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 활용 수업은 학습에 효과적일까?
| “본 칼럼은 학습에서 주의 메커니즘과 관련해 에듀테크 활용 수업의 긍정적, 부정적인 점을 밝히고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 전통적 교재나 교구를 사용하는 수업과 비교하여 학습효과가 떨어진다.”라는 사실을 논증하고자 한다.” (본문 발췌) |
목차
▪ 에듀테크 활용 수업은 학습에 효과적일까?
▪ 교사와 학생은 주의에 집중하는 기술을 배워야
▪ 교사는 학생들을 배움으로 인도하며 주의를 끄는 수업을 해야
▪ 전통적 수업에서 주의를 끌게 하는 기술
▪ 에듀테크 활용, 주의 집중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어
▪ 인간의 주의 공유 능력은 최고의 주의 집중 요인
▪ 에듀테크 활용 수업은 멀티태스킹이 유발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어
▪ 에듀테크 인프라 부족이 학습 효과를 낮춘 요인이라는 주장은 궤변
교육은 학생들의 뇌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의도적 활동이며, 학습은 학습자 각자가 삶에서 의미를 구성함으로써 뇌의 구조가 바뀌는 활동이다. 학습은 내부나 외부에서 생긴 자극(정보)이 뇌에서 처리되는 과정에 따라 ‘주의 – 기억 – 응고(통합)’ 단계로 분류되며, 이 과정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한 단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는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움은 쉽지 않고 정교한 정신 과정으로, 중국 춘추시대의 석학인 공자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 했지만 교수자나 학습자에게 “가르침과 배움은 꼭 즐겁다”라고만 할 수 없다. 즉 교육이 종국에는 질적인 즐거움을 주는 행위일 수 있어도, 겉만 보면 뇌에서 중뇌 흑질과 복측피개영역에서 생성되어 측좌핵으로 대부분 분비되는 도파민이 주도하는 보상회로에 역행하는 일이다. 더욱이 개인마다 뇌의 구조가 다르므로 뇌가 가장 잘 학습하도록 하는 유일한 교수 방식은 없다. 단지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은 인간이라는 보편성이 있으므로 신경 뇌과학을 통해 모든 학생에게 쓸 수 있는 일반적 교수 또는 학습 원리를 발견할 수 있어 다행이다. 따라서 학교가 배움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라면 교사는 학생들의 뇌가 건강하게 발달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뇌의 기본적인 작동원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교구나 교재를 선택하고 교수해야 한다.
지난 1월 17일, 교육언론 [창]은 교육부 연구보고서 ‘교실 수업 혁신을 위한 고등학교 수업 유형별 학생 참여 실태 조사’를 분석하여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경인교대 박주형 교수 연구진에 의해서 지난해 6월 28일부터 7월 14일까지 전국 고교 1~2학년 학생 4,340명과 고교 교사 1,211명을 대상으로 수업 유형을 ‘에듀테크 활용 수업, 강의식 수업, 학생 참여형 수업, 학생 맞춤형 수업, 과정중심평가’로, 수업 참여를 ‘인지적, 행동적, 정의적 측면’으로 분류하여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교과 성적을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으로 나눴을 때 강의식 수업, 학생 참여형 수업은 모든 학생들의 인지적, 행동적, 정의적 측면에서 긍정적이었지만, 에듀테크 활용 수업 방식은 중위권 학생들의 행동적 측면에서 부정적이었다. 또한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교과목과 관련해 강의식이나 학생 참여형 수업은 정의적, 행동적, 인지적 측면에서 수업 참여에 긍정적이었지만 에듀테크 활용 수업 방식은 대부분의 교과 수업 참여에 있어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나아가 수학 및 사회 교과의 경우에는 행동적 측면에서 부정적이었다. 경인교대 박주형 교수 연구진은 이런 분석에 대해 “교사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교수학습·평가 역량 수준에 있어 에듀테크 활용 수업 운영 역량은 다른 역량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3.73점으로 비교적 높으므로 교사들도 에듀테크 활용 수업 운영 역량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전주교대 정영식 교수(컴퓨터 교육학과)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에듀테크 활용 수업에 대한 부정적 보고서가 나온 것은 에듀테크 활용 수업에 대한 인프라(기기 보급, 교사 연수 등)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했기 때문이지 에듀테크 수업 그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요컨대 연구보고서만을 놓고 보면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 전통적인 강의식 수업이나 학생 참여형 수업에 비해 수업 참여, 즉 주의 집중에 부정적이고 수업 효과가 높지 않다.”라는 것은 명백하다.
지난 1월 23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2023 디지털 교육백서’를 발간했다. 이 백서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2’를 분석한 결과로 PISA는 OECD 국가 만 15세 학생이 읽기·수학·과학 영역에서 필요한 지식을 갖추었는지를 측정하는 시험이다. 백서는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이 늘어날수록 학생의 수학 성적이 하락했으며 휴대전화 알림을 켜두는 등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높을수록 더 많이 하락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한국 학생이 하루에 노트북과 태블릿 등 디지털 자원을 이용하는 시간은 OECD 평균보다 대체로 길었으며, 한국 학생은 학습 활동에서 디지털 자원을 사용하는 시간이 1시간 늘어날 때마다 수학 성취도 점수는 3점씩 낮아졌으며 OECD 평균인 -2점보다도 낙폭이 더 컸다.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높을수록 수학 성취도 점수는 더 크게 떨어졌다. 수업 중 디지털 기기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애플리케이션(앱) 알림을 켜둔다고 답한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수학 성취도 점수가 한국은 27점, OECD 평균은 17점이 낮았다. 잠잘 때 알림을 켜두는 학생도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수학 성취도 점수가 한국은 16점, OECD 평균은 10점이 낮았다. 또 ‘디지털 기기가 근처에 없으면 초조하다’라고 답한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 점수 또한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한국은 7점, OECD 평균은 9점이 낮았다.
요컨대 “수업 시간이나 잠을 잘 때 디지털 기기를 켜두고, 디지털 기기가 없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등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학생일수록 수학 성취도에 부정적이다.”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월 27일, 연합뉴스는 디지털 기기가 펜과 종이를 대체하면서 손글씨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손으로 글씨를 쓰면 키보드로 타이핑하는 것보다 뇌의 연결성이 더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NTNU) 오드리 판데르 메이르 교수팀은 과학 저널 ‘심리학 프런티어스(Frontiers in Psychology)’에서 대학생들이 화면에 나타난 단어를 손글씨로 쓰거나 키보드로 입력하는 동안 뇌파 데이터를 측정, 분석해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판데르 메이르 교수는 “이 결과는 손으로 글을 쓸 때 뇌 연결 패턴이 키보드로 타이핑할 때보다 더 정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며 “이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타이핑보다 펜을 사용할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손으로 글씨를 쓸 때 지각·인지·판단 등과 관련이 있는 대뇌 꼭대기 부위인 두정엽과 뇌 중심부에 있는 신경 네트워크 허브와의 접점 사이에서 광범위한 세타파/알파파 연결성 패턴이 일관되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결과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타이핑보다는 펜을 사용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최소한의 필기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지침을 마련하는 것도 적절한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최근에 발표된 이 세 보고서는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 전통적인 교구나 교재를 활용하는 수업에 비해 청소년들의 뇌 발달을 더디게 하고, 주의를 분산시키고, 학습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부나 전북교육청, 강원교육청, 광주교육청 등의 여러 교육청은 에듀테크 기기 구입 및 에듀테크 교사 연수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면서 줄곧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 전통적 수업 방식에 비해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개별화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에듀테크 활용 교육 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그런데 연구보고서에서 보듯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예측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본 칼럼은 학습에서 주의 메커니즘과 관련해 에듀테크 활용 수업의 긍정적, 부정적인 점을 밝히고 전술(前述)한 세 보고서에 나타난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 전통적 교재나 교구를 사용하는 수업과 비교하여 학습효과가 떨어진다.”라는 사실을 논증하고자 한다.
주의(注意, attention)는 “마음이 외부 환경이나 내부의 자극에 대해 선택하여 집중하는 활동이나 상태, 즉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신경 뇌과학에 의하면 주의 메커니즘은 뇌의 자원이 충분치 않은 데 ‘정보 포화’라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에 진화과정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즉 뇌가 에너지가 넉넉하지 않으므로 생존을 위한 과제를 늘 최소한의 에너지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존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만 선택하여 에너지를 할당하여 처리하는데 그 방식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패턴(정보와 정보의 관계)을 찾을 수 있는 정보만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로 보듯이 주의는 생명체가 생존하고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이며 진화적 본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의가 항상 유용하지는 않다. 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면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즉 주의 집중했던 상태가, 다시 말하면 어떤 정보가 장기기억에 저장되었던 정보와 연결되었는데 이것이 성급한 경우인 것이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흔히 ‘충동에 이끌렸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배움에서 주의력 또는 주의 집중력이 좋기 위해서는 3가지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체의 내부나 외부로부터 형성되는 무수한 자극(정보)에 대해 특정한 자극을 선택하고 그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충동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주의가 성급하게 결정되지 않고 침착하게 심사숙고된 것이어야 한다. 셋째, 인내심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까지 주의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충동적 행위를 한다. 그렇다면 왜 이성적인 인간이 충동(정념)에 자주 이끌릴까? 다시 말하면 “인간의 생존에 불리한 데도 왜 자주 그렇게 충동에 휩싸여 행동하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뇌는 원래 쾌락을 선호하고 불안을 기피한다. 쉽게 말하면 즐거움을 줄수록 생명 유지에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불안하거나 고통스럽게 할수록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양적 공리주의자 벤담은 인간 행위의 전제로서 “인간은 쾌락을 선호하고 불쾌를 기피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벤담만이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고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내려온 전통이었지만 벤담이 이를 정교화했다고 봐야 한다. 놀라운 점은 벤담이 살던 당시인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의 과학기술로는 이 주장이 타당하다고 입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신경 뇌과학의 발전으로 입증이 가능해졌다. 즉, 우리가 왜 충동에 이끌려서 행동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뇌가 쾌락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습성은 인간만이 아니다. 인간만이 뇌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인간 이외의 포유류도 그렇게 행동한다. 그러나 인간과 짐승의 행위는 구별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다른 것인가? 인간 행위를 결정하는 기제는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 행위를 결정하는 기제는 세 가지이다.
첫째, 측좌핵 메커니즘이다. 측좌핵은 동기부여와 밀접하며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되며 목표를 성취하면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된다. 즉 측좌핵은 기쁨, 쾌락을 주는 요소만을 쫓는다. 하지만 측좌핵은 그 쾌락이 진짜 생존에 도움을 주는지를 구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짝사랑하는 어떤 여학생이 있는데 그 여학생은 나에게 1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 그녀가 어느 날 나에게 며칠 후에 만나자고 했을 때 그때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나는 지금 그녀를 만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측좌핵으로 도파민이 분비되고 있으므로 기분이 좋고, 실제로 그녀를 만났을 때는 더욱 도파민이 많이 분비된 상태이므로 그야말로 쾌락 ‘짱’인 상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여학생이 나를 만나자고 하는 진짜 목적이 ‘나를 만나 죽이려고 하는 것’이고, 나에게 속임수를 썼다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제 3자가 나에게 그녀의 속셈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내 측좌핵에서는 계속 도파민이 분비될 것이고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갈 것이다. 다시 말해보자. 나는 그녀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고 도파민까지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졌는데 내가 그녀를 만나려고 간 것은 충동에 이끌린 판단 착오에 불과하다. 즉 그녀의 자극에 대해 주의 집중을 했더라도 내 생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전전두엽 메커니즘이다. 알다시피 전전두엽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 부위로 통제 회로의 중추로서 어떤 행위가 목표에 맞는가를 기준으로 작동한다. 즉 의도와 결과를 일치시키도록 통제하는 실행계획의 뇌이다. 위의 예에 적용하면 전전두엽은 측좌핵과 다르게 반응한다. 그녀가 나를 만나자는 신호를 보냈을 때 나는 무조건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나를 벌레 보듯 했는데 왜 갑자기 오늘 상냥한 목소리로 나에게 만나자고 했을까를 곰곰이 따져본다. 그리고 그 동기를 의심하면서 그녀를 만나러 갈지, 말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녀를 만나는 것이 생존에 유익한지, 불리한지를 따져본다. 그러면 전전두엽은 쾌락을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뇌는 어떤 경우든 쾌를 가까이하고 불쾌를 멀리한다. 다만 즐거움의 질. 다시 말하면 공리주의자였지만 벤담을 비판한 질적 공리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처럼 쾌락의 질을 따져보는 것이다. “그게 과연 정말 진정한 쾌락, 다시 말하면 내 생존에 도움을 주는 쾌락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모저모 주변 상황을 잘 따져본 후에 행동하게 한다. 그러니 전전두엽이 발달했다면(성숙했다면) 그녀가 만나자고 했더라도 무작정 즐겁지 않고, 어쩌면 만나러 가지 않는다. 왜냐고? 그녀가 나를 만나려는 동기가 의심스럽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녀를 만나러 가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편도체 메커니즘이다. 편도체는 알다시피 대표적인 변연계 부위이다. 감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감정을 해석한 느낌(주로 부정적 느낌)을 기억했다가 그 어떤 기제보다 즉각적으로 내·외부 자극에 반응토록 한다. 쾌와 불쾌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반응을 보이는 부위로 인간 행동에 있어서 가장 우선 작용한다. 예를 들어 내가 뱀에게 물려 죽을 뻔한 기억이 있으면 그 상황은 편도체에 기억된다. 그래서 다시 뱀을 만나게 되면 편도체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음을 알리게 되고 뱀과 싸우거나 뱀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즉각 대처하도록 한다. 다만 그 기억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전전두엽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데 이를 ‘편도체 하이재킹(Amygdala Hijack)’이라고 한다. 즉 뱀에만 주의 집중이 일어날 뿐이지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심지어 뱀에게 물려 죽음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었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가 곁에 있어도 그녀의 안전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도 어떤 인간들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기꺼이 뱀과 혈투를 벌인다. 인간의 위대함은 바로 이 점에 있다. 꼭 인간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것이 더 강하다.)
주의 집중은 무수한 정보로부터 한 정보에 몰입하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심사숙고하며, 정보에 몰입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마음의 힘이다. 그러므로 종종 주의력 결핍으로 보였던 행동이 사실은 정반대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때 나오는 현상이다. 즉 뇌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거의 모든 자원을 할당했으며, 그 과제와 무관한 모든 자극을 차단한 것이다. 요컨대 주의는 무엇에 집중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자극(정보)을 차단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배움을 높이기 위해 모든 학생은 주의 집중을 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이를 반복하여 연습해야 한다. 학생들이 주의를 집중할수록 그에 관련된 신경회로(시냅스)는 강화되고 새로운 정보는 대뇌 피질로 더 잘 보내진다. 즉 주의 집중은 배움에 꼭 필요한 훈련으로 신체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에 빗댈 수 있다. 교사 또한 학생들의 주의 집중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학생에게 배움이 일어나게 하려면 수업에서 주의를 끄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 개개인이 언제 주의 집중을 하는지, 무엇에 주의 집중하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수업에 활용하는 교재나 교구를 선택할 때도 그것들이 주의를 집중하는 데 효과적인 것들이어야 하고, 선택된 도구 또한 주의 집중에 효과적인 방식으로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 까닭은 학생이 배워야 할 정보에 집중하지 않으면 무엇인가를 배울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뇌에는 주의 집중에 관여하는 시스템이 있다. 이는 감각기관을 통과한 무수한 정보 중에 한 정보에 몰입하게 하고 나머지 정보를 무시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즉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패턴을 찾을 수 없다면 뇌는 중요하지 않은 정보로 보고, 뇌로 들어오는 1차 관문인 시상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마와 전전두엽과 연결된 작업기억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정보를 버리는 정보처리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작동원리, 즉 주의 메커니즘은 배움에서 매우 중요하며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슈아 벤지오는 인공지능신경망에 이 원리를 도입했다. 그가 주의 메커니즘을 인공지능에 도입하기 전까지 인공지능 신경망의 처리 속도는 매우 느렸다. 그전까지 인공지능은 적절한 정보에 집중하지 못하고 데이터를 가지고 예상되는 모든 조합을 계산하여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지만, 주의 원리를 도입한 이후로 정보처리 속도는 눈부시게 빨라졌다.
주의 메커니즘의 중심은 전전두엽이다. 새로운 (감각) 정보가 뇌로 들어올 때 후각을 제외한 시각, 청각, 미각, 체감각 정보는 간뇌 뒤편에 있는 시상을 통과하여 대뇌 피질로 들어가는데 (후각은 후각망울을 통과하여 대뇌 피질로 들어감) 전전두엽은 시상을 통과할 정보와 차단할 정보를 선택한다. 알다시피 시상은 정보가 가는 길을 지시해주는 톨게이트(tollgate)이다. 즉 시상은 대뇌 피질과 두꺼운 신경망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계속 정보를 주고받는데 시상으로 정보가 들어오면 그 정보가 대뇌 어느 부위로 갈지를 정해준다. 마치 차량의 진입 방향이 톨게이트에서 정해지는 것에 빗댈 수 있다. 단 이 과정은 과거에 이미 들어왔던 정보이거나 시상이 위험하지 않은 정보라고 판단할 때 이루어진다. 물론 이에 대한 이견도 있다. 그것은 시상으로 들어온 정보 중에 대뇌 피질로 들어갈 정보와 차단할 정보를 선택하는 역할을 전전두엽이 아닌 시상이 주도한다고 보는 의견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시상과 전전두엽이 상호 밀접하게 작동하며 둘 중 어느 하나가 없으면 뇌에서 처리되어야 할 정보 선택이 불가능한 것은 명백하다. 요컨대 주의력 또는 주의 집중력은 전전두엽이 정보 선택을 하도록 하는 힘이다. 즉 주의한 정보만 시상을 통과하고 주의하지 않은 정보는 시상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그러면 전전두엽의 주의력(주의 집중력)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즉 무엇이 전전두엽에게 주의력을 갖게 해주는 것일까? 그것은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 등(100개가 넘지만 아직 다 찾지 못한 미완의 영역)으로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노르에피네프린), 아세틸 콜린, 세로토닌, 엔돌핀 등이다. 다시 말하면 전전두엽으로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 등이 보내지면 전전두엽에서 주의 집중력이 발현된다. (“주의 집중력이 발현된다”라고 표현한 것은 발현이란 잠재된 상태가 실현되는 것인데 전전두엽에 신경전달물질이 제공되지 않으면 주의 집중력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동차에 기름(신체 화학물질)이 들어가야만 엔진(전전두엽)이 추진력(주의 집중력)을 얻는 것에 빗댈 수 있다.
그러면 전전두엽에 신경전달물질 등은 언제 제공될까? 거듭하지만 뇌의 제1 목표는 생존이므로 이를 위해 신경전달물질이 제공되는 것이기에 개체의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 첫째, 신체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이다. 배가 고프거나, 추운데 입을 옷이 없거나, 거주할 장소가 없는 등 의식주가 채워지지 않아서 생존 위험을 느낄 때 제공된다. 둘째, 스스로 선택할 때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그 결과 또한 자신이 책임져야 하므로 생존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성급하지 않고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셋째, 새롭거나 신기한 자극(정보)이 감각기관으로 들어올 때이다. 생물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야만 살아남는 데 새롭거나 신기한 자극은 생존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생존하려면 이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경전달물질은 주의 시스템으로 제공되며 인간은 감각정보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는 학생들을 배움으로 인도하며 주의를 끄는 수업을 해야
교사들은 효과적 수업을 위해 배움의 첫 단계인 주의를 이해해야 하고, 그렇다면 주요한 신경전달물질의 기전(메커니즘)에 대해 개략적으로나마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의 배움을 촉진할 수 있다.
첫째, 도파민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파민은 중추신경계(뇌와 척수)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으로,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의 전구체이다. 전구체는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물질로 생성물의 원인 물질이므로 도파민이 없으면 아드레날린이나 노르아드레날린은 만들어질 수 없다. 도파민은 중뇌의 흑질과 복측피개야 영역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에서 분비되어 신경 신호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뉴런 간에 자극을 전달) 의욕, 행복, 기억, 인지, 운동 조절(정상적 움직임) 등 뇌에 다방면으로 관여한다. 뇌에 도파민이 너무 과도하거나 부족하면 ADHD, 조현병, 치매,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파킨슨병은 흑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파괴되어 운동 능력이 점차 떨어지는 질환이다. 그래서 파킨슨병 환자는 도파민이 부족하므로 도파민이 하나의 치료약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도파민의 동기부여, 주의 집중, 감정 조절 기능에 주목해야 한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성취감과 보상감, 쾌락의 감정을 느끼며, 인체를 흥분시켜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느끼게 한다. 두뇌 활동 또한 증가하며 학습 속도, 정확도, 인내, 끈기, 작업 속도 등에 영향을 준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옷을 입거나, 갖고 싶었던 물건을 구매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업무 성과를 달성하거나, 좋은 음악을 감상할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상황에서만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은 아니다. 쾌락을 줄 수 있다고 기대되거나 쾌락을 경험했던 상황에 직면하면 도파민이 분비되므로 포르노, 술, 담배, 약물 및 오락 등도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예컨대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중뇌 복측피개야 영역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를 통해 생성된 도파민이 기저핵으로 분비되며 담배를 피우기 전부터 쾌락을 느끼게 해주고 기저핵은 그 신호를 측좌핵을 거쳐 전전두엽으로 보내고 전전두엽은 담배를 피우도록 지시한다. 즉 인간 행위의 기제에서 밝힌 것처럼 흑질과 복측피개야 영역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는 도파민을 분비하는데 도파민의 분비는 기저핵, 측좌핵, 해마, 전전두엽 등이 연결된 보상회로에 큰 영향을 주며 기저핵으로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될수록 더 많은 쾌락을 느낀다. 그러나 기저핵은 그 쾌락이 정말 생존에 도움이 되는 쾌락인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단지 쾌락이 기대되거나 어떤 행위가 쾌락을 주었으면 그 행위가 반복될 때 도파민이 분비되게 하며 기대했던 쾌락이 실현되면 도파민을 더 많이 분비되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었거나 기대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려고 한다.
측좌핵과 전전두엽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전두엽은 언제든 측좌핵이 보낸 신호를 참고하여 의사결정을 한다. 즉 전전두엽이 처리해야 할 정보에서 어떤 정보를 우선 처리할 것인가를 측좌핵이 보내준 신호를 참고하여 결정한다. 예를 들어 “게임을 하는 것과 수학 학습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까?”라고 전전두엽이 고민할 때 전전두엽은 그 판단을 측좌핵에게 내려달라고 신호를 보내며, 측좌핵은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은 쾌락을 주었거나,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되는 쪽으로 도파민을 많이 분비함으로써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전전두엽으로 보내면 전전두엽은 운동뉴런을 통해 행동하게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측좌핵이 설령 게임을 추천했더라도 전전두엽이 꼭 게임을 운동기관에 지시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배움의 중요성이 있다. 전전두엽이 게임이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을 내리면 측좌핵에서 게임 선택 신호를 보내더라도 전전두엽은 반응하지 않는다. 이것이 전전두엽의 통제 회로로서의 기능이다. 또한 도파민과 관련해 유의할 점이 있다. 도파민은 단순히 행복이나 쾌감에만 관여하지 않는다. 두려움이나 공포(정확하게는 위험 상황에 대한 경고 신호로서의 두려움이나 공포) 등에도 관여한다. 쾌감을 추구하는 것과 위험이나 위기 상황을 느끼는 것이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더라도 특정한 행동을 반복할 때가 있다. 즉 무의식적 습관이다. 이 과정은 기저핵의 윗부분에 있는 배측 선조체, 즉 비 측좌핵 부위가 주도한다. 배측 선조체는 쾌나 불쾌 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며 오직 익숙하냐(경험의 여부)에 따라 반응하는 부위로서 쾌락을 주었던 행위를 기억해두었다가 그 행위를 반복하도록 한다. 결국 배측 선조체에 습관 회로 배선이 생기면 측좌핵(복측 선조체, 아래쪽 기저핵)에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았는데도 무의식적으로 특정 행위를 반복하려고 한다. 예컨대 흡연자가 담배 피우는 것이 즐겁지 않으며 그 사실을 지각하더라도 계속 담배를 피우는 경우이다. 요컨대 인간은 처음에는 측좌핵이 자극되고 도파민이 분비됨에 따라 쾌락을 느껴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만, 같은 수준의 자극이 주어지면 도파민은 더 이상 측좌핵으로 분비되지 않고, 그 행위는 익숙한 것만 쫓는 배측 선조체에 의해 반복된다. 하지만 뇌는 쾌락을 추구하므로 습관을 반복하면서도 측좌핵으로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될 수 있도록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한다. 예컨대 흡연자가 흡연량을 늘리거나 술, 마약 등 다른 대체재를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습관에는 나쁜 습관만 있지는 않다. 정해진 시간에 공부를 반복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인간은 좋은 습관보다 나쁜 습관에 빠지기 쉽다. 나쁜 습관이 훨씬 자극적이고 강렬한 쾌락을 주며 도파민 또한 나쁜 습관일 때 더 많이 분비된다. 그래서 나쁜 습관이 한번 들면 고치기 힘들며 설령 고쳤어도 다시 나쁜 습관으로 되돌아가는 쉬운 것이다. 어찌 되었든 주의 집중에 도파민은 긍정적이며 도파민 분비가 많을수록 집중력도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노르아드레날린에 대해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르에피네프린 또는 노르아드레날린은 교감신경의 말단과 부신 수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자 신경전달물질이다. 알다시피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의 전구물질은 도파민이기 때문에 둘 다 도파민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하지만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의 기능은 다르다. 노르아드레날린은 뇌에서는 주로 집행기능(Executive function)을 위시한 인지기능, 주의력, 장기기억과 작업기억의 기능을 강화한다. 특히 위험한 상황에서 경계심을 극도로 올리도록 한다. 예를 들어 등산 중에 곰이나 애매하지만 곰과 비슷한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그 자극은 시상에서 즉시 편도체로 전달된다. 전전두엽은 곰이나 유사한 대상을 만난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정보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그 정보를 시상에서 대뇌 피질로 보내서 편도체로 보내지 않고 즉시 시상에서 편도체로 보낸다. 이 정보를 받은 편도체는 시상하부에 신호를 보내고 시상하부는 뇌하수체(호르몬 사령부)를 통해 부신 수질(호르몬 공장)에서 노르아드레날린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도록 한다. 노르아드레날린과 아드레날린만 분비되는 것은 아니다. 뇌하수체는 다른 호르몬 공장인 부신 피질에서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는 코르티솔을 분비케 한다. 한마디로 생명을 위협하는 긴급사태가 발생했다고 보고 비상사태를 발동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위험한 상황이니까 도망갈 것인지, 싸울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르아드레날린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심박수가 올라가고(아드레날린) 뇌와 골격근에 혈액이 퍼지면서(노르아드레날린) 순발력 있게 행동할 준비를 마치고 뇌는 각성 상태가 되고 주의 집중력도 높아져서 그야말로 곰과의 일전불사 아니면 삼십육계를 결정하도록 한다. 이처럼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은 사태에 대해 경계하도록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그러므로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이 과잉 분비되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전전두엽의 기능이 마비된다. 예컨대 어떤 생각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작업하는 일에서 도저히 손을 뗄 수 없거나, 헤어진 사람과 관련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면, 이는 모두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이 과잉 분비된 탓이다. 통상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깨면 분비되고, 낮 동안 분비량이 늘어나다가, 저녁이 되고 밤이 될수록 줄어든다. 그리고 충분한 수면을 해야만 제대로 분비된다. 그래서 학생들이 오전이나 낮, 오후에 배움에 주의 집중을 하려면 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요컨대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은 뇌를 각성시킴으로써 주의력을 높이며 주로 낮에, 충분한 수면이 뒷받침되어야 분비된다. 왜 교사가 흥미 위주의 수업을 해서는 안 되며 학생들에게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해야 하는가는 뇌를 각성시켜 주의 집중하도록 하는 노르아드레날린과 아드레날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셋째로 알아두어야 할 것으로는 아세틸 콜린이 있다. 아세틸 콜린은 뉴런(신경세포) 간에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뇌를 구성하는 뇌세포는 약 1조 개인데 그 중에 신경세포라고 불리는 뉴런은 1천억 개, 나머지 9천억 개는 교세포(별세포)로 되어 있다. 뉴런이든 교세포든 모두 배움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특히 뉴런은 매우 중요하다. 뉴런은 신경핵이 있는 세포체, 수상돌기(가지돌기), 그리고 축삭과 축삭돌기로 구성되어 있다. 한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자극은 계속 전달되는데 그 과정은 한 뉴런의 축삭돌기와 인접한 뉴런의 수상돌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을 우리는 시냅스라고 부른다. 즉 시냅스는 뉴런과 뉴런의 접합이다. 이때 한 뉴런의 축삭과 축삭돌기를 거쳐 다른 뉴런의 수상돌기로 정보, 즉 자극이 전달되려면 시냅스라는 강을 건너야 하고 그 강을 건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신경전달물질인데 이때 아세틸 콜린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아세틸 콜린은 정보전달이 이루어지도록 시냅스라는 강을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이다. 물론 그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뇌의 기억, 주의, 집중, 동기부여, 판단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아세틸 콜린이 적정하게 분비되면 부신 수질에서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도록 하여 뇌는 각성 상태를 보이므로 기억력, 주의력, 집중력, 동기부여 등이 높아진다. 특히 아드레날린이나 노르아드레날린이 교감신경을 활성화했다면 아세틸 콜린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한다.
이 이외에도 배움을 위해 알아두어야 할 신경전달물질로는 우울증과 관련된 세로토닌, 수면과 관련된 멜라토닌, 신뢰와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 행복 호르몬인 엔돌핀 등이 있다. 세로토닌과 옥시토신은 감정, 기분(느낌)과 밀접한 신경전달물질이다. 배움에서 이성보다는 감정(느낌)이 우선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신경전달물질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멜라토닌은 수면과 관련이 있으며 수면은 배움에서 깊은 이해에 이르게 하는 응고나 창의력과 밀접하다.
주의 집중이 일어나는 계기는 3가지라고 했다. 생존과 관련되어 있는데 의식주 등 기본적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행위 결과가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심사숙고하여 판단해야 할 때, 새롭거나 기이한 경험을 할 때이다. 위에서 제시한 신경전달물질로 설명하면 호르몬 사령부인 뇌하수체의 신호를 통해 호르몬 공장인 부신 수질에서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각성 상태를 일으키지만, 편도체 하이제킹 수준으로 분비되지 않을 때와 중뇌의 흑질이나 복측피개영역이 활성화되어 도파민이 분비될 때이다.
수업에 적용하면 학생들이 적당한 긴장 상태에서 긍정적인(편안한)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하면서 수업내용이 각자의 삶과 관련된 탓에 의미를 찾을 수 있거나, 수업 방식이나 수업내용이 새로워서 호기심을 유발할 때라고 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수업 방식이나 수업내용이 부정적 느낌을 주거나, 수업내용으로 전달되는 새로운 정보가 장기기억에 저장된 기억인 자신의 경험과 무관하거나, 수업 방식이나 수업내용이 진부하여 도전적 과제라고 보여지지 않으면 주의를 끌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배움으로 인도하는 주의를 끄는 수업은 학생이 감정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각자 삶과 관련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도전적으로 해결하도록 이끌어 주는 수업으로 이때 학생에게 배움으로 주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주의를 집중하는 수업은 재미있는 수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재미있는 수업은 순간적으로 학습자의 주의를 끌 수는 있어도 주의를 유지할 수 없는 탓에 수업내용을 온전히 장기기억으로 보낼 수 없다.
그렇다면 에듀테크를 활용하지 않는 전통적 수업에서 주의를 끌게 하는 기술로는 무엇이 있을까? 예컨대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올 때 음악을 틀어주거나, 무대의상을 입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목소리 톤을 바꾸거나 제스쳐를 쓰거나, 수업을 유머로 시작하거나, 수업내용과 관련된 예를 새로운 스토리로 제시하거나, 학생들에게 노트를 바꿔 보도록 하면서 공유하고 싶은 내용을 상대에게 추천하도록 하거나, 거울처럼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수업내용을 각자 경험에 연결해 말해보도록 하거나, 학생들에게 교과서에 제시된 문제 중에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를 이전에 학습한 내용이나 경험과 연결하여 능동적으로 답하도록 하거나 등이다.
특히 학생들의 뇌가 언제 휴식이 필요한지를 알아차리는 일도 중요하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멍한 표정을 지으면 더 이상 뇌를 사용할 수 없다는 신호일 수 있으므로 잠시라도 휴식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뇌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이 원활하게 분비되지 않는다. 휴식을 주더라도 수업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수업이 갑자기 중단되면 의욕이 꺾일 수 있으므로 언제, 얼마만큼 휴식이 주어지는지를 미리 알려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뇌는 30분 정도 활동하면 정보전달 속도가 느려지고 이후 30분 정도가 더 지나면 뉴런 간에 신호가 전달되지 않는 불응기에 빠진다. 불응기란 뇌가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시간이므로 이때는 뇌를 쉬게 해줘야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수업 시간을 초, 중, 고에서 각각 40분, 45분, 50분으로 하고 10분을 쉬는 것은 이런 뇌 구조를 반영한 결과이다. 100분 동안 같은 과목의 수업이 이어지는 블럭 수업을 하더라도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하며 불응기를 고려하면 블럭 수업은 나이가 어릴수록 즉 초등학생일수록 좋은 수업 형태라고 볼 수 없다.
수업에서의 에듀테크 활용은 주의 집중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 전통적 수업에서 사용되었던 주의 집중 기술의 일부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예컨대 교사들은 학생들의 주의의 순간을 파악해야 하는데 수업 중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학습자의 주의가 언제, 무엇에 있는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컴퓨터로 피드백함으로써 학생들의 주의를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학생들의 주의가 산만해진 탓이 수업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너무 쉬워 도전의식을 유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파악함으로써 수업내용과 수업 방식을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 변경하여 적용할 수 있다. 즉 학생 각자에게 맞춤형 수업내용을 전달함으로써 주의를 집중하게 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업에서의 에듀테크 활용은 학생들이 새로 배우는 내용에 주의를 두게 하고 그들의 사전 지식수준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의미 있는 학습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수업내용과 관련된 문제를 주고 학생들은 각각 그 문제의 답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그 내용은 교사의 컴퓨터로 일괄적으로 전송되어 학생들이 수업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정답과 오답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학생들의 사전 지식수준도 추론할 수 있다. 게다가 학생이 수업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교사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기를 원하면 컴퓨터 버튼을 눌러 알릴 수 있으므로 주의 집중에 효과적이다. 즉 교사가 에듀테크를 수업 중에 활용하지 않는 전통적 교실에서는 교사가 수업내용에 대해 학생들에게 직접 묻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하거나, 학생들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그들의 말을 세심하게 들어서 수업내용에 대한 이해도나 수업 방식에 대한 만족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한계를 개선할 수 있다. 수업 시간의 제약으로 교사와 학생 간에 질문과 대답이 한정되고, 수업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였는데도 질문을 하지 않거나, 수업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등에 대해 에듀테크는 교사에게 통계치를 제공함으로써 수업 속도를 조절하도록 한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램의 비주얼(영상)과 즉각적인 음향은 학생들에게 각성효과를 유발함으로써 주의를 단기간에 배움으로 끌어올 수 있다.
요컨대 에듀테크는 주의 집중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즉 에듀테크의 영상효과 및 음향효과를 통한 학생들의 한시적 주의 집중, 수업 방법 및 수업내용에 대한 이해도 측정을 통한 학생들의 주의 유지 상태 확인, 사전 지식수준 파악으로 학생들에게 도전적 과제를 제시하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그런데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 어떤 측면에서는 전통적 수업 형태, 교재나 교구의 사용과 비교해 주의 집중에 있어 우수한데도 세 연구보고서는 에듀테크 활용 수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했을까? 그 답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 뇌의 주의 메커니즘이나 정보전달 시스템에 부정적이거나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며, 그에 대한 근거도 명백하다.
인간에게는 에듀테크가 넘볼 수 없는 주의 능력이 있고 이 능력은 에듀테크 활용 수업에서는 온전히 발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에게 유일하고 그 어떤 종도 갖지 못하는 ‘주의의 공유’라는 직접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진화 과정에서 생겨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타인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발휘된다. 또한 이는 배움에서 전통적인 강의식/학생 참여형 수업과 에듀테크 활용 수업과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유아들은 이른 나이부터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데 주로 눈에 집중한다. 부모나 형제들이 말을 걸 때, 아기들의 첫 반응은 장면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교감 중인 상대와 눈맞춤부터 한다. 그 후에 비로소 상대의 눈이 쳐다보거나 지시하는 물체를 바라본다. 또한 아이가 언어를 배울 때도 부모와 눈맞춤을 하면서 영상물을 볼 때와 부모와의 눈맞춤 없이 녹음기나 영상물로 언어를 배울 때 그 속도에 있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녹음기나 영상물 같은 대상이 주의를 끌 수는 있어도 직접적 만남에서 보여지는 상대에 대한 주의만큼 강력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러면 교사와 학생 간에 또는 부모와 자녀 간에 이루어지는 주의 공유는 무엇에 기인하는가? 주의의 공유는 인간에게 ‘표상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표상(representation)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대상을 의식으로 나타낸 이미지이다. 예를 들면 눈으로 곰을 보았을 때 머릿속에 새겨진 곰의 모습을 곰에 대한 표상이라고 한다. 표상은 기억된 대상이 지금 앞에 실제로 있으면 지각 표상, 기억으로 재생할 때 즉 장기기억에서 끌어올 때는 기억 표상, 기억에 있는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여러 이미지를 합쳐 상상한 상상 표상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황금과 산을 경험한 후에 황금산을 떠올리는 것은 상상 표상이다. 또한 좁은 의미에서의 표상은 기억 표상과 상상 표상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경험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능력이 있다. 또한 기억력과 상상력은 진화에 따라 뇌에 형성된 산물이고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작고 왜소한 호모사피엔스가 거구의 네안데르탈인과의 전쟁에서 승자가 된 것은 바로 이 상상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상상력을 통해 토템을 만들어내고 이를 신봉함으로써 구성원 간에 강한 유대감을 다졌다. 즉 우리가 형제이거나 같은 동지라고 공유하면서 함께 생존하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뇌과학자들은 아이들은 뇌에 이미 교육학 회로를 갖고 태어나며 교사가 아이들에게 주의를 두자마자 이것이 바로 활성화된다고 보고 있다. 즉 진화적 산물인 표상 능력이 기억 표상과 기억 표상에 근거한 상상 표상을 일으킨다고 본다.
그러므로 에듀테크는 주의 집중에 도움을 주지만 교사와 학생 간에 소통하는 ‘주의의 공유’만큼 주의 집중에 효과적이지는 않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이미 진화적으로 최고의 주의 능력을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며 활용할 수 있으므로 교사와 아이들의 직접적 만남(관계)이 주의 집중에 더욱 효과적이며, 이 능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수업 형태가 전통적 교재와 교구를 사용하여 이루어지는 강의식, 학생 참여형 수업인 것이다. 단 이러한 주의의 공유 능력이 최대한 발현되려면 교사는 수업 중에 늘 학생과 눈을 마주치려고 해야 하며 교사로서 스스로 모범적 행동을 보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사와 학생의 수업에서의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며 서로 간에 강한 정신적 유대를 맺는 직접적 과정이므로 그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교육목표(성취 수준)의 절반은 이미 달성된 것이다. 하지만 에듀테크는 인간이 아니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에듀테크를 활용한다고 하면서 상당한 시간을 교사가 아닌 에듀테크와 접촉한다. 그러므로 에듀테크는 교육이 추구하는 지성, 감성, 시민성을 기르는 방향에 대해 모범을 보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근본적으로 교사와 학생 간에 서로 존중하거나 상호신뢰를 갖는 것만큼 효과적이지도 않다. 즉 교사와 학생이 마음으로 소통하는 능력은 인간 외 표상 능력이 없는 어떤 동물들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 교사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수업과 에듀테크 영상이나 음성으로 진행되는 수업 간의 주의의 차이는 분명할 수밖에 없다. 교사는 학생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기에 앞서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며, 아이들은 교사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에 교사가 지금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채므로 교사의 말과 몸짓에 더욱 주의를 집중한다. 더구나 교사의 눈빛이나 몸짓을 지금 중요한 내용을 자신에게 전달하려고 하며 그것도 보여주는 것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내용이 일반화할 수 있는 객관적인 내용을 전달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즉 교사와 학생의 눈 마주침은 교사가 사실적 지식을 넘어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개념적 지식을 전달해 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학생은 교사의 몸짓이나 말에 집중함으로써 에듀테크 활용 수업에 비해 교과의 교육내용에 담긴 숨은 의도를 빠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교사 또한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당신의 태도와 시선이 전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즉 교사는 시각적 접촉과 대화를 통해 학생의 주의를 끌려고 하면 학생은 자연스럽게 당신과 주의를 공유하며 당신이 전달하려고 하는 수업내용에 주의를 집중함에 따라 배움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다시 말하면 학생의 뇌에서 주의와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 아드레날린, 아세틸 콜린이 자연스럽고 적정한 수준으로 지속 분비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전전두엽, 시상, 측좌핵, 편도체 등으로 연결된 주의 시스템은 높은 주의 집중력을 유지한 채로 작동하게 된다.
에듀테크 활용 수업은 멀티태스킹이 유발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어
주의 집중을 위한 최고의 방법은 주의 집중에 유익한 기술을 추구하거나 주의를 분산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주의 분산 요인을 억제하는 것이 효과적인 듯 보이지만 보상 시스템인 측좌핵이 쾌락에 우선 반응하고, 전전두엽은 뒤늦게 반응하므로 거의 효과가 없다. 그러므로 주의 분산 요인을 최소로 하는 학습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 주의 분산에 효과적인 수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에듀테크 활용 수업은 전통적 수업에 비해 구조적으로 주의력을 분산시킨다. 그 까닭은 에듀테크 활용 수업이 학습자에게 멀티태스킹이 유발하는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멀티태스킹은 한 컴퓨터가 동시에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표현하는 용어로, 원래 뜻은 컴퓨터가 수행하는 과제의 전환이다. 과제 전환에는 두 유형이 있다. 과제 A에서 과제 B로, 과제 B에서 과제 C로 옮겨가는 순차 과제 전환이 있고, 과제 A와 과제 B를 왔다 갔다 하는 교차 과제 전환이 있다. 그리고 컴퓨터는 그것이 순차적이든, 교차적이든 멀티태스킹을 한다.
그러면 “인간도 컴퓨터처럼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 과제가 두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처리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멀티태스킹이 아니다. 멀티태스킹은 계획, 숙고, 추론 등의 능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활동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멀티태스킹이라고 보였던 것들은 다양한 활동 사이로 빠르게 집중력을 옮기는 순차적 과업 전환일 뿐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리 뇌는 컴퓨터와는 다르게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은 주의 분산으로, 특히 교차 과제 전환에서 급격하게 나타난다. 이는 시각, 청각, 후각처럼 우리가 대체로 통제할 수 없는 방해물과 달리 멀티태스킹은 학습자가 스스로 원해서 집중력을 다른 곳에 돌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학습자가 고의로 두뇌 역량을 약화시키고 집중력을 흐린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수업에서 에듀테크를 쓰지 않고 교사나 친구와 눈을 마주치면서 강의하거나 친구와의 토론에 10분쯤 집중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교사가 구글을 검색해서 수업내용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라고 한다. 그러면 뇌는 교사의 수업내용이나 친구와의 토론에 집중하던 것을 그만두고, 컴퓨터를 켜고 구글에 접속하여 관련 검색어를 키보드로 입력한 후에 주의를 집중한다. 물론 검색어 입력을 음성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순간 놀라운 일이 학습자의 뇌에서 벌어진다. 검색하여 적정한 정보를 찾는 동안에 학습자의 뇌에서 작업기억으로 처리되던 교사 강의나 친구와의 토론 내용이 서서히 사라지고, 구글에서 얻는 정보로 대체된다. 그 까닭은 학습자의 정보를 처리하여 기억을 생성하는 작업기억 용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구글에서 정보검색을 그만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학습자는 어떤 상태가 될까? 학습자는 교사의 수업내용이나 친구와의 토론에 주의 집중했으므로 그 정보가 여전히 작업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미 많은 정보는 사라져 버린 상태이다. 그래서 학습자가 에듀테크를 통해 정보검색을 오래 할수록 다시 선생님이나 친구의 눈을 볼 때 조금 전에 교사나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교재나 교구를 쓰는 수업에 비해 에듀테크 활용 수업은 학습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다. 에듀테크를 활용하다가 멈춘 순간에 교사가 질문을 하면 에듀테크에서 검색한 정보가 질문과 동떨어진 것인데도 그것으로 대답해버린다. 그 까닭은 학생의 뇌가 작업 수행에서 심리적 불응기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즉 뇌가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넘어갈 때 혼합되는 짧은 순간이 발생하여 일반적인 작업 수행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성인들도 가끔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이메일을 쓸 때 상대에게 건네야 할 말을 이메일에 쓰곤 한다. 나아가 작업 전환 중에는 선조체의 활동이 늘어난다. 선조체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습관과 관련된 뇌 변연계 기저핵 부위로서 작업 전환 중에 습득한 정보를 기억했다가 반복한다. 그래서 수업 중이든 수업이 끝나든 학생들이 습관적으로 에듀테크를 작동하고 여러 정보를 검색하려는 행동을 통제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학습자가 교사의 수업내용이나 친구와의 토론을 그만두고 종이책 등 전통적인 교재로 주의를 돌릴 수 있고, 에듀테크가 아닌 교실 창밖의 풍경, 교실 뒷벽의 게시물, 펜이나 책상에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등 교실 환경 등으로도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지 않느냐?” 그러므로 “꼭 에듀테크가 치명적이라고만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듀테크는 그것들의 주의 분산도에 비해 더욱 급격하게 주의를 분산시킨다. 그러므로 에듀테크 탓이 아니라고 하거나 다른 주의 분산 환경을 들이미는 것은 인간 뇌의 메커니즘을 부정하는 일이다. 우리가 멀티태스킹을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뇌가 새로운 자극을 찾으려는 강한 욕구를 갖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새로운 것이나 신기한 것이 나타나면 측좌핵으로 도파만이 분비되어 호기심이 발동하고 그것에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에듀테크, 예컨대 에듀테크를 통해 들어온 구글의 세상은 뇌에게 새롭고 기이한 것이 가득 채워진 저장고로서 잠깐 마우스를 클릭하면 뇌는 별다른 장애물 없이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에듀테크는 통제 회로인 전전두엽이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유인하는 절호의 매개체이다. 그리고 도파민의 쾌락을 탐닉하는 습성은 결국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없이는 지루함을 느끼게 하므로 점차 검색 욕구를 높이게 되고, 결국 에듀테크는 그 어떤 학습 환경보다 주의 집중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에듀테크가 처음에 시각효과와 영상효과로 잠깐 학생들의 주의를 끌거나 그들의 뇌를 각성시킬 수는 있어도 그 보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하며 학습에 부정적 영향을 줄 뿐이다.
에듀테크 활용 수업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에듀테크를 지속 활용하면 담배나 마약에 중독되듯이 학생들에게서 구글 등 정보를 지속 검색하려는 유혹을 쉽게 차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에듀테크를 검색하지 않게 하고 교사의 수업내용을 듣게 하거나 친구와 토론할 때도 주의 집중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에듀테크의 지속 사용이 멀티태스킹을 피할 수 없게 하며 뇌에서 회백질의 밀도를 줄어들게 하기 때문이다. 즉 뇌는 중추신경계를 관장하는데 뇌의 바깥쪽인 대뇌 피질은 전두엽, 후두엽, 측두엽, 두정엽 등이 있는 곳으로서 뉴런의 신경세포체와 수상돌기가 주로 모여 있는 회백질 부위이고, 뇌의 안쪽은 백질 부위로 뉴런의 축삭돌기가 모여 있는데 인간 뇌의 중요한 기능인 인지기능과 감정 조절 기능을 대뇌 피질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백질의 밀도가 낮아지면 특정 정보를 오랜 시간 잡아둘 수 없으므로 뇌의 주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컴퓨터로 대표되는 에듀테크는 학습에 최적의 도구인가? 컴퓨터를 활용한 수업 기술은 배움을 심화시키는가? 위에서 논증하였듯이 전혀 그렇지 않다. 에듀테크 기술이 멀티태스킹을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컴퓨터가 아닌 뭔가 다른 물리적 도구들을 통해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점에서 에듀테크로 얻는 수업 기술이 유익한 측면이 있더라도 종이책, 화이트보드, 노트, 펜 등을 사용하는 전통적 수업이 배움에서 주의 집중력, 기억력을 높임으로써 학습 효과를 더 높인다.
에듀테크 인프라 부족이 학습 효과를 낮춘 요인이라는 주장은 궤변
최근 발표된 에듀테크를 활용한 수업이나 배움과 관련된 세 개의 보고서에 나타난 “에듀테크 활용 수업은 전통적 수업에 비해 학습에 부정적이다”라는 결론은 뇌의 주의 메커니즘을 고려하면 자명하다. 그런데도 에듀테크를 활용하는 수업이 배움을 높일 수 있다거나, 에듀테크 인프라 부족에 따른 탓이라는 주장은 궤변에 가깝다. 에듀테크를 학교에 충분하게 보급하지 않거나 교사가 에듀테크를 활용하는 기술을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뇌가 에듀테크를 통한 배움에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배움에 집중력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교사와 학습자가 주의를 공유하지 않는 것이나 멀티태스킹은 이를 더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주의 분산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교사나 학습자가 의도적으로 주의 분산 요소를 무시하려고 하지 말고 에듀테크가 불가피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는 등 최선을 다해 주의 분산이 이루어지게 하는 학습 환경을 제거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교사와 학습자는 서로에게 눈을 마주치려고 하고, 교사는 수업내용과 수업 방식을 흥미롭고, 의미 있게 준비함으로써 학생들에게 가장 즐거운 자극이 되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

잘 읽었습니다. 저는 유아교육을 전공했는데요, 요즘 유아교육에서 이른바 스마트교육이 각광받고 있는 시점에서 기대와 염려가 공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기대와 염려의 근거를 찾은 것 같아 속시원하네요. 부모교육 시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아교육에 스마트 교육이라니요…. 배움과 발달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도 예산은 더 늘렸더라구요… 슬픕니다.
잘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교육과 학부생입니다. 칼럼을 통해 에듀테크 교육의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예비교사(학부생)들 사이에서는 에듀테크를 사용하는 것이 거의 법칙입니다. ‘어떤 에듀테크를 활용할까?’라는 논의가 ‘어떻게 이해시킬까?’에 대한 논의보다 앞섭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끼워넣기식 에듀테크가 학생들의 학습에 비효과적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충분히 증진할 수 있을까?‘ ’수학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 수학과 관련한 만화를 컴퓨터로 그리는 것을 통해 정말 학생들이 수학 개념을 깊게 이해할 수 있을까?‘ 등 초등교육에서 이루어지는 에듀테크 활용 교육에 대해 의문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디지털 소양을 기르고, 미래 역량과 창의력을 기른다는 목적으로 이런 에듀테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말 이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지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에듀테크가 정신적인 문제(우울,불안)을 가진 학생이나 주의집중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악효과가 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경험에도 비추어 보면, 학교 시험을 보기 위해 태블릿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종이에 연필로 쓰면서 공부할 때 학습효과가 큰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에듀테크가 비효과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근거를 정확히 몰라서 답답했습니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시대로 갈수록 아날로그식 교육의 중요성이 커질 것 같은데, 유행처럼 번지는 에듀테크 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칼럼을 통해 고민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디지털 교육은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미래 교육은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 칼럼을 쓰시는 데 영향을 준 책이 있다면 추천을 받을 수 있을까요?
너무나 많은 여러 질문을 주셔서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에듀테크 기반 교육이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그것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뜻입니다. 즉 유초중등교육에서는 전통적 도구기반수업이 훨씬 지성 감성 시민성을 기르는데 맞습니다. 인간 뇌의 발달때문에 그렇습니다. 샘의 질문에 대한 일정한 답을 제 저서인 미래교육의 불편한 진실과 학교속 문해력 수업에서 답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교육이 어떻게 어느 정도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뚜렷한 연구는 없습니다 . 다만 비교연구를 보면 유초증등에서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교육이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여러 입장이 있지만 실제의 학습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즉 학습과학을 바탕으로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면서 전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체적으로 나서는 태도를 아이들에게 기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또 글 쓰겠습니다 꾸벅.
감사합니다! 답변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