 제공될 뿐 – 수면 밑으로는 여전히 입시를 위해, 대학 진학을 위해서 수업하고 세특을 적고, 학원을 다니기 위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교육의 길을 찾는 것은 지난한 과정입니다. 소극적으로는 ‘입시’에 추종하는 교수활동만 해도 절반 이상의 성공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분명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진로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필수적인 대학입시의 내용과 직업에 대한 소개 외에는 이제는 주로 ‘논리학’에 근거한 ‘생각하는 힘”내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거기에 저는 인(仁)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고자 합니다.(유교의 본래 핵심이 예절따위의 형식이 아니라 인(仁) 즉, 사람과 사람사이의 삶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의 강조가 더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른 칼럼에 나오는 사회정서교육이란 것도 사실 그 안에서 다 설명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제 관점에서 진로문제는 이제는 정보의 습득을 통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의견 앞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면서 협력해 나가는 삶을 사는 문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복지국가’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논리는 없는 주장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일단 ‘복지국가’라는 이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생 맞춤형 교육이 옳지 않은 방향이라는 의견 자체에는 동의하는 바 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