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나고 난 뒤
| “지난 4월 10일 한바탕 연극 같은 선거가 끝났다. 연극 무대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점이 되었다. 마음과 생각을 청소하고 우리 사회의 삶과 미래를 위해 무슨 정책이 필요한지 차갑게 성찰해 보자.” (본문 발췌) |
선거는 무대에 오른 배우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연기한다는 면에서 연극과 닮았다. 특정 기간에만 잠깐 공연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지난 4월 10일 한바탕 연극 같은 선거가 끝났다. 대통령은 “1,000조 민생 사업”과 “875원 대파”를 들고 전국을 유람했고, 정치인들도 현실과 사이버 공간 여기저기에서 연극판을 벌였다. 현실에서 경험하는 국회의원 선거의 두 주체는 대통령과 민심이다. 대통령은 모든 선거 이슈를 빨아들였고 민심은 오로지 대통령을 보고 움직였다. 그렇지만 대통령에만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민심은 각 당의 전국 공약과 지역 공약을 세밀하게 살피지 못했다. 그 결과 비록 그저 늘 해왔던 좋은 얘기들이고 구체적이거나 차별화된 공약이 없기는 했지만, 어느 당의 총선 공약도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했다. 공항, 철도, 도로, 산업 특구, 특검, 대파가 난무했던 연극이 끝났고, 우리는 지금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불 꺼진 무대”를 보고 있다. 대통령을 향해 감정을 분출했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연극이 끝났어도 아직 그 취기가 여전하다. 그래서 특검 논의와 법안 거부권으로 뜨거울 5월은 지난 연극 공연의 에필로그이자 새 연극의 프롤로그이다. 연극 무대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점이 되었다. 마음과 생각을 청소하고 우리 사회의 삶과 미래를 위해 무슨 정책이 필요한지 차갑게 성찰해 보자.
이번 선거에서 교육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아니었다. 양당 정치권은 교육 이슈를 표 떨어지는 의제로 생각하고 외면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하지만 행정적으로는 곧 해결될 수밖에 없는 의대 증원은 교육 이슈가 아니라 대통령 이슈였다. 선거 과정에서 국가 차원의 법률 개정을 통해 해결할 학교 교육의 문제들을 골라서 민의를 수렴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 이후 교육부는 필경 기존 정책 이슈들을 관리형으로 전환할 것이다. 교육부 장관과 관료들이 쿨 다운(cool down)과 로우키(low-key) 방식으로 현상 관리에만 치중하면, 앞으로 교육 정책은 적어도 3년 후 2027년 5월에 다음 정부가 들어올 때까지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 교육은 인구감소에 따라 큰 변화를 겪고 있고 해결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무책임하게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새로 구성될 국회는 어떨까. 불행하게도 국회 역시 국민의 삶과 직결된 교육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을 듯하다. 선거 후에 백서도 만들지 않겠다는 정당들이 지난 교육 공약을 들춰보겠는가. 하지만 정무적이고 정책적인 관점에서 교육 공약을 들춰보며 평가하고 추려내는 작업은,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정책을 설계하는 작업은 여당과 야당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지금 당장 필요할 뿐 아니라 의원 임기 내내 필요하다. 교육위를 희망하는 국회의원 당선자라면 5월과 6월에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서 새로운 교육 정책을 논의하고 설계하길 간곡히 부탁한다. 특히 교육 정책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국회의원은 이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가을 국감 기간에 정쟁의 소재나 찾아서 말도 되지 않는 호통이나 쳐대는 구태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전문가 그룹이 만들어진다면 두 가지 문건으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하나는 앞에서 언급했던 각 당의 4.10 선거 공약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부가 올해 1월 24일에 발표한 <2024년 주요 정책 추진계획>이다. 후자가 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까닭은 현 정부에서는 이 문건 외에 앞으로 새로운 정책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고, 이미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기에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하다.
올해 정부 정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의 10가지이다: (1) 초등학교 방과후와 돌봄을 통합·개선한 늘봄학교 전국 도입, (2) 0세부터 국가책임 교육·보육 체제 구축을 위해 유보통합 추진, (3) 교권을 강화해 교사가 이끄는 교실혁명 적극 지원: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비 부담 완화, (4) 학교폭력을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예방, (5) 학생의 마음 건강을 최우선 지원, (6)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디지털 활용 능력 향상 지원, (7) 지역과 대학 간의 벽을 과감히 허물어 동반성장 혁신생태계 구축: RISE, Glocal 사업, (8) 청년들의 성장을 위한 기회와 투자 확대: 대학 안팎의 벽 허물기, 전공 선택권 확대, 학비·주거 부담 경감, (9) 교육의 힘으로 지역을 살리는 교육발전특구 전국 도입: 유보통합, 늘봄학교, 자율형 공립고 2.0, (10) 사교육 카르텔 혁파 및 사교육비 경감 총력 대응
전문가 그룹의 논의는 먼저 올해 교육부 정책을 A 영역(계속 추진), B 영역(보완하여 추진), C 영역(폐기)으로 평가하는 구분 작업으로 시작하고, 그 후에 D 영역(새로운 정책 개발)으로 초점을 이동하면 좋을 듯하다. 기존 정책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목적과 수단의 타당성이다.
•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정부는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가, 추진 과정의 현실적 어려움은 무엇인가.
• 기대하는 결과는 실현 가능한가.
늘 그렇지만 정부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개 목표와 수단의 불일치에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정부 정책에서 불일치가 발견된다. 사업 개념에 대한 충분한 준비도 없이 재정 지원만 추진되는 사업도 있다. 정부는 모르겠으니 돈 받을 사람이 알아서 계획을 세워오라는 식이다. 정책의 단편성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늘봄학교를 실현하려면 더 많은 인력과 새로운 행정 체계가 필요하다. 유보통합은 교사 자격과 양성 구조 개혁 그리고 새로운 교육과정이 필요하지만, 교육부 계획에는 추진 일정조차 나와 있지 않다. 교권 강화와 교실 혁명은 연결점이 없지만, 문건에는 하나로 엮여 있다. 교실 혁명과 사교육비 부담 완화는 현 대입제도 및 2028 대입제도와 충돌한다. 학교폭력 대책은 교사의 부담을 줄이지 못한다. 특히 어떻게 해야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는지 대책이 없다. 학교 현장에 만병통치약처럼 도입되는 에듀테크 상품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특히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그러하다. RISE와 Glocal은 단지 서류로만 진행되어 실질적인 대학 교육의 변화를 만들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대학 파산도 필연적이지만 아무 대책이 없다. 교육발전특구사업은 구체적인 실행 모델도 없다. 추진 주체는 행정 문서에만 있다. 정말로 추진하려면 법령을 바꿔야 할 수도 있는데, 일 년 단위 재정 지원 사업으로 진행되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사교육 카르텔과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세금으로 집행되는 정부 정책의 효율성은 누가 따지고 들지도 않는다. 하나씩 면밀하게 평가해야 할 일들이다.
전문가 그룹이 새로운 정책을 논의한다면 두 가지 초점이 있다. 하나는 학생 수 감소 시대의 교원이다. 교원의 정치 기본권, 학생 수 감소 시대에 학생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적정 교사 정원, 새로운 지위를 갖는 교육청 소속 교사 신설, 교사 자격증 없는 전문가의 교원 활용, 폐교 교직원 지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법률에 규정된 행정 기관의 거버넌스 문제로서, 교육부–교육청–학교의 새로운 자율권 구조를 법률에 담는 작업이다. 학교의 자율권을 법에 명시하는 일은 우리나라 교육행정의 체계를 바꾸는 커다란 과제이다. 여기에 이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만, 국회가 아니면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을 위해 국회의원 당선자가 해야 할 첫 과제는 현 정부 교육 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는 일이다. 2년 뒤 지방 선거, 3년 뒤 대선, 4년 뒤 다시 국회의원 선거가 이어진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언제든 승자는 패자가 되고 패자는 승자가 될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