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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온전히 실재하는 어린이 만나기

#1049 이연선, 부산대학교 교수 2024.05.01
“연령, 성별, 문화, 사회 규칙, 지배담론 등의 견고한 선이 어린이를 이해하는 관점들이 되면 우리는 실재하는 어린이가 아닌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가 결정해 놓은 시간성, 물질-담론성, 지배담론에 머물게 된다.” (본문 발췌)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고, 바로 아동기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아동 또는 아동기는 없다. 대신, 많은 아동과 아동기들이 있으며 각각은 우리가 아동기를 이해하는 방식과 아이들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방식에 의해 구성된다(Dahlberg, Moss, & Pence, 2013; 서미정, 이연선, 2023, 재인용).

 

 

우리는 어린이를 잘 모른다.

 

유아교육과 교수인 나는 어린이를 잘 모른다. 그래서 이론을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어린이’를 그들의 삶으로부터 분리시켜 따로 가르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개념으로도, 어떤 이론으로도, 우리가 지금 만나는 그 ‘어린이들’에 대한 이해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간혹 유아교육 전문가, 영유아교사, 혹은 육아인플루언서가 ‘어린이는 ~~입니다’ 하고 쉽게 규정지어 말하는, 혹은 어린이를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모습들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영유아기의 어린이를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 혹은 교사라면 성인과 다른 어린이들이 세상을 배우는 방식과 그들에게 필요한 교육적 지원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관련 이론과 정보를 검색하고 활용한다. 그러나 그 이론들이 이미 연령차별주의에 기반을 둔 패러다임에서 나온 개념들의 반복일 수 있다면? 혹은 최근 신경과학 연구에서 오개념으로 밝혀진 것들이라면? 대표적으로 이중언어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언어 지연에 대한 관점은 이미 신경과학에서 오개념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우리나라의 영유아기의 언어와 문해교육에 대한 정책의 방향을 여전히 결정하고 있다.

 

이론 책에 나와 있는 연령별 발달 속에 기술된 영유아기 아이들의 특성들은, 맘카페 등에서 우리가 쉽게 얻는 정보는,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정상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추상적 어린이는 내 눈앞에서 만나는 실재의 아이가 아니다. 연령을 기준으로 하는 발달적 관점에 따른 정보는 외부 세계의 지식이다. 지금 내가 만나는 어린이를 ‘연령’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만 이해하고 이를 지나치게 신뢰한다면 오히려 관념이자 이상으로 작용하여 실제 어린이가 세계를 배워나가는 다양한 방식들을 보지 못하게 할 위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와 같이 연령, 성별, 문화, 사회 규칙, 지배담론 등 견고한 선의 시선이 어린이에게 많이 적용되면 될수록 우리는 오히려 어린이의 세계에서 멀어지게 된다. 견고한 선이 어린이를 이해하는 관점들이 되면 우리는 실재하는 어린이가 아닌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가 결정해 놓은 시간성(예, 한글 문자교육의 적기, 조기교육이라는 용어 자체), 물질-담론성(그 시기에 사줘야 할 필수 국민 장난감이나 책, 디지털 정보 속에 범람해 있는 훈육 방법 등), 지배담론(성장 중심의 발달주의 기반에서의 결핍된 존재로의 어린이)에 머물게 된다. 어디까지나 지금 내가 만나는 어린이를 이해하고 지원하기 위해 찾아본 참고적 지식이었을 뿐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와 같이 오래된 고정관념들과 여러 이념들(isms)로 구성된 외부 지식들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은 계속해서 타자화-대상화되어 간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를 알아가는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어린이란 무엇이었는가? : 신자유주의, 발달주의와 연령차별주의

 

어린이와 아동기 연구에 대한 사상적 계보를 살펴보면, 어린이에 대한 이해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어 왔으며, 현대 사회에 강력한 보편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서미정, 이연선, 2023). 이렇게 만들어진 어린이와 아동기는 필요에 따라 규정되고 해석되고 적용되었다. 먼저, 자본주의와 만나 어린이는 –똑똑해지기 위해- 교육 상품 판매의 대상이 되며, 다음 세대의 새로운 노동자로서 부족한 빈틈을 채워야 할 대상으로 해석되었다. Moss(2023)은 이를 ‘신자유주의의 어린이’로 보았다.

 

지금까지 유아교육학계에서 어린이 이해에 대한 지배담론은 발달이론이었다. 인간에 대한 사변적 이해에서 벗어나 실증적인 인간 이해로의 패러다임을 이끈 발달심리학은 유아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심리학적 환원주의로 이끌었다(이진희, 2022). 꽤 오랫동안 성인 중심의 시각과 해석이 지배적이었으며, 어린이 존재 자체와 그들의 삶을 보기보다는 대상화하며 발달적 특성을 측정하고, 묘사하고, 준거와 범주를 만들어, 아이들을 선별하고 해석하였다. 유아교사는 연령별 발달적 지식을 갖추어야 했고, 인지, 사회성, 정서, 신체발달적 특징을 관찰하고 그 분절적 정보를 학부모와 공유하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교육적 역할이었다. 발달의 렌즈는 유아교육에서 어린이를 이해하는 강력한 논리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유아교육에서 어린이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에는 아동/성인의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를 둔 연령차별주의(ageism)이다. 인종차별, 성차별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라는 집단을 연령을 근거로 구분하여 성인과 비교하여 아직 무지하고 무능하며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Murris(2016/2021)는 발달심리학이 연령차별주의를 품고 있으며 맥락과 관계를 무시하고 마치 개인의 발달을 보편적인 순서와 단계를 거치며 성장하는 것처럼 보는 이 개념을 식민지적 관점으로 보며 경제개발주의에서 저개발 국가(underdeveloped nation)을 보는 것과 유사하게 어린이 또한 개발과 발달이 필요한 존재로의 개념을 갖게 하였다고 비판하였다(이연선, 2023).

 

이와 같은 여러 이념들(isms)로 구성된 어린이에 대한 개념은 존재인식론적 불평등을 만들어 내어 실재 어린이 존재의 온전함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지식의 경이로움을 부정하거나 경시한다.

 

 

우리를 계몽시키는 비판적 운동들 : ‘어린이 존재의 온전함’과 ‘관계 속에서 얽힘으로 나타나는 배움’

 

최근 어린이와 그들의 배움을 정형화된 고정된 시선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새롭게 보려는 학문적 시도와 국가적 운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유아교육의 재개념화 운동이다. 후기구조주의, 후기식민주의, 비판이론에 영향을 받은 연구자들이 유아교육을 지배해 온 실증주의 기반 경험 연구의 협소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비판적 관점에서 다양한 이론과 실천 사례를 제안하고 있다. Cannella(1997/2002)는 Deconstructing early childhood education(유아교육 해체하기)에서 ‘연령이 높은 집단이 보호해야 할 특정 연령대의 집단’으로 규정한 아동기와 어린이에 대한 개념을 비판하였다.

 

이후 후기발달주의(post-developmentalism)를 포함하여 어린이에 대한 포스트철학적 접근과 그 실천 사례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Contesting Early Childhood』 시리즈가 대안적 담론 생산의 주축이 되고 있다. Dahlberg과 Moss(2005)의 Ethics and Politics in Early Childhood(유아교육의 윤리와 정치)를 시작으로 하여 Deleuze의 영향을 받은 Olsson(2009/2017)의 ‘욕망의 주체로서 유목적이고 리좀적인 어린이’, Lenz Taguchi(2010/2018)의 ‘어린이와 세상과의 얽힘과 내부 작용’, Sellers(2013/2018)의 ‘항상 이미 변화하는 어린이-되기 존재’, Davies(2014/2017)의 ‘발현적 귀 기울이기를 통해 어린이 만나기,’ Murris(2016/2021)의 ‘포스트휴먼 어린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Moss(2019)는 이를 저항운동으로 칭하며 유아교육분야에 계몽적인 읽을거리가 제공되어 현재의 지배담론과 그 역할을 되돌아보고 비판적 사유를 통해 유아교육 지형을 새로이 구상해 볼 수 있는 공유된 힘을 기를 것을 촉구하였다.

 

국가적 노력으로는 캐나다와 싱가포르 사례를 들 수 있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는 2019 개정의 중점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아동발달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강조하며, 어린이의 ‘배움’을 리좀으로 교수-학습을 물질, 교사와 어린이의 공동 탐구로, 유아교사의 핵심 교육실천을 경청의 페다고지(pedagogy of listening)로 전환시키고 이를 새로운 개념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명시하였다.

 

· 발달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강조

Piaget, Erikson과 Bowlby 등이 내세운 발달이론은(Pacini-Ketchabaw, Nxumalo, Kocher, Elliot, & Sanchez, 2015, p.24) “정상적인” 아동발달을 구성하는 연령에 따른 보편적인 단계를 상정하며 모든 어린이가 맥락이나 사회의 특성에 관계없이 예측가능한 선형적이고 점진적인 단계에 따라 배운다고 가정한다.…… 발달심리학 내에서 공식화된 아동발달 이론의 지배에 도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화가 중요하다. (p.11)

 

· 어린이의 배움을 리좀(Rhizome)으로 정의
어린이는 이론을 만들고 시험해 보고, 세계를 탐험하고, 생각을 표현하면서 지식을 얻는다. 배움이란 예측가능한 선형적인 진보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다. 배움이란 리좀적이며, 어린이가 타자, 장소, 아이디어와 물질과 관계를 맺는 사이에 예상치 못하게, 놀라운 방향으로 일어난다. (p.2)

 

· 경청의 페다고지를 강조
타인의 말을 경청하거나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늘 편안한 것은 아니다. “주의(attend)”와 “긴장(tension)”이라는 단어는 “확장하다(stretch)”를 의미하는 라틴어 tendere와 어원을 공유한다. 어린이의 말에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이거나 집중하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확장해야 한다. 우리는 듣고, 보고, 느끼기 위해 긴장하며 온 힘을 발휘해야 한다. (p.48)

 

출처: B.C. Ministry of Education (2019). British Columbia Early Learning Framework

 

2022년에 개정된 싱가포르 유치원 교육과정 Nurturing Early Learners(이하, NEL)에 제시되어 있는 “어린 학습자로서의 어린이”에 대한 신념에서도 성인 중심의 발달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존재 그 자체로의 유능함과 무한한 잠재력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어린이는 즐겁고, 호기심이 많은 유능한 학습자이다.

어린이는 놀이, 탐험과 발견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려는 욕구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즐거운 학습자이다. 어린이들은 세계를 수동적으로 관찰만 하거나 그들 앞에 놓인 도전을 무시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호기심을 갖고 태어났다. 어린이들은 적극적으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알기 위해 또래와 성인들과 함께 환경을 탐구하고 관찰한다. 어린이들은 유능한 학습자이다. 그들은 적절한 지원과 적절한 환경만 제공되면 거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NEL. 2022. p.24).

 

 

실재하는 어린이를 만나기

 

“이제 실재하는 어린이가 누구인지에 주목할 때이다.”
– Sellers (2013/2018, p.195)

 

유치원과 어린이집 현장에는 실재하는 어린이가 넘쳐난다. 사례는 실제이며, 어린이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이자 정보이다. 그리고 유아교사의 머릿속에는 어린이와 함께 한 날 것의 경험들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개념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도록 렌즈를 제공하며 날 것의 경험들을 보다 단순하고 유용한 추상적인 것으로 조각하여 우리의 행동을 안내한다(Goldwater, Hilton & Davis, 2022). 지금까지 이론, 정보와 개념에 기대어 어린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왔다면 이제는 역으로 탈식민지화(decolonizing), 해체(deconstructing)를 통해 기존의 어린이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실재 어린이들을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실재 어린이들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실제 사례를 통해 그 과정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확인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예비유아교사’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직 어색한 대학 생활을 갓 시작한 새내기 1학년이 어린이집에 참관을 다녀온 후 흥분해서 쏟아낸 이야기의 일부이다.

 

<어린이 존재에 관하여>

 

소영: 교수님! 제가 생각했던 아이들과 전혀 달라요. 완전 잘못 알았어요. 그 전에는 일방적으로 돌봐주고 놀아주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은지: 맞아. 근데 아이들이 당연한 듯 내 손을 끌고 “이거 하고 싶어요. 저거 하고 싶어요. 이거 해주세요” 하고 요구를 해요. 아이들이 훨씬 주도적이에요.

 

주원: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다 알아서 해요! 필요하다고 할 때 도와주세요”

 

소원: 나는 상상치도 못했어. 블록을 이렇게도 활용한다고? 블록 놀이 하나보다 했는데,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교구를 사용하고 또 되게 많은 것을 한다! 반복해서 하길래, 물어보니 “잘 굴러갈 것 같아서요” 한다! (모든 놀이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어.

 

채영: 노는 것 자체도, 단순해 보여도 다 이유가 있더라니까.

 

소민: 맞아. 유기성이 있어.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고, 이유없는 행동이 없어.

 

수업리더-교수: 뭐야, 아동관이 바뀐거야? 두 달 만에?

 

(다함께 웃는다)

 

은주: 다르게 보여요. 우리가 아이들과 다른 시각이라는 것이 확실히 느껴지지 않아?

 

<영유아교사에 관하여>

 

채연: 교사를 나도 모르게 제한적이고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었던 것 같아. 이끄는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잠시 후) 지금은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무조건 돌봐줘야 하는 존재라고 하기에는… 너무 유능하다.

 

<다시, 어린이 존재로>

 

수연: 튼튼반(영아)은 너무 귀엽고 어리잖아? 실제로도 (연령이) 어리고. 그런데 튼튼반도 우리보다 나아. 생각하는 것도, 상상하는 것도 우리보다 나아.

 

지연: 종이를 접고 있으니까 “나도 이거 할래” 하고 들어온다! 한 명씩 모여들어 무리가 만들어져. 성인은 무리가 명확하잖아. 아이들은 경계가 없으니까 옆 반 아이가 와도, “동생아 왔어?”하고 반겨주고.

 

그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가 없고, 사고가 경직되어 있지 않고, 사회성이 우리보다 나아. 본 받아야 해.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 서미정, 이연선(2023). 어린이와 아동기연구에 대한 비판적 성찰-어린이를/와 사유하는 교사를 향하여. 한국유아교육연구, 25(4). 1-28.
• 이연선(2022). 2019 개정 브리티시 컬럼비아 유아교육과정의 ‘배움’과 페다고지에 대한 언어적 전환과 철학적 전제. 한국유아교육연구, 24(4), 5-27.
https://doi.org/10.15409/riece.2022.24.4.1
• 이연선(2023).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와 지식과의 관계 에 대한 새로운 관점: Karin Murris와 더불어 생각하기.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http://21erick.org/column/11579/
• 이진희(2022). 포스트휴먼 유아와 만나기: ‘얽힌 되기’로서 유아 존재의 (재)형상화. 열린유아교육연구, 27(1), 213-235.

https://doi.org/10.20437/KOAECE27-1-09
• 싱가포르 교육부 (2022). Nurturing Early Learners: A good start for every child.
• B.C. Ministry of Education (2019). Britisch Columbia early learning framework. Victoria, B. C.
• Cannella, S. G. (2002). 유아교육이론 해체하기: 비판적 접근[Deconstructing early childhood education: Social justice and revolution]. (유혜령 역). 창지사. (원저 1997년 출판)
• Davies, B. (2017). 어린이에게 귀 기울이기[Listening to children]. (변윤희, 유혜령 역). 창지사. (원저 2014년 출판)
• Goldwater, M. B., Hilton, C. & Davis, T. H. (2022). Developing an educational neuroscience of category learning. Mind, Brain and Education, 16(2), 167-182.
• Moss, P. (2019). Alternative narratives in early childhood: An introduction for students and practitoners. (2021, 출판예정). 유아교육과 대안적 내러티브. 서울: 살림터.
• Lenz Taguchi, H. (2018). 들뢰즈와 내부작용 유아교육[Going beyond the theory/practice divide in childhood education]. (신은미 안효진 유혜령 윤은주 이진희 임부연 변윤희 역). 창지사. (원저 2010년 출판)
• Moss, P. (2021). 유아교육과 대안적 내러티브[Alternative narratives in early childhood: An introduction for students and practitoners]. (이연선, 손유진, 신은미, 이경화, 이진희, 정혜영 역). 살림터. (원저 2018년 출판)
• Murris, K. (2021). 포스트휴먼 어린이: 그림책과 철학하기를 통한 교육적 변화 [The posthuman child: Educational transformation through philosophy with picturebooks]. (이연선, 변윤희, 손유진, 신은미, 이경화, 한선화 역). 살림터. (원저 2016년).
• Olsson, M. (2017). 들뢰즈와 가타리를 통해 유아교육 읽기: 운동과 실험[Movement and experience]. (이연선 이경화 손유진 김영연 역). 살림터. (원저 2009년 출판)
• Sellers, M. (2018). 어린이의 교육과정 되기[Young children becoming curriculum]. (손유진 역). 창지사. (원저 2013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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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교수 이연선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교육을 전공했으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이름과 뜻을 같이하며 교육을 바꾸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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