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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한국 교육학의 현실, 다섯 번째 이야기 : 철학의 빈곤

#1033 이종태, 건신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2024.03.20
이 글은 한국 교육학의 현실에 관한 다섯 번째 이야기로, 교육학이 우리 교육 현실을 깊이 있게 통찰하는 문제의식이나 변혁 의지 부족함을 지적한다. 이 글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철학의 빈곤’이란
2. 서이초 사건이 남긴 것
3. 한국 교육학의 관심은
4. 마무리하며

 

 

1. ‘철학의 빈곤’이란

 

본래 『철학의 빈곤』은 마르크스가 1847년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이것은 그가 당시 가까웠던 프랑스 급진적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이 한 해 전에 펴낸 『경제적 모순의 체계 또는 빈곤의 철학』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빈곤 증가의 원인을 인구 증가의 탓이라고 한 푸루동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구조와 그 변화 동인 등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처음으로 밝힌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철학의 빈곤’이라는 말은 마르크스의 책 내용과 무관하게 다양한 맥락에서 차용되어 쓰이고 있다.

 

‘철학의 빈곤’이라고 할 때 ‘철학’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쓰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지닌 의미와는 다르다. 한국 축구에 불만을 가진 어떤 사람이 이런 푸념을 한 적이 있다. “도대체 클린스만(축구 감독)의 축구 철학이 뭐냐? 방향성도 일관성도 없다.” 이런 의미의 ‘철학’은 일상적인 대화나 글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저 선생은 뭔가 달라. 아이들을 대하는 걸 보면 교육철학이 확고해.”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답답해. 무턱대고 표를 좇는 말과 행동만 있을 뿐 철학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어!” 그런가 하면, ‘철학이 있는 도시’, ‘철학이 있는 건축’과 같은 표현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용례에 나타난 ‘철학’의 의미는 어떤 말이나 행동, 또는 사태의 정체성이나 방향을 말해 주는 가치나 신념 체계이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쓴 ‘철학’의 의미는 좀 다르다. 그가 푸르동에 대해 가진 불만은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것을 변화시키는 핵심 동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자기 생각을 맹신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불만은 잘못된 현실을 그저 설명하려고 할 뿐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나 실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의식은 후에 쓴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 제11번,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내가 여기서 한국 교육학 현실의 한 단면을 굳이 ‘철학의 빈곤’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 교육 현실을 보는 문제의식이나 방향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실이 아무리 불합리해 보여도 그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거기에 순응하고 주어진 기능적 역할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이것의 귀결로서 교육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실천적 의지나 안목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교육은 시대 흐름이나 사회 변화에 뒤처져 “이게 교육이냐!”라는 말을 들어도 좋을 정도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한국 교육학은 이에 대해 아무런 이론적 통증을 보이지 않는다. 교육학 논문들은 양적으로 차고 넘치지만, 거기에 비친 우리의 교육 현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태평하기만 하다.

 

 

2. 서이초 사건이 남긴 것

 

한국의 50만 교원 중 30만이 검은 옷을 입고 광화문과 여의도에 모이게 했던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이를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들과 보도, 수사, 그리고 정부와 국회의 대책 발표들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해가 바뀌면서 그 요란함은 대부분 사그라진 느낌이다. 마치 10년 전의 세월호 비극이 그랬고, 바로 엊그제 같은 1년여 전의 이태원 참사가 그랬듯이, 그것 역시 차츰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서이초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지난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된 기사 수만 해도 700개가 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건의 단편적 소개나 책임 소재 관련 논란, 교사들의 주장이나 집회 양상, 경찰이나 행정 관청의 움직임 등에 관한 단편적이고 표피적인 기사들의 반복이었다. 이 사건을 심층적으로 또는 포괄적인 시야로 접근하는 글들을 찾고자 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세 가지 기사(또는 글)에서 다소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지난해 9월 4일에 있었던 ‘공교육 멈춤의 날’ 추모 집회에 관한 영국 BBC 방송 보도 기사였다. 이것은 사건에 대한 평면적 보도를 넘어 그 심층적 원인을 “모든 것이 학업 성공에 달린 한국의 초경쟁 사회”와 “커지는 불평등”으로 짚었다. 그러면서 “한국은 교실만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 시스템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난 6년간 공립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가 100명에 이르며 그중 57명이 초등학교 교사라는 사실도 짚었다. 국내 언론의 기사나 사설 등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는 사건의 전말과 대책에 관한 논란이 한창이던 시기(8~10월)에 이 지면(저널 ‘교육 제4의 길’)에 실린 세 편의 글이었다. 필자는 현직 교사로서 사건의 비극성을 깊이 공감하면서도, 이를 바라보는 교사단체나 교육부의 편벽한 시각을 비판하고 문제 해결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특히 두 번째 글에서는 교사 교육권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지적하고, 비극의 근원이 아동복지법이나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 때문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학교마저 돈이 지배하는 풍토가 되어 학부모가 교사 보기를 마치 ‘내 돈으로 부리는 일꾼’처럼 대하는 현실이 문제의 근원임을 강조하였다. 다만, 아쉽게도 그의 글들은 교사들이 제기하는 교권 문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서이초 사건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우리 교육의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12월 23일 방영된 SBS의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2023 위기의 교실, 금쪽이와 납쪽이 그리고 쌤」)였다. 이 프로그램은 교실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의 진실과 원인을 실감 나게 추적하여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결국 누구의 잘잘못이었다고 규명하려 하기보다 이미 누구도 편안할 수 없게 된 위기의 교실을 넘어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함께 ‘모두의 교실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말로 결론을 맺었다. 말하자면, 이제 사건의 전말을 넘어 우리 교육의 문제 해결을 위한 심층적인 고민이 필요함을 지적한 셈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글을 읽고 나서 아쉬움은 더 컸다. 이들이 지적한 ‘전반적인 시스템 개혁’이나 ‘대안의 고민’을 위한 논의는 왜 없었을까? 특히 서이초 사건에 관한 ‘교육학적 논의’는 왜 보이지 않을까? 지난해 하반기에서 올해 초까지 주요 교육학 학술지를 다 훑어보았지만, 서이초 사건이나 그와 유사한 교육 현장의 갈등 상황을 주제로 한 학술 논문은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누군가는 이에 대해 깊은 가슴앓이를 통해 어딘가에서 그것을 말이나 글로 토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과문 탓일 수도 있겠지만, 학계에서 공론화되거나 정부의 대책에 관하여 의미 있게 지적한 제언은 어디서도 끝내 찾지 못했다.

 

교사들은 달랐다. 교육 현장에 관한 심층적 분석을 지향하는 격월간지 『오늘의 교육』은 9·10월호에서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이라는 특집을 통해 사건의 원인과 대안을 모색하였다. 물론 그들의 분석은 전적으로 교사의 처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학교와 학부모, 교육공동체의 근본적인 위기를 읽어내려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별개로, 한 교사단체는 서이초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그들의 투쟁과 희망을 글로 써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대한민국 교육, 광장에 서다』(실천교육교사모임, 2023)가 그것이다. 그들은 이 책에서 단지 ‘기록’과 ‘진단’을 넘어 ‘교육 회복’과 ‘공교육의 대전환’을 요청하고 있었다. 교육학이 서이초 사건에서 무언가 건져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학자들은 왜 이러한 교사들의 문제 제기에 화답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을까?

 

 

3. 한국 교육학의 관심은

 

한국교육학회는 지난해 6월 28일 「한국 교육학 70년,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 아래 2박 3일 동안 1백수십 편의 논문 발표와 토론이 어우러지는 연차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연차 학술대회의 주제를 「한국 교육학의 미래 방향과 좌표: 한국 교육학 70년 미래 설계」로 잡고 발표자를 모집하고 있다.

 

예사롭게 보면, 지난해가 교육학회 창립 70주년이었으니 제법 어울리는 학술대회 주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 70년을 돌아보았으니 이제 향후 70년을 설계하자는 올해의 기획도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교육학자들은 교육학회 70주년의 의미를 어떻게 설정했을까? 작년에 이어 올해 학술대회에서 펼쳐질 ‘70년 미래 설계의 방향과 좌표’에서 핵심 이슈는 무엇일까? 지난 학술대회의 기획 의도는 “한국 교육학의 아카데미즘을 성찰하고 현장적 실천을 반성하는 계기”라는, 학회장의 인사말에 나타난 원론적 표현이 전부이다. 그 성찰의 계기나 지향이 무엇인가는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기획 세션의 주제들은 모두 ‘~ 분야 학문적 성과와 과제’로 통일되어 지난 70년 동안 전개된 분과 학문(또는 실천 영역별)의 성과와 과제들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발표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동안 한국 교육학이 이룩한 성과와 한계를 우리 교육 현실과의 관계에서 역동적으로 해석하고 진단하기보다는 연차 학술대회의 축제 분위기에 맞춘 의례적 논의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 결과 70주년은 새로운 지향을 위한 전환점의 모색이라기보다 단지 물리적 시간의 구획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교육학자들은 연차 학술대회 외에도 다양한 학술지를 통해 그들의 학문적 성과를 내놓고 있다. 지난 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국내에는 수십 개에 이르는 교육학 관련 학회와 100개에 가까운 공식 학술지들이 있다. 전체는 아니지만, 이들 중 주요 학술지들을 일일이 검색하여 교육학자들이 서이초 사건 이후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관하여 어떤 관심을 보였는지 일일이 확인해 보았다.

 

먼저 한국 교육학회가 매월 주최하는 「교육정책 포럼」의 2023년 하반기~2024년 1월의 주제들을 보면, ‘질적 연구’, ‘생성형 AI와 연구 패러다임의 변화’, ‘학생 주도성’ 등이었다. 이른바 ‘공교육 멈춤’이라는 구호 아래 검은 옷을 입은 수십만 명의 교사들이 운집하는 현실적 소용돌이는 교육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을 끌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다른 교육학 관련 학술지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격상 교육 현실에 가장 예민한 관심을 가질 법한 「교육정치학연구」에는 우리 교육 현실을 소재로 하는 주제들로 ‘전문적 학습공동체’, ‘교장 양성프로그램’, ‘예비교사의 교권 침해 인식’, ‘학부모 참여’ 등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서이초 사건과 관련되는 주제나 문제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육행정학연구」에는 비교적 서이초 사건과 관련됨 직한 주제들이 보였다. 하지만, ‘빅카인즈를 활용한 교권 침해 관련 국내 언론보도 변화’, ‘불편한 학부모는 어떤 교사를 더 힘들게 할까’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논문의 관심 역시 당면한 현안보다는 관련 주제의 기능적 측면에 국한되고 있었다. 논문 투고가 많아 격월로 발간되는 「교육학 연구」나 「교육 종합 연구」 그리고 교직 사회의 갈등에 관심이 많을 법한 「교육사회학 연구」에도 최근 교사들이나 학교 교육이 처한 난감한 상황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논문은 전혀 없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침해 예방을 위한 법 개정 논의가 무성했고 그 결과로 지난해 가을에 관련 법률들이 개정되었지만, 「교육법학연구」에도 이와 관련된 논문이 한 편도 없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물론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나 쟁점이라고 해서 꼭 ‘학술 논문’의 분석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또 엄격한 개념과 논리 구사가 요구되는 학술 논문의 성격상 동시대의 사회적 사건들을 그 주제로 삼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교육학자들이 서이초 사건에 관해 학술 논문이나 다른 방법으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교육학을 비난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웃집에 분란이 났거나 슬픈 일을 당했을 때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더구나 피해자가 사업상 긴밀한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주변의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교 현장이나 교사들의 문제는 교육학이 상시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일 뿐 아니라 교육학의 존립 근거이기도 하다. 더구나 서이초 사건은 ‘한 초임 교사의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비극적 선택’을 넘어 획일적 시스템과 극한적 경쟁이라는 기존의 한국식 학교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국면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점에서 상당 기간이 지나도록 한국 교육학이 이를 철저하게 외면했다는 사실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되거나 해명될 수 없는, 중대한 부작위(不作爲)라고 할 수 있다.

 

 

4. 마무리하며

 

크든 작든, 일상은 늘 여러 가지 문제에 둘러싸여 있다. 교육학자들 역시 강의하고 연구하고 잡다한 일을 처리하느라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지경일 것이다. 그리고 갈수록 그런 일을 빈틈 없이 해내지 않으면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안정적인 삶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누구든지 간에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좀 더 심층적으로, 가슴을 찢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분석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교육학자라는 집단으로서는, 그리고 한국 교육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해서는, 다르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고 한국 교육학은, 한국 교육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도덕적 책무가 있다고. 즉, 교육학자 집단이나 한국 교육학은 권력이든, 세력이든, 집단이든, 아니면 대중이라도, 잘못된 교육의 방향을 강요하거나 기만한다면 준엄하게 비판하면서 싸워야 하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문제를 드러내면서 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외면하거나 소홀히 하면서 단지 미시적인 일상에 충실한 것으로 그친다면, 단지 ‘철학의 빈곤’이라는 비난을 넘어, 교육학의 존재 의미는 물론 장차 존립 근거마저 사라지는 비극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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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신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이종태

현재 건신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원장, 한울고등학교 교장, 이우학교 초대 이사장, 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회 상임위원,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1세기연구소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 외에 '사회정책 제3의 길(2008), 대안교육 이해하기(2007), 현대사회와 교육의 이해(2004), 고등학교 교육학(2002)'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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