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텃밭에서 생각해 보는 교육
| “지구 생태계의 시계에 맞춰 텃밭의 순환이 이루어지듯, 우리들의 배움은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 “같지만 늘 다른 새로운 아이들(작물)과의 만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약하는 곳, 그곳이 학교다.” (본문 발췌) |
학교 한쪽에 텃밭이 있다. 아니,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고, 만들었다. 본관 후미진 곳에 보도블록이 깔린 자투리 공간이 있었는데, 궁리 끝에 생태환경 체험을 할 수 있는 교육 공간으로 꾸몄다.
블록을 다 들어내고 맨땅에 텃밭을 조성하면 제일 좋긴 하겠지만, 나중에 복원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공사가 너무 커지는 문제도 있어서 그대로 둔 채로 텃밭 상자 40여 개를 구입했다. 상자를 채울 흙을 구할 데가 마땅치 않아, 배양토도 900포대를 주문했다. 이게 시작이다.
문제는 기후가 아니라, 세상
지금 시대를 ‘인류세’라고 불러야 한다는 학계의 진지한 논의가 나올 정도로, 화석 연료 남용,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 해수면 상승으로 통째로 잠기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가축은 물론 사람마저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갑작스런 폭우로 삶의 터전이 쑥대밭이 되는 일도 연례행사가 되었다. 올해도 또 열대야 일수 기록을 경신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기후 문제가 현재 생존과 미래 지속 가능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수가 되었다.
생태전환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각 학교도 다각도로 생태환경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강의와 영상물, 각 교과 수업, 창의 체험 활동 등을 통해 지구 환경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구촌의 위기를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움을 키우고 있다. 며칠 후에 있을 ‘907 기후정의행진’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1고 호소하고 있다.
텃밭 운영도 그중 하나이다. 조금이라도 공간이 있으면 운동장 한 켠에 텃밭을 조성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학교는 옥상에 방수 시설을 하고 텃밭 상자를 올려 운영하기도 한다. 물론, 학교급에 따라 온도차가 좀 있긴 하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체험형 교육활동 열기는 확연히 낮아진다. 그 이유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하지만, 기후 변화를 비롯한 생태 위기를 일깨우려는 교육 활동이 양질 모든 측면에서 강화되고 있음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생태 텃밭에서 배우는 교육학
텃밭 활동은 생태전환교육의 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다양한 교육적 가치와 의의가 담겨 있다. 오늘은 서울시 양천구 어느 중학교 사례를 중심으로 주로 교육적 가치와 의의를 살펴볼 것이다.
판매 목적의 농가라면 대개 하우스 재배를 하지만, 학교는 노지 재배를 택한다. 텃밭 활동 참가는 학생,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구글 문서로 신청을 받았다. 개인 상자 27개, 공동 상자 16개로 운영을 시작했다. ‘혼밭’보다는 공동체 활동에 의미를 두고 둘 이상이 함께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교직원이 가장 먼저 신청을 했고, 학생끼리, 학생과 학부모, 학생과 담임교사가 함께 신청한 팀도 있었다.
대부분 텃밭 활동 초보자인지라, 신청자를 단체 대화방으로 초대하고 모종 안내를 했다. 그들의 참여 동기부터 들어보자.
▪ 학급 텃밭 : 함께 텃밭을 가꾸며 학급 단합을 이루면서 학교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수확에서 보람을 얻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 교사-학생 텃밭 : 텃밭을 가꾸며 대화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학교 생활이 즐거워지길 기대합니다.
▪ 학년부 텃밭 : 공동으로 텃밭을 가꾸며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신선한 채소를 나누면서 행복하고 협력하는 부서가 되면 좋겠습니다.
▪ 학생 가족 텃밭 : 텃밭을 함께 키우면서 가족이 함께하는 소중함을 느끼고 수확의 기쁨과 동시에 먹거리의 소중함도 배우고 싶습니다.
‘함께’라는 단어와 ‘단합, 협력’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텃밭 활동이 참여자 사이의 친밀도를 높이는 효과가 매우 큰 까닭이다. 같은 텃밭 운영자끼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른 텃밭 운영자와도 자주 마주치게 되고, 같은 활동 분야가 있으니 대화 주제가 풍성해진다. 또, 활동 결과물인 수확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엿보인다. 학급 활동과 수업도 이처럼 공동 작업을 더 많이 시도하면 기대와 설렘이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얼마나 같고 또 다른가
이제 본격 생태텃밭 활동이다. 텃밭 상자는 딱 두 종류인데, 1M×1M는 1명에게, 1M×2M는 2명 이상 신청자에게 분양을 했다. 상자의 자리는 기껏해야 십여 걸음 떨어져 있을 뿐이고, 공장에서 제작하여 포장된 채로 공급되는 배양토를 넣었기에 텃밭의 초기 조건은 거의 같다. 어딜 가도 교실은 직사각형에 (전자)칠판과 책상이 놓여있고 앞뒤로 출입문이 있어 반 표찰이 아니면 구별이 어려운 사정과 흡사하다.
하지만, 상자의 자리에 따라 햇빛이 드나드는 시간이 아주 조금은 다른 탓인지 날이 갈수록 텃밭의 모습에 미세한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수업을 진행해도 반마다 분위기가 제각각인 것을 떠올리면 된다. 또, 지난해 그 상자에 무얼 재배했는지, 그리고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먼지와 바람, 햇빛, 물 등으로 토양 성분에도 미세한 차이가 발생한다. 그 때문인지 똑같은 모종을 같은 날 심어도 생육 상태는 다들 조금씩 달라 이상하기도 하고 자못 흥미롭다.
텃밭에서 자라는 작물은 씨앗으로 직파하기도 하지만, 대개 모종을 구입해 심는다. 이는 우리가 만나는 학생들의 출발선과도 연결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점은 같아도, 그들의 보호자, 배움과 성장의 과정, 만나는 친구들로 눈길을 돌리면 하나같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가끔 ‘도대체 저 아이는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딱 맞는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어떤 아이는 씨앗에 가깝고, 누군가는 모종일 테니까. 우리는 그 다름을 존중할 뿐, 같게 만들려는 시도는 자칫 교육의 본질과 멀어질 위험이 있다.
씨앗과 모종 사이
텃밭에서 씨앗과 모종 중에 더 많은 신경이 쓰이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씨앗이다. 모종은 이미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 성장이 진행된 상황이기에 옆에서 조금만 도와줘도 잘 자라고 성장 속도가 아주 빠르다. 하지만 씨앗은 발아 조건, 즉 수분과 적절한 온도, 햇빛의 도움이 있어야 깨어나기 시작한다. 우리의 교실에는 이미 모종의 상태로 도착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씨앗처럼 더 많은 발아 조건이 필요한 아이도 앉아 있다. 일률적으로 표준화된 교육과정이나 방법만을 고집해서는 온전히 싹트고 성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텃밭이 정해졌다. 그곳에 무엇을 어떻게 심을지는 오롯이 텃밭지기의 몫이다. 이는 교과(교사)의 교육과정 설계이기도 하고, 담임의 학급 운영 계획일 수도 있다. 무엇을 수확하고 싶은가에 따라 넣을 씨앗과 심을 모종이 정해진다. 교과 목표나 알아야 할 핵심 개념에 따라 어떤 학습 내용(주제)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심은 날부터 텃밭 주인은 날마다 한두 번은 생태학습장으로 걸음을 한다. 자신의 텃밭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피는 한편, 다른 텃밭 상황은 어떤지 곁눈질이 이어진다. 교사마다 교육과정 설계나 학급 운영 계획이 다르기에 타산지석이 꽤 유용한 접근법이듯이, 더 잘하고 있는 밭(반)이 있다면, 캐묻고 배울 일이다. 다행히도 텃밭에선 이게 아주 잘 된다. 특히, 초보일수록. 학교에선 아직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정말 씨앗과 밭이 문제였을까
모종이 자리를 잡거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면, 텃밭에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 빨리 흙에 자리를 잡아 생장을 시작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한참을 비실거리다가 겨우 생기를 되찾는 모종, 처음부터 힘을 못 쓰더니 끝내 다른 모종에 자리를 내주고 마는 아이도 있다. 같은 교사와 똑같은 수업을 해도 아이들 배움이 천차만별인 것과 어쩜 이리 판박이일 수가 있을까.
▪ 텃밭지기 : 선생님, 제 텃밭 애들은 왜 자라는 속도도 더디고, 색깔로 별로 안 좋죠. 저한테 주신 모종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닌가요? 밭이 별로 안 좋거나.
▪ 나 : 글쎄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조금 더 지켜봅시다.
그렇다. 학생들도 자라고 받아들이는 속도가 다 다르다. 원인 발견이나 해결책이 뚝딱 나올 수가 없다. 조바심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기다리는 느긋함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시 학기 초의 교실로 가 보자. 특히 1학년 교실엔 여러 학교에서 정말 다양한 경험과 성장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학교에서 정한 기준이나, 표준화 검사 등을 통해 학급이 배정된다. 또, 학급담임이나 교과담임도 인사자문위원회, 교과협의회 등을 통해 정한 것이니, 누가 누구를 만날지는 정말 예측이 불가능한 제비뽑기의 영역이다.
모종 또한 그러하다. 모종 가게 또는 인터넷 배송으로 구입한 모종 중에 손에 잡히는 누군가를 텃밭에 심는 거다. 일일이 하나하나를 따져 살펴 모종을 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씨앗이나 모종의 발아, 성장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모종(학생)의 문제보다는 텃밭 상황, 즉 학급 분위기, 교육과정 설계, 수업 및 평가 등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텃밭도 학급도 초기 조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어떤 돌봄과 배움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기느냐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씨앗과 모종이 채소가 되려면
모종 시기를 지나면 작물이 본격적으로 생장을 한다. 초기엔 씨앗과 떡잎이 지닌 영양분으로 싹도 틔우고 잎도 내지만, 줄기가 생기고 나면 그것만으로는 자랄 수 없다. 뿌리로는 흙 속의 영양분을 빨아들여야 하고, 잎으로는 광합성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또, 그 과정이 원활하려면 적절한 물주기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실에서라면 어떨까? 이제 학교, 학급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아이들은 친구, 선생님과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배움을 키워나갈 것이다. 처음엔 떡잎에 해당하는 지난해의 배움만으로도 버틸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새로운 배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본인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교사의 끊임없는 물주기, 즉 적절한 안내와 피드백, 칭찬과 격려가 필요할 것이다. 자기주도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교사나 동료 학습자의 도움이 꼭 필요한 아이도 있는 법이니까.
물주기는 언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정답은 없다. 다만, 햇볕이 따가운 한낮은 금물이다. 물이 제대로 스며들지도 못하거니와 잎에 맺힌 물방울이 돋보기 작용을 일으켜 잎을 태우는 일도 벌어진다. 대체로,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에 뿌리가 넓게 퍼지도록 작물의 둘레에 주는 것이 좋다. 아이들에 대한 피드백이나 칭찬도 적절한 시기와 장소, 일정한 맥락이 필요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복잡하고 아리송한 텃밭의 생태계
텃밭의 채소를 자라는 정도에 따라 구분하자면, 둘로 나눌 수 있다. 쌈 용도로 키우는 작은 잎채소와 덩굴을 뻗는 아이들을 포함하여 좀 키가 크게 자라는 작물로.
먼저 작은 잎채소로는 상추, 로메인, 쑥갓, 겨자채, 치커리, 래디시, 깻잎 등이 있다. 이들은 성장 속도가 좀 빠르다. 그래서 결과물을 일찍 내준다. 학교에서도 배움의 성과 또는 결과물이 쉽게 보이는 것이 있다. 지식 중심의 교육과정은 대개 그러하다. 학습자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좀 크게 자라는 작물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토마토(일반, 방울), 가지, 오이, 참외 등이 그러하다. 이들은 결과물을 얻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고, 결과가 어떠할지 처음엔 가늠이 어렵다. 그래서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조바심도 난다. 하지만 숙련된 농부, 교사라면 기다릴 수 있다. 지금이 성장과 배움의 어디쯤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머잖아 다가올 풍성한 텃밭을 생각하며 지금 할 일을 묵묵히 진행한다.
다만, 커다란 작물 관리는 조금 더 주의가 필요하다. 그들은 나무가 아니기에 크게 자랄 수 있도록 지지대를 세워 주고, 덩굴을 마음껏 뻗을 수 있도록 유인 줄을 묶어 주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 지지대는 작물이 바람에 흔들리거나 쓰러지고 꺾이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어느 시인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노래하긴 했지만, 가끔 흔들리기도 한다는 것이지 하루 종일 흔들리면서 꽃이 핀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뿌리부터 흔들리는 나무(작물)는 제대로 양분을 빨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결국 성장과 결실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조선의 시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2장에서 ‘불휘 기픈 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 뮐ᄊᆡ 곶 됴코 여름 하ᄂᆞ니’(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릴 것이니)라 하지 않았던가.
지지대나 유인 줄의 도움을 받은 작물은 어느 시기가 되면 스스로 잘 견디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교사가 느린 학습자나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를 위해 단서 제공, 시범 보이기, 과제의 난이도 조절 등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끄는 비계(Scaffolding)를 설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식물에도 일종의 ‘근접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이 존재하는 셈이다.
가끔은 심지도 않은 작물이 자라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 텃밭에서 생명체가 합성되었을 리야 만무하고, 누군가의 옷깃에 묻어왔거나 바람에 날아든 것일 테다. 텃밭만이 아니라, 교실에서도 교사가 예측하고 설계한 그대로 진행되는 수업은 단 하나도 없다. 어떤 때는 길을 잃은 수업에서 더 많은 배움, 새로운 배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모든 교육적 성취가 교사의 역량이거나 학생들의 노력이라 할 것인가? 텃밭이나 교실은 우리가 예기치 못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 현장이다. 그래서 어느 연구자는 “교육 현상의 복잡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역동성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 및 이론, 그리고 연구 방법의 확보가 시급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점을 복잡계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2 난, ‘텃밭도 다르지 않다.’고 덧붙이고 싶다.
키워서 남 주자
어느덧, 오뉴월. 수확과 나눔의 기쁨을 누릴 때가 왔도다. 대략 이틀에 한 번 정도 가장자리의 잎들을 따서 수확한다. 마치 교과의 단원이나 학습 주제를 하나씩 배워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가장자리 커다란 잎의 광합성과 텃밭에 내린 뿌리의 수분과 양분 흡수를 바탕으로 잎채소의 가운데에서 새잎이 올라오듯, 우리는 이전의 배움을 바탕으로 새로운 주제를 탐구해 나간다. 배움은 그러한 과정의 연속이다.
수확한 채소는 어찌할 것인가? 당연히 집에도 가져가고 학교에서 나눔도 한다. 특히, 1학기엔 1, 2, 3학년 모든 학급이 방과후에 학급 단합 행사를 했는데, 몇몇 학급은 여러 텃밭의 채소를 조금씩 기부받아 생태학습장 한쪽에 마련된 파라솔에 둘러앉아 삼겹살 파티를 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였다.
우리의 배움도 역시 비슷한 속성이 있다. 제대로 배우면 그 과정부터 결과까지 혼자만의 것이라 할 수 없다. 내가 이룬 성취는 이전 세대 누군가의 노력을 이어받는 것이며, 같은 시대 또래, 교사, 보호자, 지역사회로부터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부는 자신의 성취이지만, 나머지는 텃밭 언저리에서 음식을 나누었듯 당연히 ‘배워서 남 주자!’로 공동체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텃밭과 교육의 지속 가능을 위해
신기하고 황홀했던 한 차례의 경작과 배움이 매듭을 짓는다. 7~8월의 텃밭은 휴식의 시간이다. 절묘하게도 학생들 방학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모든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 이때는 새로운 작물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지난 배움을 몸에 스며들게 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듯 텃밭에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지구 생태계의 시계에 맞춰 텃밭의 순환이 이루어지듯, 우리들의 배움은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2학기가 시작하고 교실과 텃밭에 생명이 가득 들어차면, 또 졸업이 찾아올 것이며, 새로운 배움이 시작될 것이다. 같지만 늘 다른 새로운 아이들(작물)과의 만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약하는 곳, 그곳이 학교다.
이제 공항시장으로 모종 사러 가봐야겠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35년 동안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선생님과 함께 가는 고전 소설 여행』(공저), 『선생님과 함께 가는 현대 소설 여행』(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세계문학) 서평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양서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