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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⑨] 땡큐, 매슬로(Maslow)!

#1171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일본 간사이대학교 교수 2024.12.18
학습과학은 뇌가 학습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교수학습 실천과 연결합니다.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교육계에서 학습과학을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 및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그 첫 시리즈로 쉽고 재밌는 ‘켈리 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성인교육 접근법 시도

 

지금 나는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결혼식에 매슬로라는 사람 덕분에 가게 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오사카(大阪)의 한 여자대학교에서 영어 회화를 가르치던 시절에 있었던 실화이다. 그 수업은 학생이 열여덟 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성인교육(adult education)을 연구하던 나는 여러 가지 혁신적인 교육 기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성인교육의 핵심 개념은 성인은 자기 주도적이며, 통제받는 것을 싫어하고, 삶과 밀접한 학습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은 교사 주도적인 일본의 교육 환경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성인이 되기 직전의 학생인 만큼 성인교육 접근법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열여덟 명으로 구성된 수업을 ‘모의 성인교육 환경’으로 바꿔 보기로 했다. 먼저 학생들이 스스로 수업 규칙을 정하고 사용할 자료를 직접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 학생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상상하면서 그들을 대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수업에 지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웃으며 이미 수업 시간의 절반이 지났지만 참석하려고 노력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문간에 얼어붙은 채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내게 뭔가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듯한 의심스런 표정이었다. 어쨌든 수업은 밝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다만 한 가지, 아니 정확히는 세 가지 문제가 있었다. 쿠미(Kumi), 사키(Saki), 아이(Ai)였다.

 

 

문제행동의 진짜 이유

 

이 세 학생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수업에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쿠미는 항상 뒷자리의 사키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정중하게 60초 동안만 집중해 달라고 부탁하면 고개를 끄덕였지만 채 10초가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서곤 했다. 이 상황이 내겐 큰 부담이고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아이였다. 그녀는 수업을 전혀 방해하지 않고, 그저 슬픔이 담긴 듯한 갈색의 그 큰 눈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내가 연습 과제를 시키면 그녀는 연필을 잠시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멍하니 앞만 응시했다. 아이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의 표상이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두 사람 좀 조용히 해!”라고 큰 소리를 내뱉은 순간, 내가 그동안 그토록 공들여 왔던 성인교육 분위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느꼈다. 낙심한 나는 수업을 멈추고 사과했다. 그리고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에게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1)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2) 왜 학교에 오나요?
(3) 졸업 후에 무슨 일을 하고 싶나요?
(4) 가족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학생들의 짧은 답변을 통해 나는 그들의 세상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모든 학생이 “친구”를 최우선으로 꼽았고, 뒤를 이어 “아르바이트, 가족, 남자친구, 동아리” 등이 이어졌으며, 놀랍게도 “학교”라고 답한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마찬가지로, 학교에 오는 주된 이유도 공부가 아닌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직업에 대해서는 15명이 장래 희망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머지 세 명은 “아무 생각이 없다.”라고 썼는데, 이 세 명이 바로 쿠미, 사키, 아이였다. 그리고 이 대답은 모종의 경고 신호로 느껴졌다.

 

 

매슬로 이론과 적용

 

여기서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와 그의 심리학에 대한 공헌이 등장한다. 매슬로가 제시한 5단계 욕구위계론(Hierarchy of Needs)1(1943)에 “자율성(autonomy)”을 추가한다면, 특히 문제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Deci & Ryan, 1980). 매슬로는 욕구에도 위계가 있다며 가장 먼저 하위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고 그 다음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는 순서를 따른다고 주장한다. 하위 단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상위 수준의 욕구는 억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 학생이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은 하위 단계의 문제 해결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위 단계의 욕구, 즉 공부와 같은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의 욕구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 하위 단계의 문제란 과연 무엇일까?

 

답은 학생들이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쓴 글에서 나왔다. 바로 그 세 학생, 쿠미, 사키, 아이 모두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요구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었으며, 이는 학교와 아르바이트 등에서 이미 억압된 자율성의 결핍을 더욱 심화시켰다.

 

자율성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 선택하려는 욕구이다. 이 욕구는 세 학생, 쿠미, 사키, 아이와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와 성인기 초기에 급격히 커진다.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보자. 이 학생들은 이른 아침부터 학교에 가야 하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수업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그곳에서는 상사의 지시를 따른다. 집에 돌아오면 엄격한 부모가 “숙제해라, 전화 좀 그만 해라, 앉는 자세가 그게 뭐냐?” 등등 장황하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자율성을 경험할 여지가 있을까? 쿠미와 사키처럼 수업 중에 대화를 하거나 아이처럼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는 행동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하루 종일 이어지는 통제를 견디며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우리가 흔히 나쁘다고 여기는 행동이 사실은 절망의 표현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즉, 이것은 도덕성이나 가정교육, 상식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둘째, 매슬로의 이론에 따르면 학습자가 하위 단계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영어를 배우는 것, 즉 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의 행위에 집중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내가 화를 내서 그들을 침묵시킨다면 그들은 이를 자신의 안전에 대한 위협 상황으로 인식할 뿐이다. (욕구 피라미드의 더 하위 단계로 내려갈 것이다) 이는 그들을 학습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학생들까지 위협을 느끼게 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명확했다. 아예 그들을 수업에서 배제하든지, 그냥 참고 넘기든지, 아니면 그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세 번째를 선택했다.

 

 

자율성 회복을 위한 실험적 시도

 

매슬로의 욕구위계론을 토대로 나는 해결책을 하나 생각해 냈는데 그 해결책은 놀랄 만큼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이 학생들은 자율성에 대한 욕구 때문에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 막힌 상태였다. 그런 상태로는 학습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자율성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수업 시간마다 남아서 영어 회화 연습을 할지, 아니면 내 사무실로 가서 자유롭게 대화할지를 선택하게 했다. 결국, 또래들과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과 탐구 활동만이 도덕적 성장과 자율성을 키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영어로 말하라고는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대화 내용은 기록하게 했다.

 

쿠미, 사키, 아이는 내 수업이 끝날 때마다 연구실에 찾아와 대화를 나눴고, 정서적으로 더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대화 기록을 보면 인간관계, 고민, 관점 등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다. 이는 도덕적 성장을 촉진하는 데 완벽한 방법이었고, 그들은 점차 이전보다 더 행복해 보이기 시작했다. 성적을 매길 때, 나는 그들이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율성을 회복하고, 정서적 안정을 되찾아 삶에서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합격시켰다.

 

 

관계의 변화와 학습의 본질에 대한 통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종강 후, 세 학생이 감사의 선물을 들고 내 집에 찾아왔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선물과 함께 건넨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화난 상태였지만 왜 그런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교수님이 그 이유를 알려주셨고, 이제는 이해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1년간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를 위해 환영 파티를 열어준 사람도 바로 그 세 학생이었다. 그들은 이제 소녀가 아니었고, 진정한 성인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그 후에도 몇 번 만남을 가졌다. 아, 참! 쿠미는 마지막 학기에 다시 내 수업을 들었는데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진지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영어 학습자로 변해 있었다!…

 

아!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거의 변화가 없었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수업 시간에 다른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세 명 모두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는 기업에 취직했고, 아마 그곳에서 영어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몇 년 후 또 다른 놀라운 일이 생겼다. 쿠미가 나를 결혼식에 초대한 것이다.

 

내가 세 학생에 대해 정규 커리큘럼과 평가 기준을 적용하는 대신 자율성을 기르고 심리적 안정을 우선시한 행동이 옳았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어쩌면 학교와의 약속을 깼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이 들 때마다 나는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개입 방식을 선택하도록 도와준 매슬로의 욕구위계론을 다시 떠올린다. 매슬로는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인간적이고 옳은 행동이라고 말해준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마 쿠미, 사키, 아이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 확신한다.

 

 

이 칼럼은 코리아테솔(Korea TESOL)의 ELT 잡지 <The English Connection>(Spring 2021 Volume 25, Issue 1)에 영문으로 실린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박사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본은 https://koreatesol.org/content/english-connection-tec에서, 더 긴 버전은 <MindBrainEd Think Tanks>(mindbraine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ference>

 

• Deci, E. L. & Ryan, R. M. (1980). Self-determination theory: When mind mediates behavior. The Journal of Mind and Behavior, 33-43.

• Maslow, A. H. (1943). A theory of human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 50(4), 370-396. https://doi.org/10.1037/h005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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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매슬로의 욕구위계론: 1단계(생리적 욕구) 2단계(안전의 욕구) 3단계(소속과 애정의 욕구) 4단계(존경의 욕구) 5단계(자아실현의 욕구)
일본 간사이대학교 교수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커티스 켈리(Curtis Kelly)는 교육학 박사이며, 일본 간사이대학교(Kansai University) 영어과 교수이다. 인생 사명은 "교실에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인기 있는 강연자이자 작가로서 500회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35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Significant Scribbles(중요한 낙서)』(Longman), 『Active Skills for Communication(능동적 의사소통 기술)』(Cengage), 『Writing from Within(내면으로부터의 글쓰기)』(Cambridge) 등이 있다. 뇌과학과 언어교육을 연결하는 무료 잡지 <MindBrainEd Think Tanks>의 구독을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ctskel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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