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연계한 학습과 광폭의 전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 “익숙한 것과 아는 것은 서로 별개의 것이므로, 교과 교육과정 개발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하기 위해 삶과 연계한 학습이 왜 필요하고, 삶과 연계한 학습을 위한 수업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다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 발췌) |
오늘은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 이야기하는 ‘삶과 연계한 학습’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2022 개정 교과 교육과정 개발의 네 가지 강조점 ‘깊이 있는 학습’, ‘교과 간 연계와 통합’, ‘삶과 연계한 학습’, ‘학습과정에 대한 성찰’ 중 ‘삶과 연계한 학습’은 매우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모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과 아는 것은 서로 별개의 것이므로, 교과 교육과정 개발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삶과 연계한 학습이 왜 필요한 것인지, 삶과 연계한 학습을 위한 수업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다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삶과 연계한 학습‘을 지향한다는 것은 학습자에게 실생활 맥락 속에서 교과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생활 맥락이나 실생활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해 학습자를 몰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탈 맥락적인 상황에서 학습자는 교과 내용을 전이 가능한 형태로 학습할 수 없다.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맥락, 즉 실생활 맥락 속에 있을 때 자신이 학습하고 있는 내용을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학습한 내용은 학교 밖에서도 가치를 가질 수 있다.
(2022 개정 교과 교육과정 개발 방향 개요. 온정덕. 밑줄은 필자에 의해 더해진 것임)
언뜻 ‘삶과 연계한 학습’이 깊이 있는 학습의 효과를 높인다는 논리는 매우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유의미 학습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새로이 배워야 하는 지식이나 기능이 학생의 삶과 연계되어 있다면, 학생은 자신의 삶에 관련된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고, 새로운 지식은 학생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연계될 것이니 유의미 학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제일 먼저 드는 의문은, ‘삶과 연계되지 않은 지식이 존재하는가?’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은 인간과 인간이 속한 환경에 대한 것이니 모두 직간접적으로 삶과 연계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물리적 이론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내가 살아가는 물질세계에 대한 이론이니 나의 삶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고, 내가 우주 안에 존재하니 우주에 대한 복잡한 이론도 결국은 나의 삶과 연계된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철학적 사상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와 관련된 질문에 답하려고 하는 것이니 역시 나와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의 삶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
삶과 연계한 학습이라는 표현은 삶과 연계되지 않은 학습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니, 삶과 연계되지 않은 학습과는 구분되는 삶과 연계된 학습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이 나의 삶과 연계된 지식이라면, ‘삶과 연계한 학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관련하여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은 교수 학습 설계에 있어 ‘학습 내용을 실생활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교에서의 학습이 학생의 삶에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삶과 연계한 학습’이란 학습 내용을 ‘실생활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기회를 주는 수업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일까?
하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여전히 ‘실생활 맥락이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의 대상이 내가 인식하고 있던 인식하고 있지 않던 간에 나의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모든 지식은 나름의 ‘실생활 맥락’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생활 맥락’을 상정한 것은 ‘실생활 맥락이 아닌 맥락’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니,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은데, 무엇이 실생활 맥락이고, 무엇이 실생활 맥락이 아닌지가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온정덕 교수님의 설명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교수님은 ‘삶과 연계한 학습을 지향한다는 것은 학습자에게 실생활 맥락 속에서 교과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교육과정에서 이야기하는 실생활 맥락이란 교과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맥락’을 의미하는 것일까?
수동적 정보처리의 가능성
하지만 이러한 추론도 어딘가 이상하다. ‘삶과 연계한 학습’은 2022 개정 교과 교육과정 개발의 네 가지 강조점 중의 하나이고, 따라서 교과 교육과정 전반에 적용되어야 할 텐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 교육 내용 중 많은 부분은 학생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즉 학생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경험하는 현상에 대한 지식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삶에서 ‘활용’하기에는 어려운 지식들이기 때문이다. 수행평가 등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서 활용하는 것이 어려운 교과지식을 자신의 삶과 연계시킬 것을 요구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스스로 교과지식을 활용하여 삶과 연계된 현상을 분석하고 추론하고 평가하며 예측하는 대신, 타인이 관련 교과지식을 활용하여 산출해 낸 정보를 탐색하여 복사해서 붙이는 것과 같은 수동적 정보처리를 하는 경향이 높다.
고등학교 수학을 예로 들어 보자.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 내용의 대부분은 학생들이 실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학생들이 실생활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다. 더 구체적으로 삼각함수를 예로 들어 보자. 삼각함수는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발명품에 적용된 수학 지식이다. 우리가 길을 수월하게 찾게끔 도와주는 내비게이션은 삼각함수를 활용한 GPS(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에 의해서 기능하는 것이고, 음악 감상을 하기 위해 활용하는 음향기기나 스피커도 파동의 진폭, 주파수 등을 조절하기 위해 삼각함수가 활용되는 기계이다. 이제는 흔히 접하게 된 로봇이 자신의 운동 경로를 계획하는 것에도 삼각함수가 활용되고,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사용하는 카메라 및 광학 장치가 물체의 거리, 크기, 방향 등을 계산하는 데에도 삼각함수가 활용된다. 이 외에도 통신 시스템, 컴퓨터 그래픽스, 기상학 및 천문학, 의료 이미징(imaging)에도 삼각함수는 필수적으로 활용된다.
내비게이션이나 스피커, 카메라, 컴퓨터 그래픽스 등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기술이니, 학생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삼각함수 관련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학생들에게 상기시킴으로서 학생들로 하여금 삼각함수의 유용성을 느끼도록 격려하고, 삼각함수 학습에 흥미를 갖도록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삼각함수가 활용된 사례를 찾아보라고 하는 것도 삼각함수 학습에 더욱 흥미를 갖도록 하는 좋은 활동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삼각함수에 대한 지식을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실생활에 활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실생활 맥락 속에서 삼각함수 관련 내용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삼각함수 외의 지식을 함께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각함수와 관련된 실생활 맥락 중 하나인 ‘내비게이션’에 고등학교 삼각함수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삼각함수 관련 지식뿐만 아니라 위성 기술 및 신호처리를 위한 기술적 지식, 신호처리를 위한 알고리즘에 대한 지식, 전파에 대한 지식, 시간 측정, 신호의 속도, 중력 등과 관련된 물리학적 원리에 대한 지식, 컴퓨터 과학 및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지식, 지리학에 대한 지식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지식의 집합체로서 구현된 내비게이션이 삼각함수 원리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알아보는 것’ 자체가 매우 방대한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각함수를 실생활과 연계하여 활용할 것을 요구받은 학생은 누군가가 작성해 둔 삼각함수의 활용 사례를 검색하여 기록하는 것으로 과제를 마무리하기 쉽고, 이때 관련 교과지식을 활용하여 검색된 내용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종합하는 등의 사고 과정은 건너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전이를 위한 고차원적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교과지식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의 어려움과 관련된 전형적인 예를 들기 위하여 수학에 있어서의 문제를 이야기하였지만, 다른 교과의 지식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도 유사한 어려움을 갖는다. 실생활은 몇 개의 교과개념이 아닌 무수히 많은 변인이 얽혀있는 복잡계이기 때문이다. 학습목표에 해당하는 교과개념은 수없이 많은 다양한 변인들에 묻혀 해당 교과개념이 실생활의 어떤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활용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짚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이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되기 쉽다1.
이러한 이유로, 실생활 맥락이나 실생활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해 학습자를 ‘몰입’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어떤 활동을 함에 있어서 활동을 하는 즐거움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해당 활동에 완전하고 강렬한 집중을 하는 상태를 몰입 상태라고 하는데, 이러한 몰입은 적절한 수준의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2)이 존재할 때 발생하는 정신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몰입 연구의 대가인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의 몰입 채널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능력 수준보다 유의미하게 낮은 수준의 과제 난이도는 지루함을 불러일으키지만 자신의 능력 수준보다 과도하게 높은 과제 난이도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결과적으로 몰입 상태를 불러오지 못한다(Schüler 2007)3. 수없이 많은 변인이 얽혀 있어서 특정 교과지식의 적용 가능성 자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실생활 문제에 교과지식을 활용하는 것을 요구하는 과제는 대부분의 경우 학생의 능력 수준보다 과도하게 높은 과제 난이도를 갖고 있으며, 과도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몰입 연구의 대가인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의 몰입 채널은 목표 중심 활동에서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과제 난이도와 학습자의 능력수준 간의 관계를 보여준다(Schüler 2007).
하지만 학생들이 특정 교과 개념을 실생활에 적용하라는 과제에 대해 과도한 불안감을 느끼는 학생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경우 학생들은 교과 개념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을 처음부터 포기하고 교과 개념이 적용된 사례를 검색을 통해서 찾아 ‘복사-붙여넣기’로 과제를 해결하며, 그것만으로 무난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들이 처음부터 실생활 맥락에서 교과지식의 활용을 포기했다’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검색을 통해서 특정 교과지식의 실생활 적용 사례를 찾아서 붙여넣기만 해도 교사로부터 무난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활용에 대한 기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기대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 이야기하는 ‘삶과 연계한 학습’을 학생들이 ‘자신의 실생활 맥락’에 교과 내용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이해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교과지식을 실생활 맥락에 적용하는 과제는 광폭의 전이(far transfer)를 요구하는 과제이고, 광폭의 전이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기 때이다(사실 소폭의 전이도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학생들이 광폭의 전이를 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역량을 습득하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역량을 요구한다고 해서 (광폭의 전이 과제를 요구한다고 해서) 높은 수준의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광폭의 전이 과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은 교수·학습 과정에서 삶과 연계한 학습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여 왔으며,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생의 삶과 연계한 실생활 맥락 속에서 학습 내용을 습득, 이해하고 적용하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여 학교에서의 학습이 학생의 삶에 의미 있는 학습경험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중략) …모형 C는 (중략)… 수행과제 개발하기에서 삶과 연계한 학습이 가능하도록 실제성과 복잡성이 있는 문제 형식의 과제를 개발하는 것이 모형의 특징입니다.
(2022 개정 교과 교육과정 교과별 선도교원 연수 자료 中 수업 및 과정중심평가 설계 안내 자료)
삶과 연계한 실제성과 복잡성을 갖춘 문제 형식은 교과지식에 대한 광폭의 전이(far transfer)를 요구하는 과제이다. 이때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소폭의 전이 과제(near transfer)를 통해 점진적으로 전이의 폭을 넓히지 않은 경우 전이를 위한 교과지식 자체가 충분히 형성될 수 없으며(즉, 충분한 이해가 발생하지 않으며), 광폭의 전이는 실패하게 된다.
물론, 탈 맥락적인 상황에서 학습자가 교과 내용을 전이 가능한 형태로 학습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교과지식은 압축되고 추상화된 정보로서 구체적인 맥락 정보 없이는 습득하기 어려운 정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구체적인 맥락 정보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맥락 정보의 적절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맥락 정보가 교과지식의 전형성에서 급격하고 멀리 벗어나게 될 때, 즉 반복되는 소폭의 전이(near transfer) 경험 없이 광폭의 전이(far transfer)를 요구하게 될 때, 학생은 교과지식을 활용하지 않고 교과지식을 활용한 결과물을 검색하는 것으로 과제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전이 과제는 학생이 교과지식을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놓은 관련 정보를 검색하여 무비판적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기능을 할 우려가 높은 것이다.
의미 있는 맥락의 과도한 축소
전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오히려 전이를 위한 학습을 저해할 수 있다. 앞서 안내한 글에서 2022 개정 교과 교육과정 개발 방향 개요를 안내하며 교과 교육과정 개발을 총괄한 온정덕 교수는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맥락, 즉 실생활 맥락’이라는 표현을 통해 의미 있는 맥락과 실생활 맥락을 등치(等値)시키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의미 있는 맥락’을 과도하게 축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우려가 된다. 즉각적으로 전이하여 활용할 수 있는 지식 습득만이 ‘의미 있는’ 지식으로 여겨지고 즉각적 전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지식의 습득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불필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과정 개발진들이 이러한 편협한 시각을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2022 개정교육과정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있어 왔던 ‘삶과 연계한 학습’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삶과의 연계점’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뚜렷이 보이지 않는 지식 습득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하였다.
그러나 유의미한 전이는 잠복기를 필요로 하며 즉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인류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수학적 지식은 실생활에의 적용을 염두에 두지 않은 끈질긴 진리 탐구의 결과물이다. 즉, 즉각적 전이 가능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그리하여 무용해 보이는 지식이 폭발적인 전이를 통해 위대한 발전을 뒷받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은 수학의 실생활과의 연계점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학을 학습하는 것의 가치에 의문을 품는다. (심지어 많은 수학선생님들도 유사한 의문을 품는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가 학생들에게 즉각적인 지식 습득과 전이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심어줄 경우 학생들은 이러한 기대 때문에 오히려 전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4 전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전이를 위한 학습을 방해할 수 있으며, 오히려 충분히 적극적이지 않은 학습 태도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 전이의 가능성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전이가 실패하였을 때에도 전이는 발생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한 상황에서 학습한 것이 다른 상황에서 학습하거나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부정적 전이(negative transfer)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22 교과 교육과정 개발의 첫 번째 강조점이 ‘깊이 있는 학습’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왜 실제성과 복잡성이 있는 형태의 과제를 통해서 ‘삶과 연계한 학습’을 지향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깊이 있는 학습을 통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지식의 ‘전이’이고, 전이를 위해서는 학습 맥락과 지식을 전이시켜야 하는 새로운 맥락 간에 표면적 유사성이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의 전이를 위해서는 상이한 맥락들 아래에 숨어 있는 구조적 유사성에 대한 인식, 즉 개념적 학습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개념적 학습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개념적 학습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상이한 맥락에 대한 전이는 쉽게 발생하지 않으므로, 지식이 활용되는 실제 상황과 유사성이 높은, 즉 실제성과 복잡성이 있는 형태의 과제(real-life experience)를 통해 전이를 촉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이를 촉진하기 위해 유사성을 확보하고자 실제성이 있는 실생활 맥락을 도입할 때, 우리의 인지는 과부하 되기가 쉽다. 실제성은 필연적으로 복잡성을 수반하며, 복잡한 정보는 매우 한정된 인지적 자원인 주의(attention)가 소화해 내기 어려운 자극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5.

의식과 사고의 발생장소인 작업 기억은 4단위 가량의 정보만을 소화해 낼 수 있다. 외부로부터 진입하는 정보가 장기기억에 저장된 배경지식에 의해 압축되지 않는 경우(chunking/schema에 의한 압축), 외부에 제시된 정보 중 극히 일부만 작업 기억으로 진입하게 되고, 인간은 이러한 정보손실을 극복하고 의미를 형성하기 위하여 장기기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교육에 있어 인간 기억의 기제를 이해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참조. http://21erick.org/column/11790/ )
인간에게 새롭게 제시된 상황이 과도하게 많은 정보에 대한 이해를 요구할 때, 주의와 작업기억 용량의 한계에 의하여 인간은 제시된 정보 중 극히 일부만 작업기억으로 진입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외부로부터 작업기억에 진입한 정보만으로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의미를 형성하려는 본능이 매우 강한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장기기억의 정보를 동원하여 의미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때 장기기억에 이미 저장되어 있던 정보의 양과 질이 매우 중요하다. 장기기억에 풍부하고 잘 구조화된 유관 정보가 있다면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정보가 아무리 띄엄띄엄 들어온다고 할지라도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전문가의 직관), 장기기억에 풍부하고 잘 구조화된 유관 정보가 없는 경우 주어진 상황에 대해 부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작업기억 용량의 한계에 의해 발생하는 인지오류는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편견이 있는데, 편견은 우리가 우리의 배경지식에 과도하게 의존한 나머지 우리의 편견과 일치하는 정보만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특정 인종에 대하여 편견을 가질 때, 그것은 많은 경우 해당 인종과의 교류가 부족하여 그들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지식에 대해서 풍부하고 잘 구조화된 유관 정보를 장기기억에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물론, 모든 학생들은 교과지식과 관련된 생물학적으로 일차적인 지식(biologically primary knowledge)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을 수 있다6. 그러나 불행히도 생물학적으로 일차적인 지식은 높은 직관적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매우 부정확할 수 있으며, 복잡하고 새로운 교과지식 관련 정보7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아래 그림에 제시된 4CID (4-component instructional design) 모델8은 전이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실생활 맥락을 개입시키는 것이 좋지만, 실생활 맥락을 도입시키면 인지과부화가 발생하여 부정적 전이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이 딜레마 상황을 해소하기 위하여 도입된 교수설계 모형이다. 이때 4CID 모델이 제시하는 함의는 매우 분명하다. 바로 실생활 맥락으로의 광폭의 전이를 위해서는 소폭의 전이가 매우 촘촘하고 의도적으로 설계되고 지원되어야 한며, 전체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의도적인 반복 학습(deliberate practice)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 때 교과지식을 실생활 맥락에 적용하는 광폭의 전이를 실제로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4CID 모델 도식도. 실생활 맥락에서 전이를 촉진하는 교수설계모형이다. 초록색 동그라미는 동일 스키마를 적용한 과제이며, 초록색 원을 채운 초록색 물결은 학습자에게 제공되는 비계(scaffolding)의 정도를 나타낸다. 넓은 면적의 초록색 물결은 많은 비계를 제공하는 것이며, 초록물결이 없는 초록색 원은 학습자가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과제이다. 점선으로 묶인 과제들은 유사한 난이도의 과제이며, 원 안에 찍힌 삼각형 모양은 유사한 난이도의 동일스키마를 활용해야 하는 과제들이 각기 조금씩 상이한 형태를 띠고 있음을 표현한다. (이는 상이한 범례를 통한 귀납적 추상화를 촉진하고자 하는 장치이다.) 점선으로 묶인 과제 한 세트가 끝나면 또다른 점선으로 묶인 과제 한 세트가 주어지는데, 이는 이전 세트보다 높은 난이도의 동일 스키마를 활용하는 과제이다. 초록색 선 밑의 주황색 선은 각 세트 안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는 절차지식을 의미하며, 필요한 경우 절차지식은 따로 반복 훈련 기회를 제공한다(작은 주황핵 원 부분). ㄴ자 모양 파란색 꺽쇠는 인지적 정보를 의미하며 과제 세트별로 상이하다.
2022 개정교육과정은 지식·이해, 과정·기능뿐만 아니라 가치·태도를 내용 요소로 하고, 학습에 있어서 실생활 맥락의 실제성과 복잡성을 보다 강조하는 복합 학습(complex learning)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차원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 고차원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고, 고차원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계와 피드백을 제공해야 하는 것9과 마찬가지로, 복합학습을 통한 광폭의 전이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소폭의 전이 과제와 지원이 반복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존재할 때 학생들은 단순히 검색을 통해서 누군가가 만들어 둔 결과물을 복사해서 붙이는 수동적인 정보처리 과정을 벗어나 자신의 삶에 교과지식을 적용할 수 있는 진정한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 전이를 위해서는 대상이 특정 개념의 범례가 된다는 사실을 인지(notice)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해당 영역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전문성을 지녀야 한다. (Haskell, R. E. (2011). Transfer of Learning: cognition, instruction, and reasoning.Academic Press)
- Bjork, R. A., & Bjork, E. L. (2020). Desirable difficulties in theory and practice. Journal of Applied research in Memory and Cognition, 9 (4), 475-479.
- Engeser, S., & Rheinberg, F. (2008). Flow, performance and moderators of challenge-skill balance. Motivation and Emotion, 32(3), 158–172.
- Haskell, R. E. (2011). Transfer of Learning: cognition, instruction, and reasoning. Academic Press.
- http://21erick.org/column/11790/ : 인간의 의식과 사고가 발생하는 작업기억이 활용할 수 있는 인지적 자원이 얼마나 한정된 자원인지, 그리고 그러한 한정된 자원을 극복하기 위하여 장기기억의 정보(배경 지식)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되는지에 대해 안내한 글이다. 복잡한 정보에 의한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와 그로 인한 부적절한 정보처리를 이해하기 위해 살펴보기를 권한다.
- David C. Geary 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엄청난 효율성을 갖고 단기간에 습득하는 지식을 생물학적으로 일차적인 지식(biologically primary knowledge)이라고 명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타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타인과 상호작용하여 관계를 구축한다. 또한 환경을 탐색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속성을 내재화하는 등 사회와 자연에 대한 이론을 구축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생존에 매우 유용하고, 높은 직관적 설득력을 갖으나, 많은 경우 부정확하다(Geary, D. C. (2012). Folk knowledge and academic learning. In Encyclopedia of the Sciences of Learning. Springer (pp. 1305–1310))
- 교과지식 관련 정보는 생물학적으로 이차적인 지식(biologically secondary knowledge)으로서,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학습과 지도를 통해 습득된다.
- 그래픽 출처: The Four-Component Instructional Design Model (An Overview of its Main Design principles) Jeroen J.G.van Merrienboer (2019) Maastricht University (https://www.4cid.org/)
- Brookhart, S. M. (2010). How to Assess Higher-Order Thinking Skills in your classroom. ASCD.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의 대학원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리서치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고 이후 영어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EBS의 ‘최고의 영어 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으며, EBSi의 고등학교 심리학 강의를 맡아 하기도 하였다. 현재 김해삼문고등학교에서 수석교사로 근무 중이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