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학의 현실, 그 첫 번째 이야기 – ‘외화내빈(外華內貧)’
| 이 글은 한국 교육학에 관한 비판적 성찰을 목적으로 하는 연속 기고의 하나로서, 지난 글(서장)에서 예고했던 첫 번째 소주제 ‘한국 교육학의 현실’에 관한 제1화이다. 이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
한국 교육학이 관할하는 영토는 매우 광활하다. 달리 말하자면, 교육학자들이 관여하는 영역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넓고 다양하며, 종사하는 인구도 견줄 데가 없을 만큼 많다. 당연히 물적 자원이 풍부하고, 과업도 산적해 있다.
1) 대학과 학과
우선 교육학의 학문적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을 헤아려 보면, 교육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40여 개에 이르고 유사 이름을 가진 학과(관련 학과)까지 합치면 80여 개에 이른다. 한 대학에 관련 학과가 둘 이상이 있는 곳도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육학과와 관련 학과의 수는 1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 학과에 학년 당 최소 20명 안팎에서 최고 3~4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재학한다고 보면, 전국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교육학 및 관련 학과 학생들이 어림잡아 1만 명 이상이다. 이에 더하여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교육학 왕국을 계승할 핵심 집단이기도 하다. 대학원생 정원은 학부에 비해 훨씬 적지만, 대학들 대다수가 불문곡직하고 대학원을 설치하고 있어서 이들의 수 역시 수천 명에 이를 것이다. 아마 단일 분야에서 이 정도의 인구를 유치한 데는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이들을 직영지에 비유한다면, 그보다 규모가 몇 배 더 큰 방계 영지도 있다. 그 첫 번째로 교사 양성기관을 꼽을 수 있다.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 학생들은 교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 소정의 교직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이것을 주로 교육학과 교수들이 담당한다. 일반 대학에서 교직과정을 신청한 학생들도 교직과목 이수 대상자들이다. 교육학과가 없는 대학들은 교직과목 강의를 위해서 교직학과를 두기도 한다. 이로써 정체불명의 ‘교직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한 꼴이 되었다. 또 다른 주요 방계 영지로 교육대학원이 있다. 이 제도는 초기에 현직 교사들의 연수가 주목적이었으나, 교직의 인기가 높아지면서부터는 일반 대학 졸업자들의 교사 자격증 취득 과정으로 그 성격이 달라졌다. 교육대학원 학생들은 자신의 고유 전공과목과 함께 교육학 관련 과목들을 필수로 이수한다.
넓은 영지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대학들의 교수 채용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 보니 교수들의 강의 부담이 크고 강사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교직과목이 강의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주요 배경인 동시에 교직과목 부실 운영의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2) 자격증과 취업 준비
교육학과 및 관련 학과들은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장차 살아가는 데 필요할 수도 있는 다양한 자격증을 수여한다. 그중 대표적인 게 교사 자격증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반 교과가 아닌 교육학 전공이라서 그 쓰임새가 크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일부 대학에서는 평생교육사 자격증 과정을 두기도 한다. 물론 관련 학과들은 해당 학과의 고유 목적에 따라 유아 교사나 보육교사, 평생교육사 또는 청소년 지도사, 청소년 상담사 등의 자격증을 수여한다. 또 부전공 제도를 이용하여 다양한 교과교사 자격증도 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 시대가 저물면서 졸업생 취업률을 높이는 일이 대학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취업률이 낮으면 학생들의 지원율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교육학과도 예외가 아니어서 학과 소개란을 보면 대부분 졸업생의 진출 분야나 실제 현황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한 대학의 교육학과가 제시한 ‘졸업 후 진로’를 보면, 중등학교 교사, 기업체 HRD 전문가, 사회교육 전문가, 국가고시 응시, 대학교수 및 교육 연구 전문가 등이 제시되어 있다. 교사 자격증만으로 취업이 되는 교대와 사범대학의 교과 관련 학과의 졸업생들과 달리, 교육학과 졸업생은 교육학 교사의 수요가 적어 이처럼 다양한 진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교육학이 교직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강점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여전히 확장일로에 있는 기업교육이나 평생교육 영역은 교육학의 새로운 응용 무대가 되고 있다.
3) 과다한 과업
가끔 교육학 교수들이 너무 바쁘다는 말을 듣는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영향으로 분주함이 보편화하는 경향이지만, 교육학 관련 교수나 전공자들은 그 정도가 특히 더 심하다는 말일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좋든 싫든, 그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늘 쌓여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교육 분야의 구조적 특성에 기인한다.
교육은 어떤 사회에서든지 그 자체의 유지 발전을 위한 핵심 기능을 담당한다. 원시나 고대사회에서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교육 없는 나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나 교육은 국가로부터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받고, 그 대신 국가 유지에 필요한 인재 양성과 공동체 의식의 재생산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 일들은 대부분 위임된 국가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들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들이 교육학자를 비롯한 교육 종사자들이다.
아마도 대학의 교육학 전공자들을 바쁘게 만드는 핵심 요소는 교육정책 관련 프로젝트일 것이다. 예전에는 발주처가 주로 교육부에 국한되었지만, 요즘에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을 포함하여 일반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까지도 교육 관련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발주한다. 이와 성격은 다르지만, 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과제도 있다. 이렇다 보니 교육학 전공자들은 대개 매년 여러 개의 과제를 수행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본업과 부업이 뒤바뀌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교사나 교육행정 관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연수와 교육기관 평가 역시 교육학 전공자들을 바쁘게 만드는 주요 요소이다. 또 교육학 전공자들은 교원 자격 연수나 직무연수, 다양한 직종의 교육청 직원 연수 등의 단골 강사로 등장한다. 장기간 전국을 순회하면서 하는 교육청 평가나 학교 평가의 주요 담당자 역시 교육학 전공자들이다.
학회와 학술 활동도 교육학 교수들을 바쁘게 만든다. 학회의 경우 한국교육학회가 대표적이지만, 그 산하에 26개의 분과 학회가 있고 그 밖에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학회들도 다수 있다. 학회 활동의 핵심은 논문 발표라고 할 수 있다. 교수들은 보통 교육 관련 학술지에 매년 한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학술지도 100개 정도에 이르고 있다. 또 매년 치르는 교원 임용고사의 출제나 합격자 면접 심사도 교육학 교수들의 주요 활동 무대이다.
앞선 칼럼(서장)에서 교육 난세인 요즘의 현실에서도 이렇다 할 교육학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아마도 교육학자들의 이러한 분주함이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너무 바쁘면 현실을 통찰하기 어렵고, 정부 정책 개발에 몰두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부를 대변하는 관학자(官學者)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의 주인은 누구이며 어떤 특성의 소유자일까?
다소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광활한 영토의 주인은 교육학이다. 물론 교육학은 교육을 위해 존재하며 그런 이유에서 진짜 주인은 교육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교육학이 거느리는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은 모두 교육을 위해 마련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교육학은 교육이라는 왕국의 마름에 해당한다.1
그렇다면, 교육학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특성을 갖는가? 「다음 백과사전」은 교육학을 “교육행위와 교육 현상에 관한 제반 영역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이를 이론체계로 종합한 학문”으로 정의하고, 그 영역을 교육철학, 교육사학,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및 사회교육, 교육과정, 교육행정학, 비교교육학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정도면 현존하는 한국 교육학의 실제를 무리 없이 소개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이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우선, ‘교육행위와 교육 현상에 관한 제반 영역’이라는 말이 어색하다. 흔히 교육행위나 교육 현상은 교육학에서 탐구해야 할 본질적 대상으로 간주한다. 교육학은 교육행위나 교육 현상이 무엇이며 그 특성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학문이라는 의미이다. 이를 부연하면, 교육학은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핵심 질문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구현하는 교육행위나 그러한 행위가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개념화하고, 그 특징들을 이론적인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교육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실천을 위한 지혜를 얻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문장대로라면, 이러한 의미와 달리 교육학의 직접적인 탐구 대상이 ‘교육행위와 교육 현상’이 아니라 ‘교육행위와 교육 현상에 관한 제반 영역’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 ‘교육행위와 교육 현상에 관한 제반 영역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표현은 다양한 분과로 나뉘어 있는 기존의 교육학을 고려한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그것은 응당 탐구해야 할 대상(‘교육행위와 교육 현상’)이 아니라 그것이 나타나는 여러 영역을 탐구한다는 말이 되어 수긍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교육학이 교육행위와 교육 현상이 무엇인지에 답하지 않고도 다양한 영역에 관한 연구와 그것들의 종합만으로 성립하는 학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존하는 한국 교육학의 실상은 이러한 해석과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실제로 누군가가 교육학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궁색하다. 결국 크게는 6~7개, 세분하면 10여 개로 나뉘어 있는 하위 분과 영역을 모두 대면서, 이것들을 다 합한 것이 교육학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답을 듣는 사람은 여전히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교육철학, 교육사, 교육심리학… 말고 교육학의 본체는 무엇인가?’
다른 학문의 경우를 보면 이렇지 않다. 예를 들어, 사회학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사회철학, 종교사회학, 지식사회학…을 모두 합한 것이 사회학이라고 답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도 경제사나 노동경제학, 국제경제학 등이 있지만, 그 합을 경제학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 본체는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이며, ~경제학이라는 표현은 그것이 응용되는 영역일 뿐이다. 대학에서는 보통 각각의 학문을 구성하는 고유 개념과 핵심 이론들을 ‘~학 개론’이라는 이름으로 묶고, 부가적인 논의 영역들을 심화 과정으로 배치한다.
교육학에도 ‘교육학 개론’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내용 구성은 사회학이나 경제학의 그것과 다르다. 거기에는 교육학 고유의 개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대부분 하위 분과 영역 일부를 발췌하여 모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영역들은 대부분 앞에서 본 「다음 백과사전」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런 까닭에 교육학 개론 교재의 집필은 대개 전공 영역이 다른 여러 학자가 공동으로 참여한다. 그렇게 하면 여러 대학에서 강의 교재로 채택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그런 교육학 개론이 교육학이나 교육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답은 부정적이다. 오히려 교육학을 더 많이 공부할수록 교육의 의미가 더 애매모호해질 가능성이 크다. 불분명한 토대 위에 서로 연관도 없는 지식을 쌓아놓은 탓이다. 평생을 교육 분야에 종사해 왔으면서도 교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정황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교육학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교육학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그것을 진정한 교육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2 하지만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외양이 이를 가리고 있다.
교육학이 어떤 학문이어야 하는가를 놓고 교육학자들은 간헐적이나마 오랜 기간 씨름을 해 왔다. 특히 1980년대를 전후하여 사회과학의 학문적 성격 또는 학문의 자주성이나 토착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자 교육학 분야에서도 당시 중견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교육학의 학문적 성격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이종각, 1994 : 제3장). 이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후에 교육학의 학문적 성격을 주제로 하는 글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여기서 당시에 언급되었던 교육실천학이라는 용어를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종각은 위 책(p.79)에서 1980년대 초반에 등장했던 교육학의 성격 관련 논의 중 한 갈래를 ‘교육학의 패러다임에 관한 논쟁’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네 명의 학자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교육학의 패러다임을 한 쌍의 대립적인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하는 교육학’과 ‘보는 교육학’(이홍우)3, ‘교직(실천) 패러다임’과 ‘신교육학 패러다임’(김신일), ‘기술공학적 패러다임’과 ‘교육과학 패러다임’(이돈희), ‘교육실천학과 교육과학’(장상호)이 그것이다. 그런데 네 학자의 견해에서 전자는 모두 종래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그리고 후자는 앞으로 지향할 패러다임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 교육학의 주류는 당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꼽았던 후자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40년 전과 지금의 한국 교육학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교육학의 존재 이유가 지금도 교사 양성을 위한 교직과목의 역할 또는 학교의 교육 활동을 돕기 위한 실무 지식의 생산에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일도양단하듯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다. 교육학이 ‘교육과학’ 패러다임을 지향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교육실천학’이 필요 없다고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교직 패러다임’ 또는 ‘교육실천학’이 실제로 어떤 양상인지에 관해서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국 교육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주요 단면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시한 교수들이 사용했던 ‘교직 패러다임’이나 ‘교육실천학’이라는 말 속에는, 기존 교육학이 교육 현상에 대한 개념과 이론보다는 학교 교육의 실무에만 몰두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문맥에서 ‘그런 것들은 학자가 할 학문 본연의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불만이 정당한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더라도(이에 관해서는 후속 논의에서 다룰 것이다), 실제로 한국 교육학이 이론보다 실천에 경도되어 있다는 진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교직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교육학의 목표나 실제 기능이 주로 교사 양성이나 교직 실무를 위한 일에 치우쳐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교육실천학’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이홍우 교수의 어법을 빌려 표현한다면, 교육학이 논리의 세계에 머물지 못하고 실제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그런가? 나는 한국 교육학에 대한 이러한 진단이 옳지 않다고 본다. 한국 교육학 또는 한국의 교육학자들이 교사 양성이나 교직 실무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가 없고, 그들의 연구 활동이나 결과에서 한국의 교육 현실에 깊이 천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예로 교직과목 교재의 내용을 들 수 있다. 저자나 분야에 따라 약간의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교재의 내용은 대부분 한국 교육의 실제와 거리가 멀다.
물론 평생을 현실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교육학자가 없지 않으며,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해서 한국 교육학 차원에서 볼 때는 언감생심이다. 감히 말하건대, 한국 교육학의 주류는 교육의 실제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며, 교육학자의 대다수는 교육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려는 의지가 없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한국 교육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렇게도 존재감이 없을 수 있을까?
이 말에 다음과 같이 반론할 수도 있다. 앞에서 한국 교육학자들은 너무도 많은 일을 하느라 바쁘다고 했는데, 그들이 바쁜 이유는 대부분 한국 교육의 실제 문제와 씨름하기 때문이 아닌가? 맞다. 어쩌면 학자들의 관심은 온통 ‘실제 문제들’에 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의 학자들이 현존 한국 교육학의 성격을 ‘교육실천학’으로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교육학자들이 ‘한국 교육의 실제’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들이 씨름하고 있는 실제는 진정한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교육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쉴 틈 없이 바쁘고, 그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교육의 실제와 관련된 일일망정, 정작 그들의 관심은 ‘한국 교육의 실제’가 아니라 지엽적인 사안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온통 ‘실제 세계’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꿰뚫어 보는 시각을 갖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하나는 한국 교육학의 태동과 성장이 한국의 교육 실제와 무관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외국에서 수입되어 외국의 교육 현실에서 만들어진 개념과 이론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겉보기에는 교육의 실제 문제를 다루더라도 우리 교육의 실상에 관한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다른 하나는, 학문 후속 세대의 양성과 충원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석·박사 학위논문의 주제 선정이나 심사 기준에서 교육 현실과의 관련성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학문 세계의 입문 목적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 차원에 맡겨두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대학교수의 충원 과정도 공적 고려보다는 기존 교수들의 사적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4 그러니 이들의 학문 활동에서 한국의 교육 실제가 주요 관심사로 등장하기 어렵다.
그로 인한 불합리한 현상 중 하나가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교수들이 예비 교사들을 가르치는 현상이다. 물론 현장 경험 없이 교수가 되었어도 이후 현장을 가까이하면서 이해를 넓힌다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사 양성기관에서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 아무도 그런 요구를 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무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교사 중 여럿은 이런 현실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그들 대부분은 양성기관에서 배운 내용 중 교직 수행에 실제 도움이 된 것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현실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현상이 바로 교육학과 교육 현장의 거리감이다. 교사 양성이든 교직 실무든 간에, 학자가 실제의 교육 활동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활동이 벌어지는 현장 가까이서 실천가들과 긴밀하게 교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 교수들은 일반적으로 초중고 교육 현장에 즐겨 가지 않으며, 현장 교사들과의 소통에도 익숙하지 못하다. 소통의 장이 부족할뿐더러 심지어 서로 적대적인 기미마저 감지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교육학자로서 살아가는 데는 이런 상황이 별로 불편하지 않다. 나는 이게 바로 ‘교육실천학’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한국 교육학의 현실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외화내빈’이 적절할 것 같다. 겉으로는 영토도 넓고 인적 물적 자원도 풍부하며 관여해야 할 일도 많아 화려해 보이지만, 정작 학문적 알맹이는 부실하고, 우리의 교육 실제에 주는 도움도 빈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진단은 나의 속 좁은 편견의 산물일 수 있다. 교육학이 교육 실제에 의미 있게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교육과학을 지향하는 처지에서는 이단 사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육 실천에 도움 될 진정한 이론을 목말라 기대하기도 한다. 최근 현장 교사들이 쓴 책이 봇물 터지듯 출간되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기존 교육학에 대한 도전일 수 있다. 한국 교육학은 이러한 도전을 소화해야 할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 이종각(1994). 『교육학 논쟁』 서울:도서출판 하우
• 장상호(2020). 『교육학의 재건』 서울:교육과학사
• 장상호(1986). 교육학의 비본질성. 『교육이론』 1(1).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연구소
각주
- 학문을 실제와 다른 차원의 일로 보는 분들은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은 학문 연구는 그냥 이해와 설명을 위한 것일 뿐 실천, 즉 실제의 변화를 위한 일과는 무관하다고 본다.
- 장상호 교수는 1986년에 이미 이런 관점에서 기존 교육학을 통렬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장상호, 1986). 그는 다른 학문에서 빌려 온 개념에 바탕을 둔 분과 학문으로 구성된 교육학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 뻐꾸기알을 자신의 알로 착각하여 품는 때까치와 같다는 의미로 ‘때까치 학문’이라고 불렀다. 이후 그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30여 년 동안 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저술 활동을 펼쳤고, 2020년 이를 축약 집대성한 『교육학의 재건』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교육학의 하위 전공 영역들을 자청에 의한 모학문(mother discipline)의 식민화 결과라고 규정하면서 ‘용병학문’ 또는 ‘이류잡학’이라고 칭한다.
- 이홍우 교수의 ‘하는 교육학’과 ‘보는 교육학’ 개념은 사실이냐 논리냐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규범이냐 과학이냐를 따지는 나머지 세 학자의 패러다임 개념과 차원이 다르다. 다만, 교육의 실제에 대한 도움보다는 개념적 이해와 이론 정립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전문가가 되는 일이 단지 개인적인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로 둬도 되는지에 관해서는 공론화의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그 과정은 유무형의 공적 자원이 투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 장학금으로 국내외에서 학위를 취득하고도 아무런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현실은 불합리하다고 생각된다.
현재 건신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원장, 한울고등학교 교장, 이우학교 초대 이사장, 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회 상임위원,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1세기연구소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 외에 '사회정책 제3의 길(2008), 대안교육 이해하기(2007), 현대사회와 교육의 이해(2004), 고등학교 교육학(2002)'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