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부진과 격차 완화, 해외 사례에서 배운다(2) – “미국의 보편적 학습설계(UDL)”
| 보편적 학습설계(UDL)란 무엇인지를 설명하며, 단일 경로 수업의 한계를 보여준다. 또한 미국 초등학교의 UDL 실천 사례와 한국 교실에서 당장 실천 가능한 UDL 전략을 소개한다. |
지난 칼럼에서 다룬 RTI(Response to Intervention)가 학습부진에 대한 ‘지원 구조’라면,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이하 UDL)는 ‘수업 설계 원리’다. RTI가 “누가 배움을 어려워하는가?”를 묻는다면, UDL은 “어떻게 가르쳐야 모두가 배울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런데 한국 교육계에서 UDL만큼 오해받는 개념도 드물다. 가장 흔한 오해는 “UDL은 특수교육 학생을 위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UDL이 특수교육 분야에서 출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UDL의 핵심 철학은 정반대다. “장애 학생을 ‘따로’ 가르치는 방법”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학생이 접근 가능하도록 수업을 설계하는 원리”인 것이다.
또 다른 오해는 “UDL은 거창한 이론이라 현장에서 실천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다. 그러나 UDL의 구체적 전략들을 들여다보면, 한국 교사들이 이미 부분적으로 실천하고 있거나, 조금만 조정하면 바로 적용 가능한 것들이 많다. 문제는 그것이 ‘체계적 원리’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UDL이란 무엇인가
UDL의 출발점은 건축 분야의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다. 1980년대 미국의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Ronald Mace)는 “장애인을 위해 따로 경사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입구를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계단만 있는 건물에 나중에 경사로를 덧붙이는 것보다, 애초에 경사로와 계단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모두에게 더 편리하다는 발상이었다.
1990년대,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CAST(Center for Applied Special Technology) 연구진은 이 원리를 교육에 적용했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위해 ‘특별한 수업’을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양한 학습자가 접근 가능하도록 수업을 설계하자”는 것이 UDL의 핵심이다.
UDL은 뇌과학 연구에 기반을 둔다. 인간의 뇌에는 세 가지 주요 학습 네트워크가 있다.
① 인식 네트워크(Recognition Networks):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What)
② 전략 네트워크(Strategic Networks): 어떻게 행동하고 표현하는가 (How)
③ 정서 네트워크(Affective Networks): 왜 학습에 참여하는가 (Why)
모든 학생은 이 세 영역에서 각기 다른 강점과 약점을 지닌다. 어떤 학생은 글보다 그림으로 정보를 더 잘 받아들이고, 어떤 학생은 말하기보다 글쓰기로 생각을 더 잘 표현하며, 어떤 학생은 경쟁보다 협력 속에서 더 잘 참여한다. UDL은 이런 다양성을 ‘결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차이’로 받아들이고, 수업 설계 단계에서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UDL의 핵심 원리
UDL은 세 가지 원리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 원리 1. 자료 제시의 다양화(Multiple Means of Representation)
“정보를 하나의 방식으로만 제시하지 마라”
같은 내용이라도 학생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글을 읽는 것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음성 지원이 필요하고,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학생에게는 구체적 이미지나 실물이 필요하다. UDL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가르치는 대신, 같은 내용을 여러 형태로 제공할 것을 권장한다. 이를 수업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 가능하다.
• 텍스트와 함께 그림, 도표, 영상 제공
• 핵심 용어에 대한 설명을 텍스트, 음성, 그림 등으로 다양하게 제공
• 수학 문제를 숫자뿐 아니라 구체물, 그림, 이야기 형태로도 제시
• 복잡한 지문을 쉬운 버전과 어려운 버전으로 제공
• 학생이 글자 크기, 배경색, 음성 속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
▶ 원리 2. 행동과 표현의 다양화(Multiple Means of Action & Expression)
“학생이 배운 것을 보여주는 방식을 하나로 제한하지 마라”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결과물을 요구하면, 그 방식에 약점이 있는 학생은 아무리 내용을 이해해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글쓰기가 어려운 학생은 발표로, 발표가 어려운 학생은 그림이나 만들기로, 손으로 쓰기 어려운 학생은 타이핑으로 자신의 이해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수업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 가능하다.
• 보고서를 글, 영상, 포스터, 발표 등 다양한 형태로 선택 가능하게 설계
• 수학 풀이 과정을 ‘말로 설명, 그림으로 표현, 식으로 작성’ 중 선택
• 그룹 프로젝트에서 역할 선택권 부여(글 작성, 자료 조사, 발표, 디자인 등)
• 디지털 도구 사용 허용(맞춤법 검사기, 음성-텍스트 변환, 그래픽 조직자 등)
• 학생이 자신의 학습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
▶ 원리 3. 참여의 다양화(Multiple Means of Engagement)
“학생마다 동기와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
어떤 학생은 경쟁에서 동기를 얻고, 어떤 학생은 협력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어떤 학생은 즉각적 보상에 반응하고, 어떤 학생은 장기적 목표에 헌신한다. 어떤 학생은 자율성을 원하고, 어떤 학생은 명확한 안내를 필요로 한다. UDL은 단일한 동기부여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참여 경로를 설계한다. 이를 수업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 가능하다.
• 학습 주제 선택권 부여(예: 같은 문법 개념을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 학습)
• 난이도 선택 옵션 제공(기본-도전-심화 과제 중 선택)
• 개인 작업과 협력 작업을 적절히 배치
• 학습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진행 상황을 시각화
• 실수를 학습 기회로 재구성하는 피드백 문화 마련
• 학생의 관심사와 문화적 배경을 학습 내용에 연결
단일 경로 수업의 한계
한국 교실을 UDL 렌즈로 들여다보면, 많은 수업이 여전히 ‘단일 경로’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 정보 제시: 주로 교과서 텍스트와 교사 설명
대부분의 수업에서 정보는 교과서의 글과 교사의 말로 전달된다. 시각 자료가 있어도 보조 수단일 뿐, 텍스트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읽기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 청각 정보 처리가 약한 학생,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에게는 접근 자체가 어려운 구조다.
2) 표현 방식: 정답 선택 중심의 제한된 표현
한국의 평가는 대부분 “문제를 읽고 정답을 고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객관식 시험이 평가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수행평가 역시 실제로는 정답이 암묵적으로 정해진 문항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학생이 무엇을 이해했는지, 어떻게 사고했는지가 아니라 정답을 얼마나 빨리, 정확히 찾아내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그 결과, 시험 불안이 높은 학생, 읽기 속도가 느린 학생, 질문의 의도를 해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학생, 혹은 말이나 그림·행동으로 더 잘 표현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실제 이해 수준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렵다. 표현의 방식이 단 하나로 고정된 평가는, 다양한 학습자의 강점을 가시화하기보다 오히려 감추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3) 참여 방식: 일제 수업과 경쟁 중심
전체 학생이 같은 속도로, 같은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학습하는 구조가 여전히 강하다. 학생 간 비교와 상대평가가 동기의 주요 수단이 되면서, 이미 뒤처진 학생은 동기 자체를 잃기 쉽다. 협력보다는 개인 성취, 과정보다는 결과가 강조된다.
물론 모든 교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 중심 수업, 과정 중심 평가, 배움 중심 수업 등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개별 교사의 헌신’에 의존하고 있으며, 체계적 원리로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다. UDL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교사들에게 구체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 초등학교의 UDL 실천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 초등학교 3학년 읽기 수업 사례를 살펴보자. 수업의 주제는 이야기의 주제(theme) 찾기였다. 교사는 같은 학습 목표를 유지한 채, 학생들이 목표에 도달하는 경로를 다양하게 설계했다.
먼저, 교사는 같은 이야기를 종이책·오디오북·그림책 영상의 세 가지 형태로 제공했다. 핵심 어휘인 theme과 moral(이야기가 전달하는 교훈)은, 학생들이 추상적인 주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연결 개념으로 텍스트 정의에 더해 그림 예시와 학생 눈높이에 맞춘 설명으로 함께 제시했고, 이야기의 전개와 핵심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래픽 조직자로 구조를 시각화했다. 읽기 속도가 느린 학생은 오디오북을 들으며 따라갈 수 있었고, 추상적 개념에 약한 학생은 시각 자료를 통해 의미를 잡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주제를 표현하는 활동 역시 하나의 방식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짧은 문장으로 쓰기, 그림으로 표현하고 한 문장 덧붙이기,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설명하고 교사가 기록하기, 디지털 도구로 마인드맵 만들기 중에서 자신의 강점에 맞는 방식을 선택했다. 글쓰기가 어려운 학생은 그림으로 생각을 풀어낼 수 있었고, 말로 설명하는 데 강점이 있는 학생은 대화를 통해 이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참여 방식에서도 선택권이 주어졌다. 학생들은 읽고 싶은 이야기를 몇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었고, 혼자 읽기와 짝과 함께 읽기 중 편한 방식을 택했다. 수업의 진행 상황은 체크리스트로 시각화되어 학생들이 자신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실수는 ‘틀림’이 아니라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로 피드백되었다. 집중이 어려운 학생은 상대적으로 짧은 이야기를 선택해 끝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접근 경로는 달랐지만 모든 학생이 동일한 학습 목표, 즉 ‘이야기의 주제를 이해하기’에 도달했다. 이것이 UDL의 핵심이다. 목표는 같되, 경로는 다양하게 설계한다.
한국 교실에서 당장 실천 가능한 UDL 전략
UDL이 현장에서 실천되려면 “내일 당장 쓸 수 있는 작은 전략”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음은 한국 교사들이 즉시 적용 가능한 UDL 전략들이다.
▶ 전략 1. 발표 수업에서 ‘형평성 렌즈’ 적용하기
많은 교실에서 “자, 발표할 사람?” 하면 항상 같은 학생들만 손을 든다. 발표를 잘하는 학생은 계속 기회를 얻고, 발표가 두려운 학생은 영영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는 UDL 관점에서 보면 단일한 표현 방식만 허용하는 수업 구조다.
발표를 하나의 형식으로 고정하지 않으면, 참여의 문턱은 크게 낮아진다. 이를 위해 교사는 다음과 같은 선택지를 열어줄 수 있다.
• 발표 방식 다양화: 전체 앞 발표 / 모둠 내 발표 / 짝과 나누기 중 선택
• 준비 시간 제공: 즉석 발표 vs. 메모 작성 후 발표 선택 가능
• 표현 도구 허용: 말로만 / 말+그림 / 말+PPT 등
• 평가 기준 명확화: ‘큰 소리’가 아니라 ‘핵심 내용 전달 여부’로 평가
▶ 전략 2. 수학 문제를 ‘세 가지 버전’으로 제시하기
같은 수학 개념이라도 학생마다 이해가 시작되는 지점은 다르다. 어떤 학생은 설명만으로 이해하지만, 어떤 학생은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야 개념을 잡는다. 따라서 분수 덧셈 수업에서는 하나의 제시 방식에 모든 학생을 맞추기보다, 여러 접근 경로를 동시에 열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방식이 가능하다.
• 구체물 버전: 피자 모형으로 1/4 + 2/4 조작하기
• 그림 버전: 원 그림에 색칠하며 분수 더하기
• 기호 버전: 1/4 + 2/4 = ?을 식으로 계산하기
학생은 자신이 이해 가능한 버전부터 시작해, 점차 추상적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 이것은 UDL의 ‘표상 다양화’ 원리이자, 동시에 수학교육의 ‘구체물–그림·도식(시각적 표현)–추상’(Concrete-Representational-Abstract: CRA) 접근과도 일치한다.
▶ 전략 3. ‘선택 과제’ 설계하기
숙제나 프로젝트에서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만으로도 참여도는 크게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과제의 형식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학습 목표다. 이를 수업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선택 과제를 설계할 수 있다.
① 인물의 업적을 A4 1장 보고서로 작성
② 인물을 인터뷰하는 영상 촬영 (3분 이내)
③ 인물의 삶을 그림 타임라인으로 표현
④ 인물에게 편지 쓰기
모든 과제는 같은 학습 목표(“인물의 업적과 시대적 의미 이해”)를 향하지만, 학생은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한다.
▶ 전략 4. 디지털 도구를 ‘보편적 접근’으로 활용하기
디지털 도구는 UDL을 실천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핵심은 이를 특정 학생만을 위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누구나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옵션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교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예는 다음과 같다.
• 텍스트 음성 변환(TTS): 읽기 어려운 학생은 귀로 듣기
• 음성 텍스트 변환(STT): 쓰기 어려운 학생은 말로 작성
• 자동 번역: 다문화 학생을 위한 모국어 지원
• 그래픽 조직자 앱: 생각 정리가 어려운 학생 지원
• 맞춤법 검사기: 철자 오류로 인한 평가 불이익 방지
중요한 것은 이런 도구를 ‘특정 학생만을 위한 특별 지원’이 아니라, ‘누구나 필요하면 쓸 수 있는 보편적 도구’로 제공하는 것이다.
▶ 전략 5. 학습 목표와 성공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기
많은 한국 교실에서 학습 목표는 교사만 알고, 학생은 “오늘 뭐 하는 거지?”라고 묻는다. UDL은 학습 목표를 분명히 하고, ‘성공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학생에게 보여줄 것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
• 수업 시작 시 칠판에 명확히 제시: “오늘 우리는 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 성공 기준을 학생 언어로 번역: “이야기의 처음-중간-끝을 말할 수 있다”
• 예시 작품 보여주기: “이 정도면 목표 달성입니다”
• 체크리스트 제공: 학생 스스로 진행 상황 점검
한국에서 UDL 도입의 현실과 과제
그렇다면 한국 학교교육에 UDL은 얼마나 도입되어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매우 제한적이다.
1) 특수교육 중심의 제한적 이해
UDL은 여전히 “특수교육 학생을 위한 것”으로 오해받고 있다. 국내 UDL 관련 연구 15편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통합교육 환경에서 장애학생 지원 맥락으로 적용되었으며, 일반교육에서의 보편적 적용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박윤정 외, 2022).
2) 법적·제도적 기반 부재
UDL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령이나 교육과정 지침이 없다. 교사 연수에서도 UDL은 선택 과목일 뿐, 필수로 다뤄지지 않는다. 현재의 경직된 교육과정과 평가 구조에서는 UDL을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3) 디지털 교과서에 적용 시도
2023년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 지침에 UDL 반영이 명시되었다. 다만, 이 지침이 실제 디지털 교과서 콘텐츠에 어느 수준까지 구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검증 연구가 축적되지 않았다.
4) 일부 긍정적 움직임
경기도교육연구원이 UDL 수업실천 프레임워크 개발 연구를 수행했고, 배움 중심 수업과 UDL을 연계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최효선 외, 2020). 학생 개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을 고려한 수업 설계의 필요성이 점차 인식되고 있다.
5) 기초학력 지원과의 연결 고리
흥미롭게도, UDL의 세 가지 원리는 기초학력 부진 학생 지원과 직접 연결된다. 읽기 부진 학생에게는 ‘표상의 다양화’(오디오북, 그림 지원)가, 쓰기 부진 학생에게는 ‘표현의 다양화’(말하기, 그리기 허용)가, 동기 부족 학생에게는 ‘참여의 다양화’(선택권, 흥미 연결)가 효과적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기초학력 지원은 ‘어려운 학생을 따로 지도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UDL이 제안하는 “처음부터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수업 설계”로 전환되려면, 교사 교육, 교육과정 유연화, 평가 방식 다양화라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RTI와 UDL의 결합
RTI와 UDL은 별개가 아니다. RTI가 “누가 지원이 필요한가?”를 판단하는 시스템이라면, UDL은 “어떻게 가르쳐야 지원이 덜 필요한가?”를 설계하는 원리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RTI의 Tier 1(보편적 지원) 수업을 UDL 원리로 설계하는 것이 권장된다. UDL로 설계된 수업은 애초에 더 많은 학생이 Tier 1에서 성공하도록 돕기 때문에, Tier 2·3으로 내려가는 학생 수 자체가 줄어든다. 즉, UDL은 RTI의 예방 기능을 강화하는 핵심 도구인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협력교사, 전담교사, 두드림학교를 늘려도, 일반 교실 수업(Tier 1)이 여전히 단일 경로로 설계되어 있다면,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모든 교실이 UDL 원리로 설계된다면, 별도 지원이 필요한 학생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UDL이 우리에게 묻는 것
UDL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수업을 설계하는 교사에게 던지는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이다.
“정보를 한 가지 방식으로만 제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학생이 배운 것을 보여주는 방식을 하나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학생이 같은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들에 솔직히 답하다 보면, 우리는 많은 수업이 여전히 ‘평균적 학생’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학생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어떤 학생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만, 어떤 학생은 출발선에서부터 배제된다.
UDL은 ‘특별한 학생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학생이 각자의 방식으로 배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 설계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학습부진은 학생의 문제가 아니다. 단일한 경로만 허용하는 수업 설계의 문제다.
그래서 UDL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의 수업은 모든 학생에게 열려 있는가?”
[참고문헌]
• 박윤정, 서효정, 이주원 (2022). 교실 수업 개선을 위한 국내 보편적 학습설계(UDL)중재연구 분석: 교수·학습에 대한 시사점을 중심으로.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 23(1), 313-339.
http://dx.doi.org/10.19049/JSPED.2022.23.1.12
• 손지영 (2011). 장애학생을 위한 보편적 학습 설계의 적용에 대한 온라인 학습 콘텐츠의 분석 연구 – 에듀넷의 사이버 가정학습을 중심으로. 특수교육재활과학연구, 50(4), 39-63.
• 최효선, 남창우, 강이화, 이지경 (2020). 보편적 학습설계 원리를 적용한 배움중심 수업설계모형 개발 연구. 교육공학연구, 36(2), 297-326.
http://dx.doi.org/10.17232/KSET.36.2.297
• 경기도교육연구원 (2019). 보편적 학습설계(UDL) 수업실천 프레임워크와 전략 개발 연구. 정책연구보고서.
• CAST (2018). 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guidelines version 2.2. Wakefield, MA: Author. Retrieved from http://udlguidelines.ca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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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UDL. 특별한 학생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학생이 각자의 방식으로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 것. 이란 개념이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학교나 학급에 느린 아이 혹은 특별한 아이가 있을때 소수의 아이에게 수업 속도나 방식을 맞추면… 좋게 말해 배려이지 인내, 희생 .. 이렇게 받아들이고 이내, 그것이 불만이 되는 순간도 오는 듯 합니다. 교육 방식의 설계자체가 비슷한 방향과 목적 아래 다양한 학습 방법과 선택이 자연스럽게 된다면 우리 학교가 더 큰 바구니가되어 ‘우리 모두 같이’ 담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너는 도태되어 나의 이 방식을 따를 수 없구나..가 아니라 너는 다른 방법을 선택한 다른 모양의 친구로구나.. 이렇게 인식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댓글 잘 읽었습니다. 말씀 하나하나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특히 “배려가 인내나 희생으로 인식되는 순간, 그것이 곧 불만으로 바뀐다”는 지점은 현장의 감정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주신 표현이라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많은 교실에서 UDL이나 개별화 지원이 특정 학생을 위해 다수를 참고 속도를 늦추는 일로 받아들여질 때, 선의로 시작한 시도조차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핵심은 누구를 위해 예외를 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수업의 기본 구조 안에 다양한 접근 방식과 선택지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정상적인 학습 환경이 되겠지요.
“너는 이 방식에 맞지 않으니 따라와야 한다”가 아니라
“너는 다른 방식으로 배우는, 다른 모양의 학습자구나”라고 인식이 바뀌는 순간,
교실의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비로소 ‘느린 아이’나 ‘특별한 아이’라는 말도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겠지요.
말씀하신 ‘더 큰 바구니’라는 비유가 오래 남습니다.
UDL은 바구니의 크기를 키우는 일이지, 누군가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의식과 언어가 더 많이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결국 교사의 평가에 대한 믿음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배움과 그에 따른 다양한 평가 설계가 불가능합니다.
교사도 새로운 시도로 인한 리스크를 받아들이기 어려우니까요. 이를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 등으로는 극복하기 어렵고, AI 도입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