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절대평가는 가능한가?
| 교육은 복잡계이기에 정부 정책 역시 다축 구조 속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내신 절대평가에 대한 해답도 다축 구조 속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모색해야 하며, 그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
내신 절대평가에 찬성한다. 내신 경쟁을 완화하고 학생 중심 수업과 평가로 전환하는 과정을 촉진할 수 있으므로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1) 수시/정시가 통합된 새로운 대입전형, 2) 내신 절대평가, 3) 수능 응시영역 축소(인문, 수학, 과학)를 새로운 대입제도 설계의 출발점으로 하여, 여기에 교원 양성, 임용, 재교육, 승진 제도, 중고 통합학교, 온라인학교, 공유학교, 교육청 소속 교사, 국가 돌봄 체제 등 다른 교육 정책들을 엮어서 학교 교육과 대학입시를 동반 개혁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학교 교육을 통해 다양하고 공정한 성장 경로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 세 가지 대입 세트가 동반 개혁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다. 학교 교육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대입제도 개혁은 학부모에게 새로운 사교육비 부담만 안겨주고 학교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대입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학교 교육개혁은 성과를 낼 수 없는 탁상공론에 그치며,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린다. 이 세 가지 가운데 내신 절대평가에 대한 요구가 이번 대선 과정과 새 정부 출범 이후에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만든 원안(1학년 공통과목 상대평가, 2~3학년 선택과목 절대평가 5등급)으로 돌아가 당장 내년부터 적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은 선택과목부터 이미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병기(倂記)하므로 상대평가만 삭제하면 된다. 정부가 신속하게 결정하여 추진한다면 법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 듯하다. 상대평가를 고려해 고등학교를 선택한 고1 학부모의 신뢰 이익을 침해할 개연성은 있지만, 이로 인한 불이익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년도 절대평가 전환이 법적 다툼으로 가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내신 절대평가는 내년도부터 당장 시행할 수 있을까?
학부모의 사교육비 고통,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의 고통은 모두가 알고 있는 뿌리 깊은 문제이고 너무나 심각하다. 매년 늘어만 가는 사교육비, 자살률, 자퇴율, 학업 포기자 등 고통과 위험의 지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않았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사교육비와 과도한 경쟁의 고통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이라는 복잡계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는 여러 정책의 방향성과 추진 동력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역대 정부는 겨우 한두 가지 정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해왔기 때문이다. 사교육 영업시간 규제, 학원 세무조사, EBS 교재 수능 연계,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사업, 킬러문항 배제 등이 사교육 대책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교육과정과 내신 평가, 내신과 수능, 선택형 교육과정과 교사 수, 학교 교육과정과 학교 밖 교육과정처럼 서로 직접 영향을 주고받는 정책들 사이의 방향성이 충돌하면서,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엉켜버려 꼼짝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사교육비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경쟁도 더욱 치열해진다. 결국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학교 교육은 점점 신뢰를 잃고, 학부모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쓰며 각자도생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 학교 교육을 통한 사회적 양극화 해소,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 학생 맞춤형 성장은 한낱 정치적 구호에 그치고 있다. 우리가 짊어진 사교육비와 경쟁의 고통은 한두 가지 정책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여러 형태의 원인과 결과로 엉켜 있는 복잡계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정책 세트가 필요하고, 그 정책 세트는 우리가 매우 피곤해하는 단어인 ‘교육개혁’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정부 정책의 작동 구조를 보여주는 아래의 세 모형으로 본다면, C. 다축 구조가 현실이며, 이 구조 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A. 양축 구조 혹은 B. 삼축 구조에 맞춰 정책을 내놓는다.

간단해 보이는 모형 A는 양축 구조로서, 각 축은 서로 다른 힘과 방향성을 갖는다. 왼쪽 축과 오른쪽 축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톱니바퀴는 잘 돌아가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힘보다는 방향성이 성패를 결정한다. 고1 학생에게 시행되는 2022 고교학점제 교육과정과 상대평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례에 해당한다. 그 교육과정과 상대평가는 양립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빨리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둘은 서로 부딪혀서 결국 힘이 더 센 상대평가가 교육과정을 거꾸로 돌리게 한다. 이를 다시 표현하면, 학생들은 대학입시에 유리하도록 이수자 수가 많은 과목으로 몰리게 되고, 정작 학생이 원하거나 필요한 과목은 수강하기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모두가 같은 과목을 들어야 유리해지는 구조가 된다. 수능으로 대학에 진학할 학생에게는 수능 출제 영역에 해당하는 과목이 아니면 이수하되 공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취지를 교육부가 스스로 망가뜨린 셈이다.
모형 B에는 세 개의 축이 있고, 여기서도 힘이 아니라 방향성이 중요하다. 이 모형의 세 축을 교육과정(과목 5등급 상대평가 내신), (수시와 정시로 구분된) 대입 체제, (표준점수와 등급을 주는) 공통 수능으로 설정하면, 이 모형에서도 톱니바퀴는 움직이지 않는다. 세 축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힘 싸움을 한다. 아마도 수능이 가장 큰 힘(변별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자퇴생과 N수생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내신과 수능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게다가 학생 선발의 타당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신, 학생부, 수능 모두 전형 요소로서 결함을 갖고 있으므로, 상위권 대학은 자체 평가(면접 혹은 논술)를 강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입시는 더욱 복잡해진다. 특히 대학이 새로운 면접 방식을 도입하면 입시컨설팅이 성행하고 사교육비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지난 정부 교육부가 문재인 정부의 내신 체제를 5등급 상대평가로 수정하면서 내신 경쟁이 줄어들 것이라 했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특히 최상위권에서는 1등급 차이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오히려 내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많은 고1 학생과 학부모는 한 달 후 1학기 성적표를 받고 나서 불면의 열대야를 보내게 될 것이다. 1학년 때 배우는 통합사회/통합과학에서 수능이 출제된다는 사실도 교육과정과 충돌하는 또 다른 사례다. 고3이 되었을 때, 학생은 3학년 수업에 충실할까, 아니면 수능 준비를 위해 1학년 때 이수한 과목을 다시 공부할까. 이 질문이야말로 톱니바퀴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수능의 힘이 더 크다는 현실이 명확해진다. 결국 교육과정이라는 톱니는 멈추고, 하나의 톱니가 멈추었으므로 수능과 대학입시라는 다른 톱니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모형 C는 그야말로 여러 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이다. 여기서 두 개의 질문을 던져 보자.
1. 어떻게 하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을까.
2. 어떻게 하면 과도한 경쟁을 줄일 수 있을까.
이 문제의 답을 찾으려면 어떤 모형이 적합할까. 당연히 모형 C를 기준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모형 C에서 정말로 진지하게 이 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해결책은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5년 정권에서는 더욱 불가능하고, 아무 생산성 없는 국가교육위원회 체제도 쓸모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역대 정부처럼 모형 A나 B에 타협하고, 다음 정부로 문제를 떠넘기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정말로 이 두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부 거버넌스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공론화가 아니라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 그리고 장관과 국가교육위원장의 철학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가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내신 절대평가는 내년도부터 당장 시행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내신 절대평가 역시 모형 C에서 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내신 절대평가의 개념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듯하다.
1. [수행평가(40% 이상) + 지필고사]를 절대평가 5등급으로 표기
2. [지필식(+구술) 논·서술형평가]를 절대평가 5등급으로 표기
그리고 내신 절대평가는 반드시 수능 절대평가와 연동되어야 하므로, 수능 절대평가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1. [선다형 문항 고사]를 절대평가 5등급으로 표기
2. 영역별 [선다형 문항 + 논·서술형평가]를 절대평가 5등급으로 표기:
예) 수학(선다형), 과학(선다형), 인문(논·서술형, 기존 국어+사회+한국사)
3. 영역별 [논·서술형평가]를 절대평가 5등급으로 표기
내신 절대평가 논의는 반드시 수능 절대평가와 하나의 세트로 진행되어야 하고, 특정 대학입시 학년도에 맞춰서 동시에 적용되어야만 한다. 적용 시점으로 본다면 내신과 수능 사이에 최소 3년의 시간적 유예가 존재한다. 올해 결정하여 발표하면 4년의 준비 기간이 확보된다. 현재 중2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2027학년도부터 적용하여 2030학년도 대입부터 실행한다면 <내신 1번 + 수능 1번> 혹은 <내신 1번 + 수능 2번>이 가능하다. 만약 현재 초6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2029학년도부터 적용하여 2032학년도 대입부터 실행한다면 <내신 2번 + 수능 2번>이 가능하다. 수능 3번이 가능한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절대평가를 빨리 도입하려면, 내신 1번 [수행평가(40% 이상) + 지필고사]를 선택해야 한다. 내신 절대평가를 모형 A 혹은 모형 B를 염두에 두고 시행하면 그렇게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은 즉각 격렬한 반대에 맞닥뜨린다. 절대평가 도입을 위한 기본적인 정책 세트는 특목·자사고 유리를 해소하기 위한 고교체제 개편, 지역 간 격차 해소, 평가 신뢰성 및 교사의 수업-평가 역량 확보, 수능 절대평가 전환, 수시와 정시가 통합된 새로운 대입 체제 구축이다. 이것들 각각을 절대평가 도입을 위한 <1선의 축>이라고 한다면, <1선의 축>과 연결된 <2선의 축>들도 방향성을 조정하지 않으면 학교 현장에서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사교육도 불안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2선의 축>으로는 교원 양성 과정 재구조화와 교대/사대 구조조정, 학습과학 및 수업역량 중심의 교사 임용 방식 개편, 다수에 의한 다단계 평가 체계 구축, 교원 수급, AI 평가 도입 등이 있다. 그리고 <2선의 축>은 다시 <3선의 축>들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모형 A와 B에 근거한 정책 결정, 즉 내신과 수능만 결정하는 방식은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
한 가지 사례를 가정해 보자. 외고, 국제고, 자사고가 유지되고 있는데 당장 내년부터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이들 학교의 내신 불이익이 사라지면서 학생의 선호도는 높아진다. 게다가 변별력이 내신보다 압도적으로 커진 수능 대비 수업이 학교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되고, 절대평가에 맞춰진 학생 주도의 맞춤형 수업은 문서로만 존재하게 된다. 과목 선택도 수능에 맞춰서 하게 되므로 교육과정은 무의미해진다. 대학입시에서는 특목/자사고와 강남을 비롯한 사교육 학군지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수능이 대학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전형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수능 경쟁에서 뒤처지는 일반고 특히 강북과 지방 학교는 결과적으로 불리해진다. 현재 조건에서 내신 절대평가는 특목/자사고를 유리하게 해주며, 거의 모든 학교에서 교육과정은 파행된다. 이런 상황에서 모형 A에 따라 정부가 모든 외고, 국제고,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발표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학부모들이 특목/자사고를 더욱 선호하게 되는 현실에서 특정 지역 교육감들이 폐지에 반대하거나 “유보적” 혹은 “신중한” 입장이면 정부의 결정은 사실상 실효성을 잃는다. 더구나 폐지까지 가는 절차의 정당성 확보 및 법률에 따른 폐지 결정까지 소요될 시간을 고려할 때 3년 내 모든 특목/자사고를 없애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국회에서 특목/자사고 폐지를 위한 법률 제정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법률적 타당성을 헌법재판소에서 판단 받게 된다. 특목/자사고의 존재만으로도 내년도 내신 절대평가 전환은 불가하다. 따라서 특목/자사고의 존재를 전제로 내신 절대평가 전환을 위한 보완책을 찾아야 하며, 이는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모형 C를 중심에 두고, 여러 정책의 방향과 일정을 조합하여야 절대평가를 실현할 수 있다. 모형 C의 1선, 2선, 3선에 해당하는 여러 축을 서너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실행 계획을 세워서, 올해 가을에는 대학입시와 학교 교육의 동반 개혁을 위한 청사진이 발표되어야 다음의 일정대로 절대평가를 실현할 수 있다. 내신과 수능 절대평가 체제는 2030년 대학입시(현 중 2)에서 시작하고, 2032년 대학입시(현 초 6)에서 완성하는 일정이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게 절대평가 체제를 도입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 일정에 맞춰 내신과 수능의 조합을 만들고, 올해 내 자율과 분권에 기초한 정부 거버넌스 개편을 실행하며(http://21erick.org/column/15447 참조), 많은 반대를 무릅쓰더라도 학교 교육개혁을 실행할 의지가 현 정부에게 있다면 가능하다. 이 개혁의 동력은 국가교육위원회법 전면 개정 및 인적 개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당장 적용할 조치도 필요하다. 지금 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교육과정, 대학입시, 수능의 충돌을 해소하는 가장 단기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수시모집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이다. 이 결정은 고 1부터 적용할 수 있다. 2028학년도 입시에서 수시모집에서 수능이 배제된다면, 학교는 교육과정 운용에 숨통이 트이게 되고, 사교육비도 아주 조금은 줄어들게 된다. 앞으로의 변화는 여기서부터 만들어진다. 새로 임명될 교육부 장관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국회와 대통령이 반드시 짊어져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