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철의 한국현대교육사(4) – “교육법 제정”
| 1949년의 「교육법」이 어떤 과정을 통해 구상되고 제정되었으며 그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며, 다양한 욕망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한국 교육법 제정의 특질을 들여다봅니다. |
교육법 제정 과정
1949년 12월 31일 제정된 「교육법」(법률제86호)은 1995년 12월에 폐지되기까지 거의 반세기에 걸쳐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며 한국 교육의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헌법보다도 더 안정적으로 생명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교육법」 제정은 교육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대 사건이다. 「교육법」은 어떤 과정을 통해 제정되었고 그 내용은 어떤 특질을 지니고 있었을까.
교원 숙청과 학도호국단 창설로 교육계에 대한 전체주의적 재편을 일단 완료한 안호상은 교육법 제정 작업에 착수했으나 그것은 앞의 두 작업처럼 안호상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법률 제정은 행정부가 아니라 입법부의 권한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법」 제정의 흐름은 1949년 초 안호상의 문교부가 작성한 「교육기본법」(안) 및 「학교교육법」(안)(이하 두 법안을 ‘문교부초안’으로 통칭한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문교부초안’을 국회가 전면 폐기한 후 국회 문교사회위원회에서 작성한 「대한민국교육법안」, 이를 국회 본회의에서 심의한 후 최종적으로 제정 공포한 「교육법」 등의 세 단계를 밟았다.
그런데 안호상의 문교부는 1947년 3월 말에 일본에서 제정된 「교육기본법」 및 「학교교육법」을 저본으로 하여 그것을 번역·수정하는 방식으로 ‘문교부초안’을 만들었다. 그것까지 포함할 경우 한국의 교육법 제정 과정은 ‘일본교육법 → 문교부초안 → 대한민국교육법안 → 교육법’의 경로를 밟은 셈이다. 그런데 「대한민국교육법안」이 「교육법」으로 수정되는 과정은 국회에서의 축조심의에 따른 조문의 미세한 변경 과정이었으므로 본격적으로 검토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교육법」의 첫 출발점이 되는 일본의 「교육기본법」과 「학교교육법」이 ‘문교부초안’ 작성에 활용되는 과정, 그리고 ‘문교부초안’이 최종적으로 「교육법」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복제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삭제되거나 수정되었는지, 또 어떤 부분이 새롭게 추가되었는지 등을 확인한다. 그 삼자 간의 비교를 통해 「교육법」의 제정 과정과 내용 상의 특질이 드러난다.
한국의 「교육법」 제정은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헌법』의 제16조 “①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 ② 모든 교육기관은 국가의 감독을 받으면 교육제도는 법률로서 정한다”(밑줄 인용자. 이하 동일)는 조항을 근거로 하여 시작되었다. 그런데 헌법 제정 이후 1년 반 가까운 적지 않은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교육법」이 제정되었는데, 그렇게 지체된 주된 이유는 안호상 문정이 먼저 교원 숙청과 학도호국단 창설에 우선적으로 주력한 데서 찾을 수 있지만, 또 하나는 안호상의 문교부와 입법기구인 제헌국회 간에 교육법 제정을 둘러싸고 전개된 일련의 각축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안호상은 1948년 말부터 휘하 문교부 막료들에게 교육법 초안 작성을 지시한다. 조선교육연구회의 주요 멤버이자 사범학교 출신이었던 사공환, 조재호, 심태진 등이 교육법 초안을 마련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교육기본법」(1947.3.31) 및 「학교교육법」(1947.3.31)을 저본으로 하여 그것을 번역, 수정하는 방식으로 「교육기본법」(안)과 「학교교육법」(안)을 만들었다. 교육기본법의 경우 일본은 전문과 10조, 문교부의 「교육기본법」(안)은 13조로 구성되었으며, 학교교육법은 부칙을 제외하고 일본은 92조, 문교부의 「학교교육법」(안)은 94조였다.1
그런데 ‘문교부초안’은 1949년 3월 30일 제헌국회로 넘어가자마자 단호한 반발에 부딪혔다. 해방된 독립국가 최초의 국회가 일본법을 모방한 법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는 정치적 명분 때문이었다. 결국 두 법률안은 제헌국회 본회의는커녕, 교육법 제정을 위한 소위원회였던 문교사회위원회에조차 회부되지 못한 채 전면 폐기되어 버렸다. 그런데 뒤에 상세히 검토하겠지만, 제헌국회의 이러한 반발은 피상적인 독해 혹은 무지가 낳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문교부초안’은 법의 형식이나 구성에서 일본 법률을 모방한 듯 보였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호상의 문교부는 단순히 복제한 게 아니라며 억울해 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법률 제정 권한은 국회에 있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전면적인 초안 재작성 작업이 시작되었다. 국회의 문교사회위원회는 교육법안 작성을 위해 국회 밖의 교육계 인물들로 이른바 ‘20인위원회’2를 구성했다. 이들은 1949년 6월 3일 제1회 심사회를 개최하여 ‘문교부초안’, 국회의원 이재학(李在鶴)안, 두 안을 수정 증보한 박희병(朴熙秉)안을 토대로 심사를 시작했으나 결국 새롭게 신안을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20인위원회’ 중에서 백낙준, 오천석, 유진오, 장리욱, 현상욱 등 다섯 사람으로 구성된 이른바 ‘5인위원회’, 그리고 박희병 등 문교사회위원회 내의 5인의 전문위원으로 구성된 ‘10인위원회’에 교육법안 기초를 위탁하였다. 문교부 성립 이후 교육행정 권력에서 배제되었던 ‘오천석그룹’이 이렇게 하여 재등장했다.3 교육법안의 기초는 주로 ‘5인위원회’가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법안 기초가 완료된 것이 7월 말이었고, 다시 ‘20인위원회’를 거쳐 문교사회위원회가 심의를 시작한 것이 9월 28일이었다.4
‘5인위원회’는 일본의 교육법제 형식을 버리고 교육기본법과 학교교육법, 사회교육법, 교육위원회법, 교육재정법, 심지어 시행세칙까지를 하나의 법률로 포괄하는 안을 만들게 된다. 또 문교부초안의 내용에 대해서도 수정을 가한다. 특히 ‘5인위원회’는 사립학교의 자율 및 교권 강화 관련 조항을 신설하려 했다. 주요 멤버들이 사립대학 교수 출신이고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비교적 리버럴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사립기관에서 행하는 교육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며,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이를 제한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였고 그것이 ‘20인위원회’를 통과하여 문교사회위원회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문교사회위원회에서 삭제되어 결국 입법화되지 못하였다.5
안호상의 문교부는 ‘20인위원회’ 및 ‘문교사회위원회’의 토의 과정에 다시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20인위원회’ 토의 시는 당시 문교사회위원장 이영준, 문교부의 이호성 초등교육과장, 조재호, 심태진 양 장학관이 매회 출석하였으며, 문교사회위원회 심사 시는 안호상을 비롯해 이호성, 조재호, 심태진 외에도 홍정식, 사공환 등도 매회 참석하였다. 이 과정에서 두 그룹 및 국회 간의 절충과 타협이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1949년 10월 26일이 되어서야 초안이 「대한민국교육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제5회 제헌국회에 회부되었고 심의를 거쳐 「교육법」(법률 제86호)이라는 이름의 법률6로 11월 30일에 통과되어 12월 31일에 공포되었다. 그것은 전체 10개장 총 164조, 부칙 11조로 구성된 법률이었다.7
「교육법」은 제1공화국의 교육행정 권력의 중심이었던 안호상의 문교부, 미군정기에 활동한 오천석으로 대표되는 그룹, 그리고 제헌국회 등 세 세력 간의 절충과 타협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교육기본법」, 「학교교육법」의 번역·복제에서 출발하여 ‘문교부초안’과 국회의 「대한민국교육법안」 등의 안을 거치면서 수정, 삭제, 추가 등의 과정을 거쳐 제정되는 과정에서 어떤 선택과 배제, 수정과 강조, 삭제와 추가 등의 변용이 이루어졌을까.
교육 이념
「교육법」의 제1장 총칙에는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이 담겨 있다. 이는 구성 내용으로 볼 때 문교부의 「교육기본법」(안) 및 일본의 「교육기본법」 관련 조항에 상응한다. 비교를 위해 이들 세 법률 및 그 초안의 주요 조항을 <표 1>에 제시했다.
<표 1> 교육 이념 관련 조항 비교
| 일본 「교육기본법」 | 문교부 「교육기본법」(안) | 「교육법」 |
| (전문) 우리는 이미 일본국헌법을 확정하여 민주적이고 문화적인 국가를 건설하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복지에 공헌하고자 하는 결의를 표하였다. 이 이상을 실현함에는 교육의 힘이 근본이 된다. 우리는 개인의 존엄을 중시하고 진리와 평화를 희구하는 인간의 육성을 기하는 동시에 보편적이며 개성이 풍부한 문화의 창조를 꾀하는 교육의 철저한 보급을 기하여야 한다. 이에 일본국헌법의 정신에 따라 교육의 목적을 명시하며 새로운 일본의 교육을 확립하기 위하여 이 법률을 제정한다.
제1조(교육의 목적) 교육은 인격의 완성을 꾀하고 평화적인 국가 및 사회의 형성자로서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고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며 근로와 책임을 중시하고 자주적 정신이 충만한 심신이 건강한 국민의 육성을 기하여 행해져야 한다. |
(전문 없음)
제1조 본법은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받어 민주적 민족교육의 이념과 원칙을 명시하며 새로운 한국교육의 기본을 확립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교육의 목적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인격이 완전하고 애국정신이 투철하며 심신이 건전한 민주적 민족국가의 국민을 육성함에 있다. |
(전문 없음)
제1조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념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전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교육방침을 세운다. 1. 신체의 건전한 발육과 유지에 필요한 지식과 습성을 기르며 아울러 견인불발의 기백을 가지게 한다. 2. 애국애족의 정신을 길러 국가의 자주독립을 유지발전하게 하고 나아가 인류평화건설에기여하게 한다. 3. 민족의 고유문화를 계승앙양하며 세계문화의 창조발전에 공헌하게 한다. 4. 진리탐구의 정신과 과학적 사고력을 배양하여 창의적 활동과 합리적 생활을 하게 한다. 5. 자유를 사랑하고 책임을 존중하며 신의와 협동과 애경의 정신으로 조화있는 사회생활을 하게 한다. 6. 심미적 정서를 함양하여 숭고한 예술을 감상창작하고 자연의 미를 즐기며 여유의 시간을 유효히 사용하여 화해명랑한 생활을 하게 한다. 7. 근검노작하고 무실역행하며 유능한 생산자요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건실한 경제생활을 하게 한다. |
| 제2조(교육의 방침) 교육의 목적은 모든 기회에 모든 장소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고 실제생활에 입각해 자주적 정신을 기르고 서로 경애하고 협조하여 문화의 창조와 발전에 공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제3조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든 기회와 모든 처소에서 행하는 교육은 진리탐구의 자유를 존중하고 생활을 기초로 하여야 하며 개성의 자유로운 발전을 도모하고 호상 협조하여 민족문화의 향상에 공헌하도록 실시되어야 한다. | 제3조 교육의 목적은 학교 기타 교육을 위한 시설에서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도 항상 강력히 실현되여야 하며 공민, 과학, 실업과 사범의 교육은 특히 중시하여야 한다.
제4조 교육의 제도, 시설, 교재와 방법은 항상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교육을 받는 자로 하여금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
| 제3조(교육의 기회균등)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그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며, 인종, 신념, 성별,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가문에 따라 교육상의 차별을 받지 않는다.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유로 수학이 곤란한 자에 대해 장학의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 |
제4조 모든 국민은 신앙, 성별,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등에 의한 차별이 없이 그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진다.
제5조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재능이 있는 자로서 경제적 이유로 수학이 곤란한 자에 대하여 적당한 장학의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 |
제9조 모든 국민에게 그 능력에 따라 수학할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와 지방공공단체는 좌의 방책을 실행하여야 한다.
1. 학교를 지역적 또는 종별적으로 공평하게 배치한다. 2. 재능이 우수한 학생으로 학자곤란한 자를 위하여 장학금제도, 학비보조제도를 실시한다. 3. 직업을 가진 자의 수학을 위하여 야간제, 계절제, 시간제 기타 특수한 교육방법을 강구한다. |
| – 일본의 「교육기본법」 및 「학교교육법」 관련 자료는 일본 문부성 홈페이지에 수록된 것을 활용하였다(http://www.mext.go.jp/b_menu/hakusho/hakusho.html에서 2014년 6월 1일 인출).
– 문교부 「교육기본법」(안) 및 「학교교육법」(안) 자료는 은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국무회의록 「교육기본법 및 학교교육법안 건」(제34회), 1949.3.22. BA0182402 자료를 활용하였다. – 「교육법」은 국사편찬위원회(편) (2011), 실록 대한민국사 자료집 한국교육 정책사료 1, 국사편찬위원회 수록 자료를 활용하였다. |
||
‘문교부초안’은 조항의 구성 및 서술 방식 등 형식 면에서는 분명 일본의 교육기본법을 복제했다. 그러나 단순한 번역 복제에 그치지 않았고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대한 수정이 가해졌다. 특히 안호상이 제창한 ‘민주적 민족교육’ 이념이 강조되고 ‘홍익인간’이라는 교육 이념이 추가되었다. 최종적으로 「교육법」에서는 ‘민주적 민족교육’이라는 표현이 삭제되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민족’ 교육에 대한 강조가 특별히 약화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일본 교육의 목적 조항에서 ‘진리와 정의’, ‘개인의 가치’라는 표현은 ‘문교부초안’과 「교육법」에서 공히 삭제된 반면, ‘문교부초안’에서는 그것이 ‘애국정신’으로, 그리고 「교육법」에서도 역시 ‘국가의 자주독립’, ‘애국애족의 정신’이라는 표현으로 대치되었으며, ‘민족의 고유문화의 계승 앙양’이라는 표현이 새롭게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교육법」 2조에는 일본의 「교육기본법」에 없는 새로운 국가교육의 방침으로 1항에 ‘견인불발의 기백’이라는 도덕적 특성의 육성이 강조되었으며, 7항에는 ‘근검노작’과 ‘무실역행’, ‘유능한 생산자와 현명한 소비자’로서의 ‘건실한 경제생활’을 강조하는,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한 교육의 역할도 강조되었다. 이러한 점은 「교육법」 3조에 새롭게 추가된 ‘공민, 과학, 실업과 사범교육의 중시’ 방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초등 및 중등, 고등교육 등 각 단계별 학교교육의 기본 성격과 방침에 대한 조항을 보자. 그 내용을 다음 <표 2>와 <표 3>에 제시하였다.
초등, 중등 및 고등교육의 성격 및 기본방침에 관한 조항도 ‘문교부초안’이 일본의 「학교교육법」 관련 조항을 번역·복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지만, 동시에 중대한 수정이 가해졌다. 일본의 그것을 기초로 하면서도 각급 학교의 교육방침에서 역시 ‘민족’과 ‘독립’ 그리고 ‘국가’ 등이 수식어로 부가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육법」의 관련 조항은 ‘문교부초안’의 그것을 대체로 답습했다.
초등교육 관련 조항을 살펴보자. 먼저 식민지기의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복원되었다. 일본의 경우 45년 이전의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곧바로 이전의 명칭인 ‘소학교’로 되돌아갔다. 한국의 경우 ‘문교부초안’에서는 일본처럼 ‘소학교’로 되돌렸으나 「교육법」에서는 그것을 다시 ‘국민학교’로 바꾸었다. 이로 인해 1941년에 제정된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1995년 8월에 ‘초등학교’로 개칭되기까지 54년간 지속되었다.
초등교육의 성격과 관련하여 일본 교육법의 ‘초등보통교육’이라는 표현은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으로 수정되었다. 초등교육의 목표를 구체화한 8개 조항은 ‘문교부초안’ 및 「교육법」에서는 7개로 재편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직접적인 복제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역시 ‘민족’과 ‘도의심’, ‘독립자존’ 등이 추가되고, ‘학교내외의 사회생활의 경험에 기반하여 인간 상호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협동, 자주 및 자율정신을 기른다’는 1항의 민주주의 교육 목표가 삭제되었으며, 「교육법」에서는 ‘근로역행, 자립생활’ 등 경제발전을 위한 교육의 역할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표 2> 초등교육방침 조항 비교
| 일본 「학교교육법」 | 문교부 「학교교육법」(안) | 「교육법」 |
| 제17조 소학교는 심신의 발달에 따라 초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18조 소학교의 교육은 전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학교내외의 사회생활의 경험에 기반하여 인간 상호관계에 대해 정확한 이해와 협동, 자주 및 자율 정신을 기른다. 2. 향토 및 국가의 현상과 전통에 대해 정확한 이해로 이끌고 나아가 국제협조의 정신을 기른다. 3.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 식, 주, 산업 등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와 기능을 기른다. 4. 일상생활에 필요한 국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을 기른다. 5. 일상생활에 필요한 수량적인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기른다. 6. 일상생활에서의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기른다. 7. 건강,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습관을 기르고 심신의 조화적 발달을 꾀한다. 8. 생활을 밝고 풍요롭게 하는 음악, 미술, 문예 등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와 기능을 기른다. |
제16조 소학교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17조 소학교에서 행하는 교육은 전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일상생활에 필요한 국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며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2.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이해시키어 도의심과 책임감과 협조정신을 기른다. 특히 향토와 민족의 현상 및 전통을 정확하게 이해시키어 민족의식을 앙양하여 독립자존의 기풍을 기르는 동시에 국제협조의 정신을 기른다. 3.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자연사물과 현상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며 처리하는 능력을 기른다. 4. 일상생활에 필요한 수량적인 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을 기른다. 5. 보건생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며 이에 필요한 습관을 길러 심신이 조화적으로 발달하도록 한다. 6. 인간생활을 명랑하고 여유있게 하는 음악 미술 문예 등에 대하여 기초적인 이해와 기능을 기른다. 7.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식주와 직업 등에 대하여 기초적인 이해와 기능을 기른다. |
제93조 국민학교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94조 국민학교 교육은 전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일상생활에 필요한 국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며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2.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이해시키어 도의심과 책임감, 공덕심과 협동정신을 기른다. 특히 향토와 민족의 전통과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시키어 민족의지를 앙양하며 독립자존의 기풍을 기르는 동시에 국제협조의 정신을 기른다. 3.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자연사물과 현상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며 처리하는 능력을 기른다. 4. 일상생활에 필요한 수량적인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며 처리하는 능력을 기른다. 5.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식주와 직업 등에 대하여 기초적인 이해와 기능을 기르며 근로역행, 자립자활의 능력을 기른다. 6. 인간생활을 명랑하고 화악하게 하는 음악, 미술, 문예 등에 대하여 기초적인 이해와 기능을 기른다. 7. 보건생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며 이에 필요한 습관을 길러 심신이 조화적으로 발달하도록 한다. |
일본 법률의 복제와 수정이라는 특질은 중등 및 고등교육 관련 조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교육 관련 조항에서는 대부분 일본의 그것들을 복제하면서도 그 목표로서 일본의 ‘국가 및 사회의 유위한 형성자’라는 표현 대신에 ‘중견국민’, ‘민족의 사명’ 등의 표현을 삽입했으며, 특히 ‘신체의 단련과 체력 증진, 건전한 정신’ 등 체육을 강화하는 조항을 새롭게 포함했다.
한편, 사범교육에 관한 특별한 규정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 일반 교육과는 별개의 루트를 통한 교사 양성체제(사범학교 체제)를 혁파하는 방향으로 전후 교육개혁이 진행되었다.8 한국은 ‘국민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양성을 위해 식민지 시기와 마찬가지로 일반 중고등 교육과 분리된 교사 양성체제를 유지하는 방향이 취해졌다. 국민학교 교사 양성을 위한 교육대학의 일반대학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이 그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학교교육법」(안)의 제44조 안에 “사범교육에 있어서는 특히 감화력이 충실한 국민교육의 사표가 될 자질을 기른다”는 조항이 특설되었으며, 이는 「교육법」에도 계승되어 “제74조 교원은 항상 사표가 될 품성과 자질의 향상에 힘쓰며 학문의 연찬과 교육의 원리와 방법을 탐구연마하여 국민교육에 전심전력을 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특설되기에 이르렀다.
<표 3> 중등·고등교육방침 조항 비교
| 일본 「학교교육법」 | 문교부 「학교교육법」(안) | 「교육법」 |
| 제35조 중학교는 소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심신의 발달에 응하여 중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36조 중학교에서 행하는 교육은 전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소학교 교육의 목표를 더욱 충분히 달성하고 국가 및 사회의 형성자로서 필요한 자질을 기른다. 2. 사회에서 필요한 직업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기능, 근로를 존중하는 태도 및 개성에 따라 장래의 진로를 선택하는 능력을 기른다. 3. 학교 내외에 있어서의 사회적 활동을 촉진하고 그 감정을 바르게 인도하고 공정한 판단력을 기른다 |
제32조 중학교는 소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33조 중학교에서 행하는 교육은 전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소학교 교육의 성과를 더욱 발전 확충시키어 중견국민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품성과 기능을 기른다. 2. 사회에서 필요한 직업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기능, 근로를 존중하는 정신과 행동 및 개성에 따라 장래의 진로를 선택하는 능력을 기른다. 3. 학교 내외에 있어서의 자율적 활동을 조장하며 감정을 바르게 인도하고 공정한 판단력을 기른다. 4. 신체를 양호 단련하여 체력을 증진시키며 건전한 정신을 기른다. |
제100조 중학교는 국민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위에 중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156조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중에서 전교과의 30퍼센트이상을 실업과목으로 하는 학교는 실업중학교 또는 실업고등학교 명칭을 관할 수 있다.
제101조 중학교교육은 전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국민학교 교육의 성과를 더욱 발전 확충시키어 중견국민으로서 필요한 품성과 자질을 기른다. 2. 사회에서 필요한 직업에 관한 지식과 기능, 근로를 존중하는 정신과 행동 또는 개성에 맞는 장래의 진로를 결정하는 능력을 기른다. 3. 학교내에 있어서의 자율적 활동을 조장하며 감정을 바르게 하고 공정한 비판력을 기른다. 4. 신체를 양호단련하여 체력을 증진시키며 건전한 정신을 기른다. |
| 제41조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서 심신의 발달에 응하여 고등보통교육 및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42조 고등학교에서 행하는 교육은 전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중학교 교육의 성과를 더욱 발전 확충시키어 국가 및 사회의 유위한 형성자로서 필요한 자질을 기른다. 2. 사회에서 담당해야 할 사명의 자각에 기반하여 개성에 맞는 장래의 진로를 결정케 하며, 일반적 교양을 높이고 전문적 기능을 습숙시킨다. 3. 사회에 대해 넓고 깊은 이해와 건전한 비판력을 기르고 개성의 확립에 힘쓴다. |
제43조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고등보통교육 또는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44조 고등학교에서 행하는 교육은 전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중학교 교육의 성과를 더욱 발전 확충시키어 중견국민으로서 필요한 품성과 기능을 기른다. 2. 국가 사회에 대한 이해와 건전한 비판력을 기른다. 3. 민족의 사명을 자각하여 체위의 향상을 도모하며 개성에 맞는 장래의 진로를 결정하며 일반적 교양을 높이고 전문적 기능을 기른다. 사범교육에 있어서는 특히 감화력이 충실한 국민교육의 사표가 될 품성과 기능을 기른다. |
제104조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위에 고등보통교육과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105조 고등학교교육은 전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 각호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1. 중학교 교육의 성과를 더욱 발전 확충시키어 중견국민으로서 필요한 품성과 기능을 기른다. 2. 국가 사회에 대한 이해와 건전한 비판력을 기른다. 3. 민족의 사명을 자각하고 체위의 향상을 도모하며 개성에 맞는 장래의 진로를 결정케 하며 일반적 교양을 높이고 전문적 기능을 기른다. |
| 제52조 대학은 학술의 중심으로서 널리 지식을 가르치는 동시에 깊이 전문 학예를 교수연구하고 지적, 도덕적 응용적 능력을 전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제52조 대학은 국가 및 인류사회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광범하고 정치한 응용방법을 교수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제108조 대학은 국가와 인류사회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광범하고 정치한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다음으로 대학교육 관련 조항을 보자. 전전(戰前) 일본의 대학교육에 대한 국가주의적 통제의 근거가 1918년에 제정된 「대학령」(1918.7.12. 칙령 제388호)의 제1조 “대학은 국가에 필요한 학술의 이론 및 응용을 교수하고 그 온오를 공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인격의 도야 및 국가사상의 함양에 유의해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이는 전후 일본의 「학교교육법」 52조에서는 “대학은 학술의 중심으로서 널리 지식을 가르치는 동시에 깊이 전문 학예를 교수연구하고 지적, 도덕적, 응용적 능력을 전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개정되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사라진 ‘국가에 필요한’이라는 제한적 표현이 한국의 ‘문교부초안’과 「교육법」에서는 되살아났다.
‘홍익인간’
‘홍익인간’ 이념은 임시정부의 「대한민국건국강령」(1941년 11월 28일)의 2조에 ‘홍익인간과 이화세계(理化世界)하자는, 우리 민족의 지켜야 할 최고의 공리’라는 문구에서 최초로 확인되지만9 그것이 ‘교육 이념’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해방 이후 미군정기인 1945년 12월 20일 조선교육심의회 4차 전체회의에서였다.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에 기하여 인격이 완전하고 애국정신이 투철한 민주국가의 공민을 양성함”10을 교육 이념으로 정한 것이다. ‘홍익인간’이라는 네 글자11를 과연 누가 교육 이념으로 제안했는지에 대해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팔굉일우’(八紘一宇)를 연상시킨다 하여 반대한 백남운을 제외하고는 위원회에서 특별한 반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던 조선교육심의회의 다른 위원들도 이 말을 낯설어 했다. 심의회 위원의 한 사람이었던 이인기는 이렇게 증언한다. “홍익인간이라는 교육 이념이 전체 회의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삼국유사 같은 고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제1분과위원 중에서 하경덕씨는 미국 유학생이었고, 장리욱씨나 나도 홍익인간에 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12는 것이다.
신화에서 발견된 ‘홍익인간’이라는 낯선 말은 한편으로는 그 애매함 때문에 그것을 말하는 누구나 자기 나름으로 해석할 수 있었고, 또 그 해석에 반박을 가하기도 어려웠다. 백낙준에게 그것은 ‘인류에 대한 공헌’과 동의어였고, 오천석에게 그것은 ‘박애주의’로 이해되었다.13 그런데 미군정기에 이 홍익인간 이념의 등장에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반응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안호상이었다. 그는 전술한 조선교육연구회 주최 교사연수에서 홍익인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논리로 해설했다.
… 삼국통일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마는 그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은 15,6세 되는 화랑소년들이 주검을 가볍게 여기고 의리를 무겁게 안 까닭입니다. … 우리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할 구체적 원리원칙은 의리의 교육이고 의리의 인간을 통해서만 홍익인간이라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14
그는 홍익인간을 ‘의리’라는 덕목으로 연결시키고 그 의리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하는 화랑소년의 정신이라고 강변한다. 안호상의 홍익인간은 ‘인류에 대한 공헌’으로 이해했던 백낙준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백낙준과 안호상이 ‘홍익인간’에 부여한 상이한 의미는 마치 ‘동상이몽(同床異夢)’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런 형국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반복 재생산될 수 있었다.
‘홍익인간’ 교육 이념은 ‘문교부초안’에서도 교육 이념으로 설정되었으나, 그것이 국회에서 기각됨으로써 한 차례 난항을 겪게 된다. ‘5인위원회’에서는 교육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문교부초안’의 ‘홍익인간’과 ‘민주적 민족교육’ 개념 자체를 삭제해 버렸다. 오천석에 따르면, ‘5인위원회’에서 “교육의 목적을 토의하는 데 있어 ‘홍익인간’과 ‘민족교육’이란 말을 넣자는 의견이 상당히 있었으나, 전자는 교육의 목적을 좀 더 현실적이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는 주장 때문에, 후자는 그 문구를 넣지 않더라도 다른 방면으로 충분히 그 뜻이 표현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에 둘이 다 빠지게 되었다”.15 심지어 미군정기에 ‘홍익인간’ 이념을 최초로 교육 이념으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백낙준조차 홍익인간 이념을 삭제하고 그것을 ‘인류공영’이라는 말로 대치하는데 동의했다.16 ‘20인위원회’에서도 ‘홍익인간’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데 “‘홍익인간’이라 함은 신화적 고전인 동시에 ‘인류공영’이라 함과 동의적 개념을 의미함이며, 또한 제2조, 제2,3호에서 충분히 한국적 특색을 제시하였다는 이유 하에 부결되었던 것이다”.17
그러나 안호상은 포기하지 않았다. ‘20인위원회’까지 통과한 교육법안이 문교사회위원회에서 검토되는 과정에서 안호상이 적극적으로 다시 개입한다. 당시 문교사회위원장 이영준은 이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이 문자가 글자도 좋고 혹은 신화라고 할까 혹은 역사적이라고 할까 이러한 여러 가지 조선적 의미도 들어가고 해서 … 문교장관께서 민주주의 민족교육으로 해 달라고 요구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니 우리가 이 법안을 심사해 볼 때에 민주주의라 하면 다 되었지 민족도 들어가는 것인데 또 무슨 민족교육이라고 민족을 더 넣을 필요가 없다고 해서 문교장관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냥 민주주의 민족교육이라는 것을 쓰지 않았읍니다.18
당시 안호상은 ‘민주주의 민족교육’이라는 말과 ‘홍익인간’이라는 말을 함께 교육법안에 포함시켜 달라고 문교사회위원회에 강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절충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 민족교육’은 삭제하는 대신 ‘홍익인간’은 살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19
이렇게 해서 국회 본회의 심의에 올라간 「대한민국교육법안」 안에 살아남게 된 ‘홍익인간’은 국회에서 또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한 의원은 “몇 천 년 전에 단군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도 하는데20 그 당시에는 그 단군께서 홍익인간이라고 하는 말을 어떠한 뜻으로 말씀하셨는지 5천 년이라고 하는 그 시간적으로 결과된 오날에 있어서 이 홍익인간이라고 하는 말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육 이념으로 확실히 적당한가 아닌가 이것을 구체적으로 여기서 설명”21해 달라고 추궁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의원은 ‘도저히 보통 한문의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해석할 수 없는 문자’22라며 힐난하기까지 했다. 느닷없이 돌출된 ‘홍익인간’이라는 교육 이념에 대한 의원들의 이런 반응이야말로 상식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로 인해 심의가 답보 상태를 겪자 안호상이 직접 나서서 이런 논리로 사정했다.
‘홍익인간’이라는 것은 제가 넣야만 될 줄 알고 넌 것입니다. … ‘홍익인간’이라는 글자는 한문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독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 쏘크라테스 이후 17,8세기 루네산쓰 종교개혁, 18세기의 신인문주의 전부를 볼 때에 구라파 교육이념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주의 인문주의라는 것이 중점이요, 모든 교육이념이 거기에 집중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서양보다도 훨씬 우수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까닭에 이것만은 여러분께서도 다른 의견 말으시고 그대로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읍니다.23
안호상의 호소가 통한 탓인지 국회는 이 말을 교육 이념으로 법제화하는데 결국 동의하게 된다. ‘홍익인간’ 이념은 한국의 교육 이념을 민족의 기원 ‘신화’와 어떻게든 연결지어 보려는 민족주의적 욕망이 빚어낸 산물이자, 이전에 거의 통용되지 않았던 말이라는 점에서 ‘만들어진 전통’에 가까웠다. ‘홍익인간’ 이념은 그것을 말하는 이들이 각기 다른 의미를 담을 수도 있는 애매함 때문에 한국 교육의 이념적 방향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데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널리 사람을 돕는다’고 하는, 무슨 의미인지는 분명치 않아도 말하자면 ‘선의’를 표방하는 데다 민족의 기원에 닿아 있는 이념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단 이념으로 제정된 이후에는 고치거나 폐기하기 어려웠고 그런 상태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육행정
학교교육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관련된 조항들도 살펴보자. <표 4>는 의무교육, 남녀공학, 학교교육, 사회교육, 정치교육, 종교교육, 교육행정 관련 조항을 비교 제시한 것이다. 이들 조항은 일본의 경우 전전의 국가주의적 교육체제의 혁파와 민주적 재편에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들이었다. 그러한 내용이 ‘문교부초안’ 및 「교육법」에서는 어떻게 변용되었을까.
<표 4> 교육행정 조항 비교
| 일본
「교육기본법」(4〜10조) 「학교교육법」(21〜49조) |
문교부
「교육기본법」(안)(6〜13조) 「학교교육법」(안)(20〜53조) |
「교육법」 |
| 제4조(의무교육)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9년의 보통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다.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가 설치하는 학교의 의무교육에서는 수업료는 징수하지 않는다. 제5조(남녀공학) 남녀는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야 하며 교육상 남녀 공학은 인정되어야 한다. |
제6조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초등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다.
(남녀공학 조항 삭제) |
제8조 모든 국민은 6년의 초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와 지방공공단체는 전항의 초등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학교를 설치경영하여야 하며 학령아동의 친권자 또는 후견인은 그 보호하는 아동에게 초등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다. (남녀공학 조항 삭제) |
| 제6조(학교교육) 법률로 정한 학교는 공적인 성질을 지닌 것이며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 외에 법률로 정한 법인만이 이를 설치할 수 있다.
법률로 정한 학교의 교원은 전체의 봉사자로서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고 그 직책을 수행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원의 신분이 존중되고 적정한 대우가 기해져야 한다. |
제7조 학교는 국가, 지방공공단체 및 법률이 정하는 법인만이 설립한다.
제8조 국가는 교육내용의 충실을 기하되 특히 과학교육, 실업교육 및 사범교육에 치중하여야 한다. 공장 사업장 기타 교육에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그 사업 또는 연구에 장애가 없는 때에는 교육에 이용할 수 있다. 제9조 학교 교원은 그 신분이 보장되어야 하며 그 지위는 특히 우대되어야 한다. |
제6조 국가 및 지방 공공단체는 본법 또는 다른 법률의 정한 바에 의하여 학교 기타의 교육시설을 설치 경영하며 모든 교육기관을 지도감독 한다.
제7조 모든 학교는 국가의 공기로서 법령의 정하는 기준에 의하여 설립되어야 하며 동등한 학교의 수료자 또는 졸업자는 국립, 공립 또는 사립의 구별 없이 동등한 자격을 가진다. 제13조 교원의 사회적 지위는 적정하게 우대되어야 하며 그 신분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
| 제8조(정치교육) 양식 있는 공민이 되는데 필요한 정치적 교양은 교육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법률로 정한 학교는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거나 또는 이에 반대하기 위한 정치교육 기타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다. |
제10조 국민으로서 필요한 정치적 교양은 교육상 이를 존중하여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당을 지지하거나 또는 이에 반대하기 위한 정치교육 기타 모든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다 |
제5조 교육은 교육본래의 목적에 기하여 운영 실시되어야 하며 어떠한 정치적, 파당적 기타 개인적 편견의 선전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
제78조 교원은 어느 정당을 지지하거나 배격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 혹은 선동할 수 없다. |
| 제10조(교육행정) 교육은 부당한 지배에 복종하지 않고 국민 전체에 대해 직접 책임을 지고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교육행정은 이 자각 하에서 교육의 목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제 조건의 정비 확립을 목표로 행해져야 한다. |
제13조 교육은 국가의 감독 밑에 수행되며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는다.
교육행정은 교육에 대한 교양이 있는 공무원에 의하여 운영되어야 한다. |
제14조 국가와 지방공공단체는 교육의 자주성을 확보하며 공정한 민의에 따라 각기실정에 맞는 교육행정을 하기 위하여 필요 적절한 기구와 시책을 수립 실시하여야 한다. |
| 제21조 소학교의 교과용 도서는 감독청이 검정 또는 인가한 것 또는 저작권을 가진 것이라야 한다. 전항의 교과용도서 이외의 도서 기타 교재로 유익하고 적절한 것은 사용할 수 있다.
제40조 제21조, 제22조제2항, 제23조에서 제26조까지, 제28조에서 제34조까지의 규정은 중학교에 준용한다. 제49조 고등학교에 관한 교과용도서, 입학, 퇴학, 전학 기타 필요한 사항은 감독청이 정한다. |
제20조 소학교의 교과용 도서는 문교부가 저작권을 갖인 것 또는 문교부가 검정이나 인정한 것이라야 한다.
제38조 중학교의 교과용도서 입학 퇴학 전학 기타 필요한 사항은 문교부장관이 정한다.
제51조 (제38조 준용) |
157조 사범대학, 대학을 제외한 각 학교의 교과용도서는 문교부가 저작권을 가졌거나 검정 또는 인정한 것에 한한다. 교과용도서의 저작, 검정 또는 인정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써 정한다. 전항의 대통령령에는 그 위반자에 대하여 판인본의 몰수 또는 10만원이하의 벌금을 과하는 벌칙을 규정할 수 있다. |
의무교육의 경우 일본이 9년 간으로 규정한 데 비해 ‘문교부초안’과 「교육법」은 그것을 6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흥미로운 차이점은 일본의 그것과 ‘문교부초안’이 국민이 보호하는 자녀에 대해 지는 ‘의무’로 표현한 데 비하여 「교육법」은 그것을 ‘권리’로 적극적으로 규정한 점이다. 다만 의무교육에서 수업료를 징수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교육법」에서는 삭제되었다. 이는 해방 이후 초등교육 의무화와 교육 팽창에 따른 비용 확보 가능성에 대한 실제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법제화된 남녀공학 관련 조항이 ‘문교부초안’ 및 「교육법」에서는 전면 삭제되었다. 문교부든 제헌국회든 기본적으로 남녀평등 이슈에 대해 보수적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학교교육의 성격과 관련하여 일본의 경우는 ‘학교가 공적인 성질을 지닌 것’이며, 교원은 ‘전체의 봉사자’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일본 「교육기본법」을 대표하는 조항이자 일본 교육행정의 탈국가주의적, 민주적 개혁 지향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부분이 ‘문교부초안’이나 「교육법」에서는 공히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다. 오히려 「교육법」의 경우 국가가 ‘모든 교육기관을 지도감독’하며, 학교가 ‘국가의 공기’라고 하는 식으로 바뀌어 학교교육에 대한 국가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교육행정 관련 조항에서 이 점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 교육기본법의 제10조는 ‘교육은 부당한 지배에 복종하지 않고 국민 전체에 대해 직접 책임을 지고’ 행해져야 하며 교육행정의 역할은 ‘이 목적의 수행에 필요한 조건의 정비 확립’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문교부초안’에서도 「교육법」에서도 삭제되었다. ‘문교부초안’에서는 교육이 ‘국가의 감독 밑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으며 교육에 ‘경험과 교양이 있는’ 공무원의 행정권이 강조되었다. 교육에 대한 민간 참여의 약화 및 중앙정부의 통제권 강화를 의미하는 부분이다. 「교육법」에서는 ‘교육의 자주성’과 ‘민의’를 포함시켜 교육자치제 도입의 근거를 마련하기는 했으나, 일본의 그것처럼 학교교육의 민주적 운영 요소를 강력히 천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과용 도서 규정은 삼자가 유사해 보이지만, 주의 깊게 보면 일본의 경우 검정, 인정, 국정의 순서로 서술했고 부교재 사용을 권장한데 비해 ‘문교부초안’과 「교육법」은 국정, 검정, 인정의 순서로 바꾸었다. 한편, 부교재 사용 권고 조항을 삭제했고 심지어 「교육법」의 경우, 엄격한 벌칙조항을 추가했다. 요컨대 ‘문교부초안’과 「교육법」은 일본의 그것에 비해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것이었으며, 식민지기와 마찬가지로 ‘국정교과서제도’를 유지하겠다는 강한 지향을 담고 있었다.
교육법 제75조
다음으로 교원 관련 조항을 살펴보자. 일본의 경우는 「학교교육법」 제28조에 ‘교유(敎諭)는 아동의 교육을 담당한다’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문교부초안’에는 그에 상응하는 조문이 제26조에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라 하여 ‘교장의 명을 받아’라는 조문을 추가했으며, 이는 「교육법」 제75조, “각 학교의 교원 또는 사무직원과 그 임무는 다음과 같다. 1.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사범학교, 기술학교, 고등기술학교, 공민학교, 고등공민학교와 특수학교에는 교장, 교감과 교사를 둔다.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직원을 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교감은 교장의 명을 받어 교무를 장리하며 학생을 교육하고 교장 유고시는 교장을 대리한다.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어 학생을 교육한다”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후 「교육법」의 대표적인 문제 조항으로 여겨진 75조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교장의 명을 받아’라는 이 추가된 조문은 ‘문교부초안’을 만든 관료들의 창안이 아니었다. 이에는 식민지적 기원이 있었다. 식민지기인 1941년, 일본제국은 「소학교령시행규칙」(1900.8.21. 문부성령 제14호)의 제135조 “정교원은 아동의 교육을 담임하고 이에 속하는 사무를 담당한다”는 조항을 개정하여 「국민학교령」(1941.3.1. 칙령제148호) 제17조 「훈도는 학교장의 명을 받아 아동의 교육을 담당한다」라고 바꾸었다.24 이는 일제의 국가주의 교육이 최절정에 달한 시기에 교육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위해 새롭게 도입된 규정25이었다. 이 규정은 당연히 식민지 조선에도 적용되었다.
전후 일본에서는 ‘학교장의 명을 받아’라는 부분을 삭제하며 ‘교유는 아동의 교육을 담당한다’로 담백하게 개정했지만, 안호상의 문교부는 다시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초안 안에 되살려 놓았다. ‘학교장의 명을 받아’라는 조항 부분은 ‘5인위원회’의 초안 재작성에서도, 문교사회위원회의 검토에서도, 국회 본회의에서도 전혀 문제시되지 않은 채 유지되었다. 이렇게 하여 ‘제국의 창고’에서 다시 꺼내와 복구시킨 교권 통제의 칼,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는 제75조 조항이 탄생했고 반세기 간 교사의 교권을 통제하는 대표적인 법적 근거로 작용했다.26 그것이 개정된 것은 한국 정치의 민주화 이후인 1996년의 일이었다.27
학생 관련 조항
학생 징계 관련 조항을 보자.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징계의 법적 근거와 체벌 금지 관련 부분이다. 일본의 경우 「학교교육법」 제11조에 “교장 및 교원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감독청이 정한 바에 의하여 학생에게 징계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체벌은 가할 수 없다”고 하여 교육자의 자의적 징계권을 제한하는 법정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체벌에 대한 금지’는 전전 일본 및 식민지 조선에도 이미 법제화되어 있었던 부분이다. 예를 들어 「보통학교규정」(1922년 총독부령 제8호) 제80조에는 “학교장 및 교원은 교육상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아동에게 징계를 가할 수 있다. 단 체벌을 가할 수는 없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교부초안’에서도 이 조항은 제10조 “교장 및 교원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학생에게 징계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체벌은 가할 수 없다”로 그대로 복제되었다. 그런데 「교육법」에서는 “제76조 각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학생에게 징계 또는 처벌을 할 수 있다. 의무교육에서는 학생을 퇴학시킬 수 없다”고 하여 ‘감독청이 정한 바에 따라’ 부분과 ‘체벌 금지’ 부분이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다. 학생에 대한 통제는 식민지 시기보다도 오히려 더욱 강화된 것이다.
한편, 중학교의 교육 방침 관련 조항에서 일본의 「학교교육법」 제36조 3항은 “학교 내외에 있어서의 사회적 활동을 촉진하고 그 감정을 바르게 인도하고 공정한 판단력을 기른다”로 되어 있는 부분은 문교부의 「학교교육법」(안) 제33조 3항에서는 “학교 내외에 있어서의 자율적 활동을 조장하여 감정을 바르게 인도하고 공정한 판단력을 기른다” 라 하여 ‘사회적 활동’을 ‘자율적 활동’으로 바꾸었다. 학생들의 정치사회적 교외활동의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교육법」 제101조 3항은 심지어 이를 “학교 내에 있어서의 자율적 활동을 조장하며 감정을 바르게 하고 공정한 비판력을 기른다”로 바꾸어 학생들의 학외에서의 사회 활동 자체를 전면적으로 저지하는 방향으로 주도면밀하게 수정했다.
사립학교
다음으로 사립학교 관련 조항을 비교해 보자. 일본의 경우, 「학교교육법」 제10조에 “사립학교는 교장을 정하고 감독청에 보고해야 한다”고만 정하고 있으나, 문교부의 「학교교육법」(안)은 제9조에 “사립학교가 교장과 교원을 임명할 때에는 미리 문교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해임할 때에는 교장은 인가를 받고 교원은 보고를 하여야 한다” 하여 사립학교 교장과 교원 임명을 문교부 인가제도로 바꾸어 버렸다. 이것이 「교육법」에서는 제87조 “사립학교가 교원을 채용 또는 해직할 때는 감독청에 보고하여야 한다. 단 총장, 부총장, 학장, 교장 또는 원장을 채용할 때는 감독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감독청은 교원이 제77조 각호의 1에 해당된다고 인정할 때는 해직을 명한다”고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장 임명은 인가제, 교원 임명은 보고제로 절충되었지만, 단서조항을 달아 감독청에 교원 해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국가의 통제권은 여전히 유지되었다.28
미군정의 학무관료 워드(Richard Werth)는 한국의 학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한국에서 공립과 사립의 차이는 미국의 그것처럼 크지 않다. 보통 ‘사립(private)’이란 말은 단지 ‘사적으로 지원되는(privately supported)’이라는 의미이므로 다른 모든 측면들(교육과정, 교사임명, 학칙 등)에서 정부는 공립학교에 대해서와 동일한 통제를 사립학교에도 가한다.29
식민지기에 형성되었고 미군정기에도 변하지 않았던 사학의 이러한 특질은 「교육법」의 사립학교 관련 조항 법제화로 인해 이후에도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한국 교육법 제정의 특질
한국의 「교육법」 제정의 출발점은 안호상 문교부장관의 지휘 하에 만들어진 ‘문교부초안’이었다. 이는 일본의 「교육기본법」 및 「학교교육법」을 기초로 하여 그것을 번역 복제 수정하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왜 다른 외국의 법률이 아니라 일본의 법률을 복제하려 했을까. 문교부 관료들의 식민지 시기의 경력, 자율적인 입법 경험의 부재, 일제의 식민 지배 하에서 형성된 일본과 조선 교육체제의 연속성, 45년 이후의 민주주의 정치체제 형성 등의 요인을 일단 떠올려볼 수 있다.
그런데 ‘문교부초안’은 결코 일본 교육법의 단순한 ‘번역·복제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 법률에서의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요소들을 면밀하게 선별하여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그것을 민족주의 원리에 입각한 조문으로 환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번역과 복제 과정에서 ‘민족주의’라는 특정한 필터에 의한 ‘여과과정’이 작동했다. 달리 말해 전후 일본의 교육법은 후에 제헌국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것처럼 단순히 ‘복제해야 할 원전’ 혹은 ‘모범’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복제해서는 안 될 견본’ 혹은 ‘반면교사’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정치적 이유에서 ‘문교부초안’을 전면 폐기한 후 성립한 「교육법」은 일단 법의 외양을 크게 바꿈으로써 일본의 교육법 형식을 모방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안호상의 개념이었던 ‘민주적 민족교육’이라는 표현이 삭제되는가 하면, 민족주의 교육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들이 완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육법」이 ‘문교부초안’에서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던 일본 교육법의 진보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법조항들을 다시 되살리는 방향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안호상의 고집으로 ‘홍익인간’ 이념이 유지되는 한편, 각급 학교의 교육 목적과 방침에 대한 서술에서는 ‘민족’과 ‘국가’를 강조하는 ‘문교부초안’의 내용이 거의 그대로 답습되었다. 「교육법」 안에는 ‘문교부초안’보다도 학교교육에 대한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들이 보강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교과용 도서에의 통제권 강화, 대학에서의 교수회 조항 폐지, 학생징계권 강화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문교부초안’과 「교육법」은 전후 일본의 교육법에서는 폐지된 전전(戰前), 식민지기의 교육법 조항들을 일부 부활시키기도 했다. 그 뚜렷한 예는 교권에 대한 통제 관련 조항들이었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면 일본의 교육법과 ‘문교부초안’ 간의 격차 쪽이 오히려 컸으며, ‘문교부초안’을 전면 폐기하고 새롭게 만들었다고 하는 제헌국회의 「교육법」은 ‘문교부초안’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고찰한 「교육법」의 특질을 안호상 문정의 선택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은 제헌국회의 선택이기도 했다. 정부 수립 이후 교육정책 결정권을 박탈당했으나 국회에서의 교육법 제정 과정에 다시 참여하게 된 오천석은 제헌국회 문교사회위원회에서 법안을 작성할 때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교육법안의 내용이) 일본제도와 비슷한 것이 유감이나 각 전문위원들 중에는 이대로 하는 것을 퍽 즐기어 했다. 이런 법안은 현실을 많이 참작했으나 교육법이란 너무 현실에 치중하면 안 되는 줄 아는 고로 차차 수정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대체로 초안을 심의하는 데에서 보니 일본식대로 했더라면 절대로 반대가 없을 것이었다는 것을 느끼었다.30
요컨대 국회에서 「교육법」을 새롭게 구상하고 제정하는 과정에서 입법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해방 이전의 일본식 법제를 선택했다는 뜻이며, 그런 상황 속에서 오천석은 고립되어 있었고 무력했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안호상 문교부이건 제헌국회이건, 「교육법」 제정을 주도한 세력들은 국가권력이 교육의 이념과 목적, 교과와 커리큘럼을 결정하고, 그렇게 결정된 것들을 교사와 학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바꿔 말하면 교육과 관련된 여러 주체들 간의 ‘관계’, 즉 국가권력과 교육행정의 관계, 중앙교육행정과 지방교육행정의 관계, 교육행정관청과 학교의 관계, 교장과 교사의 관계, 교사와 학생의 관계, 학교교육과 민의 관계 등에서 작동하는 ‘권력구조’ 자체를 변혁하려는 의지를 「교육법」의 내용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교육법」의 특질을 단지 ‘식민지적’ 교육체제의 청산과 ‘민주주의적’ 교육체제의 형성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교육법」 안에는 이러한 특질과 동시에 ‘민족주의적’ 교육 이념과 ‘중앙집권적’ 교육체제에 대한 욕망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교육법」 제정 과정과 그 특질을 다루면서도 다루지 않고 보류해 놓은 또 다른 중요 주제가 있다. 다름 아닌 ‘학제’다. 해방 이후 교육개혁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주제가 이른바 6-3-3-4 단선형 학제의 제정이다. 그것이 지닌 교육사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또 그것이 49년 「교육법」 제정 직후 몇 차례 격론을 거치며 바뀐 점도 있어 이에 대해서는 글을 달리하여 다룬다.
| [이전 칼럼] |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 필자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기존의 PDF 파일을 제공하던 서비스를 중단합니다. 대신 아래의 ‘인쇄(Print)하기’ 클릭한 후, ‘Ctrl + P’를 누르시면 칼럼 내용을 인쇄할 수 있습니다. |
각주
- 문교부는 이 「교육기본법」(안)을 1949년 3월에 국회에 제출하기 두달 전인 1월 말에 초안을 마련하여 언론에 공개한 바 있다. 그것은 일본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전문(前文)을 달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이미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민족의 단결로써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하여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할 것을 선포하였다. 이 국가 이상을 실현함에는 민족교육이 근본이 된다. 우리는 국민 각자의 가치와 존엄성을 인식하여 그 인격의 완성을 기하는 동시에 대한국민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자각하여 문화의 창조발달에 공헌하는 민주적이고 민족적인 교육의 철저한 보급을 기하여야 한다. 이에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에 따라 민주적 민족교육의 이념과 원칙을 명시하며 새로운 한국교육의 기본을 확립하기 위하야 법률을 제정한다”(「二敎育法令草案內容」 『自由新聞』 1949.1.22.(2).). 언뜻 보기에 일본 「교육기본법」의 전문을 거의 그대로 복제한 것 같지만, 동시에 뚜렷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그것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말이 네 차례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특히 ‘민주적 민족교육’이라는 개념이 두 차례나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최초부터 일본의 법률을 복제했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국회에 안이 제출될 때에는 이 전문을 삭제했다.
- 성원의 이름과 배경은 鄭泰秀 (1996), 『韓國敎育基本法制成立史』, 叡智閣, 112쪽. 참조.
- 鄭泰秀 (1996), 앞의 책, 173쪽.
- 朴熙秉 (1950), 『敎育法解義』, 교육주보사, 16-17쪽.
- 鄭泰秀 (1996), 앞의 책, 142쪽.
- 국회에 회부된 「대한민국교육법안」은 심의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명칭을 생략하기로 결정되어 「교육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朴熙秉 (1950), 앞의 책, 17쪽.
- 海後宗臣(編) (1975), 『戰後日本の敎育改革 1 – 敎育改革』, 東京: 東京大學出版會. 제4장 제5절 참조.
- 大韓民國臨時政府宣傳部(編) (1946), 『大韓民國臨時政府에 關한 參考文件 第1輯』, 大韓民國臨時政府宣傳部, 9쪽.
- 吳天錫 (1964), 『韓國新敎育史』, 現代敎育叢書出版社, 401쪽.
- 一然 『三國遺事』, 1281.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 鄭泰秀, (1995), 『광복3년 韓國敎育法制史(1945〜48)』, 叡智閣, 145쪽.
- 吳天錫 (1960), 『民主敎育을 志向하여』, 吳天錫敎育思想文集 1(1975年 復刊), 光明出版社, 312쪽.
- 安浩相 (1946), 「民主敎育哲學論」, 『朝鮮敎育 第1回 民主敎育硏究講習會速記錄』, 朝鮮敎育硏究會, 37-39쪽.
- 吳天錫, 1960, 앞의 책, 310-311쪽.
- ‘홍익인간’이 ‘인류공영’으로 대치되었다가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 대한 백낙준의 기억은 다음과 같다. “…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다시 교육법을 제정할 때 … 그 때 기초위원은 다섯 사람이었는데 장리욱 씨, 오천석 씨, 현상윤 씨, 유진오 씨 나이었었는데 ‘홍익인간’이라는 말을 그만 두자는 말이 났읍니다. 그리고 그 대신 ‘인류공영’이라는 말을 쓰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기초위원회에서 결정해가지고 전체회의에 보고하였드니 전체위원회에서는 군정시대에 쓰든 ‘홍익인간’을 또 넣자고 해서 전체위원회에서 이 ‘홍익인간’이라는 넉자를 지금 교육법에 다시 넣게 되었읍니다.”(韓國敎育文化協會(編) (1953), 『韓國敎育과 民族精神―庸齊白樂濬博士選集』, 文敎社, 76-77쪽.).
- 朴熙秉 (1950), 앞의 책, 18-19쪽.
- 「國會臨時會議速記錄 第1代國會 第5回 第28號, 6. 大韓民國敎育法案第1讀會」(1949.10.31.), 14-15쪽.
- 吳天錫 (1960), 앞의 책, 310-311쪽.
- 그런데 지금도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삼국유사의 전거에 의하면 ‘홍익인간’은 단군의 말이 아니라 환인이 했다고 하는 말이다.
- 「國會臨時會議速記錄」(1949.10.31.), 12쪽.
- 나용균 의원의 질문. 「國會臨時會議速記錄 第1代國會 第5回 第31號 1. 大韓民國敎育法案 第1讀會」(1949.11.3.), 9쪽.
- 「國會臨時會議速記錄」(1949.11.3), 11쪽.
- 「국민학교령」 제정 이전까지 관련 조항
- 大山惠佐, 本間俊一 (1941), 『國民學校令釋義』. 東京: 富山房, p.40.
- 박수성 (1996), 「‘자치’ 억누르는 ‘통제’의 고삐-교육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 『중등우리교육』 80호, 10월호, 66-69쪽.
- 대통령자문교육개혁위원회에서 「교육법」 제77조 ‘성행 불량’ 조문은 ‘국가공무원법 제33조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제75조 ‘교장의 명에 따라’ 조문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대통령자문교육개혁위원회 (1996),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II)』, 제3차 대통령보고서, 교육개혁위원회, 218-219쪽.) 그것은 1997년 12월 13일 법률 제5438호 「초ㆍ중등교육법」 제정으로 실현되었다.
- 이 2항의 추가를 발의한 서성달 의원은 이른바 “불온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사립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제안 이유를 달았다. 이 제안은 재석 113, 가 70, 부 5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國會臨時會議速記錄 第1代國會 第5回 第50號 1. 大韓民國敎育法案 第1讀會」(1949.11.25), 28쪽). 제헌국회의 이념적 지향은 교원 숙청을 감행한 안호상의 문교부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 Werth, Richard (1948), “Educator’s Guide to Korea”, released by Reports & Analysis Branch, Civil Affairs Division, Department of the Army. 1 April 1948, 6.
- 「오천석 박사 談」 『서울新聞』 1949.9.10.(國史編纂委員會(編) (2000), 『資料大韓民國史 14』, 國史編纂委員會, 111쪽.).
서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식민교육사 및 교육역사사회학, 동아시아근대교육의 비교사회사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식민지 초등 교육의 형성』(교육과학사, 2000), 『근대 동아시아의 학생문화』(서해문집, 2018), 역서로는 야나기 하루오의 『학급의 역사학』(교육을바꾸는책, 2026), 가리야 다케히코의 『대중교육사회의 형성』(학지사, 2023), 고마고메 다케시의 『식민지제국 일본의 문화통합』(공역, 역사비평사, 2008)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