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팀 잉골드의 어린이 세계와 고유의 탐험 감각

#1165 이연선, 부산대학교 교수 2024.12.17
“본 고에서는 잉골드의 이론을 통해 어린이의 세계 탐험 방식과 성인과의 차이를 살펴보고, 어린이만의 고유의 탐험 방식과 그 독특한 감각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유아교육이 성인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어린이의 세계를 존중하고 확장하는 교육으로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본문 중에서]

 

 

최근 유아교육 분야에서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들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사회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어린이가 세계와 맺는 깊고도 유기적인 관계를 조명하며, 이를 통해 어린이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힌다. 본 고에서는 잉골드의 이론을 통해 어린이의 세계 탐험 방식과 성인과의 차이를 살펴보고, 어린이만의 고유의 탐험 방식과 그 독특한 감각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유아교육이 성인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어린이의 세계를 존중하고 확장하는 교육으로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1. 어린이와 성인의 다른 탐험 감각: 구심력과 원심력

 

어른의 탐험 감각과 어린이의 탐험 감각은 정반대인 것 같다. 어린이의 탐험 감각은 구심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어른의 탐험 감각은 원심력으로 작동한다. 어린이에게 지각과 상상은 하나인데 이는 그들이 사실이 아닌 환상의 세계에서 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그만큼 사물의(사물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몰두한다는 뜻이다. 모든 사물과 사람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존재 방식을 지니고 있고, 어린이 탐험가는 자기 이야기를 다른 사물의 이야기에 엮으며 조응의 관계를 맺어간다.

 

(Ingold, 2024, p.108)

 

잉골드는 어린이와 성인의 탐험 방식을 각각 구심력(求心力)과 원심력(遠心力)으로 설명한다. 이와 같은 해석은 두 집단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구심력은 중심으로 향하는 힘이다. 이는 사물을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사물의 운동에 직접 관여하며 영향을 미친다. 어린이의 탐험은 사물로 향해 있기 때문에 주변 세계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는 지각(perception)과 상상(imagination)을 분리하지 않고, 사물의 ‘되어감(becoming)’에 몰입한다.

 

어린이의 탐험은 단순히 사물을 관찰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와 사물의 이야기를 엮어가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물이나 현상을 미리 규정된 틀 안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사물의 가능성을 직접 경험하는 존재론적 실천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모래놀이를 할 때 모래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바람과 손, 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형된다. 어린이는 이러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놀이 자체를 생성적이고 관계적인 탐험으로 만든다.

 

반면 성인의 탐험 방식은 원심력적이다. 원심력은 중심에서 멀어지는 힘으로, 성인은 세계를 이미 익숙하고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탐험과 발견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성인은 세계를 객관화하고 분석하며, 기존 지식의 틀 안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어린이의 몰입적이고 조응적인 태도와는 달리, 성인의 탐험은 결과 중심적이고 도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성인은 모래놀이를 결과 중심적으로 이해하며 모래성을 더 정교하게 잘 만들었는지 평가하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처럼 어린이는 사물과 함께 되어가는 존재론적 탐험을 통해 세계와 살아있는 관계를 맺는 반면, 성인은 결과와 고정된 해석에 집중함으로써 세계와의 조응적 관계를 상실한다.

 

 

2. 어린이와 성인이 세계를 마주하는 방식의 구체적 차이들

 

1) 어린이는 사물, 인간, 자연을 포함한 세계를 고정된 결과물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과정으로 경험한다. 어린이는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차이와 가능성을 감지하며 세계의 생성적 흐름에 몰입한다.

 

어린이가 모래놀이를 하는 모습을 교사는 ‘모래놀이’라고 명명하며 어린이의 경험을 하나로 고정시키려 하지만, 어린이가 모래성을 쌓고 놀이할 때, 그 과정에서 모래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질로 다가온다. “모래성을 만들자”하고 목표를 갖고 시작하기도 하지만, 바람이 불어 모래가 흩날리거나 모래성이 무너져도 어린이들은 이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모래성이라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 변형되는 과정 그 자체가 놀이의 핵심이 된다. 어린이는 모래가 자신의 손, 물, 바람과 만나 변형되는 모습에 반응하며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거나 길을 만든다. 어린이는 이처럼 세계를 고정된 결과물이 아닌 생성적 흐름으로 경험한다.

 

반면 성인은 세계를 이미 완성된 고정된 상태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익숙한 상황에 몰입하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성인은 모래성을 쌓는 행위를 목적 없는 시간 낭비로 여기거나 “어떤 성을 만들어 볼까?”와 같이 목표를 설정하고 효율적으로 놀이를 관리하고 분석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또한 모래성이 바람에 무너지면 이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하거나, 바람과의 만남을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닌 방해 요소로 간주하여 놀이를 중단시키기도 한다.

 

이와 달리 어린이는 모래~바람~손~물의 흐름 속에서 변화와 생성의 과정을 경험하며 놀이에 몰두한다. 어린이에게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며, 결과물로 고정시키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교사는 이와 같은 어린이의 탐험적 감각과 몰입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놀이를 “모래놀이”라고 규정하거나 결과물 중심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어린이가 자유롭게 변화하는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사물과의 내재적 관계를 탐구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은 교사가 익숙함에서 벗어나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계를 함께 경험할 때 가능하다.

 

어린이에게 친숙한 세계란 무궁무진한 발견과 탐험의 원천이지만 어른은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는 완전히 간파했을 뿐 아니라 이미 다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른이 상상을 현실로 바꾸려면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의 경계를 넘어가야 한다.

 

(Ingold, 2024, p.109)

 

2) 어린이는 지각과 상상이 하나로 결합되어 세계의 되어감(becoming)에 몰입한다. 어린이는 사물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고, 사물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 조응의 관계를 만들어 간다.

 

숲에서 발견한 나뭇가지는 어린이의 상상 속에서 칼, 낚싯대, 마법의 지팡이 등 새로운 사물들로 변모하며 놀이 상황을 만들어 낸다. 나뭇가지는 단순한 물리적 사물이 아니라 어린이의 상상과 결합되어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나뭇가지를 낚싯대로 상상하면서 놀이할 때, 그 나뭇가지의 질감, 크기, 무게감과 움직임을 어린이는 실재로 지각하며 놀이를 이어간다. 이때 어린이가 지각하는 나뭇가지의 실제 속성과 어린이의 상상을 통해 구현한 나뭇가지의 역할과 의미는 분리되지 않으며, 나뭇가지의 “되어감”에 몰입한 상태에서 놀이가 진행된다. 어린이는 나뭇가지 자체와 상호작용하며 그것의 의미를 확장하는 내재적 관계성 속에서 배움을 경험한다.

 

두 명의 어린이는 칼이 된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휙! 공격을 받아라!”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나뭇가지의 날쌘 움직임과 어린이들의 상상은 결합되어 세계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여기서 나뭇가지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어린이의 이야기와 연결된 존재이다. 어린이는 나뭇가지의 날쌘 움직임, 바람과 만나는 소리, 두 나뭇가지가 부딪혀 나는 소리의 강약의 흐름과 자신의 상상 속 이야기를 온 몸으로 표현한다.

 

반면, 성인은 외부에 있다. 성인의 탐험은 원심력적인 형태, 즉, 세계는 이미 경계가 있고, 이를 확장, 관리와 지배하려는 형태로 나아간다. 자연과의 조응보다는 이를 도구화하고 통제하려는 태도가 우세하다. 성인은 나뭇가지를 도구화하여 분석하고 어디에 활용할지를 찾으려 한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의 길이, 무게, 강도, 크기 등을 측정하여 ‘만들기 재료’ 등 실용적 용도로 접근하려고 한다. 이처럼 성인의 지각(실제 사물)은 상상(의미 부여)과 분리되며, 세계를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한 지식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교사는 어린이의 놀이와 탐험이 도구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태도에 주의하며 어린이가 나뭇가지와 상상적 관계를 맺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3) 어린이는 익숙한 사물이나 공간, 세계에서도 새로운 차이와 가능성을 발견하고 탐험한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3세 영아 서준이는 매일 걷던 길가에서 작은 개미떼를 발견하고, “개미다! 우와, 개미다!”하고 외친다. 늘 걷던 길이었지만 할머니의 손을 놓고 개미들의 움직임에 몰두한다. 서준이에게 이 길은 더 이상 단순히 집으로 가기 위한 통로가 아니다. 개미들이 움직이고 서로 협동하며 먹이를 나르고 있는 개미들의 세계는 어린이에게 이야기의 장이자 새로운 발견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서준이는 개미를 따라가며 그들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관찰한다. 개미가 움직이는 경로, 먹이를 나르는 모습, 바쁘게 움직이는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탐구의 시간을 갖는다. 성인의 눈에는 지나칠 수밖에 없는 평범한 길과 작은 존재들이 서준이에게는 무한한 의미를 품은 차이와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이 순간, 서준이는 개미와 자신의 몸을 연결하고, 개미의 세계와 조응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 서준이의 시선과 호기심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가능성을 끌어내고, 세계를 변화무쌍하게 경험하는 어린이의 독특한 탐험 방식이다.

 

그러나 성인은 어린이와 달리 세계를 고정된 상태, 즉 완성된 결과물로 바라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성인의 지각은 기능적이고 도구적이어서 사물을 분석하고 재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개미의 움직임은 성인에게 단순한 생물학적 지식의 대상이 되거나, “왜 여기 개미가 많이 있지?”와 같이 상황을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한 분석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성인에게 서준이가 경험한 호기심과 몰입은 일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차이는 어린이와 성인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어린이는 익숙한 공간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차이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구성한다.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조응하며 그들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린이의 지각과 상상이 결합된 상태에서 가능하다. 이 과정은 어린이에게 학습이자 놀이이고, 동시에 세계와 함께 되어감(becoming)을 경험하는 존재론적 탐험이다.

 

 

3. 잉골드의 관점에서 짚어 본 발달주의와 구성주의의 인식론적 한계

 

잉골드의 어린이에 대한 관점은 발달주의와 구성주의가 전제하는 인식론적 틀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어린이의 세계 탐험과 몰입을 강조하며, 지식 구성이나 학습을 단순히 개인이나 사회적 결과물로만 한정시키지 않는다.

 

발달주의, 특히 피아제의 단계 이론은 어린이를 성인에 비해 미숙하고 인지적으로 낮은 단계로 바라본다. 피아제는 어린이의 물활론적 사고(animism)를 비합리적이고 미성숙한 것으로 보았으며, 이는 어린이의 사고가 성인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발전해야 한다는 인식론적 불평등을 내포한다. 잉골드는 전면적으로 다른 시각을 제안한다. 잉골드는 어린이의 물활론적 사고를 낮은 단계로 보지 않고, 세계와 깊이 연결되고 사물의 되어감에 몰두하는 능력으로 해석한다. 어린이는 “존재론적 참여자(ontological participant)”로서, 사물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관계적 존재 방식 속에서 배운다. 이는 세계를 이미 완성되고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으로 경험하는 방식이다. 성인이 세계를 원심력으로 탐험하며 경계를 확장하거나 정복하려는 인본주의적 태도를 가지는 것과 달리, 어린이는 구심력으로 세계와 연결되며 몰입하며 포스트휴먼적 사고를 갖는다. 어린이의 포스트휴먼적 사고는 결코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인이 잃어버린 세계와의 몰입적이고 관계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구성주의는 지식이 개인 또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는 관점을 취한다. 피아제와 비고츠키의 접근을 살펴보면, 피아제의 인지적 구성주의에서 어린이는 능동적 학습자이지만, 인지발달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유아기에 나타나는 “물활론적 사고”는 미성숙한 상태로 간주된다.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에서 지식은 사회적 맥락과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며, 문화적 도구나 타인의 도움(근접발달영역)을 통해 습득된다. 이와 달리 잉골드의 관점은 어린이의 지식이 단순히 개인적, 사회적 결과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의 즉각적이고 깊은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본다. 어린이는 단순히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세계의 “되어감(becoming)” 속에 몰두하며 그것과 함께 변화한다. 고정된 단계나 위계적 구조를 전제로 하지 않고, 지식의 흐름과 탐험을 강조하는 과정과 관계 중심적 존재론에 기반한다. 즉, 어린이의 지각과 상상은 분리되지 않으며,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과정으로 경험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구심력”처럼 중심으로 끌어당기며 관계를 엮어 나가는 어린이의 탐험 감각과 연결된다. 잉골드의 관점에서 볼 때 지식의 결과물이 아니라 세계와의 참여적 관계를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잉골드의 관점은 발달주의와 구성주의의 인식론적 틀을 넘어선다. 그는 어린이를 지식의 수용자나 구성자가 아닌,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존재론적 탐험을 수행하는 관계적 존재로 이해한다. 교사는 어린이의 탐험과 세계와의 즉각적인 참여를 지원하고, 지식을 주입하거나 고정된 틀에 가두는 대신, 어린이가 세계와 엮이며 학습하는 과정을 존중해야 한다.

 

 

4. 어린이 고유의 탐험 감각을 규제하는 성인 중심의 학교교육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어린이의 탐험이 끝나고 어른의 탐험이 시작되는 어떤 시점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영토, 정복, 인간의 자연 지배와 같은 관용어로 점철된 특정 담론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는 것일까?

 

탐험과 발견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성인 중심적 학습 개념에 따른 탐험과 발견이다. 이는 과거 인류의 성취를 압축적으로 요약해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커리큘럼을 뒷받침한다. 이런 교육과정에서 어린이는 이전 세대를 따라잡는 역할만 수행할 뿐이다. 탐험과 발견의 의미도 그 정도 수준에 그친다.

 

(Ingold, 2024, p.109)

 

잉골드가 제기한 질문, “어린이의 탐험이 끝나고 어른의 탐험이 시작되는 시점이 있는가”는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담론과 교육이 어린이의 탐험적 감각을 억제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그는 탐험의 전환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인 중심적 교육과정과 사회적 담론에 의해 규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교육이 어린이를 성인의 세계로 빨리 편입시키기 위해 억압적 기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예로, Murris가 지적하듯 발달단계이론이 유아교육에 적용될 때 어린이는 성인의 논리적 합리적 사고를 따라잡아야 하는 “낮은 단계”의 존재로 간주되고, 탐험의 시기와 방식은 성인 중심의 틀 속에 갇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성인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교육과정은 인류의 성취를 교과나 지식내용으로 요약하여 효율적으로 어린이에게 전달하고 어린이는 이를 재현하는 것을 학습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는 기존 지식의 수동적인 학습자가 되며, 자신의 세계와 몰입하며 관계맺는 탐험의 기회를 잃는다. 이와 같은 담론이 유아교육에 지배적일 때, 어린이의 구심적 탐험은 억제되고, 어린이의 경험은 관리되고 축소된다. 이는 어린이의 탐험을 과정이 아닌 결과로 환원시키고, 세계와의 몰입적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기에 재고되어야 한다.

 

 

5. 어린이의 탐험 시기를 확장하는 놀이 중심 교육과정

 

유아 중심·놀이 중심 교육과정은 어린이의 탐험 감각을 존중하며, 성인의 세계로의 가파른 전환을 완화한다. 어린이의 자기주도적 탐험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잉골드가 강조하는 생성적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다. 교육과정이 어린이와 그들의 놀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을 수용할 때, 성인 중심의 도구화된 지식 교육에서 벗어나, 어린이가 세계의 흐름 속에 몰입하고 감각과 상상을 연결할 수 있는 놀이의 장이 더 많이 마련될 수 있다. 어린이가 반복적으로 특정 놀이나 행동에 몰두할 때, 이를 진정한 배움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성인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교사는 어린이의 감각적 탐험과 세계와의 조응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어린이의 탐험이 단절되지 않도록 충분한 놀이 시간과 여건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어린이의 배움이 세계와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린이의 탐험은 과정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6. 어린이는 성인 인류의 감각을 깨우는 고마운 존재

 

팀 잉골드의 어린이의 탐험적 감각에 대한 재조명은 유아교육 분야에서 어린이의 고유한 세계와 경험을 어떻게 존중하고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어린이는 몰입의 감각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매우 뛰어나다. 몰입의 감각이란 사물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함께 되어 가는 감각이다. 어린이는 단순한 지식 수용자가 아니라, 지속 속에서 시간과 경험을 직관적으로 감지하며, 몰입을 통해 세계와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유능한 존재이다.

 

어린이는 또한 세계를 비선형적이고 리좀적으로 탐험하며, 사물과 무한히 연결된다. 이와 같은 점에서 들뢰즈의 “차이와 생성”의 철학은 어린이가 더 유능함을 뚜렷이 드러낸다. 어린이는 사물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과 조응하며 배우기에, 그들의 탐험이야 말로 세계와의 깊은 공명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정한 배움이다.

 

반면, 성인은 이러한 감각을 상실했으며 세계를 도구적이고 고정된 대상으로만 보게 되었다. 따라서 어린이는 성인 인류의 감각을 깨우는 고마운 존재이며 성인에게 세계와의 살아있는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제공한다.

 

팀 잉골드의 사상은 유아교육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어린이의 탐험 감각은 성인의 합리적이고 도구적인 사고를 뛰어넘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은 관점은 배움의 본질을 재정립하게 한다. 어린이는 성인의 세계를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는 세계와 조응하며 끊임없이 생성하는 주체이다. 어린이를 이와 같은 존재로 바라본다면, 교육은 더 이상 어린이를 성인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어린이와 세계의 공명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탐험을 함께 지켜보는 살아있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의 고유한 감각과 탐험은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와의 깊은 연결을 회복하는 길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 Ingold, Tim (2024). 조응. Correspondences. 김현우 역. (원저 2020년 출판). 서울: 가망서사.

🖨️ 인쇄(Print)하기

부산대학교 교수 이연선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교육을 전공했으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이름과 뜻을 같이하며 교육을 바꾸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핀란드 교육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 다음글 [켈리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⑨] 땡큐, 매슬로(Maslow)!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