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모두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교육과정-수업-평가,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 “‘모두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학교 체제’를 갈망하는 것에는 현재 우리 학교 체제가 모두가 아닌 ‘소수 학생의 입시 성공 위주’였다는 문제의식과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열망이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본문 발췌) |
1. 소수 학생의 입시 성공을 위한 교육과정-수업-평가
‘모두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학교 체제’를 갈망하는 것에는 현재 우리 학교 체제가 모두가 아닌 ‘소수 학생의 입시 성공 위주’였다는 문제의식과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열망이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소수 학생의 입시 성공을 위한 학교 체제가 운영되고 있는 것은 사회 영향이 크다. 서울대나 의대를 몇 명 보냈냐가 우수한 고등학교의 기준이다 보니 아무리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있어도 못 본척하고, 학생이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리고 소위 명문 대학에 학생을 더 많이 보내는 것이 학교 교육 목표인 것처럼 운영했던 것이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소수 학생의 입시 성공을 위한 학교는 ‘교육과정-수업-평가’로 실현된다.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평가이다. 평가의 교육학적 목적은 학생의 학습에 대한 피드백이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실제적 목적은 ‘공정한 변별’이다. 특히, 소수 학생의 입시 성공을 위해서는 1등급이 잘 변별되는 평가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한 반을 30명으로 볼 때 4%인 딱 한 명만 풀 수 있는 소위 킬러 문항을 출제할 수밖에 없다. 반에서 한 명만 풀 수 있는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이 배운 수업 시간에서 다룬 문제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수업 시간에 다루지 않은 문제 또는 배운 내용이라도 여러 번 꼬아서 정답을 고르기 애매한 문제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학습을 다시 도전하려는 학생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빼앗는 나쁜 평가이다. 학습을 포기한 학생들도 처음부터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공부를 해보겠다고 다짐하고 밤새며 열심히 해도 절대 풀 수 없는 문제가 출제되고 그 문제를 풀지 못하면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니까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한 번 망하면 다시 성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학교 교육도 한번 뒤처지면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평가 체제를 갖추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그런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초·중학생도 미리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일상화되었다. 그래서 학생 학부모들은 난도가 높은 문제를 출제한다고 소문난 중학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중학교에서 과도하게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면 인지나 정서적 성장이 빠른 학생은 어떻게든 따라간다. 하지만 발달이 느려 초등학교 수준에 머무르는 학생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공할 수 없어 실패 경험을 하고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중학교에 우울증, 무기력증, 방에서 안 나오는 은둔형 외톨이가 급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평가의 목적이 공정한 변별이다 보니 학생들의 깊은 사고를 유도하는 논술형 평가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공정한 변별이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특히 변별에서 낮은 순위를 받은 학생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아야 하므로 암기한 지식만을 확인할 수 있는 선다형 평가가 주된 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수업 역시 소수 학생의 입시 성공을 위한 학교 체제를 매개한다. 우리나라 수업의 주된 형태는 ‘빠르게 진도 빼는 주입식 수업’이다. 이는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거나 이미 그 지식을 알고 있는 학생에게는 유리한 수업방식이다. 하지만 학습 속도가 느리거나 수업에 흥미가 부족한 학생에게는 학습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학습 속도가 느리거나 흥미가 부족한 학생을 위해선 학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과 방법의 도입이 필요하다. 또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학습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형성평가를 통해 학생의 학습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부족한 부분이 확인되었을 때 학생이 이해하기 적절한 방법으로 피드백을 줘야 한다. 또, 학생이 이해한 내용을 자신이 선호하고 편한 방식으로 표현할 기회가 주어져야 학습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지식을 잘게 갈아 죽처럼 떠먹여 주는 일명 ‘암죽식 수업’은 이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 결국 수업에 흥미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학생은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엎드려 자면서 시간을 때우며 수업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교육과정 역시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학생은 지적 호기심이 많아 학문 체계를 갖춘 이론적인 내용을 선호한다. 학습의 양이 많은 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학습에 흥미가 없고 학습 발달이 느린 학생들은 실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추상적인 내용이 학문적 체계로 구성된 교육과정을 학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중학교 1학년 수학에서 처음으로 함수, 방정식, 동류항 등과 같은 용어와 내용이 등장한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부피, 양, 비례식 등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내용을 배운 학생들이 갑자기 고등 수학 입문의 내용과 용어를 짧은 시간 동안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과정으로 인해 중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일명 수포자 현상이 급증하는 것이다.1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이다. 발달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중학생의 경우 이미 지적 발달 수준이 성인 수준인 학생도 있지만 여전히 초등학교 수준에 머무르는 학생도 많다. 이런 학생들이 학문적 용어를 사용한 추상적인 내용을 짧은 시간에 학습해야 할 때 학습에 대한 불안, 거부감 등 부정적인 정서가 생기게 되고, 이는 학습을 포기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2.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교육과정-수업-평가
학생들이 학교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은 교육과정-수업-평가와 관계가 있다. 소수의 입시 성공을 위한 학교 체제는 공정한 변별을 위한 평가, 빠르게 진도 빼는 주입식 수업, 교과별로 분절된 학문적 교육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두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학교 체제는 교육과정-수업-평가가 학습이 느리거나 어려움을 겪는 학생의 성장을 돕는 구조로 변할 때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이것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1) 평가 : 공정한 변별을 위한 평가에서 ‘성장 중심의 피드백을 위한 평가’로
평가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현재 IB에 관심을 두는 것도 논술형 평가를 통해 평가 체제 전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논술형 평가와 같이 평가 형태도 중요하지만, 평가의 목적과 철학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누구를 위한 평가인가라는 물음에 학습이 느린 학생들이며 이 학생들이 평가를 통해 학습 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 평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평가 철학과 목적이 학교의 평가 문화가 되려면 교사들이 함께 지향해야 하는 평가에 대한 철학을 세워야 한다.
경기도 덕양중에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가’, ‘우리가 지양해야 할 평가’에 대해 교사들이 함께 논의하고 공동체의 약속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약속을 평가로 실현하기 위한 학교만의 ‘평가 루브릭’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또, 각 교과 루브릭을 동 교과에서만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가 전 교과의 평가 내용과 루브릭을 공유하며 평가 철학이 평가 계획에 녹아 있는지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평가, 친절한 안내가 있는 평가, 수행이 느린 학생을 위해 단계를 적용한 평가와 같은 아이디어들이 나왔고 각 교과 특색에 맞게 적용하고 있다.2
평가 이야기만 나오면 입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입시로 인해 교사의 평가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입시 때문에 못 하는 것인지 입시를 핑계로 안 하는 것인지’ 교사가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소수 학생의 입시를 위한 변별 중심 평가를 하고 있다면 입시에서 자유로운 학년급과 교과부터 모든 학생의 학습을 돕는 성장 중심의 피드백을 위한 평가에 도전하여 학교 평가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2) 수업 : 빠르게 진도 빼는 주입식 수업에서 ‘학생의 학습 속도를 고려한 개별화 수업’으로
교실에는 학습 속도가 정말 다양한 학생들이 존재한다. 한번 들어서 이해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여러 번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학생이 존재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동안 수업은 한번 들어서 알아듣는 학생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의 경우 학원이나 개인 과외 등 사교육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학습 속도 차를 고려하지 않은 빠르게 진도 빼기 수업은 학원에서 한번 배우고 학교에서 다시 배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학생의 학습 속도 차이를 고려하여 학습이 느린 학생도 수업에서 배움의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는 개별화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코로나 이후 기초학력 저하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을 선별하여 별도의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아졌다. 방과 후에 이루어지는 기초학력 관련 수업은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한계도 있다. 수업 이후가 아닌 수업에서 배움이 가능하도록 수업이 변화되어야 한다.
최근 통합 교육에서 주로 논의되던 ‘보편적 수업 설계’ 개념이 일반 교실 수업 설계로 연구되고 실천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편적 수업 설계 원리 중 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이해하고, 표현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하는 표상의 원리, 표현의 원리, 참여의 원리는 통합교육뿐 아니라 일반 교실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수학 수업의 경우 협력교사제를 통해 학생의 학습 수준에 맞춰 가르치고 영어의 경우 선수 학습이 부족한 학생을 위한 영상을 제공함으로써 배움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수업이 가능하다.3 빠르게 진도 빼느라 수업을 이해하지 못해 소외되었던 학생들도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배우고 표현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하고 실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3) 교육과정 : 교과별 분절된 학문적 교육과정에서 ‘삶과 연결된 통합적 교육과정’으로
교과별로 분절되어 학문적 체제를 갖춘 교육과정은 배움이 느리거나 흥미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배움에 들어서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중학교 1학년 수업을 해보면 교육과정이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일상생활과 연결된 내용을 한 교사가 가르치도록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중학교에 진학하면 교과별로 서로 다른 교사에게 학문적 체계를 갖춘 교육과정을 배우게 된다. 중학교에 진학하여 학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루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아직 초등학교 학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학생들이다.
이 학생들은 여전히 삶과 연결된 소재 자체가 익숙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중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몇 교과가 융합하여 실생활과 연결된 교육과정이 운영되면 엎드려 자던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국의 교육과정 사회학자 Young은 추상적, 비일상적, 문어적 지식은 상류계층 학생들에게 유리하지만, 노동자 계층 아이들에겐 불리하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을 오늘날에 적용하면 일상적이며 삶과 연결된 구체적인 지식으로 교육과정으로 이루어졌을 때 학습이 느린 학생들도 성공할 기회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교사들은 국가 교육과정을 그대로 가르치기보다는 나의 교육철학과 학생의 발달 수준과 특성을 고려하여 일상생활 소재와 연결하거나 여러 교과가 융합하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만의 교육과정, 우리 학년만의 교육과정 더 나아가 우리 학교만의 교육과정을 만들어간다면 배움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확연히 줄어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정-수업-평가에 따른 학교 체제 비교>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경기도 공립학교 교사로 20년 넘게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는 야탑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 (사)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교육과정 통합, 어떻게 할 것인가?』(공저), 『수포자현상과 원인에 대한 사례연구』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