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읽기’ 교육의 정치학

#1394 김승배,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박사과정 2025.11.05
미국 교육계는 ‘읽기 전쟁(Reading Wars)’ 중이다. 1990년대의 포괄적 언어 vs. 파닉스 전쟁 이후, 2010년대 ‘읽기의 과학(Science of Reading)’이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모든 아이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구호 아래에서 미국의 읽기 교육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최근 미국 교육계에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쟁점 중 하나는 이른바 ‘읽기 전쟁(Reading Wars)’이다. 이는 1990년대에도 한 차례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논쟁의 핵심은 ‘포괄적 언어(Whole Language)’와 ‘음성학(Phonics)’이라는 두 상반된 읽기 교육 접근법 간의 대립이었다. 포괄적 언어는 언어를 의미 중심으로 가르치는 교수법으로, 학생들이 실제 문맥 속에서 단어의 의미와 구조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유도하며, 읽기·쓰기·듣기·말하기를 통합적인 언어 경험으로 연결하고자 한다. 반면 음성학은 문자와 소리의 규칙적 대응 관계를 체계적으로 훈련하여 해독 능력(decoding)을 빠르게 습득하게 하는 방법으로, 낱자를 보고 그에 해당하는 소리를 정확히 내는 훈련을 강조한다. 1990년대 논쟁에서는 궁극적으로 음성학 교육이 우세한 방향으로 정리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후 잠잠했던 논쟁은 2010년대 들어 ‘읽기의 과학(Science of Reading)’이라는 새로운 문해 교육 패러다임의 부상과 함께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읽기의 과학’은 읽기 부진의 원인을 교사의 비체계적이고 효과적이지 못한 교수법에서 찾으며, 음소 인식(phonemic awareness)과 문자–소리 대응 관계의 명시적(explicit) 훈련을 중심으로 하는 교수법을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다.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 40개가 넘는 주(州)가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교사 재교육, 교재 표준화, 진단 프로그램 도입 등을 의무화하였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도 관련 예산이 지원되었으며, “모든 아이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Every Child Can Read)”는 슬로건은 미국 교육정책의 보편적 도덕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이 문해력 운동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미시시피 미라클(Mississippi Miracle)’이다. 미시시피주는 2013년 「Literacy-Based Promotion Act(LBPA)」를 제정하고, 학생이 3학년 말까지 읽기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4학년으로 진급시키지 않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조기 진단과 보충 개입이 학교의 의무로 제도화되었고, 그 결과 2013년부터 2019년 사이에 미국 내 전국 학력평가(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al Progress: NAEP) 4학년 읽기 점수가 약 10점 상승하였다. 주 순위 역시 전국 최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도약하면서, 언론은 이를 “과학적 교수법의 성과”로 조명하며 ‘미라클’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후 수많은 주들이 유사한 법률과 정책을 도입하며 이 모델을 따르고 있다(Barnum, 2023).

 

그러나 이 논쟁을 단순히 ‘교수법의 개선’으로 볼 수 있을까? ‘읽기의 과학’은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축소시키고, 교육을 국가적 표준과 시장 논리에 종속시키는 새로운 통제 체제로 기능한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된다. 무엇보다 이 운동의 저변에는 “읽기 능력은 측정 가능하다”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즉, 문해력을 기술(skill)로 환원하고, 그 기술을 효율적으로 전수하는 교사만이 ‘좋은 교사’로 평가받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문해력 저하’와 ‘기초학력 미달 학생’ 문제가 부각되며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부는 「기초학력 보장법」을 근거로 읽기·쓰기·셈하기 중심의 진단과 지원을 강화하고, 인공지능(AI) 기반 학습 진단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과연 아이들의 ‘읽기’를 확장시키는가, 아니면 ‘측정 가능한 읽기만을 강화’하는가를 물을 필요가 있다.

 

 

1. 과학의 이름으로, “읽기 능력은 측정 가능하다”

 

‘읽기의 과학(Science of Reading)’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반복되어온 이른바 ‘읽기 전쟁(Reading Wars)’의 최신 국면이라 할 수 있다. 이 논쟁의 뿌리는 199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포괄적 언어(Whole Language) 접근법, 즉 언어를 전체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방식이 학생들의 문해력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음소–문자 대응을 중시하는 기술 중심의 음성학(파닉스: Phonics) 기반 읽기 교육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읽기의 과학’은 단순한 교수법 논쟁을 넘어서 정책화된 전국적 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수의 주정부가 관련 법률을 제정하며, 교사들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교수법”을 반드시 이수해야만 교단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아칸소(Arkansas)는 2017년 「Right to Read Act」를 통해 교사 면허 유지 조건에 ‘읽기의 과학’ 연수 이수를 포함시켰고, 플로리다(Florida)는 2021년 「Reading Achievement Initiative for Scholastic Excellence(RAISE)」를 출범시켜 파닉스 중심의 ‘정확한 읽기 기술’ 훈련을 의무화했다(Arkansas Department of Education, 2017; Florida Department of Education, 2021). 2024년 기준으로 미국 내 40개 주 이상이 ‘읽기의 과학’ 관련 법령을 도입했고, 이는 교사 양성, 교재 채택, 교육과정 구성, 평가 기준을 포괄하는 전국적 규범 체계로 자리 잡았다(Education Week, 2024).

 

하지만 이러한 법제화는 교사의 전문성 제고보다는 ‘표준화된 교수 절차의 준수’를 강조하는 새로운 기조를 만들어냈다. 교사는 학습자의 언어적 배경이나 문화적 경험보다는, 발음 정확도, 음소 변별력, 단어 해독 속도 등 측정 가능한 기술 지표에 따라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이로 인해 교실은 더 이상 해석과 탐구의 공간이 아닌, 측정과 교정의 실험실로 재편되고 있다. 교사는 학생의 언어적 맥락과 이해 과정을 관찰하고 해석하기보다는, 플랫폼이 요구하는 루브릭과 수치에 따라 성취도를 기록하는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

 

한 초등학교 교사의 말은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아이들의 표정이나 맥락을 읽기보다 정답지를 읽고 있어요.
아이가 왜 이해하지 못했는지보다는, 어느 음소에서 틀렸는지를 기록하죠.”

 

‘읽기의 과학’은 “학생의 읽기 부진을 구조적으로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교사의 실천을 데이터 생산의 루틴으로 전환시킨다. 교실은 아이의 읽기 경험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해석하는 공간이 아니라, 오류를 측정하고 수정하는 표준화된 실험실이 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의 사회적·정서적 맥락을 고려할 여유를 잃게 되고, 아이들의 언어 경험은 오류 데이터를 기록하기 위한 항목으로 환원된다. 결국 학생은 ‘읽는 존재’가 아니라, ‘읽기 능력치를 개선해야 하는 객체’로 규정되며, “읽기 능력은 측정 가능하다”는 전제는 곧 “읽기의 본래 의미, 즉 이해하고, 해석하며, 사유하는 인간적 행위”가 점차 수치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2. ‘기초학력’ 담론의 정치학 – 누구를 위한 과학인가

 

‘읽기의 과학(Science of Reading)’을 특히 빠르게 확산시킨 주체는 다름 아닌 정치권이었다. ‘문해력 위기(literacy crisis)’를 선거 의제로 전면화하면서, “모든 아이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Every Child Can Read)”는 구호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측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공통 언어가 되었다. 이 구호는 겉으로는 교육의 평등을 위한 도덕적 호소처럼 들리지만, 그 내부에서는 책임 전가의 정치학이 작동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미시시피(Mississippi)의 2013년 「Literacy-Based Promotion Act」이다. 이 법이 시행된 이후, 3학년 학생 중 20% 이상이 ‘읽기 미달’ 판정을 받고 상급 학년 진급이 유예되었다. 이 제도의 핵심 논리는, ‘학생이 읽기를 배우지 못했다면, 그것은 교사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개인화된 책임 구조이다. 읽기 부진의 원인을 빈곤, 가정환경, 지역 간 교육격차와 같은 구조적 요인으로 파악하기보다, 교사의 역량이나 책무성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는 행정 용어는 곧 도덕적 명령으로 전환된다. 교사는 “모든 아이를 읽게 해야 한다”는 당위적 규범을 내면화하고, 학생은 ‘정상적인 학습 곡선’을 따라야 하는 규범적 존재로 재구성된다. 나아가, 기초학력은 국가 간·지역 간 경쟁의 수단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각 주정부는 문해력 점수 상승을 교육정책의 성공 지표로 제시하고, 언론은 점수 그래프를 “교육 혁신의 증거”로 포장한다. 숫자는 교육 성과를 입증하는 객관적 지표로 기능하기보다는, 정책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상징 자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화는 한국의 맥락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기초학력 미달 3%’라는 수치는 이미 정치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미달률을 줄이겠다”는 공약은 학교 평가 기준과 교원 성과급, 교육감 선거의 주요 항목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이 수치는 학력 격차 해소보다는 정책 성과의 ‘보이기’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기초학력 보장’이라는 언어는 평등을 지향하는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실제로는 교육적 책임을 학생과 교사 개인에게 전가하고, 학력 불평등의 사회적 원인을 은폐하는 정치적 장치로 기능한다. ‘읽기의 과학’이 제시하는 ‘보편적 접근’은 사실상 사회적 차이를 제거한 평균의 정치학이며, 그 속에서 빈곤층, 이주가정, 장애학생과 같은 특정 집단은 ‘결손 집단’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3. 읽기 산업의 확장 – 교재, 진단, 훈련의 시장

 

‘읽기 전쟁’이 격화될수록 그 틈새에서 거대한 교육산업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읽기의 과학’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민간 기업인 Amplify는 이 시장의 중심에 있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CEO가 이끄는 이 회사는 ‘mCLASS’, ‘Core Knowledge Language Arts(CKLA)’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미국 40여 개 주에 납품하고 있다. 각 주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채택하지 않을 경우 평가 기준 충족에 어려움을 겪게 되며, 이에 따라 학교는 프로그램 도입을 사실상 강제당한다. 교사들은 기업이 설계한 상세 매뉴얼에 따라 수업을 운영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율성과 전문성은 점점 위축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자료”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실제 검증의 근거는 다수 자체 보고서나 기업 소속 학자의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 즉, ‘과학적’이라는 표현은 학술적 신뢰보다는 상업적 신뢰를 부여하기 위한 포장지로 기능한다. 또 다른 예로, Lexia Learning은 온라인 기반 플랫폼을 통해 학생의 읽기 진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정확한 음소 인식률”을 시각화한 그래프로 제공한다. 학교는 이 데이터를 주정부의 행정 시스템에 업로드하며, 이는 곧 주 차원의 성과 보고서 작성에도 반영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교사는 데이터를 관리하는 행정 담당자로, 학부모는 자녀의 ‘읽기 점수 리포트’를 구매하는 소비자로 재정의된다.

 

이처럼 읽기 교육의 시장화는 학습을 공동의 경험이나 교육적 관계가 아닌, 표준화된 절차와 데이터 관리로 전환시킨다. ‘과학적 근거’라는 표현은 이제 ‘상업적 표준’의 또 다른 이름이 되며, 교육 내용은 더 이상 교실에서 창의적으로 구성되지 않고, 기업의 서버에서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 교사의 전문적 판단은 ‘비표준적 실행’으로 간주되어 위험요소로 분류되고, 이탈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손실은 교사의 자율적 해석 권한이다. 교사는 더 이상 학생의 언어와 텍스트를 함께 읽으며 의미를 구성해가는 동반자가 아니라, 시스템이 제시한 데이터를 검토하고 보고하는 감시자 혹은 집행자로 전락한다. 그리고 학생은 자율적 학습의 주체가 아닌, 플랫폼에 의해 측정·분류·교정되어야 할 ‘데이터의 객체’로 전환된다. 결국, 읽기의 문제는 교육과 산업, 공적 책임과 시장 논리, 해석의 공동체와 표준화된 절차 사이의 긴장으로 확장된다.

 

 

4. 읽기의 위기가 아니라, 상상력의 위기

 

‘기초학력’ 담론은 언제나 “모든 아이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 문장 자체는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명제를 어디까지 확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의 정책은 “모든 아이가 시험 문제를 읽고 정답을 고를 수 있게 하자”는 수준에 멈춰 있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모든 아이가 세상을 스스로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게 하자”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의 ‘읽기 위기’는 실상 ‘상상력의 위기’에 가깝다. 교육이 점차 기술 중심으로 재편될수록, 아이들의 언어는 타인의 정답을 복제하는 도구로 변질된다. 교사의 전문성은 데이터에 종속되고, 학생의 문해력은 정해진 루브릭에 따라 계량된다. 읽기는 더 이상 세계를 이해하고 질문하는 창이 아니라, 문제 해결 도구로만 기능한다.

 

Braverman(1974)은 산업화가 노동의 숙련을 분절화(deskilling)함으로써 노동자를 생산 과정의 관리 가능한 부속품으로 전락시켰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교육의 자동화와 표준화는 이와 유사한 탈숙련화 과정을 교사에게 강요하고 있다. 교사는 자신의 판단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기보다, 미리 정해진 스크립트와 매뉴얼에 따라 수업을 수행하는 행정적 실무자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New Taylorism’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즉, 산업시대의 ‘효율적 노동 분업’이 학교 현장으로 이식되면서, 교사의 노동은 세분화·표준화되고, ‘성과(performance)’와 ‘책임(accountability)’의 언어로 평가받게 되었다(Apple, 1986; Ball, 2003). 교육 행위의 의미는 효율성과 측정 가능성으로 재정의되고, 교사의 전문적 판단은 데이터 관리와 루브릭 점검으로 대체된다. 그 결과 교사는 더 이상 교육의 지적 생산자(intellectual producer)가 아니라, 국가가 설계한 절차를 정확히 집행하는 행정 기술자(technical executor)로 규정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은 점차 자신의 언어와 목소리를 잃어간다. 교육이 ‘효율적 수행’의 논리로 운영될수록,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인간적 상호작용에서 관리 가능한 데이터의 관계로 축소된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의 힘은 측정 불가능한 순간에 발현된다. 아이가 한 문장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떠올리는 생각, 자신이 쓴 문장을 부끄러워하며 고쳐 쓰는 과정. 이 모든 것이야말로 읽기라는 인간적 행위의 본질이다. 언어는 효율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세계를 해석하는 도구이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읽기 전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반사경이 된다. ‘기초학력’이라는 말이 실은 누구의 기준에서 정의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교사와 학생 사이의 교육적 관계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교육을 숫자와 기술의 언어에 가두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아이가 읽을 수 있게 하자.” 이 문장이 진정한 교육의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뒤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덧붙여야 한다.

 

“모든 아이가 스스로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게 하자.”

 

참고문헌

 

• Apple, M. (1986). Teachers and Texts: A Political Economy of Class and Gender Relations in Education.
• Arkansas Department of Education. (2017). Right to Read Act.

https://dese.ade.arkansas.gov/Offices/educator-effectiveness/educator-preparation-programs-in-arkansas/science-of-reading-and-educator-preparation

• Ball, S. J. (2003). The Teacher’s Soul and the Terrors of Performativity. Journal of Education Policy, 18(2), 215–228.
• Barnum, M. (2023). Does more money help schools? Most studies say yes, according to a new summary.Chalkbeat.

https://www.chalkbeat.org/2023/5/16/23724474/school-funding-research-studies-hanushek-does-money-matter/

• Braverman, H. (1974). Labor and Monopoly Capital: The Degradation of Work in the Twentieth Century.
• Education Week. (2024, January 25). The “Science of Reading” in 2024: 5 State Initiatives to Watch. Education Week.
https://www.edweek.org/teaching-learning/the-science-of-reading-in-2024-5-state-initiatives-to-watch/2024/01
• Florida Department of Education. (2021). Reading Achievement Initiative for Scholastic Excellence (RAISE) Act.
https://www.fldoe.org/academics/standards/just-read-fl/tutoring.stml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 필자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기존의 PDF 파일을 제공하던 서비스를 중단합니다. 대신 아래의 ‘인쇄(Print)하기’ 클릭한 후, ‘Ctrl + P’를 누르시면 칼럼 내용을 인쇄할 수 있습니다.

🖨️ 인쇄(Print)하기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박사과정 김승배

현재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교육 정책과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교육 경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 그리고 향후 진로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특히, 대학 입시 정책이 고등학교 재학생들의 학업 경로와 학교생활 전반에 어떠한 방향성을 부여하는지에 주목하고 있으며, 아울러 개별 학교들이 이러한 정책적 맥락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행에 옮기는지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단순한 정책 수용의 장이 아니라, 정책을 재해석하고 학생 경험을 매개하는 주체로서 기능함에 주목하고 있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댓글 2

  1. 권오현 수정 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이성희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에 대해 공감합니다. 최근 우리 나라 일부 지역에서 세인트존스 대학의 GB프로그램의 읽기 방식을 중고등학교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전글 최신 교육연구 30선(제7회) – “시험 효과(testing effect)” 다음글 고교학점제, 단기 처방으로 끝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